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장.
호세아 선지자.
나의 사랑하는 책.
터키 보건부의 발표 - 6월 07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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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구합니다.
지금은 이스탄불대학 2학기 기말 시험기간입니다.
수빈이는 4학년 졸업 마지막 시험이고 성호는 3학년 기말 시험입니다.
오늘도
은혜를 구하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호세아 11장 -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사람들은 스위치가 전등에 불을 켜지게 하거나 끄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기가 없으면 아무리 스위치를 켜고 끄고 해도 불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불이 켜고 끄는 본질적인 것은 전기에 있습니다. 스위치는 전기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위치와 같은 존재입니다.
불이 항상 켜져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스위치 없이 직렬로 연결해 놓으면 항상 불이 들어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도 일하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없으면 더 빨리 쉽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하실 때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명을 받으면 우리가 일하려고 합니다.
노심초사 일이 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이 되게 할 수도 안 되게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안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욥기 38: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우리는 스위치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on)하는 것과 부정(off)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일이 되게 하는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시편 73: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 앞에 엎드리며 예배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방법 자기의 돈과 자기의 열심과 준비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일은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뿐 입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면(on)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일이 되게 하시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감히 선교한다고 합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불신실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4-14장)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1-3절.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곧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종 되었던 아들을 팔로 안아 먹이고 입히고 걸음마를 가르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구원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 이스라엘은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을 보내어 인도하고 부를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더니 급기야 하나님아버지를 떠나 우상 바알을 섬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건을 옮길 때에는 손이나 장비를 통하여 들어 옮깁니다. 물건은 말로 불러서 스스로 반응하고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움직일 때는 말로 부릅니다. 즉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동하게 합니다. 만일 사람을 물건처럼 손이나 장비나 강제적인 힘에 의하여 옮기게 되면 이는 사람을 인격이 없는 물건 취급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 없는 흙덩이에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인격을 주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신비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심이 하나님 창조의 핵심이며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들어졌고 돌과 같은 우리에게 인격을 주시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 전능하심을 내려놓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기다리시고, 타이르시고, 위로하시며 끝까지 우리를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십니다.
이 인격은 그 어떤 창조물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과 스스로의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기다리시고, 타이르시고, 위로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미련한 방법입니다. 티끌과 같은 존재인 우리를 손만 뻗어 말씀만 하시면 아니 생각만 하시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대로 우리를 조정하실 수 있으실 텐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아버지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우리를 인격체로 대하시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돌멩이 같은 나를 그렇게 끝까지 사랑하시고 인격체로 대하신다는 것은 돌멩이가 인격을 가진 것 이상으로 신비이며 감격이며 감사이며 은혜입니다.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돌멩이 같은 나에게 오셔서 ‘나에게 올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놀라운 신비와 사랑을 깨달아 알기를 원합니다.
호세아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인격으로 대하시기를 위해서 타일러 위로하고 ‘설득’하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손으로 들어 우리를 물건 다루듯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창조된 우리의 인격은 하나님이 부를수록 멀리하고 오히려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립니다.
2,755년 전(BC.735)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4절.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의 줄 곧 사람의 줄을 보내주시는 분이십니다.
돌아보면 이 자리까지 참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가장 먼저 ‘아버지’라는 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신 아버지 그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우고 사랑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을 꿈꾸며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말과 행동과 생각과 심지어 걸음걸이와 머리스타일까지 보고 배웠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바라보고 계신 아버지 많이 보고 싶습니다.
