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중앙교회(모세가 언약의 증거판을 깨뜨리다.)
이스탄불중앙교회(모세가 언약의 증거판을 깨뜨리다.)
출애굽기 32장 -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이스탄불중앙교회)
“야훼” “여호와” 의 히브리어 표기는 “יהוה”입니다.
요드. 손(el) 이라는 뜻이며 י
헤이. 보다(görmek) 는 뜻입니다. ה
바브. 못(çivi) 이라는 뜻이며 ו
헤이. 보다(görmek) 는 뜻입니다. ה
‘여호와’ ‘야훼’의 뜻은 ‘손을 보라 못을 보라!’ 라는 뜻입니다.
손에 못 자국이 있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요한복음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여호와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이시며 곧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하나님이시며 곧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곧 여호와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언약 파기와 갱신(31:18-34:35)
[증거판. 모세에게 증거판을 주시다]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1:18절. 모세가 증거판 돌을 받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성막을 보고 생명의 말씀을 받는 40일 동안 시내산 아래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가 죽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광야생활을 아는 이스라엘백성들의 눈에는 음식도 물도 없이 구름과 불로 휩싸인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에 오른 모세가 살아 있을 수 있는 확률은 0%입니다.
출애굽기 19:16-18
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시내산은 이스라엘백성의 눈에는 죽음의 산이었습니다.
모세가 죽었다면 이제 어떻게 할까요?
우리의 삶에도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마냥 기다리는 것이 믿음일까요?
힘들었지만 밥은 먹고 살았던 집을 떠나 풀 한포기 없는 광야로 나왔습니다. 다시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인도자는 죽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금송아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적금을 들고 후원을 구하고 대안을 찾고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됩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백성은 나의 모습입니다.
[금송아지 상]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1절. 사람은 물에 빠져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떡과 물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도 아닙니다.
병에 걸려 죽는 것도 아닙니다.
풀무불에 던져진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사자 굴에 던져져서 죽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담는 질그릇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없어서 죽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죽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람은 금송아지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품은 자는 죽으나 산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 이 땅에서 건강하고 부자로 높은 지위로 존경받는다고 산 것이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바로 보지 못하면 믿음의 진보는 없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2-3절. 사실 아론은 하나님을 가르치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세상의 방법으로 살 궁리를 하였습니다. 아론의 살 궁리가 결국은 자신도 죽고 이스라엘백성도 죽이는 길이었습니다. 아론이 하는 일은 내가 하는 일입니다.
‘나는 금송아지는 섬지기 않는다.’고 큰 소리 치겠지만, 우리 안에는 만일을 대비하는 금송아를 항상 만들고 품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촌에 땅 하나, 아파트 하나, 종신보험, 잘 키운 자녀, 지혜와 지식, 나만의 노하우 등 거룩한 척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산다고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금송아지를 품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난 뒤 다시 갈릴리로 가서 고기 잡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도 갈릴리에 집과 작은 배로 먹고 살 방법을 하나쯤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위급한 상황이 되면 마음 한 편에 숨겨둔 대안으로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아론의 마음에도 이스라엘백성의 마음에도 감추어두었던 것이 금송아지로 실제화 되었습니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4-6절. 금송아지는 애굽에서 5번째 ‘생축의 악질 재앙’으로 무너뜨린 거짓 신인 황소의 신'아피스'(Apis)와 '므네비스' 암소의 수호신 '하도르'(Hathor)입니다.
출애굽기 9: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하나님께서 무너뜨린 거짓 애굽의 신 황소의 신인 '아피스'(Apis)를 만들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 아론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이며 적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건강하고 부자가 되고 자녀가 잘 되고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굶고 고난당하고 낮아지고 십자가 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론의 마음과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에 숨겨진 금송아지가 실제화 되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백성은 나의 모습임을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이스라엘백성에게 준 말씀이 아닙니다. 모세의 시대와 사사의 시대와 다윗의 시대와 선지자의 시대와 신약의 사도들의 때와 오늘날 우리들에게 나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때나 지금 우리의 시간이나 인간 내면에 있는 죄는 동일합니다. 성경은 그 옛날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오늘날 내 속에 있는 악한 죄를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백성을 위한 모세의 기도]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7-10절.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고 성막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모세에게는 얼마나 감격이고 감동이었을까요?
40일 주야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았습니다.
모세가 감격과 은혜로 말씀과 생명의 성막을 가지고 백성에게 내려가려는 그 때 아론과 이스라엘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바로와 다를 바 없이 목이 곧고 완악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겠다.’ 하십니다.
에스겔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막을 만드시는 하나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진멸하시고 모세로 다시 시작하시겠다고 합니다.
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11-14절.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모세는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중보자 모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을 진멸하시기를 원하신 것일까요?
밤늦게 오는 자녀에게 아버지가 ‘다시 늦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리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늦어버린 자녀의 다리를 아버지는 부러트렸을까요?
다시 늦은 자녀를 꾸짖고 회초리를 들은 아버지 옆에서 엄마가 말려서 자녀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무사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자녀의 다리를 부러트릴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밤늦게 집으로 오다가 사고가 날까 염려하신 아버지 사랑의 마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세의 간절한 중보기도가 이스라엘백성을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단코 아닙니다.
