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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車家

작성자윤행원|작성시간20.04.22|조회수12 목록 댓글 0



愛車家


                                  윤 행 원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면 좋게 불러 주어서 '애견인' 이라고는 하지만 愛犬家 라고는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家'를 붙여 절대 명사화 하는 걸 꺼린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해서 家를 붙이면 잘 모르지만 사람의 어떤 格이 떨어지는 줄로 지레 짐작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면 애처가(愛妻家), 아내를 심하게 무서워 하면 공처가(恐妻家), 아내를 보는 것 만으로도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을 경처가(驚妻家)라고 하는걸 보면 사람들은 마누라와 관계된 사건에는 '家'를 붙이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家자 호칭은 많다. 은행가, 소설가, 행정가, 법률가, 수필가, 만화가 등등. 여하튼 家를 붙이면 직업, 재능. 감성, 이런 특정 분야에는 조금 뛰어난 데가 있다. 그렇다고 고스톱 잘 한다고 해서 '노름가'라고 하지 않는걸 보면 신기하기는 하다.


나는 요즘 '愛車家'란 말은 없나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아직은 아무도 그런 쑥스런 말은 사용하길 꺼리는 것 같다. 車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애차가' 라고는 감히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계부품과 쇳덩이에 불과한 무생물인 차를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서 거룩한 家를 붙이기엔 사람들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무생물인 차라고 해서 만만히 대한다던가, 자기 운전 잘못은 생각 안하고 뜻대로 안된다고 차를 툭툭 치면서 성질을 부리는 것은 심히 좋은 편은 못된다. 비록 말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쇳덩어리' 이지만, 거기엔 운전하는 사람이 차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넘쳐 있어야 한다. 나쁜 말을 한다고 해서 차가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자기가 한 말은 부메랑같이 자기에게 돌아와서 차의 감정(?)을 대신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상대가 사람은 물론 이지만 말 못하는 동물이나 식물 그리고 애용하는 차 같은 것은 그 여진(餘震)이 말하는 본인의 체감(體感)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나는 올해로써 21년 된 愛車를 가지고 있다. 쏘나타 一世인데, 지금은 三世가 나온지도 오래 됐으니 쏘나타 할아버지가 된지도 한참이나 지났다. 중고차 시장에 내다 놓으면 가격도 없는 차지만 나한테는 거저 고마운 愛物이다. 처음 6년이나 7년째 되든 해에는 부속품도 많이 가라 끼우고 유지비도 수월찮게 들였으나 그 후론 간혹 가다 잔 부속품만 바꿔주면 사근사근 말 잘 듣고 성능 좋은 기계로 손색이 없다. 외양도 아직 멀쩡하다. 아무튼 아주 기분좋게 드리이빙을 즐기고 있다.


어느 누가 말 했다던가. '세월이 가도 한결같은 차, 언제 봐도 새 것 같고 오래 될수록 정이 들어 다정한 친구 같은 차, 그것이 바로 名車다.' 명차라는 게 별개 아니다. 정이 들어 좋아하고 언제 봐도 그 맵시가 싫증이 안 나면 명차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내 차가 바로 명차(名車)다.


간혹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들이 차가 오래된 것을 알고는 사정도 괜찮은 것 같은데 새 차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나를 위해서(?) 애정을 표시 할 때면 나는 질겁을 한다. 그런 말을 차 옆에서 할 때면 "바꾸라"는 말은 차 듣는 데서는 하지 말라고 제법 근엄하게 타이른다. 차가 들으면 기분 나빠 할 거라고 하면 도리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물론 차가 들을리는 없다. 그러나 그럴 거라는 기분은 금방 반사되어 돌아오는 것 같아서 차 가까이서는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밭가는 농부가 소를 대하는 마음을 황희 정승이 이해하는 기분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장거리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라고 할 정도로 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차의 궁댕이(後尾)를 살짝 두들기면서, "고마워, 수고했어." 하고 인사를 하면 차보다도 나 자신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다른 나라도 아닌 하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를 너무 자주 바꾸는 걸 못 마땅해 한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그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차를 바꾸는걸 보았다. 친구 된 도리로서 충고도 하고 싶지만 혼자서 끙끙 하기만 한다. 각자 취미와 개성이 다른데 내가 강요 할 수야 없지 않는가. 다행히도 몇 십 년을 산 마누라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는걸 보면 신통하다고나 할까.


부자 나라인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십 년 넘긴 차는 수두룩이 많고 심지어 20년이나 30년 되는 차도 가끔 볼 수 있다. 물론 경제적인 타산도 있겠지만 차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무던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車格은 人格과 通한다고 했다던가. 차를 운행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간혹 도로에서 난폭하게 달리는 차를 보면 그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의 인격이 의심스럽고 사고가 날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문명의 利器인 차를 사람들이 무던한 애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사용) 했으면 한다. 차를 만드는 회사 사람들이 들으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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