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6일 월요일[한가위]
제1독서 : 요엘 2,22-24.26ㄱㄴㄷ
제2독서 : 묵시 14,13-16
복 음 : 루카 12,15-21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오늘의 묵상
이찬우 다두 신부
오늘 제1독서는 땅의 결실에 대해서, 제2독서는 우리 삶의 결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복음에서는 삶의 결실은 재물에만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는 예로부터
한 해 동안 키우고 거둔 땅의 결실을 함께 나누던 날입니다.
산업화된 지금은 땅에서 얻은 수확물뿐만 아니라,
한 해 동안 저마다 얻은 삶의 열매를 나누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한 해가 시작된 뒤 그동안 이룬 것,
삶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막상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면
이런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서로 부딪치고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기에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 세대는 명절 때 무리해서라도 음식을 준비합니다.
함께 나누어 먹고, 자녀에게 싸 주고 싶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산 자녀 세대는 이제 명절 음식 준비를 그만하라고 합니다.
음식 준비로 고생하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편히 쉬기를 바라서일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 배려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 말일 텐데 갈등을 빚게 되는 까닭은,
그 기준이 ‘나 중심’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대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다면, 저마다 그 다름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삶의 결실과 수확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더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고대 태국에서 하얀 코끼리는 굉장히 신성한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태국의 왕은 이 신성한 하얀 코끼리를 누구에게 선물했을까요?
1) 충직한 신하 2) 큰 공을 세운 신하 3)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
당연히 1번이나 2번 같지만, 태국의 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이 신성한 하얀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하얀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이기에 비싼 먹이를 먹여가며 귀하게 키워야 했습니다.
밭일에 활용하거나 이동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가 없었지요.
따라서 하얀 코끼리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쓸모는 없는데 관리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처치 곤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태국의 왕은 막대한 먹이 비용과 관리 비용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가 파산하도록 하얀 코끼리를 선물한 것입니다.
더 잘해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또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면 당연히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하느님 뜻에 맞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하얀 코끼리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오히려 장애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뜻에 맞춰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나의 재물과 시간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며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느님과
우리가 있게끔 해 주신 조상님께 감사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이 명절의 그 기쁨을 가족 및 이웃과 나누는 명절입니다.
결국 한가위의 정신은 ‘감사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감사의 대상은 어디에 있을까요?
자기가 아닙니다. ‘나’를 넘어 조상, 하느님, 그리고 우리 공동체로 향합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거두었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과 소유로만 여깁니다. 그의 계획에 하느님도, 조상님도, 이웃도 없습니다.
오직 ‘내 곡식’, ‘내 재물’, ‘나 자신’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부자가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재물을 모으면서, 정작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가 기준에 서면, 하느님의 뜻은 자리하지 못합니다.
하얀 코끼리를 키우는 것이 되고 맙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이번 명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에게 감사하는 어리석음은 모두 버리고, 하느님과 조상님께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
축복 가득 찬 한가위입니다.
꽉 찬 보름달처럼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도 꽉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이루신 그 사랑, 그 놀라운 일에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내어줄 수 있었으면 더더욱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입당송에서는 노래합니다.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본기도에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는 하느님,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또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요엘 2,26)고 노래하고,
제2독서에서는 때가 될 때 구름 위에 앉아계시는 분이
땅 위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들려주며,
복음 환호송에서는
“뿌릴 씨 울며 들고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하느님의 축복인 ‘생명과 재물’에 대해 말해줍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이 말씀은 ‘생명’이 재물에 달려 있지 않듯,
‘생명’ 또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루카 12,21 참조),
곧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그가 바로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루카복음 12장 33절에 나오는
'하늘의 곳간에 재물을 쌓는 사람'(루카 12,33 참조) 입니다.
그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재물(재산)’임을 깨달은 사람일 것입니다.
곧 자신이 누구의 재물인지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묘하게도,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유당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어 ‘전부’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의 소유가 되면서 주님을 소유하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재물을 보기에 앞서, ‘나는 누구의 재물인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누구의 소유이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소유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소유가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온전히 소유가 되면, 우리 역시 그분을 온전히 소유하게 되고,
전부를 가진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한가위, 전부를 가진 꽉 찬 보름달로 피어오르는 날 되세요. 아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조욱현 토마 신부
1. 복음의 핵심
오늘 복음(루카 12,15-21)에서 예수님께서는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함을 강조하신다.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창고에 쌓으며 자기 생명을 안심시켰지만,
하느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 부르신다.
