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4.11.19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되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되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에 의지하되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
⁕ 2564.11.19
대혜 선사의
게송을 하나 소개한다.
마음 찾을 곳 없으니
편안할 수 있으랴
빨갛게 달궈진
쇳덩어리 씹어서 부수네
눈을 밝게 뜨고
뜻을 널리 펼친다 해도
달마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 것만 못하리.
- 『고존숙어록』 제47권
「동림운문송고」
2564.11.20
▹수행자는 스승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나?
선남자야! 수행자는 목숨이 다하도록
선지식을 공양하고 섬겨야 한다.
그 선지식이 자신에게 잘 해 주고
칭찬을 하더라도 교만하거나
흡족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며,
선지식이 멀리 하더라도
성을 내거나 한을 품지 말아야 한다.
- 원각경 보현보살품
善男子 末世衆生欲修行者
應當盡命供養善友事善知識.
彼善知識欲來親近應斷驕慢
若復遠離應斷瞋限.
2564.11.20
⁕
동산 선사는 깨달음의 경지를
게송으로 노래했다.
결코 남에게
찾으려 하지 말라.
멀고 멀어서
나와는 상관없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진짜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니
진실로
이렇게 깨달아야
여여하게 계합하리라.
- 『조당집 』 제5권 「운암화상 」
2564.11.21
⁕
대우 선사의 주장자 한 대로
나는 부처님의 경계에 들었습니다.
이 깊은 은혜는
백겁 동안 뼈를 갈고
몸이 부서지도록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돈다 해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조당집 』 제19권 「임제화상 」
2564.11.21
⁕총림의 온 대중은
아침에 묻고 저녁에 모여야 한다.
장로가 법당에 올라
설법을 할 때에는
살림하는 대중이나
수행하는 대중이나
모두 줄지어 앉아
귀를 기울여 그 법문을 들어야 한다.
손님과 주인이 묻고 대답하며
종지를 들춰내는 것은
모두가
바른 법대로
살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 『경덕전등록』 제6권
「백장회해선사조말 선문규식」
▹2564.11.22
⁕
대중 가운데
법을 가릴 수 있는
구참 납자나 도반이 있으면
항상 가르침을 청하고,
만약 없거든
조사 스님들이
공부하던 말씀을 보면
조사를 친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2564.11.22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하여 ⁕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며,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확철 대오할 때가 올 것이다.
- 『선가귀감 』
▹2564.11.23
⁕화두 참구법에 대하여
몸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지도 못하고
마음의 눈으로
화두를 한 곳에 거두어들이고
단지 이와 같이
또렷또렷하면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고,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또렷또렷하게
세밀하고 빈 틈 없이 참구하라.
비유하자면
갓난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배가 고플 때 밥을 생각하고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두지 못하며
생각나고 또 깊이 생각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마음이겠는가.
- 『태고화상어록』 「시중 」
▹2564.11.23
●무자 화두를 예로 들어 보자.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은
"없다"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온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
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앞에서 든 인용구가
무자 화두에 대한 전제,
즉 전체 내용이다.
반면에 단제는
'무' 또는
'왜 무라고 하였는가?'
하고 새기는 것이다.
참선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전제와 단제를
섞어 사용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전제가 거추장스럽다.
익어지면
단제 속에 전제가
다 들어가게 되므로
저절로 단제가 되어 버린다.
그 참구 요령은 이렇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 라."
"어째서 무라...?"
"어째서...“
●
'이 뭣고?' 화두
"밥 먹고 옷 입고
말하고 보고 듣는 이놈,
언제 어디서나
소소영령한 주인공 이놈이 무엇인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부모미생전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2564.11.24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하여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며,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 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확철대오할 때가 올 것이다.
- 『선가귀감 』
2564.11.24.
화두 참구법에 대하여 / 태고 보우 선사
몸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지도 못하고
마음의 눈으로
화두를 한 곳에 거두어들이고
단지 이와 같이
또렷또렷하면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고,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또렷또렷하게
세밀하고 빈 틈 없이 참구하라.
비유하자면
갓난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배가 고플 때 밥을 생각하고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두지 못하며
생각나고 또 깊이 생각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마음이겠는가.
- 『태고화상어록』 「시중 」
2564.11.25
⁕
『선요 』에서
화두 공부인은.
'대신심 ' 대분심 ' 대의심'
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요 』의 말씀을 보자.
만약 진실로 참선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크게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하니,
이 일은
수미산을 의지한 것과 같이
흔들림이 없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
크게 분한 생각이 있어야 하니,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때
그 원수를 당장
한 칼에 두 동강 내려는 것과 같다.
셋째,
커다란 의심이 있어야 되니,
마치 어두운 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일을 하고
곧 드러내고자 하나
드러나지 않은 때와 같이 하는 것이다.
온종일
이 세 가지 요소를 갖출 수 있다면
반드시 하루가 다하기 전에
공을 이루는 것이
독 속에 있는 자라가
달아날 까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이
마침내 못 쓰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 『선요 』 「16, 시중 」
2564.11.25
⁕이 일대사를
반드시 깨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큰 믿음을 일으키고
견고한 뜻을 세워
이전에 배웠거나 이해한
부처와 법에 대한 견해를
한바탕 빗자루 질로
바다 속에 쓸어 없애고
더 이상 들먹거리지 말라.
- 『나옹화상어록』 「시일주수좌」
2564.11.26
⁕천진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생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큰 믿음을 일으키고
드넓은 서원을 세워야 한다.
만일 참구하고 있는
공안을 타파하지 못했다면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면목을 밝게 깨달아
미세하게 작용하고 있는
생사심을 꺾어 없앨 것이니
맹세코
처음부터 참구해 오던
화두를 버리지 말라.
-『선관책진』
「천진독봉선선사시중」
2564.11.26
⁕동산 선사는
깨달음의 경지를
결코 남에게
찾으려 하지 말라.
멀고 멀어서
나와는 상관없네.
나 이제 홀로 가지만
곳곳에서 그를 만나네.
그는 지금
진짜 나이건만
나는 이제 그가 아니니
진실로
이렇게 깨달아야
여여하게 계합하리라.
- 『조당집 』 제5권 「운암화상 」
2564.11.27
⁕황벽 선사와 대우 선사를
두 스승으로 모시고 깨달은
임제 선사 또한
스승의 은혜를 이렇게 강조한다.
대우 선사의 주장자 한 대로
나는 부처님의 경계에 들었습니다.
이 깊은 은혜는
백겁 동안 뼈를 갈고
몸이 부서지도록
수미산을
머리에 이고 돈다 해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 『조당집 』 제19권 「임제화상 」
2564.11.27
⁕총림의 온 대중은
아침에 묻고 저녁에 모여야 한다.
장로가 법당에 올라
설법을 할 때에는
살림하는 대중이나
수행하는 대중이나
모두 줄지어 앉아
귀를 기울여 그 법문을 들어야 한다.
손님과 주인이 묻고 대답하며
종지를 들춰내는 것은
모두가
바른 법대로
살고 있음을 보인 것이다.
- 『경덕전등록』 제6권
「백장회해선사조말 선문규식」
2564.11.28
⁕
오조 법연 선사는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 가운데
법을 가릴 수 있는
구참 납자나 도반이 있으면
항상 가르침을 청하고,
만약 없거든
조사 스님들이
공부하던 말씀을 보면
조사를 친견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2564.11.28
⁕무자 화두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은
"없다"고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온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
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그 참구 요령은 이렇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 라."
"어째서 무라...?"
"어째서...“
⁕'이 뭣고?'
"밥 먹고 옷 입고
말하고 보고 듣는 이놈,
언제 어디서나
소소영령한 주인공 이놈이 무엇인고?"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가?"
"부모미생전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2564.11.28
▹화두 참구 방법에 대하여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며,
굶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확철대오할 때가 올 것이다.
