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2026년 6월 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작성자vero|작성시간26.06.19|조회수33 목록 댓글 1

2026619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1독서 : 2열왕 11,1-4.9-18.20

복 음 : 마태 6,19-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오늘의 묵상

 

박 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오늘 복음은 재물에 대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방향을 묻는 말씀입니다.

좀과 녹(마태 6,19)

당시 현실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이미지였지요.

은 값비싼 옷감을 갉아먹고,

그리스 말에서 먹어 치우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

곡식이나 금속이 썩고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당시에는 흙벽돌로 집을 지었는데

도둑이 쉽게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도 덧붙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표현에서

땅의 보화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쌓아 두는 행위 자체가

언젠가는 잃어버릴 운명을 지녔다는 것이 예수님의 판단입니다.

 

반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6,20)라는 표현은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성전을 재건한,

이른바 제2성전기 유다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상입니다(토빗 4,8-9 참조).

선행은 하느님께 드리는 보화이며,

마지막 때에

그 보화가 우리에게 드러날 것이라는 사상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미래의 시간을 향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 물으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보물은 다만 소유물을 뜻하기보다 삶의 중심, 곧 욕망의 방향을 뜻합니다.

마음은 자기가 쌓아 둔 것을 향하여 기울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어지는 눈의 비유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눈이 건강하면 온몸이 밝다는 말은 도덕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유다 전통에서 좋은 눈은 관대함을,

악한 눈은 인색함과 시기를 뜻하였습니다.

 

결국 빛과 어둠의 문제 또한 시선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재물을 향하여 고정된 눈은 어두워지고, 하느님을 향하여 열린 눈은 밝아집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우리 삶을 송두리째 맡길 수는 없지요.

사라질 것들을 너머 마지막까지 붙들 수 있는 가치에

우리 삶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조 명연 마태오 신부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아무래도 젊음과 힘이 있는 20대 청년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70대 노인의 행복도가 더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행복도는 20대부터 하락하다가 40대에 최저점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대가 되면서 행복도가 회복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 연구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20대는 연예인, 기업가, 정치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70대는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가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 20대의 젊을 때는 성취가 우선순위에 있었고,

나이가 든 70대는 관계가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는가가 중요합니다.

성취를 위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집중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위한 사랑의 삶 속에 행복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마태 6,21)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궁극적인 대상의 상태에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히

가난하게 살아라’, ‘저축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신 우리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 6,19.20)

 

땅의 소유를, 이웃을 향한 자선과 사랑,

무엇보다 하느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에 두고 있을 때,

사라질 세상의 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23)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어둠에 눈이 멀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이 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경건 생활,

자선기도단식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보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보물은 보석을 나타내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주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이사 33,6)를 상징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에 견주기도 합니다(탈출 19,5; 신명 7,6).

 

또한 보물은 획득하여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것으로, 찾은 이에게 발견됩니다.

그런데 발견하기만 하고 차지하지 못한 이가 있고,

아예 찾아 나서지도 않은 이도 있고, 찾았으나 악용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마태 6,19)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 6,20)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아둘 수도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둘 수도 있습니다.

 

땅에 쌓아둔 보물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해 쌓아올린 보물이지만,

좀 먹고 녹슬고 도둑맞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하느님 앞에서 쌓아올린 보물이고,

영원히 남는 의로움의 보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을 보면,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곧 값진 보물이라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여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지금 나의 눈이 나 자신을 향하여있는지,

하느님을 향하여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주님의 마음은 여기 우리 안에 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 마음이 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보물인지라 당신의 눈은 우리에게 와 있을 것입니다.

당신 목숨을 내어주고 얻은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의 눈은 나를 향하여있는데,

내 마음의 눈은 어디를 향하여있는지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와 있는 주님의 눈동자를 관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23)

 

그렇습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해질 것입니다.

곧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눈이면, 환하고 투명하게 볼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깨끗하면 하느님을 볼 것'(마태 5,8 참조)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맑아져야 할 일입니다.