진정한 생명은 재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나눔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다.
2. 교부들의 가르침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
너에게 넘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De Nabuthe Jezraelita, 12)
재물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눔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성 바실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
“굶주린 이에게 주지 않은 빵은 그들의 것이다.
헐벗은 이에게 입히지 않은 옷은 그들의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지 않은 돈은 그들의 것이다.”(Homiliae in Lucam)
나눔 없는 재물은 사실상 도둑질과 다름없음을 강조한다.
3.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재물의 사용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것을 사용해야 하며,
우선 가족의 필요를 충족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쓰여야 한다.”(2404항)
사목 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
따라서 재물의 사용은 언제나 공동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69항)
4. 묵상
한가위는 풍요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나눔의 절기이다.
조상들께서 하느님께서 주신 햇곡식을 봉헌하며 감사드렸듯이,
우리도 기도와 미사를 통해 지난 1년의 은총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감사에 머무르지 않고, 나눔으로 감사의 열매를 맺을 때 참된 신앙이 완성된다.
어리석은 부자가 창고만 확장했듯이, 오늘 우리도 소비와 소유의 문화에 매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위의 의미는 “함께 나눔으로써 모두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5. 삶의 적용
조상과 선조들을 기억하는 기도 :
하느님 안에서 모든 세대가 하나임을 고백하며, 돌아가신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자.
감사 생활 :
하루의 끝에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한가위의 의미를 연중 생활로 이어가자.
나눔 실천 :
풍요의 상징인 추석에, 어려운 이웃에게 음식을 나누고 손길을 내미는 삶을 살자.
결론 :
오늘의 한가위는 단순히 추수의 풍요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풍요의 기쁨을 완성하는 날이다.
성 암브로시오의 말씀처럼,
우리의 창고가 아니라 가난한 이의 손안에서 참된 부유가 드러날 수 있도록,
이번 한가위에 우리도 삶을 새롭게 결단해야 하겠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더 쉽게 다가오는 말은 ‘추석’입니다.
멀리 타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추석이면 ‘선물’을 준비해서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심부름은 주로 제가 했습니다. 고모님 댁, 외할머니 댁에 선물을 가져다드렸습니다.
이렇게 서로 나누는 것을 ‘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제가 되면서 추석이면 가족들이 모여 함께 가정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어머니에게 가정 미사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조상들을 위해서 연도를 바치고, 준비한 음식을 나누면서 추석의 밤은 깊어 갔습니다.
이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멀리 타향에 있으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추석을 지낼 수는 없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연도를 바치려고 합니다.
추석 ‘둥근달’처럼 넉넉하고, 풍요로운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한가위나 설날에는 본당의 어르신에게 ‘덕담’을 청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형제님은 51살에 늦둥이 딸을 낳았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던 중 어린 딸이 골프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일을 멈추고 뉴질랜드로 갔습니다.
거기서 리디아 고를 가르치던 코치에게 딸의 골프 레슨을 부탁했습니다.
아버지는 9년 전에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베드로인 아버지는 딸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성당을 찾았습니다.
딸은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딸은 주니어 골프대회를 우승하면서 골프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딸을 도와주기가 힘들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중 지난 7월에 뇌경색이 있었고,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딸은 골프를 중단하고 아버지의 병실을 지키면서 간병하였습니다.
밤에는 아르바이트하였습니다.
숙소는 아르바이트하는 식당 주인의 배려로 식당 한쪽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인데 딸은 씩씩하게 아르바이트하면서 아버지를 간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비용이 문제였습니다.
일반석을 탈 수는 없고, 간호사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딸의 대모는 그런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Go fund me’를 개설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아서 개설했습니다.
구역에서 조금씩 도움을 주었습니다.
생활 성가대회에서 우승한 팀은 기꺼이 상금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의 곳간에 재물을 쌓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곳간에 재물을 쌓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정성이 모여서 목표액을 훌쩍 넘었습니다.
병상에 있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도 딸이 어리고, 약해 보였지만
이제 딸은 아버지를 간병할 수 있고, 스스로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젊은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리운 고향으로 갈 수 있었고, 딸은 이제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주님께서는 “가을비와 봄비를 내려 주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은혜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 말씀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경주의 ‘최부자집’입니다.