- 『선가귀감 』
2564.11.29
▹화두 참구법에 대하여
태고 보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느끼지도 못하고
마음의 눈으로
화두를 한 곳에 거두어들이고
단지 이와 같이
또렷또렷하면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고,
분명히 드러나 있으면서도
또렷또렷하게
세밀하고 빈 틈 없이 참구하라.
비유하자면
갓난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배가 고플 때 밥을 생각하고
목마를 때
물을 생각하는 것과 같이 하여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두지 못하며
생각나고 또 깊이 생각날 것이니
어찌 이것이
억지로 만들어내는 마음이겠는가.
- 『태고화상어록』 「시중 」
2564.11.29
고봉 원묘(1238 1295) 선사는
『선요 』에서
화두 공부인은.
'대신심 ' 대분심 ' 대의심'
의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요 』의 말씀을 보자.
만약 진실로 참선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첫째,
크게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하니,
이 일은
수미산을 의지한 것과 같이
흔들림이 없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
크게 분한 생각이 있어야 하니,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때
그 원수를 당장
한 칼에 두 동강 내려는 것과 같다.
셋째,
커다란 의심이 있어야 되니,
마치 어두운 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일을 하고
곧 드러내고자 하나
드러나지 않은 때와 같이 하는 것이다.
온종일
이 세 가지 요소를 갖출 수 있다면
반드시 하루가 다하기 전에
공을 이루는 것이
독 속에 있는 자라가
달아날 까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마치 다리 부러진 솥이
마침내 못 쓰는 그릇이 되는 것과 같다.
- 『선요 』 「16, 시중 」
2564.11.30.
⁕나옹 선사는 말한다.
이 일대사를
반드시 깨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큰 믿음을 일으키고
견고한 뜻을 세워
이전에 배웠거나 이해한
부처와 법에 대한 견해를
한바탕 빗자루 질로
바다 속에 쓸어 없애고
더 이상 들먹거리지 말라.
- 『나옹화상어록』 「시일주수좌」
2564.11.30.
⁕천진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셍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큰 믿음을 일으키고
드넓은 서원을 세워야 한다.
만일 참구하고 있는
공안을 타파하지 못했다면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면목을 밝게 깨달아
미세하게 작용하고 있는
생사심을 꺾어 없앨 것이니
맹세코
처음부터 참구해 오던
화두를 버리지 말라.
-『선관책진』
「천진독봉선선사시중」
2564.11.31
의정 없는
화두 공부란 결코 있을 수 없다.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닫는다.
간절하게 의심하는 것을
커다란 의심, 곧 대의라고 한다.
그것은
의심하는 '나'가 사라진 자리에서
폭발하는 근원적 의심이다.
이 대의가 기연을 만나
마침내 그 대의가 타파될 때
수행자는 한바탕 크게 죽어
하늘과 땅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른바
'대사일번건곤신' 인 것이다.
사중득활이라는 말이 있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앞뒤가 꽉 말힌 상황에서
크게 죽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살아나야
크게 깨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봉의 구덩이에
반드시 떨어져 있으니
또한 건지지
아니할 수 없도다.
돌!
-『선요 』 「16 시중
2564.11.31
의정, 의단,
타성일편, 은산철벽이란?
무문 혜개 선사는 말한다.
조사의 관문을
뚫고자 하는 사람은 없는가?
삼백육십 개의 골절과
팔만사천 개의 털구멍으로,
온 몸을 다 들어
의단을 일으켜야 한다.
무자를 참구하되
이 무자를
밤이나 낮이나
항상 들고 있어야 한다.
'허무하다'는
뜻으로도 이해하지 말며
'있다,없다'는
뜻으로도 이해하지 말라.
마치 뜨거운 쇳덩어리를
삼킨 것과 같아서
토하고 토해내도
나오지 않는 듯이 하여
이제까지의
잘못된 알음알이를
몽땅 없애야 한다.
이와 같이 꾸준히 지속하여
공부가 익어지면
저절로 몸과 마음이
무자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어
타성일편을 이룰 것이다.
이것은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꾸었으나
오직 스스로만 알 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러다가
홀연히 화두가 터지면
하늘 땅을
뒤흔드는 기세가 생길 것이다.
이것은 마치
관우 장군의 큰 칼을 빼앗아
손에 집어 들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생사의 언덕에서도
큰 자유를 얻고
중생의 삶 속에서도
유희삼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무문관 』
제1칙 「조주구자 」
2564.12.1
나옹 혜근 선사는
"홀연히 밀어붙여 공부해 가면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정을 일으켜
의심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이르면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도 움직이지 않게 되어
모든 맛이
사라진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의정에 들면
억지로 화두를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화두 속에 몰입하게 된다.
의심하지 않아도
자연히 의심이 되고
화두를 들지 않아도
자연히 화두가 현전한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화두가 잘 들린다고 해서
기쁜 마음을 냈다가는
그 환희심이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와
화두를 놓치게 되니
조심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나아가 의정이
순일하지 않고 뚝 끊어지게 되면
아무런 의식도 없는
무기에 떨어지게 되니
이 또한
지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 2564.12.2
이런 시절을
황벽 선사는 이렇게 노래한다.
번뇌 망상
벗어나기 쉬운 일이랴!
화두를 부여잡고
한바탕 애써 보라.
뼛골에 사무치는
추위 모른다면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 어찌 맡으랴.
- 『완릉록 』
《은산철벽의 투과와 깨달음》
▹2564.12.3
의정이 순숙해지면
은산철벽처럼 되어
사유의 모든 출로가 차단된다.
박산 선사는
오직 은산철벽을 타파했을 때만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참으로 몰록
의정이 일어난 자라면
마치 은산철벽 속에 갇힌 사람이
오로지 살 길을
찾으려고 애쓰듯 해야 한다.
만약 살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
공부를 지어나갈 것이니
때가 되면
철벽은 저절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 『참선경어』 상권
「시초심주공부경어 」
▹2564.12.3
⁕나옹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화두에 의심을
크게 일으켜 빈 틈이 없게 하여
몸도 마음도
한바탕 의심 덩어리로 만드세.
거꾸로 매달린 절벽에서
손 놓고 몸 뒤집으면
겁외의 신령한 빛이
서늘한 간담 비추리.
- 『나옹화상가송 』
「연선자구갈」
▹2564.12.4
《왜 화두를 관해서는 안 되는가?》
조사선을 정립한
육조 혜능 선사는 좌선을 할 때
간심과 간정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하였다.
요컨대
돈오견성을 이루어내는 데는
마음을 본다든지
깨끗함을 보는 것조차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일체의 대상화된
관법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왜 혜능 선사는
이런 말을 했을까?
그 정확한 의미를 알아보자.
선지식들아,
이 법문 가운데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깨끗함에도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말도 아니고 움직임도 아니다.
만약에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그러한 마음은 허망한 것이다.
허망함이란
허깨비와 같아 볼 바가 없는 것이다.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한 것이니
이것은 허망한 생각이다.
진여를 덮고 있는
허망한 생각만 여의면
본래 성품은 깨끗한 것이다.
자기 성품의
본래 깨끗함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려 하면
도리어
깨끗하다는 망상이 생긴다.
- 『육조단경 』
2564.1.24
박산 무이 선사는
『참선경어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공부를 하되
공안을 염송만 해서는 안 된다.
쉼 없이 염송해 본들
이것이 공부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미륵이 하생할 때가지
염송한다 해도
이 공부와는 상관이 없다.
차라리
아미타불을 염한다면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무자 화두를 든다면
무자에 나아가 의정을 일으키고,
뜰 앞 잣나무를 든다면
뜰 앞 잣나무에 의정을 일으키고,
일귀하처 화두를 든다면
일귀하처에 나아가
의정을 일으켜야 한다.
일단 의정이 일어나면
온 누리가
하나의 의심 덩어리가 되어
부모에게 물려받은
이 몸뚱이가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온통 의단뿐이다.