여기에서 눈이 성하지 못하면”(πονηροσ)

직역하면 악하면으로, 악한 눈을 뜻합니다.

그러니 보물의 처신이나 사용이 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보물이라 할지라도,

악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자신을 어둠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조욱현 토마 신부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19)

이 말씀은 세상의 재물과 부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땅의 재물은 한시적이며, 손에서 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여기면,

마음은 재물에게 사로잡혀 어두워지고, 결국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다.

반면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20)라는 말씀은

영적이며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가르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참된 보물은 하늘에 있다.

마음이 하늘을 향할 때만 인간은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Enarrationes in Psalmos, 23,1 요약)

재물을 나누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

선행과 기도로 하느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길이다.

유다인 모노바스는 조상들로부터 받은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친척들이 비난하자, 자신은 하늘에 보물을 쌓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영원한 가치를 선택한 삶의 표징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눈은 몸의 등불이다.”(22)라고 하셨다.

여기서 눈은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영적 지각을 상징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선으로 빛나야 우리의 모든 행위가 빛을 얻는다.

마음이 어둡다면, 아무리 외적으로 착한 일을 해도

그 빛이 어둠에 가려진다.”(Homiliae in Matthaeum, 46,1 요약)

, 우리의 정신과 마음이 올바른 곳에 집중되어 있을 때,

삶 전체가 빛나고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23)라는 말씀은,

마음의 방향이 삶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음이 하늘을 향하고,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둘 때,

삶의 모든 선택이 선으로 조율된다.

분별력과 마음의 정결함을 지키는 것은

영적 건강과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길이다.

 

우리는 이제, 재물, 재능, 시간 등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세상의 유혹보다 하늘의 가치를 선택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신과 마음을 밝히고, 영적 빛을 통해

삶 전체를 선으로 이끌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단순히 재물을 나누라.”는 윤리적 지침이 아니라,

마음의 지향과 영적 빛이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는

신학적·영적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

땅의 보물은 한시적이지만, 하늘의 보물은 영원하다.

, 즉 마음이 밝으면 모든 삶이 선으로 비추어지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오늘도 마음을 하늘에 두고,

재물과 마음의 주인을 하느님께 두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제게는 탁상용 일정표가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부터 매년 일정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집무실에도 있고, 사제관에도 있고, 핸드폰에도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형제님 한 분의 도움으로 구글 드라이브 일정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핸드폰이 자동으로 연결되니

어디서든지 일정을 확인할 수 있고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참 편리한 시대입니다.

그래도 저는 아직 탁상용 일정표가 정겹습니다.

손으로 직접 적어 내려가는 그 느낌 속에 지나온 시간과

만났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사에 있을 때의 일정표를 보면

대부분 신문 홍보와 신문사 행사 일정이었습니다.

브루클린 한인 성당 미사 일정도 많았습니다.

성지순례 일정도 있었고,

동북부 ME 지도신부로 봉사하면서 봉사자들과의 일정도 많았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는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모임과 캠프 일정이 참 많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일정들 속에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도 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조용히 저 자신을 돌아보는 기도와 피정의 일정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온 지도 어느덧 2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금의 일정표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미사입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3달 정도의 미사표를 정리해서 주면, 제 일정표에 먼저 기록합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와 같은 전례 일정도 있습니다.

사순 특강과 대림 특강, 성모의 밤과 같은 본당 행사도 있습니다.

중남부 꾸르실료 지도신부 일정도 있고,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회 대표 신부로서의 일정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미 잡혀 있던 모든 계획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는 일정도 있습니다. 병자성사와 장례미사입니다.

어떤 일정은 저를 지치게도 하지만,

어떤 일정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저를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교구 사제들과의 만남과 피정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도와준 일정도 많았지만,

사실은 제가 더 큰 위로와 힘을 받은 시간이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단순하지만 우리의 삶을 깊이 흔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일정표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학생은 공부 일정표를 만들고, 회사원은 업무 일정표를 만들고,

부모는 자녀를 위한 일정표를 만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일정의 숫자가 아닙니다.

