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아에서 예배.
사도행전 16장 -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절. 사도행전이 기록 된 장소에 살고 있다는 것과,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지명에 가 봤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예전 엔 별 감흥 없이 읽었던 말씀이 이제는 참 가까이 와 닿습니다. 말씀과 말씀 사이. 행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사도바울이 무엇을 생각 했는지 짐작되어지고 참 많이 이해되어 집니다.
사도바울의 1차 선교여행의 구브로섬. 지금의 키프로스. 키프로스에는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그 곳에는 사도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은 기념 기둥이 있습니다. 즉 사도행전 기록에는 없지만 현장에는 행간의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사도바울이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다고 기록하지만 어디에서 맞았는지는 모든 기록이 없지만 그 중 한 곳이 구브로 오늘날 키프로스 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 외에도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당했던 고난들이 있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고난 당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도바울의 충직한 동역자 누가는 사도바울의 고난이 주제가 아니라 복음이 어떻게 열방으로 전해 졌는지의 목적으로 사도행전을 기록 했습니다.
2차 선교여행.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마가로 인하여 심한 다툼이 있고, 바나바는 조카 마가와 함께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키프로스)로 선교여행가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길리기야를 거쳐 더베 루스드라로 갑니다. 길리기야는 사울의 고향인 다소가 있는 지역입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같이 고향 다소지역에서도 사도바울의 복음 전도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리아와 길리기야로 다니며 교회를 견고하게 하니라' 라는 한 절의 기록뿐입니다. 이 한 절 안에는 사도바울과 실라의 눈물이 가득 할 것입니다.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2절. 사도바울이 돌을 맞아 죽었던 곳인 루스드라가 고향인 디모데를 만납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라는 뜻으로 바울의 제자가 되어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한 목회자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딤후1:5)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이었으므로 헬라적인 영향을 받아 다신사상에 빠져들 수도 있었으나 디모데는 그 이름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섬겼습니다. 신실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하나님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디모데는 모범적인 젊은이가 되어 갔던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며 봉사하는 청년 디모데가 그의 고향 루스드라에서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은 당 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평온한 가운데 기독교 교육을 받던 디모데의 인생은 사도 바울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고 볼수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한 바울과 디모데의 만남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모진 핍박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바울의 모습은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디모데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돌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하고 기도하며 죽었던 스데반집사를 보면서 자신이 오히려 산돌 복음의 돌을 맞았듯이 루스드라에서 사도바울이 돌을 맞아 죽으면서 스데반집사를 생각하며 동일하게 돌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용서하며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디모데는 사도바울과 같이 산돌 복음의 돌을 맞은 것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디모데는 자신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준 영적 아버지 바울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제자 훈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정에서 성경공부를 함으로써 기반이 다져진 디모데의 믿음은 바울의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 점차 성숙되어 갔습니다. 온유하고 충성스런 성품과 훌륭한 인품을 소유한 디모데는 바울의 고백처럼 사랑하고 진실한 아들 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 된 디모데를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 동행케 하였음은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할례를 받고 장로회에서 안수까지 받은 디모데는 본격적으로 바울의 동역자로서 부족함이 있을 수 없는 훌륭한 목회자 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 역시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럼을 잘 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병약하기까지 한 젊은 디모데는 거친 광야와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해 나가는데 너무도 힘이 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훗날 바울의 후임으로 있던 에베소교회에서도 복음 전파하기를 두려워하고 진리를 왜곡시키는 거짓 교사들을 두려워함으로써 그의 한계를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디모데는 바울이 보내준 서신 디모데 전 후서를 통해 위로와 가르침을 받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봅니다. 디모데 역시 고독한 사도의 길을 가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그의 마음에 큰 위로를 주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고 합니다. 사고력과 인내력이 뛰어난 반면 우유부단한 디모데에게 바울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잘 조화되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곧바로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연결이 되었다던 것입니다.
바울과 디모데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바울이 디모데를 찾아 후계자로 삼으려는 모습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4:9). 디모데는 바울과 세대가 다르고 성격과 인품도 달랐으나 성령의 끈으로 하나로 묶이자 더할 수 없는 동역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겸손하고 진실 된 평화 애호자로서 사도의 동역자가 되어 선교와 목회사역을 해나간 디모데는 오늘 주님의 일꾼이 되어 헌신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능력과 더불어 훌륭한 인품을 갖추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함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진정 바울과 디모데 같은 귀한 동역자들의 사귐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3절. 할례가 신앙의 조건이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일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터키에서는 선교사로 파송 받은 이는 한국에서 목사이든 평신도 이든 터키인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의 목회자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각에서는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이 세례를 베푸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을 위해서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 좋겠지요. 디모데의 할례와 장로들에게 안수를 받았던 이유와 동일합니다. 복음을 위해서는 말씀의 규정 안에서 무슨 일이든지 해야 만 됩니다.(고전 9:20)
고린도전서 10:23-33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4-5절. 1차 예루살렘교회 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을 전하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의 율법을 강요하지 말며, 유대의 율법은 구원에 아무 장애가 되지 않음을 전하였습니다. 할례도 포함이 됩니다. 이로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급속도로 전파가 되었습니다.
선교는 현장화와 상황화가 필요합니다.
한국기독교가 정한 법을 터키에서 적용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는 일입니다. 우리 이스탄불 교회에 나오는 모든 터키인들은 애연가들 입니다. 교회 오기 전에 담배 냄새를 풍기며 왔다가 1부 예배가 마치면 단체로 밖에 나가 담배를 한대 피우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2부 나눔과 식사교제를 합니다.
