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 1열왕 3,5-6ㄱ.7-12
제2독서 : 로마 8,28-30
복 음 : 마태 13,44-52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7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중화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알려진 비수민 작가가 한 대학교에서 강연했습니다.
감동적인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물었습니다.
“선생님, 삶의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자 비수민 작가는 별 표정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산다는 건 원래 아무 의미 없어요.”
작가의 대답에 학생들은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내용 자체가 삶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작가는 곧바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삶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죠.”
공감이 가는 대답입니다. 삶의 의미는 내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미 자체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만 살았다는 사실처럼,
우리 역시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보내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큰 의미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데 힘을 쏟는 것,
그리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랑의 삶이 어떻게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뜻이 담겨 있지 않기에 의미 없어 보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비유를 쓰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나라이기에,
우리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가야 할 나라임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의 비유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이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것을 삽니다.
바로 하늘나라가 밭에 숨겨진 보물이고, 상인이 찾는 좋은 진주라는 것이지요.
그 의미를 발견한 사람만이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모든 힘과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물의 비유 말씀도 해주십니다.
바다에 던져진 그물에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걸리는데,
그물을 끌어 올린 뒤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눌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때가 세상 종말 때라는 것입니다.
의미를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의미를 찾아야
지금을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충실히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종말에 주님으로부터 선택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후배 신부님과 크루즈 여행을 가면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들었습니다.
한번은 방 청소를 하는 직원에게서 들었습니다. 직원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들하고 같이 왔습니까?” 저는 친절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그렇지,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같은 한국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르신! 아들하고 같이 여행 다니시니 부럽습니다.
나도 아들이 20살인데 같이 가자고 하니 안 간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친절하게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그렇지,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후배가 다음 달이면 한국으로 가는데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같이 여행왔다고 하였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분별력이 없어서야!’ 하긴 후배는 옷을 아주 젊게 입었습니다.
저는 복장도 그렇고, 특히 머리카락 색깔이 그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를 아버지로 봐준 분들은 어쩌면 저의 내면에 있는 중후함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금도끼와 은도끼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마음 착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그만 연못에 도끼를 빠트렸습니다.
산신령이 은도끼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금도끼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산신령은 쇠도끼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너의 도끼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예, 그것이 저의 도끼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에게 금도끼도, 은도끼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의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착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역시 도끼가 연못에 빠졌습니다.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을 알아보고 이제는 나무꾼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무꾼은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려면 ‘머리’가 좋아야 했습니다.
세상을 풍요롭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면 ‘여자’가 있어야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무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머리 돈 여자’
산신령은 착한 나무꾼에게 ‘머리 돈 여자’를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의 주제는 ‘식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축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청하였습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솔로몬이 지혜를 청하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대로 해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솔로몬을 지혜의 상징으로 생각합니다.
솔로몬은 가짜 엄마와 진짜 엄마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산적한 많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똑똑하다는 사람, 지혜롭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감추시고 이렇게 작은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식별의 은사는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물‘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이라는 보물을 팔아서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쓰레기를 사려고 합니다.
우리는 겸손과 희생이라는 보물을 팔아서 교만과 욕망이라는 쓰레기를 사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창고에 쓰레기를 가득 채운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 할 보물은 진실과 정의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 할 보물은 우정과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팔아서 사야 할 보물은 십자가입니다.
내 기억의 창고에, 내 삶의 창고에 겸손, 진실, 정의, 우정, 사랑, 십자가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에 초대 될 수 있습니다.
여름입니다. 농부가 땀 흘려 밭을 가꾸듯이,
우리들도 가진 것을 팔아 보물을 찾으러 가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이나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습니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하며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수 있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마음을 주님께 청합시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을 여러분은 발견하였는지요?
그리고 그것을 이미 가지셨는지요?
아니면 그것을 갖기를 진정으로 원하시기는 하는지요?
오늘 말씀전례는 바로 이 ‘진정 중요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1열왕 3,9)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리고 그 보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먼저, 하늘나라는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그것은 멀리 하늘 끝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밭에 묻혀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터에, 우리의 삶의 터전에 ‘이미 묻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무실이나 가게에, 우리의 농장이나 공장에, 혹은 거리나 광장에,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사이에, ‘이미 묻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상의 삶의 장소 안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가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꿀 때, 비로소 바로 그 밭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5)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그 행위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그 발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혹은 인간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인간관계 그 안에,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는 바로 그 행위 안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그 안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것을 열심히 찾아다닐 때, 바로 그 행위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하늘나라”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행위 안’에 ‘이미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1)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그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은 ~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46)
결국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있는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찾았고 진주를 발견했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보물을 깨달아 알아들었다 해도,
그것이 아직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까지도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그 보물이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그것을 '사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했고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지 않고는 아직 보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늘나라”를 얻는 길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것”입니다.
