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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비 코너

뮌헨의 전혜린과 서울의 하루비

작성자진짜하루비|작성시간18.06.06|조회수447 목록 댓글 0










몹시 괴로워지거든 어느 일요일에 죽어버리자.

그때 당신이 돌아온다 해도
나는 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
당신의 여인이여, 무서워할 것은 없노라.

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지라도
나의 혼은 당신과 함께 있노라.


다시 사랑하면서
촛불은 거세게 희망과도 같이
타오르고 있으리라.

당신을 보기 위해 나의 눈은
멍하니 떠 있을지도 모른다.

<1965년 1월 18일 전혜린>













.......전혜린






민음사에서 나온 그녀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이런 글이 있었다.

독일 유학 후 대학교수로 생활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
홀로 걸어온 길, 마지 막 편지, 독일로 가는 길, 나에게 옮겨준 반항적 낙인,

집시처럼, 나의 딸 정화에게 등 자신의 생활 주변을 소재로 한 글들이다.

전설이나 신화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람이 있다.
전혜린, 그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의식이, 그의 언어가 집요하게 떠밀고 가는 순간의 지속,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귀한 선물이다.
그는 오늘의 침묵에 이르기 위하여 언제나 말을 했고 언제나 노상에 있었다.
당신은 이제 알 것이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값을.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비






이어령 씨는 아래와 같이 짧게 그녀를  말했다.

검은 머플러,우수에 서린 무서운 눈동자로 
그 날카롭고도 매혹적인 에스프리를
쉴 새 없이 발하던 전혜린...

그의 말은 하나의 음악이요 한편의 시였다.











.....................

전혜린.
그녀를 최초로 알게 된 것은 이제는 30년이 다 된 중학교 시절 영남대 국문학을 공부하는
외삼촌의 서재 속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 책은 가히 내 영혼을 잠식시켰다.
신경과민증에 속할 그 글자들이 그 어린 나이에 모두 이해가 되었다.
조금 누렇게 빛바랜 그 책이 그렇게 가슴을 적시는
이유를 모른 채 그녀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녀의 글이 주는 울림에 실제 가슴에 흉통이 일어났던 나,

ㅡ 그때의 그 소녀가 보인다.

나는 그때 그녀보다 덜 예민하지 않았다고 자시있게
말할 정도여서 그녀의 글을 모두 이해했을 것이다.
그건 이해가 아니라 그것으로 표현이 안될 더한 무엇이었다.

"아, 당신은 어느 시대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가? 어디서 왔는가?"
그때부터 전혜린은 나에게 신화가 되었다.
그녀를 구체적으로 만난 것은 20대 중반이었다.
한창 연애라는 찌질한 병에 걸려 있던
나는 그녀의 글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랄까.
책 마다 거의 줄을 다 그었다. 참으로 빛나던 시간이었다.

지구상에 없는 누군가의 흔적이 한 개인의 생에 이렇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인가?






         


                                    


               
문학소녀치고 그녀를 한 번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그 부류 중 하나겠지. 세상의 무게를 받쳐들고 살아 온 나도 그녀처럼 앓았다.
그러나 어찌 그녀의 글처럼 글과 같을까.
평생에 한 번 사춘기처럼 앓다가 가는 감정들을 그녀는
죽기까지 평생을 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전혜린이라는 열병을 낳게 만든 요인이다.


짧지만 불꽃같이 살다가 전혜린의 삶과 글은 내게도
글쓰기의 원초적인 바탕이었는지 모르겠다.
부친의 뜻에 의해 서울대를 법학과를 들어갔으나 일찍이 선진교육을 받는 그녀가
자유로운 문학에 대한 갈망을 실천하기까지의 모든, 그 치열한 삶의 여정들을 나는 사랑한다.

특히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책, <루이제 린저>의 <생의 가운데>를
그녀가 번역 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녀를 송두리째 좋아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독일 문학을 우리 것으로 누가 그렇게 섬세하고도 높은 단계의 인식으로 번역을 할 수 있으랴.








