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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4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작성자vero|작성시간23.07.24|조회수21 목록 댓글 1

2023724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1독서 : 탈출 14,5-18

복 음 : 마태 12,38-42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소시오패스라고 들어봤을 것입니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모든 것을 다 빨아먹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부류의 인간이라고 하더군요.

이 소시오패스의 숫자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글쎄 자그마치 전체 인류의 4%나 된다고 된다고 하니,

참 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를 만나 고통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 소시오패스를 치료하기가 특히 어려워서,

이들을 직접 치료하기보다는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데

신경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소시오패스에게 피해를 볼까요?

 

피해 보는 사람은 대부분 능력이 좋고, 성실하며, 착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 소시오패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감탄할 것이 없는 사람이 주로 소시오패스에게 이용당한다고 합니다.

소시오패스는 성실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기가 막히게 이용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정신과 의사는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래야 남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자기에게 감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를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그 감탄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힘차게 이 세상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어쩌면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자기는 맞고 남은 틀렸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서도 자기들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냅니다.

래서 예수님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표징에 대한 평가를 자기들이 하려고 합니다.

그토록 많은 표징을 보여주었음에도

자기들만을 위한 표징을 드러내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의 이런 억지 요청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물리치셨습니까?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면,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런 위선자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주님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기에

미리 당신의 신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사랑의 길로 다시 돌아오길 눈물 흘리며 기다리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스스로에게 감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악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으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이탈리아 성지순례에는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부가 같이 온 분들 많았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많이 온 것입니다.

38명 중에 부부가 12명이고, 학생이 7명이었습니다.

19명이 부부와 학생이니 전체 순례자의 딱 절반입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대부분은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님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못 오기도 하고, 학생들은 공부가 먼저라 못 오기도 했습니다.

순례는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몸이 떨릴 때 가면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쁜 중에도, 공부가 중요한 데도 성지순례에 함께하시는 분들을 보니

하느님 나라에 보물을 쌓은 것같아 보였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잔에 기름을 준비해 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다섯 배로 늘린 충실한 종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올해 성지순례를 5번 다녀왔습니다.

1월에는 이스라엘과 과달루페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는 요르단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5월에는 그리스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저도 가슴이 떨릴 때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우리는 많은 표징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표징의 인물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10가지의 표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는 10가지 표징을 보았으면서도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10가지 표징을 보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표징은 이정표는 될지언정 표징이 목적지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에 목말랐던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천지사방에 표징이 있습니다.

의혹의 눈으로 보면 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계셔도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게 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나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니느웨의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전하여라.’

요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이 싫어서 도망을 갔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병자들,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수많은 번제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직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신기한 기적이나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볼 수도 있겠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에서도, 흘러가는 구름에서도,

거센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거든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내 코도 석 자지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기적이나 표징에 연연하고 집착합니다.

신앙 안에서도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 신기하고 놀라운 현상에 박수치고 환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진리 한 가지!

활기차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의 관건은 성령과 성모님의 현존하심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상성, 충실성, 지속성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더 이상 말끔히 치유시켜 주겠다, 신비로운 현상을 보여주겠다,

지금 바로 여러분의 눈앞에서 기적을 일으키겠다,

순식간에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애주겠다고 외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외치는 자들은 대부분 이단이요 사이비 지도자들입니다.

그 대신에 정통 가톨릭교회 가르침은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을 겪고 계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더불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 절대로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지루하고 힘겹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로 나아가자고 격려합니다.

 

우여곡절 속에서 겨우겨우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면서도

주님께로 향한 시선을 떼지 말자고 가르칩니다.

우리 모두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니 서로가, 서로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손잡고 함께 가자고 등을 두드립니다.

 

사실 우리가 보고자 노력해야 할 표징과 기적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이 녹아 들어있습니다.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 기적이 있습니다.

매일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니,

성사 그 자체가 기적이요 표징입니다.

 

절대 용서 못 할 상황이지만

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이 이 시대 표징이요 기적입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꺼이 견뎌내고,

그 고통이 나와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배경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한 표징입니다.

내 코도 석 자지만, 더 코가 길게 빠져나와 있는 사람의 코를 닦아주고자 손을 내미는 것,

주님께서 기뻐하실 기적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 복음에서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38) 하며 유혹을 한다.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39) 라는 말은

하느님을 유일한 신랑으로 알고, 사랑받는 배필로 사는 삶을 버리고,

즉 하느님의 말씀과 율법을 버리고

악과 거짓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간음하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징밖에 없다 하신다. 요나의 표징은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리를 꼬투리 잡는 이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이다.