그 일정 안에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가 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 재물, 명예, 권력을 얻기 위한 일정표를 만듭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더 많은 돈, 더 높은 자리를 위해 살아갑니다.

물론 그런 노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면 우리의 일정표는 땅에만 기록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도 기록되는 일정표를 만들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 시간, 아픈 사람을 찾아간 시간,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 용서하기 위해 참아낸 시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낮춘 시간이 바로 하늘에 기록되는 일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그런 삶을 알려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삶입니다.

욕심과 욕망의 불을 끄는 삶입니다.

자비를 베풀고, 평화를 위해 일하며,

옳은 일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삶입니다.

 

세상은 그런 삶을 손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가장 귀한 보물이 됩니다.

우주는 너무 넓어서 빛조차 수만 년을 달려야 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속도와 선행의 속도는 빛보다 빠릅니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희생과 진심 어린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행한 작은 선행 하나도

하늘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일 일정표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바쁜 삶을 살았는가가 아닙니다.

하늘에도 기록될 수 있는 삶을 살았는가입니다.

오늘 하루의 일정 속에 기도의 시간이 있었는지,

누군가를 위한 사랑의 시간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행운은 성공, 재물, 명예, 권력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희생, 나눔, 헌신,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송 영진 모세 신부

 

1)

여기서 자신을 위하여자신만을 위하여이기도 하고,

 

현세만을 위하여이기도 합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다.”,

지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만 추구하는 삶을 뜻합니다.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세속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 같은 것들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위하여자신만을 위하여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기적인 인생을 살지 마라.”라는 가르침입니다.

 

현세만을 위하여로 생각하면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만 찾다가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인생을 살지 마라.”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신앙생활과 사랑 실천을 잘하라는 뜻입니다.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신앙생활과 사랑 실천으로 얻는 열매인 구원은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허무한 것들은 버리고 영원한 것만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관심 없이

세속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 등만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현세에서 부자로 사는 이들에게는 오만해지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또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지시하십시오.

좋은 일을 하고 선행으로 부유해지고,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시오.

그들은 이렇게 자기 미래를 위하여

훌륭한 기초가 되는 보물을 쌓아,

참생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1티모 6,17-19)

 

예수님의 말씀은 저축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저축을 하고 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세에서의 일일 뿐입니다.

 

내세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한다면,

영원히 하느님 나라에 남아 있게 되는 저축을 해야 합니다.

충실한 신앙생활과 사랑 실천이 바로 진정한 저축이고,

진짜 보험 가입입니다.

 

2)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라는 말씀은,

지금 네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냐?

잘 반성해 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코헬렛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이런 시절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 하고

네가 말할 때가 오기 전에.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오르막을 두려워하게 되고, 길에서도 무서움이 앞선다.

편도나무는 꽃이 한창이고, 메뚜기는 살이 오르며,

참 양각 초는 싹을 터뜨리는데,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코헬 12,1-2.5-7)

 

3)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서 실천하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과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멸망을 향해서 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라는 말씀은,

주님의 은총이 아닌 것을 은총이라고 착각하면

더욱 짙은 어둠 속으로 빠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루카복음을 보면,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루카 16,14)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세에서 누리는 부유함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복이라고 생각했고,

가난함은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오해와 착각에 빠져 있으면,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놓아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왜 그렇게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칭찬이 독이 되는 사람들

 

전삼용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이 눈을 통해 새어 나온다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신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깊겠느냐?"(마태 6,23)

 

그런데 빛이 어둠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빛이 어떻게 어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마음의 빛이란 내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곧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닮아 간다.

그래서 무엇을 빛으로 삼아 바라보느냐가 그 사람의 전부를 결정한다.

하늘을 빛으로 삼으면 그 사람 안이 환해지고,

세상 것을 빛으로 삼으면 빛이라 여기던 그것이 도리어 어둠이 된다.

