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인기 끌고 있는 ‘죽음학’
수강생 넘쳐 3년 동안 기다려야 할 정도
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아주 필요한 학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결국 모든 인간이 마주치고 최종적으로 가야만 할 길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아리송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죽음학(Death Class)’라는 것이다. 이 죽음학이 대학의 교과 과정으로 채택돼 학생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학에서만이 아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해 토론하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인터넷 토론방도 생겨날 정도로 부상하고 있는 학문이다.
혹시 법의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아니다. 법의학은 범죄수사학의 한 과정이다. 피살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살해됐는지를 부검이나 검시(檢屍), 뼈 조각을 통해 밝혀내는 하나의 의학적 기술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 등장한 죽음학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참고로 ‘Death Class’는 대학의 한 커리큘럼을 의미하는 것이고 학문적으로는 죽음학을 ‘Thanatology(Death Science)’이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고대 그리스어 ‘타나토스 Thanatos’로부터 나온 것으로 죽음의 신을 의미한다.
인도 힌두교 경전에 나오는 죽음의 군주 야마와 같다. 야마는 검은 물소를 타고 밧줄로 된 올가미를 들고 다니며 죽은 자를 야말록이라는 죽은 자의 공간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이 신화가 중국과 우리나라로 건너와 사후세계의 지배자이자 죽음의 신인 염라대왕이 생겼다.
신체의 일부나 기관의 죽음을 말하는 의학용어 ‘thanatos’에서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면 이 용어는 문학의 소재에서 흔히 발견된다. ‘미국 시의 아버지’로 통하는 윌리엄 브리안트(William Cullen Bryant)의 잘 알려진 작품인 ‘Thanatosis’를 포함하여 죽음에 대한 예언과 묵상을 다루고 있는 시들이 많다.
킨 대학의 죽음학 강의 폭발적인 인기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킨 대학교가 개설한 죽음학 교과 과정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노마 보위(Norma Bowe) 교수가 진행하는 ‘긴 안목으로 보는 죽음 Death in Perspective’ 강좌가 그것이다. 어떤 때는 3년치 대기자 명단이 있을 정도로 수장자가 몰려든다.
한번은 수강생들이 지역 내 검시관 사무실을 방문하여 철제 테이블에 놓인 벌거벗은 시체 3구를 관찰했다. 한 명은 총에 맞아 사망했고 다른 한 명은 자살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익사했다.
세 번째 시신은 과체중으로 보였지만 실은 아니었다. 그는 물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뺑소니 용의자인 그는 범죄 현장에서 도망쳐 경찰의 추격을 받다가 자신의 차를 버리고 파사익 강(Passaic River)에 뛰어들었다.
WSJ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시 테이블에 누워있는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놀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학생들이 모이자 검시관이 시신을 부검하였다. 그 장면과 냄새를 견딜 수 없어 입을 막거나 뛰쳐나간 학생들도 있었다.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 마음과 기술을 습득
이 음울한 방문은 죽음 수업에 포함된 야외 체험활동 중 하나이다. 매 학기마다 학생들은 뉴저지 주 유니온 캠퍼스를 떠나 공동묘지와 보안이 철저한 교도소(살인범죄자 방문), 호스피스 병동, 화장터, 장례식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에서는 자신의 관(棺)을 고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이 죽게 되면 어떤 관 속에서 영면을 취하고 싶은지 선택하는 것이다. 과제도 특이하다. 학생들은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사랑했던 이에게 작별 편지를 쓰고, 그들 본인의 유언장과 추도문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이는 분명 병적인 관심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위 교수의 죽음 강좌를 이수한 학생들과 그 강좌를 좋아하는 미 전역의 팬들은 중요한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죽음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죽음만찬’, ‘죽음 살롱’도 등장
최근 죽음을 추상적인 가능성 이상으로 보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모여 죽음을 논하는, 소위 ‘죽음 만찬(death dinner)’이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맥주를 마시면서 죽음에 대해 토론하는 ‘죽음 살롱’도 있다.