여섯 대에 걸쳐 부를 이어온 집안이었지만, 그 부의 비밀은 ‘나눔의 철학’에 있었습니다.
“재산은 1만 석 이상 모으지 말라. 욕심은 화를 부른다.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 누구든지 와서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가게 하라.
흉년이 들면 곳간을 열어 굶주린 이웃을 살려라.
며느리가 시집오면 3년간 무명옷을 입혀라. 그래야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이해한다.
재물은 분뇨와 같아 한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
최부자집은 단순히 부를 쌓은 집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따라 재물을 흩어 나누며 이웃을 살린 집이었습니다.
한가위의 달빛은 모두에게 차별 없이 비춥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업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행한 선행, 나눔, 희생,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밝게 비치는 둥근 달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한가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추석을 맞아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신 형제들은 본가 방문을 떠나고,
이제 집도 절도 없는 형제들만 남아서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훼손된 산책로도 복구하고, 쌓인 쓰레기도 정리하고,
물때가 좋아 해루질도 나가고, 하루가 바쁩니다.
가을이 오니 게들 싸이즈가 커지고 힘이 좋아,
장갑을 두벌 씩 꼈는데도 양손이 상처투성이입니다.
몸이 편찮으셔도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장거리를 마다하고 찾아뵙고 떠들썩하게 지냈는데,
이제 덩그러니 영정 사진만 바라보며 속절없이 빠른 세월만 한탄합니다.
그리고 자주 후회를 합니다.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 해드렸어야 했었는데, 좀 더 살갑게 대해 드려야 했었는데...
또 다시 가장 큰 명절인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고, 친교를 나누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일년에 몇 번 안되는 좋은 기회입니다.
서로 고생 많다고 위로해주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주고,
좋은 덕담을 주고받는 훈훈하고 따뜻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느낀 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계획과 하느님의 계획은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시계 바늘과 하느님의 시계바늘의 속도도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저 같은 경우 어린 시절 꿈이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 만나 알콩달콩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 전개된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꿈에도 생각지 못한 길로 몰고 가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대단한 것 바라지 않고 그저 평탄하고 소박한 인생길을 원했는데,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고통, 갖은 우여곡절의 인생길로 저를 이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회 닿을 때마다 강조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꿈을 꾸고 희망하고 계획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목숨을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목표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기도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은 항상 하느님 손에 맡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유한 대지주도 큰 풍년을 맞아 아주 좋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런데 주님께서 아주 좋은 계획을 세운 부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세상만사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난다 긴다 할지라도 그분께서 고개 한번 흔드시면 우리 인생 끝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겸손의 덕입니다. 하느님께 최우선권을 두는 삶입니다.
너무 멀리 내다보니 말고, 그저 오늘 하루 기뻐하고 감사하며,
충만한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입니다.
인생의 가을에서 나는?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늘 복음은 많은 소출을 거둔 부자에 관한 주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인상 깊은 것은 ‘독백’입니다.
비유에서 부자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그는 한 해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소출을 거두었지만
그러나 그의 주위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외로운 부자이고,
오늘 한가위 명절로 치면 명절에 자기 혼자입니다.
결혼했다면 이혼했거나 별거 상태이고,
자식이 있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지만 명약관화(明若觀火)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길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돈은 많이 있어도 사람은 없고,
욕심은 많이 있어도 사랑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도 없고,
행복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한가위 명절은 농사를 짓고 수확까지 한 사람이
풍성한 소출을 앞에 놓고 그 풍요와 기쁨 곧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인데
그는 곡식 농사는 잘 지었는데 사람 농사와 행복 농사는 잘 짓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 농사와 행복 농사에서 필수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 아닙니까?
그는 그것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사랑에 실패한 겁니다.
그러나 필수적인 것이 사랑뿐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필수적이고
인간 사랑뿐 아니라 하느님 사랑이 필수적입니다.
왜냐면 그래야 인간 사랑도 완전하고,
그래야 미래 행복도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한가위 곧 추석이 가을 명절이고
그래서 올 한 해의 가을걷이가 어떤지 돌아보는 날인데
우리는 올해 뭘 심었고 뭘 얼마큼 거뒀는지 돌아보는 것도 해야 하겠지만
인생의 가을에서 난 뭘 심었고 뭘 거두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지혜롭고 행복한 삶
“하늘에 보물을 쌓으십시오.”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소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옵소서.