빛이 어둠이라는 것은, 내가 빛인 줄 알고 좇는 그것이

실은 나를 삼키는 탐욕이라는 뜻이다.

옛 영성가들은 이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 불렀고,

풀어 말하면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이다.

 

이 어둠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어느 반려견 훈련 프로그램에 순하기로 소문난 레트리버 한 마리가 나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겁을 먹고 드러누워 배를 보일 만큼 소심한 개였다.

그런데 그 착한 개가 유독 가족만은 물었다.

물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에 올라 재롱을 떨었다.

가족은 이 개가 본래 착한데 어떤 상처 때문에 그런다고 믿으며,

개가 화내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했다.

심지어 개가 좋아하는 화분은 개가 없을 때만 몰래 닦았다.

보다 못한 훈련사가 말했다. 그것은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데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어" 하며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고.

 

이 개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랑도 받고 싶고 지배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어서 가족을 두렵게 만들어 지배하고,

다시 애교로 사랑을 받아 냈다.

화분을 제 것으로 여겨 손대지 못하게 으르렁대다가,

자기 뜻대로 따라 주면 다시 예뻐했다.

이만큼만 받들어 주면 착한 개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가족은 개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개를 섬기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련사가 이런 개에게는 순종하기 전까지

결코 잘해 주지 말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어설픈 애정이 도리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개에게 "앉아"를 시키면 한참을 버틴다.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는 사람 앞에 앉아 칭찬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칭찬이란 자기보다 높은 이에게 들어야 기분 좋은 법이니까.

 

성경은 이 어둠을 일찍부터 고발한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봉헌물로 바치라 명하신 전리품 가운데,

그는 값진 외투 한 벌과 은과 금덩이를 보고 탐이 나 몰래 자기 천막 땅속에 묻어 두었다.

"탐이 나서 가졌습니다"(여호 7,21 참조)라는 그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 작은 어둠 하나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아이 성 앞에서 무너졌다.

빛인 줄 알고 끌어안은 금덩이가, 실은 그를 삼킨 어둠이었던 것이다.

게하지도 그러하다. 스승 엘리사가 한사코 거절한 나아만의 선물을,

게하지는 몰래 뒤쫓아 가 받아 챙겼다.

그러자 나아만에게서 떠난 나병이 게하지에게 옮겨붙었다(2열왕 5장 참조).

소유욕이라는 어둠은 결국 제 몸에 병을 새긴다.

 

삼구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절대 칭찬하면 안 된다.

예수님도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라고 하셨다.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끝내 빛으로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거룩한 진주가 들어가도 짓밟힐 뿐이다.

그런 이를 어설피 잘해 주어 성당으로 끌어들이면, 그는 하느님까지 가스라이팅 한다.

자기가 잘나서 받는 줄 알지, 결코 순종하지 않는다.

세례를 받아도 합당하지 않게 성체를 모시는 자리에 머물고 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까지 당신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던 유다에게도

당신 살과 피를 떼어 주시고 그 발을 씻어 주셨다.

그 유다는 끝내 스승을 발로 짓밟았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러셨는가. 그가 원하였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에게 주지 않을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내어 주셨기에, 이제 그의 멸망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우리가 본받을 자리도 여기다.

어둠을 빛이라 우기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와 잘해 줄 필요는 없으되,

그가 진정 원할 때는 끝까지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가.

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를 두고 평하는 말을 엿듣게 했다.

한 사람은 줄곧 헐뜯기만 했고, 한 사람은 줄곧 칭찬만 했다.

또 한 사람은 헐뜯다가 끝에 가서 칭찬으로 맺었고,

마지막 사람은 칭찬하다가 끝에 가서 헐뜯음으로 맺었다.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 상대는 누구였겠는가.

줄곧 칭찬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엔 헐뜯다가 마지막에 칭찬해 준 사람이었다.

가장 미운 사람은 누구였는가.

줄곧 헐뜯은 사람이 아니라, 좋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헐뜯은 사람이었다.

