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2023년 8월 7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작성자vero|작성시간23.08.07|조회수49 목록 댓글 1

202387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1독서 : 민수 11,4-15

복 음 : 마태 14,13-21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느 회사에 스펙도 좋고 실적도 좋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스펙도 낮고 실적도 변변치 않은 동료 직원이 먼저 승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스펙 좋고 실적 좋은 남자가 인정하기가 쉬웠을까요?

억울해하는 그에게 상사는 이렇게 말해 줍니다.

 

자네가 능력 있는 인재라는 것을 인정하네. 하지만 자네는 혼자 일하는 유형이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군가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았을 때도

자네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면 단칼에 거절했어.

회사는 팀이 중요하네. 완벽한 개인은 없어. 완벽한 팀이 있을 뿐이야.”

 

승진에서 빠진 이유에 공감 가지 않습니까?

사실 함께하는 삶은 이 세상 안에서 분명히 중요합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는 의 존재는 더 중요할 수밖에 없지요.

우리 교회 공동체에서는 어떨까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지요.

개인보다 팀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팀을 외면합니다.

 

현대의 기업에서 팀의 능력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교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혹시 당신 뜻과 반대되는 이 모습에 서운하시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팀에서 활동하든, 혼자 활동하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팀 안에서 활동하며 최선을 다할 때,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함께하는 모습을 당신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을 제자들과 함께하셨고,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먹을 것을

당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마련해줄 수 있음에도

제자들에게 먼저 해결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함께하십니다.

팀을 이루어야 함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할 이웃에 대해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에게 상처를 줬다는 이유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함께하지 못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할 이유를 찾으셨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웃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과도 함께할 수 없게 됩니다.

함께하려는 예수님의 뜻과 정반대의 모습이니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함께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운 오리 새끼 모임이라고 생각하는

평화신문 신앙강좌 기획팀모임이 보스턴에서 있었습니다.

자발적인 열성과 깊은 신앙으로 무장된 분들입니다.

토론토에서, 플로리다에서, 뉴욕에서, 버지니아에서 모였습니다.

신앙강좌기획팀의 열정으로 장재명 신부님의 교부 이야기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박재찬 신부님의 토마스 머튼과 영성도 많은 분들의 참여 속에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11월에는 김재덕 신부님의 피정이 기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줌으로 강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신부님을 모시고 피정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 피정에도 벌써 많은 분들이 신청하고 있습니다.

보스턴에 오면 보통은 찰스 강, 하버드 대학, MIT 공대를 보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기획팀미운 오리 새끼들인지라 다른 곳을 찾았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찾았습니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파우스티나 성녀를 기념하는 슈라인을 찾았습니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것을 찾으려는 분들의 뜨거운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강좌 기획팀은 11월 피정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모임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신부님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모임방을 마련해 주셨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제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오래된 차가 있었습니다. 한 독지가가 차를 새로 바꾸어 주겠다고 했답니다.

신부님은 아직은 필요 없기도 해서 대답을 미루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독지가는 새 차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차가 좋지만, 너무 비싸고, 운전하기에 부담스러워서

며칠 가지고 있다가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독지가의 아들이 역시 신부님은 다르네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좀 저렴하고, 작은 차를 마련해 주어서

그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더 편하고, 더 비싸고, 더 좋은 것을 찾지만

신부님은 자신의 분수에 맞는 것을 찾았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신부님의 정성을 보았습니다.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신부님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독지가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먼저 하느님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의로움을 생각하여라.”

 

우리의 몸에는 많은 바이러스들이 잠복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면역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들이 활동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면역기능이 저하되고

그럴 때,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들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본당에는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 단체들은 기도와 활동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기도하는 단체, 주님의 사랑에 의지하는 단체는 어려움이 다가와도 쉽게 이겨냅니다.

그러나 기도가 부족한 단체, 세상의 기준으로 움직이는 단체는

겉으로는 잘 되는 것 같아 보여도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분란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불평과 불만을 이야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자유와 해방을 주었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된 분들도 가끔 예전의 생활을 그리워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뜻대로, 멋대로 살았지만,

신앙인이 되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졌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면 세상의 풍랑을 이겨낼 수 있는데 순간 자신의 뜻대로 살려했기 때문입니다.

한 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주님의 뜻이 내 삶의 중심이 되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신앙강좌 기획팀

주님의 뜻을 따르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신부님께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으리라.”

 

 

 

 

 

 

모세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영광스럽게도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효의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고

이집트 탈출이라는 막중한 소명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지만,

그가 느꼈던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엄청났습니다.

 

출애굽의 스타트는 장엄하고 대단했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스라엘 백성과 가축들이 무리를 지어 질서 정연하게 행렬했습니다.

집요한 파라오의 훼방을 보란 듯이 물리쳤습니다.

