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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및 말씀

2026년 6월 17일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영의 두 몫과 마음의 은밀함>기경호프란치스코 ofm

작성자서헤레나|작성시간26.06.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 연중 11주 수요일

영의 두 몫과 마음의 은밀함

 

열왕기 하권의 말씀은 엘리야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고 엘리사가 그의 겉옷을 물려받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권력이나 명예를 청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승님 영의 두 몫”을 청합니다(2,9). 

생명의 힘과 사명을 지탱해 주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현존을 청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기 힘만으로는 예언자의 길을 이어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이가 치열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며 겉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유지하지만, 내면은 지쳐 있고 공허합니다.

 

모든 것을 성과와 드러남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

신앙인은 하느님의 “겉옷”은 잃어버린 채 신앙의 외형만 붙들고 살아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2,12)라고 외칩니다.

참된 유산은 물건이 아니라, 겸손히 받아들이는 영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진리를 더욱 깊게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이다”(θεαθῆναι)라는 말은 공연이나 구경거리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이 무대가 되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유혹은 여전합니다.

사회관계망 안에서는 자선과 영성마저도 과시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선행을 공개하고 도덕적 인정을 바라며, 심지어 기도마저 자기 이미지를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6,4)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숨은 곳”은 어둠이나 위선의 은폐가 아니라, 더 이상 사람의 박수를 위해 행동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 앞에 머무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참된 영성이 태어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가난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성인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허물어진 성당을 고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이가 그를 실패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허영을 벗어버린 삶 안에서만 복음이 선포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작은 형제”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쁨은 인정받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드러내야 하는 오늘의 문화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증언은 매우 예언적입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의 중요함을 계속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께 자리를 내어드리면 충분합니다.

엘리사가 조용히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들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날마다 겸손과 침묵 안에서 복음을 다시 받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라는 세 가지 구체적인 실천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없애려 하시지 않고 정화하십니다.

자선은 도덕적 선전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구체적인 연민이 되어야 합니다.

 단식은 고행의 과시가 아니라 소비에 대한 내적 자유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가장 깊은 굶주림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이가 외로움과 불안, 삶의 의미 상실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식은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전화를 잠시 끄는 것일 수도 있고,

즉각적인 인정 욕구를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시간을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흩어진 마음이 다시 하느님 안에서 쉼을 얻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결국 우리의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의 의도를 돌아보라고 초대합니다.

엘리야는 겉옷을 남겨두고 떠났고예수님께서는 가면을 벗어놓으라고 요청하십니다.

두 본문 모두 우리를 겉모습에서 마음의 진실로 이끌어 갑니다.

 

성덕은 특별한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눈길 아래에서 평범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인정 욕구, 영적 피로가 깊어지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내면의 침묵을 지키고,

드러나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며, 진실하게 하느님의 영을 찾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행동은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을 행하고, 과시하지 않고 기도하며,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자유롭고 가난하며 단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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