‘성서 안에서는 사는 방법’을 두 가지로 말해줍니다.
하나는 돈 없이, 곧 값없이 사는 것이요(이사 55,1; 묵시 21,6),
또 하나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필립 3,7-8).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산다는 것
역시 결국은 당신의 것을 당신께 돌려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 곧 목숨까지도 애시 당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실 ‘있는 것을 다 팔아도’ 잃어버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팔아
사야 할 만큼 진정 가장 값진 보물로 여기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진정 “하늘나라”가 나의 기쁨이요 나의 행복인지,
진정 나에게 있어서 최상의 유일무이한 것인지, 목숨을 주고라도 얻어야 하는 그 무엇인지,
사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하늘나라”의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 진정으로 그것을 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혹 내가 아직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제 진정한 마음으로 찾아 나서야 할 일입니다.
혹 보물을 발견하고도 아직 있는 것을 다 팔지 않았다면, 서둘러 다 팔아야 할 일입니다.
혹 가진 것을 다 팔고도 아직 보물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면, 어서 빨리 보물을 사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물의 비유를 통해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미 얻은 보물인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하라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시어,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제 입맛에 맞게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조욱현 토마스 신부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과 진주에 대한 비유에는
다 같이 값진 보물을 찾자마자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팔아버리고
그 보물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44; 참조: 46절).
그들은 그들이 발견한 엄청난 가치,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존
즉 하늘나라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떠한 모험도 무릅쓸 수 있는 용기를 내게 된다.
여기서 이제 그리스도와 복음에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망설일 수 있겠는가?
그분 때문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그러나 이것이 어려운 것은 그러한 가치를 알면서도
그것을 잡기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또 그것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하찮은 일들을 포기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나 유일한 진주를 얻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은 우리 자신 안에서 새롭게 변모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새롭게 변모시키는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이때 우리는 그 보물과 진주를 갖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이다.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참된 제자의 모습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52절).
이 비유는 구약성서의 모든 내용(옛것)이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빛에 비추어
재해석된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앙의 유산으로 전해진 복음의 무한한 부를 더 깊게 하고,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라는 초대를 받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세대가 처음부터 발굴해서 세상에 드러내야 할
보물의 진가를 발견하고 또한 널리 알리는 방법이다.
사도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해 깊이 사고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영원으로부터 생각하셨고(에페 1,3-14)
모든 것을 우리의 선익을 위하여 마련하시고 미리 정하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로마 8,29)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하늘나라가 확장되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계획 속에
우리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계획까지도 세워놓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응답을 드리고 그분을 다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참된 지혜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뜻에 항상 일치하려고 하는 삶을 통하여
그분을 소유하는 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참된 지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아버지 하느님과 일치하셨던 그리스도는 지혜 자체이신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닮으려 진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을 닮을 수 있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들을 팔 수 있을 때,
하늘나라와 그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 지혜와 함께 참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참된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보물 제1호
반영억 라파엘 신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여러 가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물에 대해 기대하는 만큼 중하게 지키고 보호하고
간수 하려 애쓰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여러분의 보물 제1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6,21). 그리고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보면 무엇을 보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값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보다 못한 것을 처분함은 당연합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 그보다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희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모두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큰 것을 위해 보다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천상의 하늘을 희망하면서도 세상을 꼭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발견한 기쁨이 크면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물은 그 보물 앞에서 빛을 잃어버립니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 때문에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하잘 것이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보물 1호는 양보할 수 없는 첫 자리입니다.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보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피3,8).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리피1,21).
바오로에게 있어서 주님을 얻게 되는 것은 모두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오로의 진정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10장 17절 이하를 보면 ‘부자 청년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는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면서도
자기의 소유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진정한 보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 양다리 걸치기, 어중간은 없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발견하거나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보물을 얻으려는 사람은 어떠한 대가라도 치를 수 있는 희생적인 투신이 꼭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법’입니다. 시편에는
“눈물로 씨뿌리던 이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이 곡식단 들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5).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물을 발견한 장소가 “밭”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밭은 일상의 문화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찾는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루카17,21)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21,3).