 

까닭은 이렇다. 마지막 말은 그 사람을 향한 기대를 담는다.

시종 좋은 말만 하거나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부족함을 짚은 뒤에 건네는 칭찬은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 준다.

다만 여기에도 분별이 필요하다.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을 살찌우는 칭찬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칭찬은 상대를 나를 부리는 가스라이터로 키울 뿐이다.

우리가 칭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그 사람이 참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그 모습이다.

 

여기 합당한 칭찬의 본보기가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이다.

까다롭고 오만한 강박증 환자가 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다

칭찬을 한 가지 해 보라는 청을 받는다.

그가 머뭇거리다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의사 말도 듣지 않던 자기가 약을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인이 그게 무슨 칭찬이냐 되묻자 그가 답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여인은 그것이 생애 최고의 칭찬이라 한다.

돈과 교만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탐욕에서 끌어내 주었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연 것이다.

누군가를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 그보다 큰 칭찬은 없다.

 

그러니 공부를 잘한다, 돈을 잘 번다, 얼굴이 곱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조심하여라.

그런 말은 나를 길들이려는 계략이거나,

나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에 더 깊이 빠뜨려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속삭임일 때가 많다.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참된 칭찬은,

어둠을 빛이라 여기던 사람이 참 빛을 향하도록 돌이켜 세우는 칭찬이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빛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빛나고,

그 빛이 눈을 통해 흘러나와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게 될 것이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이승화 시몬 신부

 

신 혹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합니다.

작은 부분까지 다루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이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럴듯하게 할 뿐 디테일을 놓친다면

이정도면 되겠지 라는 악마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작은 부분까지도 신경을 쓴다는 건

그만큼 진심을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작하고 진행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사용자의 시선으로 넘어가고

영향을 받는 이들의 시선으로까지 넘어갑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나의 작은 행동이 주변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됩니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은

우리가 어디까지 바라볼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진심을 담는지 알려줍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두 눈을 밝히며 

그 안에 진심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은 하느님께 있고

하느님 안에 머물 때 빛이 더욱 남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를 통해 그 빛이 주변을 밝히 빛내는

그런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출처: https://frsimon.tistory.com/1878 [시몬 신부의 신앙이야기:티스토리]

 

 

 

 

 

 

 

신앙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자신이 지닌 신앙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과 평가, 성찰과 계획은 필수입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측면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해나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 전 초심자 시절 지니고 있었던, 조금은 철없는 초보 신앙,

자기중심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이 아직도 그대로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직도 신앙을 내 마음의 위안과 평화, 만사형통의 도구로 생각하고,

크신 하느님을 그저 끝도 없는 내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가짜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마냥 졸라대기만 한다면

아직 초보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성모님의 신앙 여정이 정말이지 탁월하고 위대하며 돋보입니다.

그분의 신앙 여정은 우리 신앙 여정의 진정한 모델이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자렛의 소녀 시절, 마리아의 신앙은 작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크신 하느님의 초대 앞에 의혹과 의구심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도와 묵상, 끝도 없는 시련과 고통에 대한 성찰은

그녀의 신앙을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기쁨과 축복, 성공과 승리도 선물로 주시지만,

때로 우리를 더 큰 그릇으로 성장시키려고

혹독한 실패와 고통 슬픔과 좌절도 맛보게 하십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좀 더 당신 마음에 드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펄펄 끓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으십니다.

그런 노력조차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깊은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여정 안에 벌어지는 만사를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시련과 역경도 주님 섭리의 손길 안에 바라보는 것,

성숙한 신앙생활, 주님 마음에 드는 기도 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더 이상 저 자신의 성공이나 건강,

승장구나 만사형통, 축복을 청하는 기도는 드리지 않습니다.

그간 주님께서 베푸신 것 생각하면 흘러넘치도록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청하기보다 무엇을 주님께 드릴까 고민합니다.

내게 다가오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 역경과 시련, 병고와 죽음까지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로 생각하고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6.06.19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