온 세상이 있는 줄도 알지 못하며,
안도 없고 바깥도 없어서
의단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루 아침에 테를 맨
물동이가 탁 터지는 것과 같이
의심이 풀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선지식을 찾아가 뵈면
입을 열기 전에 일을
다 끝마치게 될 것이다.
- 『참선경어 』 상권
「시초심고공부경어 」
2564.12.5.
죽은 말로써는
결코 깨침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보조 선사는
"사구를 참구하면
제 몸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라고 했다.
무릇 화두를 공부하는 이는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
활구에서 깨치면
영겁토록 잊지 않고
사구에서 깨치면
제 몸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 『간화결의론 』
2564.12.5.
원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부처라는 말이 활구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는 말이 활구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상대가 문에 들어오자마자
방을 내리치는 것이 활구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상대가 문에 들어오자마자
할을 하는 것이 활구인가?
어림없는 말이다.
단지 어떤 말이건
있기만 하면 모두 사구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활구인가?
알겠는가?
만 길의 봉우리에 외발로 서면
사방 팔면이
온통 암흑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다.
- 『원오어록 』
2564.12.6
그래서
원오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본분종사는
활구를 참구했지
사구를 참구하진 않았다.
활구로 깨치면
영겁토록 잃지 않지만
사구로 깨치면
제 몸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
만약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고자 할진대
반드시 활구로 깨달아야 한다.
소양(운문)선사는
한 마디 꺼냈다 하면
그 말이 마치
날카로운 칼로
자르는 것과도 같았다.
또 임제 선사도
"취모검을 쓰고 나서
얼른 갈아 두어라 " 하였으니,
어찌 이것이
오음 십팔계 가운데 일이랴.
세상의 지혜와 총명함
으로는 결코 미칠 수 없다.
밑바닥까지 깊이 사무쳐
이제껏 남에게 의지해 일으켰던
밝고, 어둡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알음알이를 모두 떨쳐 버리고
금강정인으로 도장을 찍고
금강와보검을 휘두름을
본분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죽이는 데는
반드시 살인도라야 하며
사람을 살리는 데는
반드시 활인검이라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어야 하며,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어야 한다.
- 『원오심요』상권
「시화장명수좌 」
2564.12.6
『서장 』에서
대혜 선사는
무자 화두를 예로 들어
알음알이에 대한
열 가지 병통을 말하고 있다.
우선
무자 화두의 내용을 보자.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선사가 답했다.
"무(없다).“
2564.12.7
⁕
마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눈썹을 움직이고
눈을 깜박거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때로는 그러한 것이
옳고 때로는 옳지 않다.
그대는 어떠한가?
경전이나 어록 등의
문자를 끌어들여
입증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2564.12.7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부처가 무엇이냐는
어느 학승의 물음에
운문 선사는 '마른 똥막대기' 라 했다.
단지 이 화두를 들고
의심해 가다고
홀연히 기량이 다할 때
바로 깨닫게 된다.
결코 문자를
끌어들여 입증하고
넓게 헤아리고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
비록 해석이 분명하고
말이 귀착되는 점이 있더라도
모두가
귀신의 집안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경전이나 어록을 끌어들여
화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고
해석하거나
자기 주장을 펴는 것도 병이다.
2564.12.8
⁕ 혜심 선사는 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잘못 분별하여
유나 무 어디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된 무로서의 무라고 한다.
2564.12.8
『금강삼매경 』에서는
"만약 무를 떠나
유에 집착하거나
유를 버리고 공에 끄달리면
참된 무가 아니다" 라고 하셨으니
비록 유를 여의더라도
공을 세우지 않는다.
모든 법의
진무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와 같이 잘못 안배할까 염려하여
"참된 무로서의
무가 있다고 헤아려서는 안 된다"
라고 말한 것이다.
2564.12.9
⁕몽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마음씀이 조급하면
심장이 뛰어
혈기가 고르지 못하는 따위의
병통이 생겨날 것이다.
이는 바른 길이 아니다.
다만 진정한 신심을 내서
참마음 가운데서 의심이 있으면
자연히 화두가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 『몽산화상법어 』
「시고원상인 」
2564.12.9
⁕이에 대하여
대혜 선사는 말한다.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점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속을 달아오르게 하여
급히 깨달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잠깐이라도 일어난다면
이 생각으로
수행의 길이 막히고 끊겨
영원히 깨달을 수 없게 된다.
- 『서장 』 「답황지현 」
2564.12.10
⁕서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자는
"느슨함과 팽팽함이
알맞게 조율되어야
비로소 맑은 소리가
고르게 나타난다" 라고 말한다.
화두 공부도 이와 같다.
급하면
몸(심장)을 동요시키고
잊어버리면
귀신의 굴과 같이
어두운 경계에 떨어진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하면
공부의 묘한 방법이
그 중에 있는 것이다.
- 『선가귀감 』
2564.12.10
《혼침과 도거란?》
편양 언기 선사는
혼침과 도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경절문의 공부는
조사의 공안에서
언제나
화두를 들고 알아차리면서
성성하게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하며
혼침과
산란(도거)에 떨어지지 않고
절실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과 같이 공부하면
마침내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한
묘한 경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 『선교원류심일설 』
2564.12.11
고봉 선사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계하고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십 년 이십 년을
풀을 헤치고
바람을 뚫고 수행해 왔건만
아직 불성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대들은
'혼침과 도거의
그물에 갇혔기 때문'
이라고 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 혼침과 도거라는
네 글자를 짓는 당체가
곧 불성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 『선요 』 「9. 시중 」
▹2564.12.11
태고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 한다.
이 생사에 부딪혀
힘을 다해 화두를 들라.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질 것이니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진 것을
고요라고 한다.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라고 하고,
고요함 가운데서도
화두가 살아 있는 것을
신령한 지혜라고 한다.
이 텅 빈 고요와
신령한 지혜가
허물어지거나
뒤섞이게 하지 말 것이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깨달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 『태고화상어록』 상권
「 답방산거사 」
▹2564.12.12.
영가 현각 선사는
이 혼침과
도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고요하기만 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혼침에 잠겨 있는 것이요,
깨어 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생각에 얽혀 있는 것이다.
깨어 있음도
고요함도 아니라면
그것은 다만
생각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혼침에도 빠져 있는 것이다.
- 『선종영가집』 「사마야송 제4 」
▹2564.12.12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좌선할 때는
졸거나 들떠 있어서는 안 된다.
졸음에 빠지는 것과
망상으로 들뜨는 것은
모두 옛 성현들이 꾸짖은 바이다.
고요히 앉았을 때
이 두 가지 병폐가 현전하면
오로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라는 화두만을 들어라
그러면
이 두가지 병폐는
애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에 가라앉을 것이다.
- 『서장 』 「답부추밀(3) 」
▹2564.12.13
⁕대혜 선사는 또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비워 없애려 하지 말고
생각을 붙이고
분별하지도 말고
다만 언제 어디서나
빈틈없이 화두만을 들라.
망념이 일어날 때
또한 억지로
그것을
그치게 하지 말라.
움직임을 그치게 하면
끝내 그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
더욱 크게 움직이게 된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치는 곳에
화두만을 살피라. "
- 『대혜어록』
▹2564.12.13
『몽산화상법어 』
에는 이렇게 말한다.
수마가 올 때는
마땅히 이것이
무슨 경계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을
깨닫자마자
정신을 바짝 차려
화두를 한 두번
소리내어 챙기도록 하라.
졸음이 물러나거든
하던대로 다시 자리에 앉고
그래도 물러나지 않거든
바로 땅에 내려와
수십 걸음을 걸으라.
그리하여
눈이 맑아지고
정신이 깨이거든
다시 자리에 앉아
천만 번 화두를 돌이켜 보고
끊임없이 채찍질하여
의심을 일으키라.
이렇게 오래오래 하다 보면
공부가 순일하게 익어
바야흐로 저절로
힘이 덜어질 때가 올 것이다.
