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거나 샤워 후 머리를 말릴 때면
머리카락이 제법 길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발할 때가 다가왔음이다.
나는 보통 두 달에 한 번씩 머리를 깎는다.
오늘도 이발을 위해 잘 아는 교민의 집에 가 거울 앞에 앉아
머리 깎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가위가 경쾌하게 움직이고 빗이 머리카락 사이를
오갈 때마다 문득 한국인의 손재주가 떠오른다.
같은 가위를 들고도 누군가는 단정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내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결국 손끝의 감각이 솜씨를 만드는 것이리라.
예전에 읽은 글이 생각난다.
세계적인 의료기술을 다루던 내용이었는데,
한국인은 유독 손끝의 감각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였다.
정교한 수술이나 섬세한 작업에서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를 그런 감각에서 찾고 있었다.
한때 황우석 박사의 유전자 연구가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비록 그 연구는
훗날 큰 논란과 아쉬움을 남겼지만,
당시 세계가 한국의 유전자 기술과 연구 역량을
주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시절 신문과 방송을 보며 우리도 이제
과학 의료 기술 강국이 될 수 있겠다면서
손끝에서 오는 감각의 민감한 재주에 기대를
품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조상들의 손기술은 예부터 뛰어났다.
금속공예와 목공, 자수와 도자기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손끝에서 만들어 낸 섬세함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쉬운 비유가 우리 식생활의 쇠젓가락 사용이라 하더라.
세계 최고의 부국이라 불리는 미국은, 국민 모두의 머리가
특 출한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특별한 각 분야의 인재들이
모여 나라를 이끌어 왔다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는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가 살면서도 조선 말기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일본의 침략을 겪어야 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곧이어 6·25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이 찾아왔다.
폐허가 된 국토와 가난은 대물림처럼 이어졌고,
당시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그러던 중 5·16 이후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도 변변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경제개발 1차 계획을 거치며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고, 그해 11월 30일은
수출의 날로 기념되었다.
이어 제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인 1971년에는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였다.
당시 국민들에게는 실로 기념비적인 뉴스였다.
제3차 경제개발계획을 거친 뒤에는
수출 100억 달러 시대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후 한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고,
2011년에는 무역(수입 지출) 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며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국가가 되었다.
한 세대 만에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세계 10위권
무역국으로 성장한 사례는 세계사에서도 흔치 않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올해 순수 수출 1조 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을 전망하였다. 만약 현실이 된다면 일본을 앞서
세계 5위권에 진입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도체와 방위산업, 조선업과 원자력. 기계 공업 산업에서
보여 주는 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결코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머리를 깎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이 모든 발전도 우리 국민의 손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반도체 회로를 새기고, 배를 만들고,
자동차를 조립하고, 수술을 집도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손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혼자 피식 웃고 말았다.
오래전 읽었던 해학담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느 양반집 부인이 어렵게 아들을 얻고
이름을 '이문덕'이라 지었다는 이야기다.
사실 여부야 알 수 없지만 웃자고 읽
기에는 제법 재미있는 풍자담이다.
사연인즉, 학자 기질이 강한 남편이 아내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오랫동안 부부 사이가 소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급히 집문서를 찾으러
안방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아내의 고은 살결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일로 오랜만에 정을 나누게 되었다.
결국 그 인연으로 귀한 아들까지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부 사이가 그 때 왜 멀어졌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부인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평소에 바느질을 즐겨 했다. 어느 날 옷을 꿰매다가
문득 앞에 놓인 가위가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다.
평소에는 두 날이 꼭 붙어 있다가 일이 생기면
활짝 벌어지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시 한 수를 지어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多情兩脣合
有事兩脚開
다정양순합이여
유사양각개니라
뜻을 풀면,
"평소에는 정답게 두 입술이 붙어 있다가
일이 생기면 두 다리를 벌린다."
여기서 입술은 가위날을, 다리는
가위 손잡이를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이를 단순히 가위를
노래한 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녀자의 품위를 잃은 음사(淫詞)라며 꾸짖었고,
그 일로 부부 사이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훗날 우연한 계기
(집안의 귀중한 집 문서 찾는)로 다시 정을 나누게 되었고,
그 결과 태어난 아들의 이름이 바로 '이문덕'이었다는 해학담이다.
즉 이가 물어 몸이 가려워 이를 잡아야 할 때
부부의 정으로 이루어진 아들이라.
물론 실제 고전에 실린 정식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옛사람들이 웃음과 풍자를 담아 전해 내려온 구전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이발소 거울 앞에 앉아 가위 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그 옛날 가위를 풍자하던 양반집
부인의 재치가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여러 회원님들께서는 체면상 웃지 마시기를 바란다.
머리 잘 못 깎일까바 웃음도 참느라 힘들었다.
혼자 웃음을 참으며 이 글을 올린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우두머리님~
쇠젓가락 이야기는 저도 공감합니다.
어릴 적부터 콩알 집어 먹으며 단련된 손끝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머리 자주 깎으라는 말씀은 따르겠습니다.
다만 머리를 깎을 때마다 글이 한 편씩 나오니,
나중에는 글 쓰려고 일부러 이발소를 찾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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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콕언냐 작성시간 26.06.14 수 많은 인종중에 조선인들과 유대인들이 평균 IQ 가 가장 높다
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영토도 작고 국민 수도 작은 편 이지만,
장점을 참 많이 갖이고 있는 우리 민족들 이란 생각은
변함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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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콕언냐님~
IQ가 높은지는 제가 평균을 조금 깎아 먹고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ㅎㅎ
분명한 것은 작은 나라에서 반도체도 만들고, 배도 만들고,
K-문화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의 저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특히 어려울 때 더 힘을 내는 근성은 세계 어느 민족과 비교해도 손꼽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덕분에 이발하다가 시작한 글이 애국심까지 불러내는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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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새벼기 1 작성시간 26.06.13 글솜씨가 좋습니다
한국인의 손놀림은 세계적이죠
양궁 올림픽에 증명
이발하면 기분좋죠
사각사각 가위소리에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잠이 솔솔 옵니다
언제나 건필하세요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3 새벼기 형님~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형님 말씀대로 한국인의 손놀림은 양궁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흔들림 없이
과녁을 맞히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발할 때 들리는 사각사각 가위 소리는 묘한 매력이 있지요.
머리카락만 잘리는 것이 아니라 잡념과 스트레스도 함께 잘려 나가는 느낌입니다. 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형님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