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근수
나는 바보였습니다.
봄날의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언젠가 다시 만날 인연이 있다고 믿었고,
가을 들녘 억새가 흔들릴 때면
떠난 사람도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계산하며 살아가는데
나는 늘 한 박자 늦었습니다.
손익을 따지기보다 정을 먼저 내어주었고,
의심하기보다 믿음을 먼저 건넸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참 바보 같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바보였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접고
누군가에게 먼저 내어주던 사람,
힘들다는 말을 듣고는
내 형편도 잊은 채 달려가던 사람,
상처받고도 미워하지 못해
오래도록 가슴만 앓던 사람.
그런 바보였습니다.
한때는 나도 영리하게 살아보려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재어 보고,
말의 무게를 따져 보고,
손해 보지 않는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메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졌고,
웃음은 점점 얇아졌으며,
세상은 더욱 낯설어졌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바보가 된다는 것은
어리석게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고,
아픈 사람을 걱정하며,
멀어진 인연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삽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안부를 묻고,
지나간 추억을 꺼내어 미소 짓고,
문득 스치는 이름 하나에도
가슴이 저려오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세월은 내 머리 위에
하얀 눈꽃을 내려놓았고,
얼굴에는 주름이라는 강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마음 한편에는
소년 같은 순정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진심을 먼저 내어주고,
그래서 또 상처를 받으며,
그래서 다시 사람을 믿습니다.
어쩌면 나는 평생
고치지 못할 바보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꽃은 피었다 지면서도
다시 봄을 기다리고,
강물은 굽이쳐 흘러도
끝내 바다를 향하듯,
나 또한 사랑을 믿고,
정을 믿고,
사람을 믿으며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영리해져도
가슴 한쪽에 따뜻한 불씨를 품고 사는 사람,
손해를 보아도 웃을 수 있는 사람,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바보 하나쯤은
이 세상에 남아 있어도 좋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바보로 살아갑니다.
사람 때문에 울고,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다시 힘을 내는,
참 오래되고
참 아름다운 바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