터키는 아이 어른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껌을 씹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를 금기시 한다면 복음이 전파되는 대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언 듯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이것이 현지화며 상황화입니다. 담배는 본질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기 문화의 그릇까지(껍질) 전하면 안 됩니다. 복음 그 본질을 전하여야 됩니다.
그렇다고 터키에 있는 한국사역자가 담배를 피운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디모데가 할례를 받은 이유입니다.
신학은 남을 가르침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함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죄인인지 더 깊이 이해하고 회개하고 낮아짐이 목적입니다.
[바울이 환상을 보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6-10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아시아는 지금의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아시아로 갈 수 없게 된 상황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브루기아지역은 지금 터키의 아피욘아라히사르 지역이며 갈라디아 지역은 지금 터키의 수도가 있는 앙카라 지역입니다. 비두니아는 앙카라 위 흑해 쪽입니다. 이 도 역시 성령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 항구로 내려갔습니다. 무시아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이며 드로아는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곳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도바울의 사역이 참 은혜이고 감동입니다.
우리가족은 2년 전 사도행전을 읽으며 드로아로 갔었습니다.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만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로아 현장에서의 감흥은 참 기억에 남습니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군인이 마게도냐로 건너와 도와 달라는 꿈을 꾸고 드로아에서 오늘날 그리스로 이동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도착한 네압볼리에는 사도바울이 도착한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복음이 서진하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복음이 서진하여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도착하면 마지막 때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서진과 동진의 의미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루디아가 믿다]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1-15절. 네압볼리 항에 도착한 사도바울 일행은 내륙으로 이동하여 첫 도시 빌립보에 도착하였습니다.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고 사도바울 일행은 유대인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인 강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여인들이 모인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중에 소아시아의 두아디라 출신 자색 옷감장사를 하는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루디아는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마음으로 듣고 강가에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의 집에 머물며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 교회가 되었습니다.
몇 해 전 온 가족이 차를 끌고 그리스의 네압볼리와 빌립보와 루디아기념교회를 다녀왔습니다. 다시 말씀을 읽으며 그리스 여행에서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사도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은 참 감동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히다]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19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16-24절. 빌립보 성 안에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그 점치는 여종으로 큰돈을 벌고 있는 자이며 그 돈으로 관리들을 매수하며, 지역에서 유지로 이름을 날리는 자 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경호를 위해 군사까지 있는 자 이었습니다. 그를 건드리면 어찌 되는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 여인을 고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지만, 귀신들린 한 여인 의하여 목숨을 걸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았습니다. 결과는 너무나 확실했습니다. 그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은 바울을 잡아다가 관원에 넘겼습니다.
순간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알렸더라면 면하였을 태형을 감수하였습니다. 몹시 심하게 맞고 빌립보의 옥에 실라와 함께 투옥되었습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25-34절. 매를 맞고 옥에 있지만, 그 옥에서도 감사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동일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옥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 참 쉽습니다. 어느 곳 어떤 상황이 되어도 그것이 감사가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찬양을 하였습니다. 내일이면 교회가 개척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찬양을 간수들도 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스데반집사에게서 산돌 복음의 돌을 맞았던 것과 같이 옥에서 찬양하는 바울과 실라에게서 간수는 산돌을 맞았습니다.
그 때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고 손발의 수갑이 풀렸습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함으로 도망을 갔겠지만 바울은 내가 도망가면 간수가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간수가 자살하려는 상황에 그를 살리고 복음을 전하였고 그 밤에 그 간수의 온 식구가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가 구원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 간수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바울은 심한 매를 맞고 옥에 보내진 것입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것도 그 배에 타고 있던 경건한 뱃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전멸 할 여리고성에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기생 라합과 그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들어간 2명의 복음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1명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 선교입니다. 저는 감히 못하는 일입니다.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35-40절. 옥에 갇혔던 사도바울과 실라 두 사람 모두 로마의 시민권자임을 말하였습니다.
눈치를 차린 관리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관용을 베풀 듯 바울을 풀어주려 하였습니다. 로마시민은 당시 제판의 판결 없이 매를 때리거나 옥에 가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옥에서 나간다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복음 전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매를 맞은 것의 보상을 원함도 아니고 로마시민으로 대우를 받으려함도 아닙니다. 사도바울과 실라는 처음부터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맞지 않아도 되는 매를 맞고 옥에 갇혔던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관리들이 직접 찾아와서 정중히 사과하고 옥에서 정당하게 출옥을 하였습니다. 이제 어느 누구도 바울과 실라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고난 위에 빌립보교회가 세워 졌습니다. 루디아 첫 여성에 의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아마 바울을 지켰던 간수와 그 가족이 루디아와 그 가족들과 함께 빌립교회 개척성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교현장에 ‘루디아 프로젝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믿는 한 사람을 통하여 교회를 개척 할 수 있도록 돕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터키에서는 선교사들이 지방에 살기위해 거주권을 쉽게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탄불에 살면서 주일마다 지방으로 내려가 예배드리고 세례를 주고 제자를 양육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바로 ‘루디아 프로젝트’입니다.
특별히 루디아 프로젝트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를 개척하는 방법입니다.
교회 개척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버리는 사도바울입니다. 구브로에서도 마술사의 고소로 고초를 당하고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고 역시나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자신의 몸을 던지는 사역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던지는 삶 감히 이런 사역자가 되기를 구합니다. 사도바울의 영적인 힘은 바로 고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사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동입니다. 은혜입니다.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세상과 다름을 봅니다.
http://cafe.daum.net/happymaker.turkey
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