리지 마일즈는 지난 2012년 7월 하이오 주 웨스터빌에 최초로 죽음 카페를 주최한 인물이다. 그녀는 차와 케이크를 즐기면서 음울한 대화를 나누는 죽음 카페가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 상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참가자들은 죽음 모임을 트위터에 알리고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유명한 유튜브 시리즈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1960년대 미네소타 대학의 사회학자 로버트 풀턴과 브루클린 칼리지의 심리학자 허만 페이펠 같은 석학들은 죽음이 캠퍼스에서도 논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죽음과 임종 편람(The Handbook of Death and Dying)’에 따르면 1970년대 말에는 미국 전역에서 600개 이상의 죽음 관련 강좌가 생겨났다. 오늘날에는 보건학, 철학, 의학 분야에 이르는 다양한 학과에서 수천 개의 죽음 관련 강좌를 찾아볼 수 있다.
비단 대학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 많아
죽음학과 관련 재미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1984년 위스콘신 대학 인간발달학 교수 일레인 큐핏이 학장을 찾아가 죽음과 임종, 인명 손실에 관한 강좌를 개설해 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학장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누가 그런 강좌를 듣기나 하겠소?”라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 강좌가 막상 개설되자 수강생이 가득 차는 바람에 수강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해야 했다.
큐핏 교수는 현재 ‘죽음교육과 카운셀링 협회’ 회장으로 있다. 지난 해에 할리우드에서 열린 죽음학 교육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자리에서 그녀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제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약 600명의 죽음관련 교육자와 임상의, 의료인, 장의사, 호스피스 종사자, 성직자, 사회복지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학술 분야는 심지어 ‘죽음학’ 이라는 자체 저널도 운영하고 있다.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들 중 많은 사람들이 보건학이나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거나 보건 종사자로 활동해 온 인물들이다.
킨 대학교에서 14년간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는 보위 박사도 이전에는 응급실, 중환자실, 정신병동에서 간호사로 재직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강좌가 학생들이 수강하는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죽음 앞에서 만큼은 인간은 다 평등하다. 최근 ‘죽음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통해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동국대학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부 대학에도 이러한 강좌가 개설돼 있다. ⓒtimothysecret.com
“죽음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삶을 왜곡하는 것”
죽음학을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의 동기가 고매한 것은 아니다. 한 학생은 살인 사건 수사의 첫 48시간을 주로 다루는 엽기적인 리얼리티쇼인 A&E의 ‘The First 48’을 시청하게 된 것이 인연이 돼 보위 박사의 죽음학을 수강하게 됐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이 죽음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다르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족 구성원에 대처하거나, 사랑하는 이가 끔찍하게 사망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끔찍한 암을 앓고 있거나 하는 등의 이유다.
이 강좌는 이러한 젊은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죽음을 숙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많은 이들은 노년이 되거나 불치병 진단을 받은 후에야 그런 기회를 갖게 되는데 반해, 이들은 젊은 나이에 죽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허만 페이펠 박사는 “우리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죽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죽음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삶의 형태를 왜곡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함으로써 우리는 삶에 대한 인식을 더 분명하게 강화할 수 있다”고 썼다.
동국대학, 한림대학 등에서 교과 과목으로 개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대학이 죽음학을 교과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 물론 미국과 같이 현장체험까지 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1학년 때 교양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 동국대학에서는 ‘삶과 죽음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몇 년 전부터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죽음은 세상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삶은 죽음을 못 본 척 하고, 우리 사회는 죽음을 얘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죽음은 밤과 같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애는 삶과 죽음으로 완성된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붙잡고 1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97년 교양과목으로 죽음학 강의를 시작했다. 2004년 국내 유일의 죽음문제 연구소라고 할 생사학연구소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라고 하면 생명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며 논하기를 꺼린다. 물론 죽음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내리기란 어렵다. 그러나 죽음학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무지로 인해 공포나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여 생명의 우연성(왜 태어나야 하는가)와 유한성(왜 죽어야 하는가)을 인식하고 현재의 삶을 잘 파악하여 생명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고 그래서 보다 높은 정신적 삶의 가치와 진정한 행복을 찾게 하는데 있다”. 삶과 죽음의 철학’ 강의 계획서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출처 : 허수 아비와 추억만들기 카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