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뉴질랜드로 떠나는 나의 여정 (2)

작성자청산에|작성시간26.06.19|조회수93 목록 댓글 12

 

뉴질랜드로 떠나는 나의 여정 (2)

 

3. 홀로 남겨진 시간 이민자로 살아가기

1983년 1월 말 김 사장님 내외가 한국으로 귀국하고,

4월 말에는 박 사장님도 떠났다.

 

함께 방을 쓰던 지현이마저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사하면서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모텔 생활에서 나와 공장에 숙소를 마련했다.

농수산부 검역 담당자의 방문 때마다

공장 내부는 흔적을 지워야 했고,

의자가 침대였던 그 밤,

창가 달빛에 고향 그리움이 눈물이 되었다.

 

이 시절,

외국인을 위한 학교에 등록해 영어를 배우며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폴란드 난민들과 어울렸다.

그 중 태국 유학생들과 친해졌다.

 

내가 공장 차를 제공하면

그들이 끼니를 챙겨주는 상부상조가 이루어졌고,

외로움도 조금씩 달랬다.

 

한국의 추석날 공장 전화로

서울 집에 전화를 돌렸다.

 

처와 나누는 그리움 속에

'이곳에서 함께할 그날'이 새삼 간절하게 기다려졌다.

 

오타고 대학교 기숙사에 잠시 입주해

뉴질랜드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4. 새 시즌과 사업의 이면 W N 회사와의 갈등

1983년 새봄 이곳의 11월,

서울에서 김 사장님 내외와 박 사장님이 오셨다.

 

새 시즌의 녹용 건조 작업은

손발이 맞아 순조로웠다.

 

사슴은 이른 봄부터

수사슴만 뿔이 자라 48~51일째 잘라야

최상품 녹용이 된다.

 

10월 말~11월 초가 피크 시즌이었다.

뉴질랜드에 사슴이 생긴 것은 1860년대 이후,

영국인들이 유럽산 사슴을

야생에 풀어놓은 것이 시초였다.

 

김ㅇㅇ 사장님은 1975년경 처음 이곳을 찾아

녹용 사업을 시작한 선구자였고,

1982년 더니든의 W N 회사와 동업으로 공장을 세워

나도 이 일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WN Ltd.와 한국 측의 관계에서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NZ 측 회사가 농장에서

kg NZ$80에 구입한 녹용을 NZ$90 식으로

조작한 영수증이 발견된 것이다.

 

한 시즌 구매량이 9,000~12,000kg이니

연평균 수만 달러의 손해였다.

 

3년치를 따지면 NZ$27~36만의

 손실에 이르렀다(당시 시세로 큰 금액이었다).

1982년 당시 외국에 나갈 때 1인당

외환 소지가 $1000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비디님,
    당시에는 정말 한국인을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롭기도 했지만 그만큼 이민자들끼리
    더 끈끈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녹용을 소주에 담가 드셨다니,
    그 시절 뉴질랜드를 다녀오신 분들의 공통된 추억인 듯합니다. ㅎㅎㅎ

  • 작성자스카이블루 | 작성시간 26.06.23 당시의 김사장이 온양 사람 이지요 그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뉴질랜드의 네더디오 사슴을 수입한 업자인데 생각이 안나내요 당시엔 김포에 김태수씨가
    대전에 여씨인 노인이 우리나라 에서는 수백마리씩 사육했지요
    당시 엘크값은 생후 3개월된 새끼가 한마리당 1850만원씩 주고 사왔는데 당시 한마리 값이 논 한섬지기 값인데 주위에서 날더러 미친놈 취급 했지요
    죽으면 한섬지기가 날아가는데! 물론 뉴질랜드의 네디디오는 3~400 만원도 안됬지 만요 꽃사슴은 80만원 정도의 값이구요 까마득한 이야기내요
    아~~옛날이여!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스카이블루님,
    당시 사슴 산업의 산증인이시군요.

    저는 그저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만 조금 알고 있었는데,
    직접 엘크를 들여와 사육하시던 분들의
    고생과 결단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시절에는 정말 큰돈을 투자하는 모험이었겠네요.
    지금 와서 보면 모두가 역사가 되었지만,
    당시를 살아오신 분들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추억일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가을나라 | 작성시간 26.06.22 사슴 농장에 취업 이민으로 뉴질랜드에 이민 가셨네요.
    작업 환경은 알수없으나 일정 수입이 보장되어 직업적인
    스트레스는 덜 받지 않았나 쉽습니다.
    뉴질랜드의 자연과 그곳 현재 생활이 궁금해지네요.
    가능하시면 사진과 더불어 올려주시면 더욱 박진감이 넘칠것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산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가을나라님,
    많은 분들이 취업이민이면
    생활이 안정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근로자로 녹용 건조 공장에서 일했는데,
    언어와 문화가 모두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고
    수입도 넉넉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이 늘 있었고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지요.

    그래도 뉴질랜드의 깨끗한 자연과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연재를 이어가면서 당시 사진과
    지금의 모습도 기회가 되면
    함께 소개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