- 『몽산화상법어 』
「시고원상인 」
▹2564.12.14
《색욕을 다스리는 법》
색욕과 파계 행위에 대하여
서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귀를 막고 소리지르는 것과 같고,
도둑질을 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이 가득차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 『선가귀감 』
▹2564.12.14
또 재물보다도
색욕이 중생들에게
더 큰 병이 됨을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모든 애욕 가운데
색욕만한 것이 없다.
색욕은 그 크기가 없다.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와 같은 것이
둘만 있었더라도
이 천하 사람으로
능히 도를 이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 『사십이장경』 24장
▹2564.12.15
별안간 옛날에 쌓였던
습기가 일어나거든
그 곳에 대고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는 물음에
"무" 라고 답한
화두를 볼 뿐이다.
바로 이러할 때에
그대의 옛 습기는
시뻘건 화로 위에 떨어지는
한 점의 싸락눈 꼴이 될 것이다.
- 『서장』 「답유통반 」
▹2564.12.15
⁕태전 선사는
일을 완수하지 못한 홍련에게
한퇴지의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이런 시를 써주었다.
축련 봉
내려가지 않기 십 년
색을 보고 공을 봄에
색 그대로 공이네.
어찌하여
조계의 한 방울 물을
홍련 잎사귀에
떨어뜨릴 수 있으랴.
▹2564.12.16
⁕마조 선사는
"평상한 마음이 도"라고 했다.
밥 먹고 일 하고 잠자는
평상시의 마음 속에
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발 회통 선사도
"불법은 나날이
생활하는 곳에 있다.
거닐고, 머물고, 앉고, 눕는 곳에 있다.
차 마시고 밥 먹는 곳에 있다"
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태고 선사는
"어묵동정과
모든 행동거지에서
한결같이
화두를 놓치지 마라
(語默動靜一切時爲一如不昧)"
라고 하여
그 뜻을
화두 공부에 적용했던 것이다.
⁕▹2564.12.17
'동중공부'라고 하다.
대혜 선사는
『서장 』 에서 이렇게 말한다.
평소 고요한 가운데
공부해 나가는 것은
시끄러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진짜 시끄러울 때
그 시끄러움에 휘둘리게 된다면
도리어 평소에
고요한 가운데
공부를 안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 『서장 』 「답유통반 」
⁕2564.12.17
세간의 번뇌는
활활 타는 불과 같으니
그 불길이 어느 때나 멈추겠는가.
시끄러운 곳에 있어도
대나무 의자와 방석 위에 앉아
공부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소 고요한 곳에
마음을 두는 까닭이
바로 시끄러운 곳에서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시끄러운 곳에서
힘을 얻지 못했다면
거꾸로 이는
고요한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 『서장 』 「 답회시랑 」
⁕2564.12.18
대혜 선사가
당시 사대부였던
진소경 거사에게 한 말을 보자.
바라건대
공은 다만
의정을 깨뜨리지
못한 곳을 향하여 참구하되
행주좌와에 놓치지 말라.
한 스님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조주가
'무'
라고 한
이 한 글자야말로
바로 생사의 의심을 타파하는 말이다.
이 칼자루는
다만 당신의 손 안에 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쓰게 할래야
쓸 수도 없는 것이니,
모름지기
스스로 손을 써야만
비로소 타파할 수 있다.
만약 목숨을 내걸고 참구한다면
비로소 스스로 타파할 것이다.
만약 목숨을 내걸지 못한다면
다시 다만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 곳에서
오직 한결같이
참구해 나아가도록 하라.
그러다 홀연히
스스로 기꺼이
목숨 버리기를 한 번 하게 되면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 『서장 』 「 답진소경」
⁕2564.12.18
대혜 선사는
『서장 』에서
생활에서 화두 드는 법을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생활하다가
번거로운 일로 사량분별할 때도
그것을 애써 물리치려 하지 말고
사량분별이 일어나는
그 곳에서 가볍게 화두를 들어라.
그렇게 하면
무한한 힘을 더는 동시에
무한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서장 』 「답주시제 」
⁕2564.12.19
오조 법연 선사는
행각을 떠나는
공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릇 행각을 하는 것은
도를 품고 해야 한다.
주는 밥이나 축내면서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생사라는
두 글자를 이마에 못질해 놓고
온 종일 체면치레를 제쳐 놓고
이것을 찾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패거리를 따르고
때를 쫓아서
헛되이 세월을 보낸다면
죽을 때에
염라대왕이
밥값을 청구할 것이다.
그 때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여 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 」
⁕2564.12.19
대혜 선사는
이와 관련하여 말한다.
일이 눈앞에 나타날 때
그것이
역경계든 순경계든
집착하지 말 것이니,
집착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이다.
일체를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대응한다면
자연히
이 도리에 들어맞을 것이다.
역경계는 타파하기 쉽지만
순경계는 타파하기 어렵다.
내 뜻을 거스르는 것은
참을 인자 하나로
잠시 자중하고 있으면
곧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순경계에서는
도피할 곳이 없다.
마치 자석과
쇠붙이가 서로 만나면
저도 모르게 합쳐지는 것과 같다.
무정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무명이
온몸 안에서 활동하며
살림살이를 짓고 있는
유정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러한 경계를 당했을 때
만약 지혜가 없다면
부지불식간에
저 경계의 그물에
끌려들어갈 판인데,
도리어 그 속에서
나갈 길을 찾으려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옛 성현은
"세간에 들어가서
세간을 남김없이 벗어난다"
고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이 도리이다.
- 『서장 』 「답루추밀」
⁕2564.12.20
대혜 선사는
이와 관련하여 말한다.
일이 눈앞에 나타날 때
그것이
역경계든 순경계든
집착하지 말 것이니,
집착하면
마음이 어지러워질 것이다.
일체를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대응한다면
자연히
이 도리에 들어맞을 것이다.
역경계는 타파하기 쉽지만
순경계는 타파하기 어렵다.
내 뜻을 거스르는 것은
참을 인자 하나로
잠시 자중하고 있으면
곧 지나가 버린다.
그러나
순경계에서는
도피할 곳이 없다.
마치 자석과
쇠붙이가 서로 만나면
저도 모르게 합쳐지는 것과 같다.
무정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무명이
온몸 안에서 활동하며
살림살이를 짓고 있는
유정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이러한 경계를 당했을 때
만약 지혜가 없다면
부지불식간에
저 경계의 그물에
끌려들어갈 판인데,
도리어 그 속에서
나갈 길을 찾으려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옛 성현은
"세간에 들어가서
세간을 남김없이 벗어난다"
고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이 도리이다.
- 『서장 』 「답루추밀 」
⁕2564.12.20
선원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다섯 가지 인연을 말하고 있다.
옛날 위산 스님께서
양산 스님에게
"법의 깃발을 세우고
한 곳에서 종지를 드러내려면
다섯 가지 인연을
갖추어야 이룰 수 있다." 라고 했다.
다섯 인연은
외호연. 단월연.
납자연. 도지연.
도연을 말한다.
- 『서장』 「답고산체장노 」
⁕2564.12.21
진각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평상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조주의 방하착이라는
한 칙의 공안을
뚜렷이 들고 공부하다가
시기가 무르익으면
저절로 더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 『진각국사어록 』
「답보강후기왕도인 」
⁕2564.12.21
태고 선사는
무제 거사에게 준 법문에서
성성적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 경계에 이르러
곧바로 온몸을 다 놓아 버리고
일체 모든 것을 하지 않으며,
하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하지 않으면,
곧바로 한적한 경지,
툭 트인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니
결코 사량분별을 하지 말라.
앞생각이 소멸한 상태에서
뒷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현재의 생각도 공하게 된다.
그러나 비었다는 생각
또한 고수하지 않고,
고수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잊어버리며,
잊어버렸다는 생각도 세우지 않고
세우지 않는다는 생각도 벗어나며,
벗어난다는
생각도 갖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때에 이르면
단지 성성적적하고
신령한 광명만이
우뚝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것에 대하여
망령되게
알음알이를 일으키지 말고,
단지 화두만 들고
하루 종일 행주좌와에서
오로지
화두만 놓치지 말고
절실하게 궁구하라.