그러므로 진정한 보물을 아는 사람은 그만한 기쁨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보물은 이미 지금 여기서부터 주어졌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머물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보물로 얻은 사람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기쁨은
그 어느 것하고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값진 것을 발견했으면 지금까지 귀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나라를 위해 투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또한 주님을 비추는 이웃의 보물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내가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마태7,21).
값진 진주는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진주, 보물은 많지만 모든 재산의 가치보다 귀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 신앙은 또한 더없이 값진 보물입니다.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잘라도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이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손이 크다.’ ‘손버릇이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마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아무리 고운 손이라도 나쁜 짓을 하는 손은 고운 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거친 손이라도 선한 일을 하면 고운 손이 됩니다.
손의 주인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감옥을 갈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만
죄를 지은 마음은 손으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천상, 하느님 나라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 외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주셨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말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 놀라지도 마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의 보물 1호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예수님께서 값진 보물로 첫 자리에 계시길 기도드리며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을 그분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 나라의 보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 있고, 이웃 안에 있습니다.
보물을 잘 찾는 한 주간 되시길 바라며 꼭 천상의 행복을 차지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여러분 자신이 이웃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보물을 보물로 볼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천상 목적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천상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방황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순례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서공석 요한 신부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값진 진주에 비유합니다.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보물 혹은 진주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며, 갖고 싶어 하는 대상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아들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버리면서
그 하느님 나라를 얻으려 노력한다는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소유하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그 眞價를 알면,
지금까지 추구해온 모든 가치들을 버리면서 그것을 얻으려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우리 스스로 실천하여,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우리 안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질서가 지배하는 곳은, 그것이 현세이든, 내세이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서를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가 어떤 삶 안에 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고, 그분에게 많은 것을 바쳐,
그분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잘 사는 길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높은 사람들 같이
인간이 섬겨서 그분의 마음에 들도록 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지,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요구되는 관계는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키고 바칠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시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외면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 생명의 질서를 사는 사람들 안에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생명을 철저히 사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회 기득권자들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생명이 살아있는 질서,
곧 사람들을 사랑하며, 용서하는 질서를 사셨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하느님에 대해 알아듣고,
그 하느님의 일을 배워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묻힌 보물 혹은 좋은 진주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의 진가를 알아들은 신앙인은 그때까지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였던 모든 것을 버리면서,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d;ㅆ고, 그 함께 있음을 소중히 생각할 때,
그 함께 있음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립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있기 위해 인간으로서 정당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합니다.
부부가 함께 있고, 친구가 친구와 함께 있기 위해서도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그 희생은 그 함께 있음이 소중한 나머지, 본인들이 자유롭게 택한 것입니다.
함께 있음이라는 보물 혹은 진주를 얻기 위해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와 같이 많은 것을 버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은 노예가 주인과 함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부모는 한 인간 개체로서 정당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많이 버렸지만,
자녀와 함께 있고 자녀를 사랑하면서 더 큰 자유와 행복을 누립니다.
하느님 나라도 우리가 많은 것을 버리면서 얻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와 기쁨은 이기적인 우리의 視野를 벗어나서
하느님의 넓은 시야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물질의 소유에 내 삶의 모든 보람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평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겠다는 복수심에서 벗어나
용서하는 자유로운 마음, 대가 없이 사랑하고, 대가 없이 헌신하는 넓디넓은 마음,
이런 마음이 모두 하느님의 시야가 열어주는
넓은 지평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질서이고 기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에게 허락된 풍요로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시야 안에서 우리가 살아야 할 질서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 하듯이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심판하는 질서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더 자비로울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자비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면서, 당신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사실을 이렇게 해설합니다.
“자유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갈라 5,1)
참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無償으로 베푸신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를 사로잡는 애착과 환상에서 해방되고,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질서를 살면서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자유로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베풂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힘들게 또는 드물게 베풀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행복합니다.
베풂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감동이 있습니다.
용서도 상대에게 새로운 미래를 베푸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베풂의 이야기가 자취를 감추면, 세상은 살벌하게 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아지고, 더 강해지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들만 보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감사할 일도, 감동할 일도, 자기 스스로를 희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두 발 가진 동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 한 사람 더 많이 갖고, 나 한 사람 더 잘되고,
도로상에서 나 한 사람 더 빨리 가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만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세상이 아닙니다.
베푸심은 하나의 암호와 같이 우리 삶의 깊은 곳에 감춰져 있습니다.
그 암호를 읽어내어 실천한 예수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보물 혹은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이기심, 욕심, 경쟁심의 대상이던 것들을 버리면서
비로소 그 실체와 질서를 나타냅니다.