 

믿음이 아니라 지혜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이들은

어리석음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쓰러지고,

표징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알려는 이들은

그분의 죽음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불신앙 속에 갇힐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4).

 

예수께서는 요나가 고래 배속으로 들어갔다가 사흘째 날에 다시 밖으로 나온 일이,

당신이 고난을 받고 사흘째 날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예시한다고 하셨다.

유다인들은 니네베 사람들에 비교되면서 책망을 듣는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라는 예언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지만,

유대인들은 하느님 아드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기는커녕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기에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41) 하신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42).

여왕은 여인의 몸으로 솔로몬을 만나기 위해 긴 여행을 하였다.

지혜를 원하는 것만큼 힘이 생겼다. 그녀는 서둘러 솔로몬에게 가서, 그의 말을 직접 들으려 했다.

그의 명성만 듣고도 그를 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 앞에 계신 지혜를 하찮게 여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니 주님을 모독하고 그분을 떠나고 만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든 것을 보아도 요나나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그분은 주님이시고, 두 사람은 종이기 때문이다.

이 종들의 말에 다른 민족들도 귀를 기울이는데, 주님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은 바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이었다.

이제 나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나의 말과 행위로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삶을 노력해야 한다.

 

 

 

 

 

 

보라, 요나보다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며,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시험하여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개탄하시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 12,39)

 

'악한 세대'라는 말은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치달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곧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기 위한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개 없는 세대라는 말은 이백 주 년 성경에는 간음하는 세대라고 번역하였듯이,

마치 부부의 신의와 같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해 불충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절개없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들은 표징을 요구하지만, 표징을 본다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표징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표징을 보았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죽은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아직 살아있는 형제들에게,

죽은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루카 16,30)라고 간청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불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이 표징을 알아볼 것입니다.

믿음으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1-3)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더 큰 분이심을 계시하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41.42)

 

그러나 요나의 설교만 들고도 회개한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평판으로만 듣고도 찾아온 이방인 세바의 여왕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건만,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표징을 보고서도 태도를 고치기는커녕 그분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굳이 표징을 보여주지 않아도 믿는 이들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실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표징들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 12,39)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놀라게 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를 선포하시려 오셨습니다.

주님, 오늘 제가 찾기도 전에 저를 찾으시고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자비를 보겠습니다.

아멘.

 

 

 

 

 

 

억수로 내리는 하늘의 비를 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주님께서 표징을 일으켜 보여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 시대를 성찰해봤습니다.

 

지금 밖은 비가 억수로 내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이지요.

 

이 비를 보면서 우리는 비 걱정 곧 수해 걱정이나 하고 있습니다.

이 비를 내리는 하늘을 보지 않습니다.

이 비를 내리는 하늘의 뜻을 보지 않고,

회개하라는 비라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처럼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비가 뚝 그치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

곧 하늘에서 내리는 이 비 외에 다른 표징은 없다고 하실 겁니다.

 

우리의 요구를 하늘이 들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하늘의 이치와 하늘의 뜻을 우리가 오히려 알아야 한다고,

이 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뜻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실 수 없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그리고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너희가 회개하라고 또 말씀하실 겁니다.

 

폭우와 기상 이변을 멈추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폭우와 기상 이변을 자초하는 우리의 죄악들,

모든 것을 쓰레기로 만드는 과소비,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하는 편의주의,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수없는 욕망을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보다 더 크고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사람

 

박상대 마르코 신부

 

오늘 복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전에 닐 기유메트신부님께서 쓰신

나와 함께 낙원에라는 책에 들어 있는 기적병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 드릴까 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메나헴은 항상 기적에 굶주려 있었다.

그가 어느 날부터 광야에 살면서 자기에게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설교를 하여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위대한 고행자 요한 세례자를 따라다닌 이유는

놀라운 기적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한 세례자가 설교와 세례를 베푸는 것 외에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자,

메나헴은 그를 떠나 한참 인기가 높아져 가고 있던 나자렛 출신인 예수의 문하로 들어갔다.

 

예수의 추종자가 된 메나헴의 첫 주간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꿈에서도 보지 못했던 일련의 기적들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병환자가 단번에 깨끗하여지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누워있던 요를 걷어 토째로 메고 가며,

절름발이가 걷게 되고, 반벙어리가 다시 말을 하고 들으며,

수천의 군중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가 터질 만큼 먹고,

악령들린 사람들이 말짱해지는 그런 기적을 자기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찬양했고, 예수께 박수를 보낸다.