어지신 그 얼굴을 우리에게 돌이키소서.”(시편67,1)
오늘 화답송 시편 첫구절이 참 좋습니다.
1월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기도 합니다.
오늘 10월6일은 한가위 추석입니다.
새벽 아름다운 다음 초대송 후렴에 이은 찬미가로 한가위 하루가 활짝 열렸습니다.
가톨릭교회를 명품종교로 만드는 아름다운 전례입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오곡백과를 지어내신
주님께 어서와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마음을 곱게곱게 가다듬어서 이 세상 열매들을 추수하면서,
천상의 주님잔치 참여하는 날, 고운옷 차려입게 보살피소서.”(찬미가3절)
미사 중 감사송 후반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주님 품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계신 조상들을 기리며 주님께 감사드리는 우리에게
평화의 주님은 한가위의 기쁨과 축복을 흠뻑 느끼게 하십니다.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
저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과 온갖 피조물과 함께 평화로이 조화를 이루며,
주님의 은총으로,
땀을 흘려 주님께 바칠 예물을 마련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는 사랑과 기쁨에 넘쳐,
모든 천사와 성인과 온세상 만물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끝없이 찬송하나이다.”
새삼 한가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계신
생명과 사랑, 축복의 살아계신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시에 한가위가 얼마나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 한민족의 뿌리와도 같은 최대의 명절이자 겨레의 날인지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서늘한 기후에,
풍성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술을 빚고 떡을 만들어,
토란국에 오색 과일로 제사상을 차려 먼저 조상에게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마친 다음에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노래와 춤과 갖가지 놀이로 낮과 밤을 마음껏 흥겹게 보내는 민족의 명절이다.
또한 한가위는 중추절이라 하여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에서도 이날을 큰 명절로 즐기고 있다.’ 하니
명실공히 한가위 중추절은 동아시아 나라들의 최대 명절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저절로 떠오르는 질문에 저절로 나오는 답입니다.
“지혜롭과 행복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을”을 살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답을 알려 드립니다.
첫째,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삶입니다.
우선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으면 결코 무지와 허무의 심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무지와 허무의 심연에 대한 답은 하느님 사랑의 찬미뿐입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 찬미의 아름다움, 찬미의 종교 가톨릭교회입니다.
한가위의 중심에 축복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계신 찬미의 하느님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하느님은 모든 일에 찬미받으소서”라는 임종어도 잊지 못합니다.
요엘 예언자가 영적 시온의 자손들인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 포도주와 햇 기름이 넘쳐흐른다.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참 아름답고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다운 찬양과 감사의 삶이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이 또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둘째, 죽음의 심판과 구원을 늘 눈 앞에 환히 두고 사는 삶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는 물론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가르침은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한 주님의 계시 말씀이 이런 자각을 깊이 해줍니다.
요한에게 하늘에서 울려오는 다음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
바로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사랑하고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죽음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주님께 대한 신망애, 향주삼덕의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성령님의 화답입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은 기쁨으로 곡식을 거둘 것입니다.
한 결 같이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한 신망애의 사람들!
사필귀정 무조건 해피엔딩의 치유와 구원입니다.
셋째, 늘 탐욕을 경계하는 삶입니다.
모든 불행과 비극, 재앙의 근원은 끝없는 탐욕입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를, 경계를 무너뜨리는 탐욕입니다.
탐욕에는 눈이 없습니다. 눈멀게 하는 무지의 탐욕이요, 반대로 무욕의 지혜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참 적절합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의 생명은 재산이 아닌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맑은 정신을 마비시키는 탐욕, 탐심, 탐식, 탐애, 탐닉
모두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고약한 것들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무욕의 지혜로운 삶, 역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넷째,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가 참 좋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완전히 하늘의 하느님과 이웃의 사람들에 차단된 창문이 없는
고립단절의 자기감옥에 갇힌 수인의 삶입니다.
탐욕의 무지에 완전히 포로 된 부자입니다.
땅에다 보물을 쌓는 일에 전념해온 업보입니다.
그래서 자기도취, 자기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바로 이게 지옥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독백에 대한 하느님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우리에게 주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느님과 이웃과 더불어 섬김과 나눔의 삶이 하늘에 창문을 내는 일이자,
하늘에 보물을 쌓는 구원의 길임을 까맣게 잊은, 탐욕에 눈먼 참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참 준엄합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부단히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이 하느님만으로 충만한,
텅빈 충만의 부요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줍니다.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