고교시절 성경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가르치신 ‘윤 목사님’과 ‘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눈을 열어 주신 귀한 목사님들 이셨습니다. 그리고 대학시절 만난 ‘배 전도사님’ 성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시며 성경을 재해석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군 시절에는 ‘최 목사님’과 ‘김 목사님’의 ‘민들레교회이야기’ 라는 작은 책을 매주 보내주시어 단절 된 곳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과 자유혼을 가르치셨습니다. 결혼식을 할 때 오셔서 주례를 해 주시며 축복해주셨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하시는 자유혼을 소유하신 참 산 같은 ‘최 목사님’ 다시 한 번 같이 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결혼 후 제자훈련으로 예수님의 참 제자의 모습을 알게 하시고 가정을 알게 하시고 개인 사업을 시작하게 하신 ‘김 목사님’ 열정적으로 교회를 사랑하게 하신 귀한 목사님입니다. 지금은 멀리 계시지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참 예배와 선교를 가르치시며 겸손과 긍휼을 가르치신 ‘주 선생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게 하신 귀한 선생님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법을 가르치시며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을 몸소 가르치시고 지금도 문자로 말씀을 보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하프타임에서 만난 중요한 분이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김 목사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 그 시간에 ‘터키’라는 땅을 동행하시고 보게 하시고 결정하게 해 주신 귀한 선생님 이십니다.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과 기대와 기도로 지원하시는 감사한 선생님 이십니다. 하나님과 이처럼 가까이 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귀한 선생님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터키 땅에서 만난 귀한 선생님들 ‘오 선생님과 이 선생님’ ‘손 선생님’ ‘이 선생님과 사공 선생님’ ‘김 선생님’ ‘최 선생님’ 귀한 선생님들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갑니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갈림길과 시기와 때마다 정확히 가르치셨던 목사님들과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귀한 선생님들 참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며 나도 나누고 전하고 섬기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영원한 스승 되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꾸짖으시고 가르치시고 낮추시며 새롭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나의 평생에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내가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참 많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딱 그 시점에 합당한 그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너무 높고 많이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낮은 이도 아닌, 그 시점에서 내가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정확한 그 사람, 아버지, 선생님, 전도사님, 목사님, 형제, 친구, 동역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을 붙여 주시고 보고 배우게 하십니다.
그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사랑의 줄이었습니다.
또한 나의 멍에를 벗기시고 나의 앞에 먹을 것을 공급하셨습니다.
그러나 교만하고 높아지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을 결코 찾지 못하고 만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줄 앞에 엎드리고 무릎을 꿇어야 만이 배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을 무시하고 듣지 않고 높아져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하나님 보내주시는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은 대단한 박사이거나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보다 조금 나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내가 배우고 따를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십자가 예수그리스도 앞에 이끌어 갈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낮아지고 겸손하며 들을 귀와 부드러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을 만나고 엎드려 배우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5-7절.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공격에 의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실제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고 일부 유다사람들이 바벨론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참고 인내하고 기다리시며 설득하시는 하나님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고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결국 세상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세상의 유혹과 음녀의 속임과 떡과 포도주의 풍성함에 마음이 빼앗겨 하나님아버지를 버리고 고멜과 같이 남편을 버리고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남편삼고 앗수르를 왕으로 삼는 자가 되었습니다.
2,755년 전(BC.735)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와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8-9절.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8절과 9절은 호세아서의 절정이며 하나님의 마음이며 가장 중심이 되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신명기 21:18-21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술 취하고 패역한 아들에게 내리는 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술 취한다는 것은 세상의 떡과 포도주와 즐거움에 취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며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할 때 함께 멸망한 곳이 아드마와 스보임입니다.
‘어찌’ 4번이나 연속을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만큼 죄가 크며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는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아버지에 불순종하여 떠난 자식은 돌에 맞아 죽어야 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창기와 먹어버리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동산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아버지보다 동네 사람들이 먼저 발견하면 돌로 쳐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발견하고 가장 빨리 달려가 아버지의 옷으로 탕자를 덮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 돌에 맞아 죽을 탕자를 덮었습니다. 아버지의 그 사랑이 불붙듯 합니다.
‘자비’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 ‘긍휼’은 ‘라힘(Rahim)’으로 여성의 ‘자궁’을 이르는 말입니다. 자비와 긍휼은 자신의 자궁에서 난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어찌 어미가 자신의 자궁에서 난 자를 무정하게 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인격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심으로 나타내시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닮은 인격체를 만드는 것으로 나타내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받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악 된 길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그냥 두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정한 버려둠이 아니라, 긍휼이 불붙듯 하는 자의 버려둠입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결단코 아니십니다.
우리가 진노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떡과 포도주와 즐거움에 취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오락가락 한다는 것이며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떠나 멸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 족속은 속임수로 나를 에워쌌고 유다는 하나님 곧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자에게 대하여 정함이 없도다
10-12절.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아버지하나님은 사자와 같이 소리를 내시고 우리를 바다에서 이끌어 내시고 죄에서 이끌어 올리시기를 원하십니다. 사자와 같은 울부짖음을 듣는 귀가 열리기를 원합니다.
유다의 사자로 시온의 거리에서 외치신 주님의 그 긍휼과 불타는 가슴으로 십자가에서 부르짖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우리를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 앞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줄 사람의 줄의 음성 앞에 새같이 비둘기같이 두렵고 떨며 하나님아버지께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9)’ 하나님아버지는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아버지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 놀라운 사랑으로 완악한 우리를 죄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내가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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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