백성들은 영도자 모세의 탁월한 지도력에 박수를 치고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본격적인 광야 여정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그 여정이 일년 이년도 아니고 기약도 없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다양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공동체들이 겪는 우여곡절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도 똑같이 체험한 것입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주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때맞춰 보내주시고,

다양한 모습으로 섭리하시고 동반해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광야 여정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터트렸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이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던

모세 입장이 참으로 난감해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당연히 이런저런 불편함이 생길 터이고,

백성들이 그 정도 고통은 감내해줄 줄 알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 백성들 앞에 모세는 신물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민족의 지도자로 불러주신 하느님에게도 원망의 마음이 들어, 이렇게 외칩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모세가 온몸으로 느꼈던 지도자로서의 고통과 서글픔을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항상 대면하고, 하느님과 지속적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세의 모습에서

참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파악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애써 꾸민다거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과 느낌, 고통과 두려움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느님 면전에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 진솔한 모세의 모습에 하느님께서도 흐뭇하게 여기십니다.

그와 항상 소통하시고, 그의 인생 여정에 늘 동행하시고,

그의 고통스러운 목소리, 그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외딴곳으로 가셨다.

외딴곳으로 물러가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직은

당신이 누구시라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은 그분을 끝까지 따라간다. 아마 예수님께 큰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6)

제자들은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17)

그들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교부들은 이 빵 다섯 개를 율법서 5권으로, 물고기 두 마리를 예언서와 요한의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18) 하셨다.

빵과 물고기를 받으신 주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신 것은 사람들에게 눈을 하늘에 두라고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주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빵이 나눠지지 않았다면, 그 빵은 그 많은 군중을 먹일 수 없었다.

예수님은 이 기적으로 사랑의 실천, 서로 한 마음이 되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것을 가르치신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빵과 물고기만 주심으로써 그것을 누구나 똑같이 나누게 하신다.

빵이 사도들에게 주어졌고, 은총의 선물이 그들을 통해 분배될 것이다. 군중은 배불리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나서 남은 빵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군중들은 만족하였고,

이제 이 말씀을 다른 민족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열두 사도에게 거룩한 권능이 넉넉하게 남겨졌다.

제자들은 이 기적을 통하여 당신을 알아보아야 했다.

 

옛날 광야에서 주어진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지금 역시 외딴곳에서 음식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분은 아낌없이 주셨다.

조그만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너끈히 먹이신 것은 옛날의 기적과 같다.

그때 이스라엘은 필요한 만큼 그것을 먹었고, 지금은 빵조각이 많이 남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그때 빵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다.

나눈 빵과 물고기로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사도들이 거둔 빵조각이 열두 광주리가 되었다.

이 빵은 이제 다른 사람들, 즉 다른 민족들에게도 나누어질 수 있도록

사도들에게 풍성한 은총으로 돌아갔다.

우리 자신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오늘 우리는 그야말로 감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모여든 많은 군중'을 마치 좀 쉬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 정도로 여긴지라,

예수님께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으니, 군중을 돌려보내시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군중을 보시고 측은한 마음”(마태 14,14)에 단장의 아픔을 느끼십니다.

 

여기에는 바라보는 시선(관점)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곧 제자들은 자기중심, 곧 자신의 처지에서 그들을 바라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중심, 곧 상대의 처지에서 그들을 바라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분리되지 않는 연민의 마음을 지니신 까닭입니다.

곧 그들의 배고픔이 당신의 배고픔이요, 그들의 아픔이 곧 당신의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저녁때가 되자

'군중을 헤쳐 제각기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마태 14,16)고 이르십니다.

 

제자들은 그들에게 손해 보려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놓으라고 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가진 것은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베풀어야 할 그 무엇인 까닭입니다.

제자들은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라고

있는 것마저 없는 것처럼 말하고 무가치하고 하찮게 여기지만,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을 값지고 소중하게 여기시고 감사를 드리십니다.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바로 감사의 눈이요, 없는 것을 보는 눈은 바로 불평의 눈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있는 것그것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드리십니다.(마태 14,19)

제자들은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신뢰하신 까닭입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감사와 믿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크나큰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건너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는”(마태 14,19) 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베풀어졌습니다.

이 믿음의 행위 속에서 하느님의 권능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마태 14,20)

 

그렇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찰찰 차고 넘쳐납니다.

항상 너끈하게 차려진 밥상과 같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측은히 보시는 마음으로 차린 밥상이요,

어떤 처지에서도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차린 밥상이요,

변함없는 아버지께 대한 믿음으로 차린 밥상입니다.

 

오늘도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몸을 떼어주십니다.

차고 넘치는 이 놀라운 사랑으로 당신 자신을 건네주십니다.

 

그러니 이제 이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아먹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주님을 통해 건너온 이 놀라운 사랑을 찬미하며, 우리의 희망을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주님!