- 『태고어록 』 「시무제거사 」
⁕2564.12.22
보조 선사는
영가 현각 선사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가 선사는
"성성적적은 옳지만
성성망상은 그르고,
적적성성은 옳지만
적적무기는 그른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미 고요한 가운데
멍하니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또렷한 가운데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어찌 망심이 생기겠는가.
- 『진심직설 』 「진심식망 」
⁕2564.12.22
⁕서산 선사는 말한다.
어떤 맛도 없고
모색할 도리가 전혀 없어
뱃속까지 답답할 때
공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이 상태가 바로
화두 공부에서 힘을 얻은 곳이며,
동시에 힘이 덜 드는 경계고,
생사를 던져 버릴 곳이다.
화두가 분명하게 드러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하게 되는 때이다.
- 『청허집 』 권 7
「사백운두류제법제서」
⁕2564.12.23
냉담하여
아무 맛도 없고
화두만 홀로 드러나
식이 가라앉고
마음의 길이 끊어지며
장부의 뼛속까지 싸늘해져서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저절로 의단이 일어날 때가
바로 당사자가
힘을 얻은 경지다.
- 『청허집 』 권 1
「시보대사」
⁕2564.12.23
만약 마음을 억지로 써서
화두를 든다면
공부가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간에
의심하는 공안이
흩어지지 않고
튀어나가지도 않으며,
화두가 조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아
자연히
눈앞에 나타나면
이와 같은 때라야
공부가 힘을 얻게 된 것이다.
- 『몽산화상법어 』
「시고원상인」
▹2564.12.24
바다와 같이 큰 신심을 일으키고
산과 같이 우뚝한 뜻을 세워
밤낮으로 사위의 중에서
있는 힘을 다해 의단을 일으켜라.
냉담하여
아무 맛도 없고
화두만 홀로 드러나
식이 가라앉고
마음의 길이 끊어지며
장부의 뼛속까지 싸늘해져서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저절로 의단이 일어날 때가
바로 당사자가
힘을 얻은 경지다.
- 『청허집 』 권1「시보대사」
▹2564.12.24
태고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이와 같이
진실로 공을 들이면
곧 공부가
힘들지 않는 곳에 이를 것이니
이 곳이 힘을 얻는 곳이다.
화두가 저절로 무르익어
한 덩어리가 되면
몸과 마음이
홀연히 텅 비고
응결된 듯움직이지 않아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래의 그대이니
여기서 만약
다른 생각을 일으키면
반드시
헛된 것에 끌려가게 될 것이다.
- 『태고화상어록』 상권 「시중]
▹2564.12.25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곧바로 쉬고자 한다면,
예전에 재미 붙였던 것을
되돌아보지 말고
잡을 수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곳에다
뜻을 두고
힘써 그것을 살펴보라.
만약 그것이
진실로 뜻을 둘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알 수 있는
더듬이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치나 뜻의 길을 오가던
의식의 흐름이 사라져
나무나 흙, 돌처럼 되는 데
수행자는 이 때
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곳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내 던질 곳이니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
- 『서장 』 「답왕교수 」
▹2564.12.25
혹 화두를 들어도
공부가 차고 담담해서
도무지 재미가 없어
부리로 쫄 만한 곳이 없고
힘을 붙일 곳이 없으며,
조금도 분명한 곳이 없고
그렇다고
어찌할 수 없더라도
절대로 여기서 물러서지 마라.
이 때야말로
공부를 하는 이가
공부의 힘을 붙일 곳이며,
공부의 힘을 덜 곳이며,
공부의 힘을 얻을 곳이며,
몸뚱이와
목숨을 버릴 곳이다.
- 『나옹화상어록 』 「시일주수좌」
▹2564.12.26
⁕몽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공부가 깊었다 얕았다 하면서
아무런 맛이
없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정진하기 좋을 때이니
한 발 한 발
거쳐야 할 곳들로 나아갈라.
결코 놓아버리면 안 될 것이니
성성하면
곧 고요함에 들어가고
고요한 뒤에야 정에 들어간다.
- 『몽산화상법어』 「시총상인 」
▹2564.12.26
⁕몽산 선사는
다시 이렇게 당부한다.
아무 재미가 없는 때가
이 공부의 재미인 것이니
문득 번뇌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
- 『몽산화상법어 』
「시각도상인 」
▹2564.12.27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소 등에
앉은 것과 같으니
이러니저러니 묻지 말고
어떻게 해도
주둥이를 꽂을 길이 없는 곳에서
목숨을 한 번
버린다는 생각으로
온몸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평창 〉
위에서 말한 뜻을
거듭 결론지은 것이다.
활구를 궁구하는 자로 하여금
물러서지 말도록 한 것이다.
옛 사람은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으로 분별할 길이
끊어진 곳을 궁구해야 한다'
라고 하였다.
- 『선가귀감 』
▹2564.12.27
돈황본 『육조단경 』에서
혜능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않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 』에 말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 라고 하셨다.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다.
-『육조단경 』 돈황본
▹2564.12.28
임제 스님이 말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선 자리마다 모두 진리' 인 경지가
이러한 궁극적인
삼매의 상태를 일컫는다.
끝으로 임제 선사가 말한
사료간의 예를 들어
선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삼매의 경지를
거듭 밝혀 둔다.
첫째,
어느 때는 사람(주관)은 빼앗고
경계(객관)는 빼앗지 않는다.
둘째,
어느 때는 경계는 빼앗고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
셋째,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함께 빼앗는다.
넷째,
어느 때는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
▹2564.12.28
태고 보우 선사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만일 하루에 한 번도
끊어짐이 없는 줄 알았거든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서
때때로 점검하되
날마다 끊어짐이 없게 해야 한다.
만약 사흘 동안
법대로 끊어지는 틈이 없어,
움직이거나
가만히 앉아 있을 때에도 한결같고
말하거나 침묵할 때도
한결같이
화두가 항상 앞에 나타나 있되,
급히 흐르는 여울 속의 달빛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헤쳐도 없어지지 않으며
휘어져도 없어지지 않아
자나깨나 한결같으면
크게 깨칠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 『태고화상어록 』 상권
「답방산거사 」
▹2564.12.29
태고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하루나 이틀
내지 칠일 동안
법 그대로 빈틈없이 궁구한다면
꿈 속에서도 화두를 들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된다면
크게 깨달을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다.
- 『태고화상어록 』
「시렴정당」
▹2564.12.29
대혜가
원오 선사에게 물었다.
"제가 생각하니,
이 몸이 이렇게 있다가도
잠만 들면 캄캄하여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수화풍이 흩어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수많은 고통이
불길같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그것에 휘둘리지 않겠습니까?"
선사는
그저 손짓으로
그만두라는 시늉을 하면서,
"망상 피우지 말게나,
망상 피우지 말어"
하고는
"그대가 지금 말하는
그 많은 망상이 끊어질 때
저절로
오매일여의 경계에
도달하게 될 것일세" 하였다.
처음 듣고는 믿어지지 않았으나
날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다.
잠들었을 때와
깨어 있을 때가
분명 두 갈래인데
어찌 감히 입을 크게 벌려
선을 말하리오.
오매일여라 하신
부처님 말씀이 망언이라면
내 병을 없앨 필요가 없겠지만,
부처님 말씀이
과연 중생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아직
그 경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뒷날,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온다는
설법을 듣고
홀연히 마음 속에
막혔던 물건이 없어졌다.
거기서 바야흐로
잠잘 때가 깨어 있을 때와 같고,
깨어 있을 때가
잠들었을 때와 같음을 알아서
오매일여라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다.
이 도리는
남에게 꺼내 보여 줄 수도 없고,
말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니,
꿈 속의 경계처럼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과 같다.
- 『서장 』 「답향시랑 」
▹2564.12.30
"네가 한 가지 알지 못한 게 있지.
