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견성성불'이라는 말에 대하여 공부하기 입니다.
'견성(見性)'이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이미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으니 그것을 알아차리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견성을 특별한 도인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거창하고 신비한 경지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의 본바탕을 바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미혹을 벗어나 눈을 뜬 사람을 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 하여,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먹구름에 가려진 태양처럼, 본래의 빛이 분별과 집착이라는 먼지에 가려져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글 한 자 모르던 나무꾼 혜능(육조혜능스님)이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례를 통해, 배움의 양이나 지위가 견성의 자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견성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리고 있던 것을 한 생각 비워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깨달음을 가로막는 벽이 있습니다.
분별, '안다는 생각(알음알이)', 그리고 '나라는 집착'이 깨달음을 가로막는 벽입니다.
이 벽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됩니다.
해결 방법은 평상심을 갖는 것입니다. 평상심이 곧 도(길)입니다.
특별한 신비 체험을 쫓는 대신, 일상 속에서 지금 일어나는 마음을 가만히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견성(깨달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며, 묵은 습관을 걷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고, 외로움이나 미움과 같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깨달음을 먼 미래의 일로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안으로 돌려 자신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는 첫걸음을 떼길 권합니다.
견성(見性)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몇 가지 핵심적인 오해와 마음의 벽 때문입니다.
첫째로 견성을 신비하거나 거창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견성을 남의 속을 꿰뚫어 보거나 병을 고치는 등의 '초능력' 혹은 '신통력'으로 오해하고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견성은 신비한 제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바뀌는 일입니다.
둘째로 '많이 알아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식이나 경전 공부를 많이 해야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알음알이'라고 하는데, 무언가를 머리로 이해하고 다 안다고 믿는 그 마음이 오히려 가장 단단한 빗장이 되어 본래의 마음을 가로막습니다.
셋째로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나'를 지키고 인정받으려는 긴장과 집착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울타리를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내가 옳아야 하고 손해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시야를 좁혀, 정작 내 안에 이미 존재하는 부처의 성품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넷째로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알아보지 못합니다.
진리는 우리 일상의 평범한 순간(평상심) 속에 깃들어 있는데, 우리는 대단하고 특별한 깨달음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놓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견성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그 자리에 도달할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분별심과 집착이라는 '가림' 때문입니다. 그 가림을 가림인 줄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견성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