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
최근 정신이 많이 삐끗댑니다.
그 많은 일에도 여린 몸을 버티게 한 건 정신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정신이 못 견디게 합니다.
누구일까요?
무엇이기에 못 견딘다고 하는 걸까요?
마음은 별처럼, 달처럼, 해처럼 환해지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무심한 듯 시간은 가고 사물은 고요한데,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진정 영혼 깊이 자유롭기 위해서......
나뭇가지에 푸른 생각을 걸어두고
예수처럼 물 위를 총총 걸어가고 싶어서입니다.
나부끼는 잎새처럼 어디에도 메이지 않고,
아무리 때려도 휘어지지 않는 돌처럼 말입니다.
한 번도 배불리 먹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남의 것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대마저 욕심에서 뿌리를 뽑았습니다.
그 모두를 바람 속에 흘려 보냈습니다.
그럼으로 그 무엇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외적 놀음판 속에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몸서리를 쳤지만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삶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을까요?
비명을 지르면 더욱 혼자가 된다는 것을.
섬세한 영혼을 깊은 뭔가가 지키고 있습니다.
아, 어둠입니다. 여기가 편안합니다.
마음은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지...계속 되묻고 있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가뿐히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가방을 작게 만들자고.
천지 간에 다 내어 주었는데, 아직도 버려야 하다니
어둠 속에서 햇살의 냄새를 찾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편안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건 내일을 신에게 맡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땅이 갈라져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고
큰 건물이 보릿단처럼 넘어가는 형국에
신이 아니고 누가 이 어둠과 대적하겠습니까?
먼지 한 올, 아주 작은 것에서도 깨달음이 오고 가곤 합니다.
캄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끔 한 줌씩 희망의 물을 뿌려줍니다.
이 어둠은 참으로 깊은 협곡입니다.
어둠은 살과 피를 싹싹 후비며
더 깊이, 더 깊이 싸늘하게 가라앉아 갑니다.
아, 그대마저 아무리 외쳐도 모를거라고 합니다.
돌아보면 그대 또한 먼 섬이었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잠이 들었는데, 기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습니다.
몸의 조직과 세포까지 돕고 싶어하는 것을 느낍니다.
어지간히 담금질이 된 것도 같습니다.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이해... 이건 꽤 오래되었습니다.
작은 흔들림마저 일깨우는 바람소리.
들리는지요?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깊이 어두울 뿐, 큰 슬픔은 아닙니다.
아마도 슬픔이 있다면 점점 흐릿해져가는 그대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깊은 어둠은 처음이지만
어둠의 늪에서 기필코 한 존재를 건져 올리려는
그대가 보이기도 합니다.
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곧 범종이 울리고
빛 한 점을 이고 환한 길이 열릴 거라고
심연 깊은 곳에서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푸른 어둠 속에서 절벽은 높을 수록 위대하다고
눈부신 금빛고리가 흔들리는 것이 보았습니다.
이제 더 먼 섬으로 떠나십시오.
그래야 더 깊이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가
돌아오는 그 날엔 달처럼 해처럼 환해져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어둠을 등에 지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이제 더 깊이 잠이 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