루이제 린저 역시 감사할 일이다.
그녀를 한 번도 내 스스로 말로 꺼낸 적이 없었는데,

글쟁이들은 내 글에서 전혜린을 떠올렸다는 말을 곧잘했다.
그것으로 묘한 감정이 찾아왔다. 칭찬이리라. 칭찬 치고는 과분하건만 왜 얼떨떨하기만 했을까.

그녀의 혈관 속에 집시의 피가 흐르던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던

내게 있어 그녀는 타들어가는 촛불 같았다.

새로운 땅 독일로 가서 문학을 공부한 것.

그 기간 동안 그녀가 만나고, 보고, 느낀 모든 것에서

그녀가 던진 끝없는 생의 수많은 질문들....

죽음, 사랑, 윤회, 종말, 괴로움,.... 의지가 넘치면서 나약한 모습은 나와 몹시 닮아 있었다.

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역시....

문학을 하는 사람치고 그런 게 누군들 없을까만....

그녀는 안쓰럽도록 오래 아파했다.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되어 본 그녀였지만  무엇이 그토록 우울했을까?
우울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단 말인가? 자신과 닮은 책들을 번역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괴로움 속에 집어던진 것은 아닐까?

그녀의 책 <이 괴로움을 또다시>  그 속에서 그녀의 우울하고 파괴적이며 

아련하고 매혹적인 감성적 필치는

내 우울과 불안, 혹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다. 





로우면 어느 일요일 죽어버리자/그때 당신이 돌아온다 해도/나는 이미 살아있지 않으리라/

당신의 여인이여/ 무서워할 것은 없노라/다시는 당신을 볼 수 없을지라도/

나의 혼은 당신과 함께 있노라/ 다시 사랑하면서/촛불은 거세게 희망과도 같이/타오르고 있으리라/
당신을 보기 위해 나의 눈은/멍하니 떠 있을지도 모른다.





                                             





<괴로우면 어느 일요일 죽어버리자>

이 詩는 어디론가 뛰어가서 담벼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말 청춘들에게 큰 위안이었으리라.
그것이 글의 힘,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아무튼 그녀가 얼마나 청춘의 가슴을 뛰게 했는지....

그녀가 죽도록 사랑한 뮌헨이라는 곳. 그 단어만 봐도 가슴이 설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는 문헨 거리에서 만나는 자유로운 이방인.

대학로와 카페가 이어지는 거리를 걷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문헨으로 떠난 작가도 꽤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책 속에서 만나는 혜린. . 그녀가 그곳에서 만난 새벽길 할아버지 청소부, 석탄 캐는 광부,

돼지고기를 구워 주는 식당, 검은 맥주 흰 맥주, 그녀의 책마다 가득한 문헨 냄새....

아담하고 소박한 그 어느 카페에 앉아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문헨에서도

수바빙이라는 거리를 아직도 우리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혜린...... 그녀가 떠난 지 48년이 흘렀다.(지금은 50년이 넘었다) 

독일에서 낯선 이방인이었을 그녀가 한 카페를 얼마나 자주 갔으면 그 카페는 책에 등장을 자주 했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떠난 지 그토록 오래 되었건만 그녀가 죽지 않고 갈아 있다면 까르륵 웃으며
"에잇. 거짓말이지?"라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 있었다.
글쎄, 독일인들이 그녀가 자주 갔던 그 카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세 단어인데 입안에서 떠오를 듯 말듯하다.
아무튼 그게 대수랴. 거기에서 그녀를 위한 추모제를 열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알고 그녀가 기뻐했을까? 모르겠다.
1955년부터 59년까지 문헨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글을 쓴 동양 여자, 무명작가였다.
당시 21세였던 그녀를 시간이 흘러 곰곰이 들여다본 한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혜린이 독일어로 쓴 베스트셀러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번역했다.
그 저널리스트는 이 동양 여자에게 깊숙이 빠져들어 2010년 전혜린에 대한 라디오 방송을 기획한다.
그가 찾아서 읽은 전혜린의 글은 생동감이 넘치고 진실되고 매우 독창적인 문체였다고 한다.
그 후 2013년 그곳에서 전혜린이 앉았던 그 카페에서 그녀의 글을 낭송하는 음악회도 열렸다고 한다.
살아서 큰 작가는 아니었으나 죽고 난 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하는 그녀. 

