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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맑게 갠 날

작성자청산에|작성시간26.06.07|조회수63 목록 댓글 6

 

모처럼 맑게 갠 날이다.

창가로 스며든 화사한 햇살이 방 안을 환하게 비춘다.

햇살을 등지고 앉으니 모니터 화면이 유독 또렷하다.

 

모처럼 찾아온 시간의 여유 속에 카페 구석구석을

유람하듯 훑어보았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두드려보면서도,

혹여 기계가 고장이라도 날까 조바심이 난다.

그러면서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짐짓 모른 척하며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카페 화면 속 메일을 살피다 내 정보를 클릭해 보았다.

닉네임 '청산에'. 등급란에 '우수회원'이라 적혀 있다.

예전 기억에는 우등회원이었는데,

언제 이리 변경해 주셨을까.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 작은 등급의 변화가 뜻밖에도 어린 시절 방학날의

성적표를 소환한다. '·우·미·양·가'의 추억.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을 게다.

성적표에 찍힌 야속한 글자를 지우개로

긁어내고 '미'를 '우'로 고쳐 썼던 철없던 기억.

결국 바쁘셨던 부모님은 성적표를 찾지 않으셨고,

그렇게 슬그머니 지나간 유년의 비밀이다.

어느덧 6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왜 이 기억은 빛바래지도 않고

이따금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화면 아래로는 출석방, 가입인사방,

국내외 여행방과 문화예술방 등 예전에는

활기가 넘쳐났던 수많은 항목들이 줄지어 있다.

지난 20여 년간 이른바 '눈팅'을 하며 심심할

때마다 들여다보았던 정든 놀이터다.

 

옛 글과 사진들을 들춰보니,

비록 서로 생면부지의 처지이나 화면 속

닉네임들은 오랜 도반처럼 친숙하기만 하다.

저편의 이들에게 나는 여전히 낯선 이방인이겠지만 말이다.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그 시절 그토록 활발했던 이들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계실까.

지나온 날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반추하고 있다면 다행이련만,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도

더러 접하게 되니 인생의 무상함이 밀려온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떠 깨어남을 인지할 때마다

주님께 감사 기도가 먼저 나온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고맙다.

 

이제 '청산에'도 제법 철이 들었던 모양이다.

지난 2025년 말, 무엇에 이끌린 듯 흔적을 남기고

이실직고 고백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

변명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나이 들면 말이 많아진다더니,

이 또한 흐르는 세월이 내게 남긴 현재의 자화상일 것이다.

 

조국에 유월의 온기가 가득한 첫 주일입니다.

회원님들의 가정에 유익하고 복된 휴일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늘 건강이 최우선임을 잊지 마시길 바라며,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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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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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영은님 !
    세월 따라 숫자는 줄어들었어도, 오랜 정과 안부를 나누는 마음까지 줄어든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렇게 늘 자리를 지켜 주시는 회원님들이 계시기에 불지방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글에도 늘 따뜻한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도록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콕언냐 | 작성시간 26.06.07 이젠 눈도 어두워지고 ㅎㅎㅎ
    손가락도 느려지고,
    매사가 귀찮고
    편함만 찾게 되고

    오늘이 주어지심에 그져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나날들 이랍니다 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콕언냐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눈도 예전 같지 않고 손가락도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지만,
    그래도 아침에 눈 뜨고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은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보다 주어진 오늘이 더 귀하게 느껴지네요.

    늘 건강하시고, 편안함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우두머리1 | 작성시간 26.06.07 불지방은 영원할겁니다
    우리의 의지가 꺽이지 않는한.....
    청산에님 ,..오래, 오래 불지방에 귀한 손님이 되세요.
    다들 다 좋은 분입니다
    마음 털어놔도 비집고 들어와 못된짓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길요.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7 우두머리님, 늘 넉넉한 말씀 감사합니다.

    불지방이 영원할 것이라는 말씀보다 더 든든한 응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먼발치에서 눈팅만 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안부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정겨운 쉼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회원님들께서 서로를 배려하고 품어 주시는 분위기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귀한 손님으로 남기보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 오래 함께하겠습니다.

    우두머리님도 늘 건강하시고, 불지방의 든든한 우두머리로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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