네가 이 한 가지를 알지 못하니
내가 방장실에서
너와 이야기할 때는
선이 있다가도
나서자마자 없어져 버리며,
정신이 맑아서
또랑또랑할 때는
선이 있다가도
잠이 들자마자 없어져 버린다.
만일 이렇다면
어떻게
생사와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대혜 스님이 대답하였다.
"바로 그것이
제가 의심하는 점입니다."
- 『종문무고 』
▹2564.12.30
혜능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선지식이여,
나는 홍인 화상과 있을 때
한 마디의 말에 크게 깨달아
진여본성을 단박에 깨달았다.
이러하니,
이러한 교법을 후대에 유행시켜
수행하는 자가
보리를 단박 깨치게 하여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본래성품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 『육조단경 』
▹2564.12.31
⁕오설산 영묵
무주 오설산 영묵 선사는
비릉 사람으로 성은 선씨다.
처음에 예장의 마대사를 찾아가니,
마대사가 받아들여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주었다.
뒤에 석두 희천을 찾아갈 때
먼저 스스로 결심하기를
'만약 한 마디 말로
나와 서로 계합하면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떠나겠다'
하였다.
석두는
그가 법기임을 알고
곧 가르침을 열어 보였는데,
영묵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사를 하고
방장실을 나서려고
문에 다다르자
석두가 그를 불렀다.
" 스님! "
영묵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가 말했다.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다만 이것일 뿐이니,
또 달리 구하지 말게!"
영묵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닫고는,
곧 지팡이를 꺾어 버리고
그곳에 머물렀다.
- 『경덕전등록 』 제7권
「무주오설산영묵선사 」
▹2564.12.31
⁕방거사
방거사는
뒤에 강서로 가서
마조 선사에게 물었다.
"만법과 더불어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 선사가 답했다.
"그대가 한 입에
서강의 물을 모두 마신다면
말해 주겠다."
방 거사가 이 말을 듣고
문득 현요를 알아차렸다.
- 『마조록 』
▹2564.12.31
고봉 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에 들어가서
날짜를 기약하여 성공하고자 한다면,
마치 천 길의 우물 바닥에
떨어진 것과 같이 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생각이
오직 벗어나기를
구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결코 두 생각이 없어야 하니
참으로 이렇게 공을 들여서
사흘 혹은 이레에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오늘
큰 거짓말을 저지른 것이니,
혀를 뽑아
밭갈이를 하는 지옥에
영원히 떨어질 것이다.
- 『선요』 「9. 시중 」
2565.1.1
⁕대혜 선사는
이와 관련하여 말한다.
편안하고 고요한 경계에
뿌리를 내리고 안주하면 안 된다.
경전에서는 그것을
'해탈의 깊은 구덩이로
두려운 경계다' 라고 말하셨다.
- 『대혜어록 』 제20권
「시공혜도인 」
2565.1.1
⁕진각 선사는
이렇게 당부한다.
아무 맛도 없고
더듬어 모색할 거리도
없는 상태를 싫다하지 말라.
다만
화두를 놓치지 말고
성성하게 들고 있으라.
홀연히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앞뒤의 경계가 끊어졌을지라도
그 고요한 상태에 머물면 안 되며,
여기서도
화두 보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 『진각국사어록 』
「시공장도자 」
2565.1.2
⁕임제 선사도
이렇게 경계한다.
대덕들이여,
산승이 마음 밖에
법이 없다고 말하면
학인들은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학인들은
곧 내 말에 알음알이를 짓고
벽에 기대고 앉아
혀를 입천장에 받치고
고요하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것을
조사 문하의 불법
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큰 착각이다.
그대들이 만일
이와 같이 움직이지 않고
청정한 경계를
바른 선정이라고 집착한다면
그대들은
저 무명을
주인으로 잘못아는 것이다.
옛 사람이
"지극히 고요하고
어둡고 깊은 구덩이는
진실로 두려운 것이다"
라고 한 말은
이러한 병통을 가리킨다.
- 『임제록 』
2565.1.2
이와 관련하여
지철 선사의 말을 보자.
말을 줄이고 오로지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라는 화두만 들었다.
나는 이 화두 가운데
'하나' 라는 대목을
지극하고 간절하게 의심해 나갔다.
공부가 힘을 얻을 때는
마치 밝은 해가
빛나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같았다.
나는 다만
저 '하나' 만 알아차리며
그것에 대한 의심만
활발발하게 살려 나갔다.
그것은 마치
구슬이 쟁반에서
종횡으로
걸림이 없이 구르는 것과 같았다.
이 경지에 이르자
땅에서 걸어가는 몸도
의식하지 못했다.
세간의 일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으며,
움직임과 고요함,
추위와 더위,
그리고 구부리거나 돌리거나
굽어보거나 올려보는 등의 동작과
대소변을 보는 일 등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전혀 헤아리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었다.
오직 화두를 의심하기만 하며,
발길이 가는 대로 걷고,
아침 죽과 점심 밥을 먹을 때도
손이 가는 대로
수저를 집었다 놓을 뿐
식사를 하는 중에
맵거나 시거나 짜거나 싱거운 등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이 경지에 이르자
비로소 이것이
바로 때 묻지 않은
깨끗한 화두 일념만 이어져
마음과 화두가
여일한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선종결의집 』
「이진정진문 」
⁕2565.1.3
화두가 저절로 순수하게 익어
의심이 타성일편을 이루게 되면
몸과 마음이
홀연히 비고 응결된 듯이
움직이지 않아
마음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이 경지가 바로
화두를 드는
그 당사자의 본분이니
당사자가 만일
화두와는
다른 생각을 일으키면
반드시
헛된 것에 미혹될 것이다.
- 『태고화상어록 』 상권 「시중 」
⁕2565.1.3
⁕보내온 편지에서
"찰나 찰나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살피면
이 공은 더욱 오묘해질 것입니다"
라고 하였는데,
옛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까 두려워 말고,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을
늦게 알아차리지 않을까 염려하라"
고 하였고,
또 "생각이 일어나면
곧장 알아차려라.
알아차리기만 하면
곧 없어질 것이다"
라고도 하였다.
- 『태고화상어록 』 상권
「답방산거사 」
⁕2565.1.4
⁕모든 것이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마치 장사가 팔을 뻗을 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자가 돌아다닐 때
반려자를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여러 종류의
수승하고 미묘한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경이롭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온갖 종류의
악업으로 발생하는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 『진각국사어록 』 상권
「시공장도자 」
⁕2565.1.4
⁕참선하려면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도를 배우려면
마음길이 끊긴 데까지 가야 한다.
마음길이 끊어질 때
바턍이 그대로 나타나니,
물을 마시는 사람만이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안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아무에게나 묻지 말고,
바로 본색종사를 찾아가
그대의 살림살이를
다 털어내 보이도록 하라.
- 『태고화상어록 』 상권
「시안산군부인묘당 」
⁕2565.1.5
실로 그 경지에 이르면
어느 새
무명이 깨어지고
활연히 크게 깨칠 것이니,
깨친 뒤에는
부디 본색종장을 찾아뵙고
마지막 인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그런
종사를 만나지 못하면
열이면 열,
모두 마구니가 될 것이니,
진심으로 조심하기 바란다.
- 『태고화상어록 』 상권
「답방산거사 」
⁕2565.1.5
『서장 』에서
말하는 공부 점검법
『서장 』에서 대혜 선사는
여러 가지
공부 점검법을 제시하고 있다.
선사는 한 거사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늘 다음 사항을 점검해 보라고 했다.