요약해보자. 전혜린은 남편 김철수 교수와의 사이에서 딸 정화 하나를 남기고 죽었다.
 30년대 말 손꼽히는 부잣집 딸로 태어났고 (친일인사긴 하지만...)



                    




아버지의 비상한 두뇌까지 물려받아 서울대 법대 입학 후 뮌헨으로 유학, 

서른의 나이에 귀국 후 성균관대 교수로 채용된 당대의 독보적인 지식인... 

그 당시 박인환의 목마의 숙녀 같은 시가 그때 나왔다는데, 후에 낭송으로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글로 그냥 뒀으면 오글거린다고 할까, 뭐 그런 게 있다. 

전혜린에게서도 그런 종류의 오글거림이 전혀 없진 않다. 

아니, 조금 덜 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당대의 선택받은 두뇌와 인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그래서 그 도도함과 자의식의 근원을 생각해볼 때 그냥 눈을 감게 된다. 내게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게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음.... 마지막 저널리스트의 말을 계속 음미한다. "생동감이 넘치고 진실되고 매우 독창적인 문체"라.... 

그럼 나도 그와 비슷한 문체인가? 그건 아닌데... 무엇이 비슷하다는 거지?
이게 뭔가.... 그녀도 혼자 살기를  꿈꾸었다고 책마다 읊조리고 있다.

자기 일생을 "인식"에 바치고 싶다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는 나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글마다 드러나는 지나친 내면의 몰입도 그랬다. 그게 내게 왔을 땐 그것은 지나친 감정의 낭비였으니....









바닥을 치는 빗소리가 요란하던 그 조그만 막걸리 집.

탁자가 고작 두 개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집이었다.

거기 작은 마루가 있었고 우린 신발을 벗고 그 위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 옆의 창문이 있었고 비늘이 처진 창문을 타고 빗줄기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박진환 교수를 만난 날이 그랬다는 것이다. 사부님이 둘이서 이야기 하라며 도망가 버렸다.

사부님은 미리 그동안 내가 쓴 시들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보여 준 후였다.

교수는 모두 같은 사람의 글인 줄 모르고 시를 세 개로 나누었다고 한다.

사부님이 3개의 부피가 비슷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버려야 할 것이고,

하나는 21세기 시 창작법을 이미 아는 시라고 했다.

나머지 하나는 자기 멋대로 쓴 시가 엽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1세기 어쩌고에 들어간

원고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에게 데려오라고 했다고 한다.
고로 박진환 교수 같은 기라성에게 내 글이 먹힌 것이다.

하참... 처음엔 그가 어느 만큼 대단한 분인지 몰라서 사부님이 좋아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부님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

속일 생각도 없었다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분이 같은 사람이란 것을 모를 분이 아닌데....

모르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유쾌해 죽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모르는 나는 뭔지 모르는 이질감으로

"같은 걸 안 쓰고 오랫동안 쓴 것인데.. 어떻게 알겠어요? 하며 퉁명하게 말했다.
사부님은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다 쓴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전화로 했단다.

그 말을 직접 보고 말하기가 버거웠단다.
그 말을 들은 영감님 왈 " 아하.... 아.... 이 사람아.... 그럼....



그 아일 빨리 내게 데리고 왔어야지.... 언제 올 거야? 하루라도 빨리 왓."

부침개가 지지직 익고 있었고 박진환 교수는 나를 이렇게 바라보기만 했다.