제 몸과 생명을 제 것인 양 독차지 하지 말게 하소서.

먹지 않고서는 못 살면서도 자신은 먹히지 않으려 하는 자애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게 하소서.

제 몸이 찢어지고 나누어지고 쪼개지고 부수어져 타인 안에서 사라지게 하소서.

당신께서 그러하시듯 제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당신께서 저를 향하여 계시듯 제가 늘 타인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제자들의 시비지심과 예수님의 측은지심

 

박상대 마르코 신부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래아에서 자신의 공적 생활을 시작하신(마태 4,12)

예수께서 오늘은 그의 죽음 소식을 접하시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셨다.

아마 요한의 죽음을 哀悼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육로를 통해 몰려들었다.

예수께서 계신 곳은 어디든지 이렇게 사람들로 붐빈다.

예수를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예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마음이 심란했을 터인데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청을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신다.

그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이 드셨기 때문이다.

타인이 어렵고 가엾은 처지에 대한 측은한 마음은 사람다운 사람의 가장 기본 태도이다.

 

性善說을 주장했던 孟子(BC. 372-289?)

이미 사람이 타고난 착한 본성의 발로를 四端으로 보았다.

사단은 군자(君子)가 행해야 한다는 네 가지 품성인 四德에 해당하는

, , , 에서 우러나는 네 가지 마음을 말한다.

사단은 곧 에서 우러나는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惻隱之心,

에서 우러나는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에서 우러나는 남을 공경하고 겸손히 사양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에서 우러나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맹자가 정리한 사단의 마음이 예수님을 통해 한층 돋보이는 대목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데려오고 스스로 찾아온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시자 때는 저녁이 되었다.

동시에, 제자들에겐 끼니 걱정이 함께 엄습하였다.

제자들은 그나마 해가 서산에 넘어가기 전에

군중을 해산시켜 끼니를 각자가 해결하도록 할 참이었다.

시비지심의 발로인가?

그러나 제자들의 시비지심보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앞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6)는 것이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란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뿐, 자기들이 먹기에도 부족한데,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께 청하여 사람들을 헤쳐 물리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안되는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주란 말인가?

 

오늘 복음의 핵심은 마태오가 전해주는 예수님의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이다.

4 복음서 전체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6,32-44; 마태 14,13-21; 루카 9,12-17; 요한 6,1-15)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8,1-9; 마태 15,32-39)의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진다.

알다시피 오천 명의 기적은 4 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으나,

사천 명의 기적은 마르코와 마태오만 전하고 있다.

물론 마르코 복음이 구전(口傳)이나 예수어록의 原典에 제일 충실했을 것이고,

마태오와 루카복음은 저지의 의도에 따라 다소 수정을 가하였으나,

요한복음은 원전의 기적사화를 토대로 완전히 독창적인 신학을 펼치고 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4,12-18-35)

비유설교(13)와 공동체 설교(18) 사이에 등장하는 주된 모티브는 이다.

적어도 마태오복음 14,13에서 16,12절 까지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사상이 바로 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우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14,13-16)으로 시작하여,

그 가운데 사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15,31-39)을 삽입하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 두 가지 빵의 기적에 대한 의미해석(16,9-12)으로 마무리된다.

 

복음이 전해주는 빵의 기적은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특성을 드러내는 기적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였다.

자신들의 평범한 이론과 습관들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예수님은 마치 평범한 일처럼, 그냥 우리가 늘 생각하고 행하는 패턴처럼 여기신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간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사가가 단순한 빵의 기적을 가지고

생명의 빵(성체성사 신학)을 구상하거나(요한 6),

마르코 복음에는 없는 여자와 어린아이들’(21)을 끌어들여

누구나 참여하는 미사성제를 마태오 복음사가가 구상하든지 간에,

오늘 예수님의 복음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간에,

있는 것으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것이다.

모자라는 것은 예수께서 스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오늘은 빵의 기적으로 모자람을 채워 주셨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몸을 내어놓는

죽음과 부활의 기적으로 모자람을 채워 주실 것이다.

이로써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예수님의 속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는 빵의 모티브를 통하여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서서히 예고하시려는 것이다.(마태 16,13 이하)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한모금 / 수도자매일복음묵상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마태14,15)

 

김찬미 수녀

 

아무리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눈에 보이는 상황의 압박이 커지면

예수님을 따라나선 외딴곳을 떠나

예수님을 떠나도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고 한다.(몹쓸 다시)

 

하지만 가만히 숨을 고르면...(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도)

마을의 불빛과 부요가 나를 지키거나 돌보지 않았음을,

마을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다시 기억한다.(좋은 다시)

 

그때 옆에서 내 손을 꼭꼭꼭 잡는다.

꼭꼭꼭...

.........

.........

 

꼭꼭(나도)

[출처] 마태 14,13-21 연중 제18주간 월요일|작성자 베네지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8.07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