①
유유히 한가롭게 소요자재할 때에
온갖 마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는가
②
행주좌와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가 잘 들리는가
③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헤아려 분별하지 않을 수 있는가
④
꿈꿀 때와
깨어 있을 때가 일치하는가
⑤
이와 사가 회통되는가
⑥
마음과 경계가 모두 한결같은가
- 『서장 』 「답류보학 」
⁕2565.1.6
태고 선사와
서산 선사의 공부 점검법
서산 선사는
『선가귀감』에서
태고 선사의 공부 점검법을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일상에서
자신의 공부 정도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자기 점검법으로
수행자들은
스스로의 수행 향상을 위해
이것을 점검 기준으로 삼아
나날이 자기 공부를
살펴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①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여기서 네 가지 은혜란
부모, 나라, 스승,
시주의 은혜를 말한다.)
②
지수화풍 사대로 된
더러운 몸이 순간순간
썩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③
사람들의 목숨이
호흡 사이에 달려 있는 줄을 아는가
④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⑤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⑥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⑦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⑧
분주하게 시비나
일삼고 있지 않은가
⑨
화두가 어느 때에나
또렷또렷하여 어둡지 않는가
⑩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⑪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에도
화두가 한결같이 한 조각을 이루는가
⑫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⑬
이생에
부처님의 혜명을
이룰 수 있겠는가
⑭
앉고 눕고 편안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⑮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⑮
모든 경계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2565.1.6
서산 스님이
소개한 점검 사항 이외에도
태고 선사는
다음을 더 제시하였다.
①
상중하의
자리를 불문하고 서로 공경하는가
②
남의 허물을 보거나
남의 허물을 말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아래 사항을 점검해 보기 바란다
①
정견이 바르고 확고하게 섰는가.
②
수행과 삶이 일치하고 있는가.
③
화두에 대한 신념이
날로 증장되고 있는가.
④
물질에 대한 욕구가
조복되어 가고 있는가.
⑤
확철대오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이 서 있는가.
⑥
결제 해제 없이
항상 계율을 잘 지키고 있는가.
⑦
시비심과 승부심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가.
⁕2565.1.7
⁕나옹 선사의 공부 점검법
나옹 선사는
공부의 점검을
열 가지 단계로
나누어 밝히고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공부십절목」이다.
공부를 열 단계로
나누어 점검한 것이다.
이를 구성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색성초월, 하개정공,
정숙공, 타실비공,
의식불급, 오매항일,
줄지변절, 수연응용,
요탈생사, 지거처 등의 열 단계를
순차적으로 물어
그 수행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부 점검은
단계별로
자신의 수행 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는가.
②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③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한다.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④
공부가 익었으면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⑤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는
허깨비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⑥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에 틈이 없고
자나깨나 한결같아
부딪혀도 흩어지지 않고
없어져도 잃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당한가.
⑦
갑자기 백이십 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자성인가.
⑧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⑨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죽을 때)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⑩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사대는 각각 흩어지니
어디를 향해 가는가.
이렇게
『서장 』이나
『태고어록』, 『선가귀감』에
나와 있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수행을 점검해 볼 수 있고,
⁕2565.1.7
나옹 선사의
「공부십절목 」에 따라
공부를 단계별로 점검할 수가 있다.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로 그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한결같은 진심만 있고
망상이 없는 순간이란
밝고 밝아서
마치 오염 없는
옛 거울의 광명과 같고,
환하고 환해서
마치 맑은 연못의
고요한 물결처럼 동요함이 없다.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로 비추고,
한나라 사람이 오면
한나라 사람으로 비추며,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옛날과 오늘을
있는 그대로 비추기에
실오라기 하나도 감춤이 없으며
실오라기만 한 장애도 없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의 경계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예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써도
사라지지 않는 본래의 물건이다.
- 『나옹어록 』
「자자일조상서청보설 」
⁕2565.1.8
원오 선사는
이 대요사인의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곳에 이르러
근원을 사무쳐 꿰뚫으면
홀연히 본체가
허공과 같음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모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지라
삼라만상도
그것을 가두지 못하고
성인과 범부도
그것을 어찌하지 못한다.
언제나 남김없이 드러나고
어디서나 숨김없이 드러나니
본래면목이
바로 이것이며
본지풍관이 바로 이것이다.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 것이니,
오는 시간이 다하도록
깨달은 이를 얽어맬
생사윤회가 어떻게 있겠는가?........
이와 같은 무심한 경계와
무념의 참된 가르침은
참으로 날카로운 사람이라야
거뜬히 실증하게 된다. ........
본래의 현묘한 마음을
바로 꿰뚫으면
옛날과 지금을 꿰뚫어
담연히 움직이지 않으니
만년이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만년으로
영겁토록 번뇌가 없다.
진리를 깨달은 경지는
한 번 얻으면
영원히 얻어 변함이 없으니,
이것을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자성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
라고 한다.........
대도를 체득한 이는
무심을 철저히 증득한 이다.
그러니
만 가지 일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더라도
어찌 그의 정신을 흔들어
생각을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평상시에는
다만 한가롭고 한가로운
경지만을 지키는 것이
마치 바보같고 천치같으나,
문득 일에 부딪치면
회오리바람이 돌고
번개가 치듯 하여
깨달음의기틀에 합당치 않음이 없다.
- 『원오심요 』
「시장중우선교 」,
「시원빈 」, 「시원수좌 」
⁕2565.1.8
▹깨달음에 대한
자기 점검 기준은 있는가?
깨달음은
말과 사유와 경계를 초월해 있다.
깨달음의 실체가 따로 있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스스로의 체험으로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달리 객관적으로 검증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식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영명 선사가 『종경록 』에서
말한 가장 평이하면서도
실질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영명 선사는
"집착에 사로잡혀
'깨달음'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스스로 마음의 장애를 일으켜
배움의 길을
끊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열 가지 물음으로
기강을 삼고자 한다"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①
완벽하게 견성해서
마치 대낮에 물건을 보듯,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는가.
②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며,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발을 들어올리고 놓으며,
눈을 뜨거나 감는 것이
모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③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들의 말을
깊이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을 모두 살펴도
의심스런 곳이 없는가.
④
온갖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따진 뒤
능히 사변을 갖추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가.
⑤
언제 어디서든
지혜가 막힘없이 드러나
생각생각마다 깨어 있어
어떤 법에도 방해받지 않고
한 순간에도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가.
⑥
일체의 순경계 역경계와
좋은 경계
나쁜 경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알아차려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가.
⑦
온갖 밝은 법문이 마음에 있으니
하나하나의 미세함을 보아
본체가 일어나는 곳을 알며
생사의 뿌리에
어지럽게 미혹되지 않을 수 있는가.
⑧
일상의 행주좌와 때,
공경히 마주 대하고 있을 때,
옷 입고 밥 먹을 때,
일을 맡아 처리할 때에도
일일이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가.
⑨
부처가 있다 없다,
중생이 있다 없다,
칭찬이나 비방,
옳다 그르다 하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⑩
온갖 지혜에 대하여
모두 밝게 통하며,
성과 상이 모두 통해
이와 사에 얽매이지 않으며,
어떤 법도
그 근원을 알 수 있으며,
세상에 온
어떤 성인의 말에도
의문이 없을 수 있는가.
- 종경록 제1권
이상 열 가지는
깨달음에 대한 자기 점검 기준이다.
물론 깨달음은
선지식의 엄정한 감변을 통해
인가를 받는 것이
가장 바르고
바람직한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
⁕2565.1.9.
⁕ 깨달음과 성성적적의 관계는 ? ⁕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 』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지식들아,
나의 가르침은
정과 혜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의 몸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곧 정은 혜의 체요,
혜는 정의 용이다.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다.
선지식들아,
내가 말하는 뜻은
정 ' 혜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저마다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정 ' 혜가 함께 하는 것이다.
- 『육조단경 』 돈황본
⁕2565.1.9.
⁕ 보조 선사는
『수심결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르침의 핵심을 말한다면,
이치에 들어가는 천 가지 문이
선정과 지혜 아님이 없다.
그 요점을 들자면
자기 성품의 본체와 작용 두 가지다.
앞에서 말한
텅 빈 고요함과
신령스런 앎이 그것이다.
선정은 본체이고 지혜는 작용이다.