촌 닭이구먼. 하는 그 표정. 그럼에도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크다 싶은 흰 사발을 내게 쓱 내밀더니 마치 뽀얀 우유 같은 막걸리를 한가득 주루룩 따라 주었다.

원 샷이다. 첫 잔은 원래 그렇게 들어간다. 했던가.
막걸리가 주전자로 두 개째 들어올 때 박진환 교수가 하는 말씀이  "너와 전혜린은 비슷해."라고 말했다.

한기가 들듯이 좀 놀라다.

그때가 11월이었나. 은행잎이 가로수마다 원을 무덤을 만들었던 때였다. "
어떤 면에서요?" 당돌해지는 게 술이 좀 오른다 싶었다.
그럼에도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모르겠는데, 그때 마냥 떨렸던 걸 기억한다.

막걸리 사발이 유난히 크고 두텁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의 모든 것은 그대로 두고.... 바로 광기야...."









"광기... 요?"
"그래.... 이놈아, 너에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광기가 있거든. 나는 그걸 높이 산다.

그 외 전혜린을 닮은 그 감수성도 사랑하지만 절반 이상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거야.

너는 두 개의 표정을 가지고 있더라. 매우 다채로운 인격체, 인간적인 감성과

야생적인 본능 같은 자의식... 뭐 그런 측면에서.... 글이 두 개로 나눠지더라고..."
사부께 들은 말은 사이버에서 히트를 친 시는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었고,

(ㅎㅎㅎ여기서) 사부님도 웃었다)
오이도를 다녀와 쓴 시부터 21세기 시작법, 어쩌고 저쩌고 하시더라고 한다.

".........광기라면 어떤 거죠?"
"그건 특별히 말할 순 없는데, 일테면 현실과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

네겐 그게 있어. 글에서 분명 발견했고 만나보니 나를 보는 그 눈에도 있거든?"
"......."
"염려하지 마. 나도 광기가 많아. 난 광인이야. 소위 미쳤지...

미치지 않고 어떻게 글을 쓰겠어? 응? 하루비 미쳤고 나도 미쳤으니  글을 쓰지.

요즘 세상에 미치지 않고 누가 시를 쓰냐? 너도 미쳤으니 소설을 쓰는 거고...."






나는 막걸리가 맛있다며 사발을 핥아먹었던 것 같다.

막걸리가  맛있는 건지, 그때의 분위가 맛있는 건지 잘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루비 여기서 내 말을 잘 들어라...."
"... 네"
그의 말투는 교단에 서 있는 선생 같은 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들려주는 한마디.

"전혜린이 죽어버렸으니 지금까지 그 이름이 소회되는 거지....

아마 살아 있으면 그녀의 글을 지금도 좋아할까?"
"...........!"

"그녀가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계속 사람들이 좋아야 줬을까? 아니거든. 아니야....."


그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들었지? 그래.... 너 오늘 큰 공부 했으니까, 이런 공부는 돈 줘도 못 배우는 거야.

앞으로도 너 공부는 내가 시킬테니 .... 오늘 막걸리 값은 니가 내라."

그 이후로 그녀는 내게 변화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런 이야기다. 







                                             

한 잔 드시면 "좀 늦게 태어나서 너랑 연애하고 싶다." 며

촉촉해지던 그 감성적인 교수님이 칠순이었는데, 아직 살아 계신지 알 수가 없다.
4년 전쯤, 찾아뵙겠다고 전화를 하고도 멀어서 못 했다.
서울에서 서울이 멀다니.... 박진환 교수가 크게 틀린 거지.
광기는 무슨 놈의 광기? 정신재 박사도 소설을 읽고 서평마다 광기, 광기 했는데,

정작 나는 그런 광기가 사라지고 없음이다.
내 시의 한 구절처럼.... 기차는 서행하고 울림은 사라졌다.

모락모락 피어나던 것들조차 사라져 버렸다.
50년 전에 죽은 서른둘의 혜린이 나를 지금 '기가 막히게' 만든다. 



                                          
하루비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창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였다. (전혜린 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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