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악인도 돌이켜 살리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왜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라고 말씀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어렵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완악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방에서 창문에 깨지면 아버지는 급히 자녀를 부릅니다. 자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부른 것이 창문을 깬 것을 꾸짖기 위해 부르신다 생각하고 두려워하지만, 아버지가 자녀를 다급히 부르는 이유는 자녀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신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문책하려하심이 아니라 죽음에서 살 수 있는 가죽옷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하시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을 부르신 이유는 가인에게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죽음의 자리에 있는 가인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창세기 4:14-15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우리는 보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만 듣지 못하고 만지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수준으로 이해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각의 수준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시려고 주신 책입니다.
성경은 내 생각을 인정하고 내 아픔을 이해하려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뜯어 고치시려고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죄로 인하여 진멸 될 수밖에 없는 자들을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언약의 증거판을 깨뜨리다]
15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17 여호수아가 백성들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18 모세가 이르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내가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그 송아지와 그 춤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15-19모세가 기다리고 있던 여호수아를 만나 함께 시내산을 내려옵니다.
내려오는 중에 이스라엘백성 진 가운데 시끄러운 소리가 납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이 난 줄 알았지만 모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화를 내며 돌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막아서며 간절히 중보기도 하였던 모세가 왜 돌판을 던져 깨뜨렸을까요?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일까요?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다는 것을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를 진노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고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38-41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이 분노는 모세의 인간적인 감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근거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돌판을 깨뜨림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하는 것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만일 그 돌판에 새겨진 언약대로 심판하신다면, 이스라엘은 당장 진멸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출32:10).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의 판을 깨뜨릴 경우,
그 판에 기록된 문서 내용의 효력이 취소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은 언제든지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신7:9).
그 언약의 절대성을 생각한 모세는 언약의 돌판을 깨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계약서의 위력은 막강합니다. 그 계약의 내용을 어느 한 쪽이 지키지 않았을 때 법정 다툼이 일어나고, 무역 분쟁이 생겨나며,
나아가 국가 간에는 전쟁까지 터졌던 일들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의 돌판을 들고 이스라엘백성의 진중으로 들어가면
돌판의 언약대로 아론과 이스라엘백성들은 전부 죽음입니다.
모세는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으로 돌판을 던져 깨뜨린 것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완악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세는 돌판을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으로는 결단코 살 수 없습니다. 돌판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일입니다.
돌판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깨뜨리심으로 율법의 법에서 생명의 복음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아멘
20 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20절.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렸습니다.
이는 금송아지가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을 마시게 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깨닫게 하려 함입니다.
21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22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23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21-24절. 아론을 문책하는 모세.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을 문책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아론은 아담과 같이 하와와 같이 가인과 같이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아론의 죄를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를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아론과 같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변명하는 악한 자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자를 구원하시려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깨뜨리셨습니다.
[백성이 벌을 받다]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27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29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25-29절. 형제가 형제를 친구가 친구를 이웃이 이웃을 칼로 도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요? 참 어렵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모세는 백성의 잘못을 깨우치고 하나님의 언약의 돌판을 깨뜨리어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십자가 돌판 되시어 깨뜨려 구속하신 주님이 다시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죄를 인정하고 돌아서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선택하고 입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 가운데 3천 명 가량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세를 대적하였습니다.
아론이 죽지 않은 것은 깨닫고 돌아 섰다는 것입니다.
죄는 금송아지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살인하고 간음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고 살인도 아니 하고 간음도 아니 하며 정한 율법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며 마음으로 여인을 품은 것이 간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입니다.
죽이는 것은 칼도 아니고 기근도 아니고 불도 아니고 사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육의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영의 죽음입니다.
[모세가 백성을 위해 기도 드리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30-35절.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이스라엘백성을 중보 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도 악한 죄인임을 아는 자입니다. 악한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이스라엘백성들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스데반집사가 자신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스데반집사도 동일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죄인들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스데반집사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중보 하였습니다.
아벨이 형 가인이 내려치는 돌을 맞아 피를 흘리고 죽으면서 하나님께 드린 핏 소리입니다. 형 가인에게 긍휼을 베풀기 원하는 아벨의 핏 소리입니다. 가인도 아벨도 동일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아벨은 제사의 양이 자신을 위해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의 죄를 덮어주신 어린양의 피 묻은 가죽옷임을 알았습니다.
가인이 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인의 생각으로 살아가며 가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는 패역한 자들입니다. 아론이 무책임한 자가 아니라 우리가 자기 책임을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제사장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 ‘나는 저들과 같지 않습니다.’라는 기도를 하는 우리입니다.
무슬림들이 악한 것이 아니라 ‘나는 저들과 같지 않다.’라고 기도하는 내가 악한 자입니다. 나도 무슬림들과 같이 동일하게 죄인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생명을 얻었듯이 동일하게 무슬림들도 구원을 받아야 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하나님은 참 속도 없으신 분입니다.
예레미야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하나님은 속도 없으신 분입니다. 속도 없고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습니다. 체면도 없이 어떻게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음행한 아내를 돌아오라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구하고 계십니다. 언제든지 돌아 만 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겠다고 하십니다. 이미 용서를 했다고 하십니다. 그 죄악을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기억을 하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대가를 치르더라도, 억지로라도 회복시키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금송아지를 섬긴 백성들 간음한 아내가 다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땅 가나안으로 앞서 인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모세의 마음과 눈물이 우리에게 부어지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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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