그런데
본체에 즉한 작용이므로
지헤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에 즉한 본체이므로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선정이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도 항상 명확히 알고,
지혜가 선정이므로
명확히 알면서도 항상 고요하다.
- 『수심결 』
⁕2565.1.10
⁕번뇌가 곧 깨달음이란?
《산은 산, 물은 물》
『서장 』에서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평소 헤아려 견주려는 마음이
중생의 알음알이이고,
생과 사를 따라 흘러다니는 것도
중생의 알음알이이며,
두려워하거나 당황하는 것도
중생의 알음알이다.
지금 참선하는 사람들은
이 병을 알지 못하고,
다만 중생의 알음알이 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할 뿐이다.
- 『서장 』 「답회시랑 」
⁕2565.1.10
유신 선사의
상당법어로 알아보자.
노승이 삼십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 뒤 훌륭한 선사를 만나
선의 진리를 찾았을 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쉴 곳인
깨달음을 얻고 보니
'산은 진정 산이고
물은 진정 물이로다.'
- 『속전등록 』제22권
「길주청원성신선사」
⁕2565.1.11
⁕배휴가 물었다.
"지금 바로
망념을 일으킬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황벽 선사께서 말했다.
"지금 그대가
망념이 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이다.
만약 망념이 없다면
또한 부처도 없다.
왜 이와 같은가?
그대는 생각을 일으켜
부처라는 견해를 짓고
문득 이르되
이루어야 할 부처가 있다고 하며,
중생이라는 견해를 지어
제도할 수 있는 중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을 일으키는 생각의 동요는
모두 그대의
차별적인 견해일 뿐이다.
만약 일체의 견해가 없다면
부처는 어느 곳에 있겠는가?
마치 문수가
잠시 부처라는 견해를 지었다가
문득 두 철위산으로
쫓겨간 것과 같다."
- 『완릉록』
⁕2565.1.11
배휴가 또 물었다.
"지금 바로 깨달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황벽 선사가 말했다.
"지금 그대의 물음은
어디에서 왔으며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언어와 침묵,
움직임과 고요함,
모든 소리와 색깔이
모두 깨달음의 일이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는가?
머리 위에서
머리를 찾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다만 차별적인 견해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산은 산, 물은 물,
승은 승, 속은 속일 뿐이다.
산하 ' 대지와 해 ' 달 ' 별들이
모두 그대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나니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그대의 본래 모습이다.
어느 곳에 다시
갖가지 일이 있겠는가?
마음 밖에 달리 있는 법은 없다.
한눈 가득한
푸른 산과 허공의 세계는
희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그대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와 색깔이
바로 부처의 지혜로운 안목이다.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으니
경계를 의지하여 비로소 일어난다.
경계를 삼는 까닭에
그 많은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다.
종일 말했으나
일찍이 무엇을 말했고
종일 들었으나
일찍이 무엇을 들었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사십오 년 동안 말씀하셨건만
'나는 일찍이
한 마디도 말한 것이 없다'
고 하신 것이다.
- 『완릉록 』
⁕2565.1.12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란?
육조 혜능 선사는 말한다.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과 점차가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다.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는다.
- 『육조단경 』 돈황본
⁕2565.1.12
대주 혜해 선사는
이 돈오돈수에 대하여
『돈오입도요문론 』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떤 법을 닦아야
해탈을 얻습니까?"
"오직 돈오라는
한 가지 문만으로 해탈을 얻는다."
"돈오란
어떤 것입니까?"
"돈이란
망령된 생각을
단번에 제거하는 것이며,
오란
얻을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 『돈오입도요문론 』
⁕2565.1.13
혜능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성에는 그릇됨이 없고,
거리낌이 없으며, 산란함도 없다.
생각 생각에
반야로 관조하기에
항상 법상을 떠나 자유자재하며
종횡으로 다 얻을 수 있으니
무엇을 세울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의 성품을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데,
단박에 깨닫고
단박에 닦아 마친다.
또한 점차가 없다.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 까닭으로
모든 법이 적멸한데
어찌 차제가 있겠는가.
- 『육조대사법보단경 』
「돈점 제8 」
⁕2565.1.13
⁕(돈오점수란)
해가 갑자기 솟아오르더라도
서리와 이슬은 점차 녹는 이치와 같다.
『화엄경 』에서 말하기를,
"처음 마음을 발할 때
문득 정각을 이루고
그런 뒤에 지위에 올라
차례로 닦아 증득하는 것이니
만일 깨닫지 않고 닦는다면
바른 닦음이 아니다" 라고 하시고
"오직 돈오점수만이
불승에 합당한 것으로
온전한 가르침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셨다.
돈오돈수라는 것도
실상은 오랜 생 동안
점차로 닦아 오다가
이생에 몰록 순숙하여
때가 되어
스스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 『만선동귀집 』 하권
⁕2565.1.14
보조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점수한 무엇인가.
본성이 부처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도
오랫동안 익혔던 습기는
단박에 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깨달음에 따라 닦아 나가며
차차로 익혀 공을 이루고
깨달음의 태아를 꾸준히 길러
먼날 드디어
깨달음을 이룬다.
점수란 이런 것이다.
마치 어린애가 처음 태어날 때,
갖추어진 모든 감관은
어른과 다를 것이 없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기에
제법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
- 『수심결 』
⁕2565.1.15
⁕굉지 정각(1091 1157) 선사는
이 경지를 이렇게 말한다.
우뚝하고 당당하며
모든 일에 구애되지 않고 의연하다.
시끄러운 곳에도
머리를 들이밀고
평온한 곳에서는
다리를 내려놓는다.
- 『굉지광록 』 제2권
⁕2565.1.15
또 밀암 함걸 선사는 말한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경계에서
뛰쳐나가고,
시끄럽고 드넓은 경계에
몸을 던진다.
시끄럽고 드넓은 경계에서
밀고 나가기도 하고,
고요하게 가라앉은 경계에
발길을 멈추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덕산은
보잘것없는 몸둥이 하나로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려서 물리쳤지만
시끄럽고 드넓은 경계에도
눌러앉지 않았던 것이다.
- 『독고존숙어요 』 제4권
「밀암걸화상어 」
⁕2565.1.15
도신 조사께서는
"경계의 인연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만약 마음이
억지로 이름 붙이지 않는다면,
허망한 감정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허망한 감정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진심이 깨달음에 따른다" 라고 하셨다.
부디 역순경계 속에서
늘 이와 같이 관조한다면
길이 고뇌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서장 』 「답영시랑 」
⁕2565.1.16
나옹 선사는
이러한 경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금의 보금자리를
모두 쳐부수고,
범부와 성인의 자취를
모두 쓸어 없애며,
납승의 목숨을 끊어 버리고,
중생의 망상분별을
모조리 쓸어 버려라!
그리하면
변통과 살활을 자유로이 하게 되고,
모든 것이 때에 맞으며,
호령하거나
저울질하는 것도
모두 손아귀에 있게 된다.
- 『나옹어록 』
⁕2565.1.16
시방에서 함께 모여들어
저마다 무위법을 배우네.
이것이
부처를 뽑는 곳이니
마음이 텅 비어
급제해서 돌아가리.
⁕2565.1.17
배휴(791 870) 거사는
자신의 깨달음의 경지를
이렇게 스님께 전한다.
굉겁 이래로 밝히지 못한 일이
확연히 앞에 드러났습니다.
이는 남에게
얻은 것이 아닌지라
비로소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이
세간의 쾌락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서장 』 「답진국태부인 」
⁕
자기 자신을 바로 보자.
우리는 본래 부처다.
흰 구름 담담히 떠가고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도다.
만법은 본래 한가하건만
사람 스스로 시끄럽구나.
⁕달마 선사는
"밖으로 모든 인연을 끊고
안으로 헐떡러림이 없어
마음이 장벽과 같이 되어야
가히 도에 들어간다"
라고 하셨다.
▹육조 혜능 선사는
『육조단경 』에서
"밖으로 모든 경계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좌라 하고,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이다"
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