그 실체와 질서를 발견하고 영접하는 일은 나의 계획, 내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베푸심이신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그분의 숨결이 우리 안에 하시는 일입니다.
그 숨결은 땅속 깊이 묻혀 있는 보물과 같이, 보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지만,
그 숨결은 우리 삶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그 숨결을 찾아 그 숨결 따라 흐르기 위해 돛을 달면,
나도 그 숨결과 함께 흐를 것입니다.
우리의 베풂은 보잘 것 없지만, 그것으로 우리도 그 하느님 나라의 흐름에 합류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보물이나 진주와 같이 숨겨져서 혹은 암호와 같이
解毒을 필요로 하는 양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숨결이 우리를 움직이도록 비는 사람 안에
하느님은 그 생명의 아버지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조창현 클레멘스 신부
이근화 시인의 ‘목요일마다 신선한 달걀이 배달되고....’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먼지 쌓인 황금보다 황금빛 나는 먼지를 사랑해...
황금을 닦듯이 유리를 닦고,
사과를 닦듯이 손을 닦고
돌아오지 않는 계절을 향해 고개 숙이고.”
한참 마음으로 생각하다가 편하고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본래 인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고 싶은 냄새가 시인의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둘 다 사랑해...”
어찌 보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도 둘 다, 아니 모두 사랑하는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멘.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여기서 핵심은 보물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입니다.
이 비유를 보면, 하나는 ‘보물’을 소재로 하고, 또 하나는 ‘진주’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하나는 ‘보물’을 ‘하늘나라’로 비유하고,
또 하나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을 ‘하늘나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비유는 ‘보물’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사람의 행위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 비유 말씀을 통해
‘둘 다 중요해’라고 알아듣기 쉽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토마스 머튼 신부님도 이런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둘 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 말씀을 통해 ‘보물’도,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도 소중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소중한 곳은 ‘둘 다 품고 있는 하늘나라 자체’라는 것입니다.
코린토 1서 15장 42-44절 말씀입니다.
“죽은 아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고운님들은 ‘하늘나라의 보물’을 가진 거룩한 믿는 이들입니다.
왜냐하면, 고운님들이 참례하는 미사성제 중에 주신 말씀과 성체 안에 엄청난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 “일어나 걸어가라.”
“너희가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천만금을 주고도 못 사는 ‘하늘나라의 보물’이 고운님들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듣게 되면 은혜중에 더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자명하게 남는 것은 ‘고운님들이 그 은혜중에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을 자비로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고운 님들을 괴롭히는 잡것들이 물러가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체를 정성껏 모시고, 아픈 곳을 만졌더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 모시기 전에 두 손을 벌리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데
정말 자신을 힘들게 하고, 용서하지 못했던 친구를 용서할 수 있는 은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고운님들은 미사성제 참례 후에 용서하고 화해하는 말씀에 대한 믿음을 이루시고,
또한 은혜를 받고 거룩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모두 다 사랑하십시오. 아멘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전 요세피나 수녀
오늘 1독서에서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분별하는 마음 곧 지혜'를 청하여
하느님께서 이를 마음에 들어 하시고, 청한 바를 주심을 이야기 한다.
화답송에서 노래하듯 주님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일,
주님의 계명을, 금보다 순금보다 더 사랑하는 일,
이것이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봉헌 중의 하나 임을 본다.
예수님께서 오늘, 군중에게 "밭에 묻힌 보물"에 대한 비유를 통해
우리가 진정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신다.
18년 전, 나의 입회식 말씀의 전례를 통해 들은 복음이기도 한 오늘의 말씀,
수도 성소라는 보물을 발견하여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 밭 전체를 산다는 이야기,
부모님의 축복과 응원을 큰 기도로 받으며 시작한 나의 수도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이로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이
지혜롭게 이를 분별하고 있는지 짚어보게 된다.
오늘 비유의 말씀들은 우리 신앙인의 삶의 여정과도 같음을 본다.
하느님을 찾고, 섬기는 가운데 기쁨을 느끼고,
갖가지 것들이 모인 그물과도 같은 상황들 안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일, 그리고 이를 식별하여
나의 삶을 하늘나라로 이어가는 일 말이다.
일상의 선택들, 일상의 봉헌들이 모여 하늘나라로 이어짐을 느끼며
2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표현처럼,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만사선용의 법칙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청해 본다.
[출처] 마태 13,44-52 연중 제17주일|작성자 베네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