메나헴도 신이 나서 우쭐거리고 있었다.

 

그다음 주간에 예수는 더 놀랄 기적들을 보여주었다.

배를 삼키려 드는 거센 풍랑을 호통쳐 가라 앉히는가 하면,

보이지도 않는 데서 병자를 원격 치유하고, 급기야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것이었다.

메나헴의 하루하루는 너무 행복했다.

기적들 가운데 간간이 섞여, 들려 오는 예수의 가르침에는 아랑곳없이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한 편의 영화가 되어 상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나헴은 예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예수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자신을 증명하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그때 메나헴은 이제야 기적의 최고절정을 보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는 그들의 청을 一言之下에 거절하고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구약성서의 예언자 요나의 기적밖에 달리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예수의 기적이

그의 눈에 시시하게 여겨졌고, 더 이상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보따리를 싸들고 더욱 더 짜릿하고 스펙터클한 기적을 찾아 떠나가는 메나헴을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라훔이었다.

라훔은 메나헴이 왜 예수를 떠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어떤 기적도 당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일세.

중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자네의 마음일세.

자네 마음을 한 번 변화시켜보게나!”하고 말이다.

라훔은 메나헴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보내고 말았다.

 

우리는 지난 주간 금요일과 토요일 복음을 통하여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께서 구약으로부터 이스라엘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비단 마태오뿐 아니라 다른 복음사가들도 예수님의 메시아-신학을 단번에 보도하지 않고

복음 전체를 통하여 점층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은 세 가지 측면에서 주의 깊게 고찰되어야 한다.

첫째는 예수님 스스로의 메시아에 대한 自意識이다.

하느님 편에서 볼 때 말씀이신 성자는 肉化 사건으로 말미암아

즉시 이 세상의 메시아로 계시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메시아성은

인간 예수의 자의식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성숙, 되어 가는 것이다.

둘째는 복음사가들의 편집사적 노력이다.

예수님을 더 이상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신약성서 시대에

예수의 목격자인 사도들과 그들의 증언을 기록한 복음서는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복음사가들은 저마다 고유한 편집의도를 가지고

메시아-신학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상은 대략

나자렛 출신 예수 선생, 랍비 위대한 선생 예언자 대예언자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도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결국 복음서의 목적은 예수를 메시아요 그리스도로 피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말이다.

셋째는 예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이는 예수님이 진정 메시아인지에 대한 인간의 수용 여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심 가득 찬 메시아적 자의식으로 군중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메시아적인 업적을 보이며, 또 복음사가들이 위에서 말한 편집의도를 가지고

聽者讀者들을 유인하다 하더라도 마지막 결정은 인간 스스로가 내린다.

이 결정에는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들 고유의 메시아 ,

또는 메시아 도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복음서는 예수께 대한 인간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태도는 마지막에 가서 수용(accept)과 거부(reject),

나아가 신앙(belief)과 불신(unbelief)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면 오늘 복음은 쉽게 이해된다.

사람들이 예수께 자신을 메시아로 증명할 수 있는 기적을 요구한 것은

예수를 메시아로 受容하고 信仰하기 이전에

그에 합당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구약성서 시절에 있었던

요나의 기적(요나 3) 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나의 기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요나의 설교를 듣고

 

죄악에 빠져있던 니느웨 사람들 모두가 회개하였다는 것이다.

즉 기적이 아니라 오직 설교만으로 삶의 태도를 바꾸고

자신들을 내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외적인 기적은 결코 믿음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진정한 기적은 바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누구도 종용할 수 없는 나 자신, 스스로의 변화 말이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예수님을 주님이요 메시아로 믿고 고백할 수 있으며,

이 믿음이 가져오는 엄청난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성심 수녀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9)

 

애초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요나였습니다.

죄지은 이방인까지 용서하고 구해내시려는 하느님이 싫었던, 이기적이고 비좁은 신앙.

하느님을 알지만 제 맘에 드는 하느님이길 바랐던 요나,

하느님을 믿지도, 알려고도 않고 그저 멋대로 살던 이방인.

하느님은 토라진 요나를 끝까지 구원의 도구로 쓰셨고,

요나도 니네베 사람들도 모두 끌어안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꺼리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은총,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입게 되는 자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우리는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고 나의 호불호를 마치 선악으로 착각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이렇게 모두를 향합니다.

 

현대를 위한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란,

나도 너처럼 구원의 대상이요 자비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회개하는 이들이 아닐까요.

 

[출처] 마태 12,38-42 연중 제16주간 월요일|작성자 베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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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7.2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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