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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이]몰로키니 스노클링

작성자gloria70|작성시간20.03.12|조회수186 목록 댓글 0


고래

여행은 눈을 통과하기보다 몸을 통과해야 제맛이다. 눈이 보배라지만 달리는 말 위해서 훑어보는 산은 두 발로 꼭대기에 오르는 산과는 천양지차다. 멜라닌 색소가 과다하게 분비되는 저주받은 피부를 지닌 까닭으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지만 여행만은 포기할 수 없으니 양 손에 떡을 쥐고 쩔쩔매는 모양새다. 모자를 눌러 쓰고 선크림을 꼼꼼히 바르고 마스크까지 써도 갑자기 훅 돋아나는 기미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만삭의 몸으로 대학원 논문을 마무리하겠다고 용을 쓰다가 기미는 화인처럼 남았다. 힘들게 졸업을 했지만 마땅히 취업할 곳도 없어서 학원 강사로 전전하다가 뒤늦게 임용이 되었다.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던 인생에서 비로소 한 곳에 머물러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니 그때부터 방학마다 여행을 해야 하는 병이 들고 말았다.
하와이 6일 차에 접어들자 돋아난 기미가 점점 진하게 번졌다. 스노클링을 원하는 아들의 바람대로 새벽부터 배에 올랐다. 마우이에는 초승달 모양의 몰로키니 섬이 있다. 바람을 막아줘 스노클링을 하기에는 천혜의 장소다. 평화로운 모습으로 햇살을 쬐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니 그마저도 포기하고 무방비로 햇빛을 마주해야 했다. 바다에서는 고래가 분수 같은 물기둥을 뿜어 올리고 꼬리와 등을 요리조리 보인다. 선원이 마이크를 물속에 넣으며 고래 소리를 들려준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초보자가 현을 잘못 켜는 소리 같기도 한 고래 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걸까? 본래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가 더 편했던 메소니치드는 숨 쉬는 방법만 남기고 바다생물이 되었다. 발에 갈퀴가 생겼으며 뒷다리는 도태되고 꼬리는 강력해졌다. 몇 킬로미터 밖에서 내는 소리도 다 듣는다. 있는 힘껏 솟구쳐 힘을 과시한 뒤 짝짓기에 성공하면 새끼를 위해 평소보다 많은 먹이를 먹는다. 사람처럼 머리부터 나오지 않고 꼬리부터 새끼는 어미에게서 나온다. 첫 숨을 바다 밖에서 쉬게 해주고 그때부터 생존에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준다. 육지 동물이었다가 바다로 간 고래에게서 오래전 본 ‘그랑부르’영화가 생각났다. 어떤 이는 중력을 거부해 하늘을 날기 바라고 어떤 이는 두 발, 두 다리가 싫어 바다로 들어가 지느러미로 헤엄치길 바란다. 장대를 들고 고층빌딩 사이를 걷기도 하고 에베레스트산, 남극, 사막 등 오지를 탐험하기도 하는 극한의 모색. 누가 시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며 보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김수영의 시처럼 돼지 같은 정육점 주인이 비계 많은 고기를 줬다고 욕을 하는 소시민이 되어 당장 주머니에 있는 돈을 헤아리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로서는 고래 같은 삶을 사는 이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비닐 한 장도 아껴가며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살아남으려 하는 먼지 낀 나의 비루한 삶이 새삼 돌아봐지기 때문이다, 바다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지만 그 길로 끝내 돌아올 수 없다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저 가끔 이렇게 아련히 바라보는 것으로 족하고 나의 현실을 알뜰살뜰 살피며 사는 수밖에. 그것이 육지서 숨 쉬고 두 다리로 걸으며 두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호모 파베르의 운명이다.
기미 하나 짙어진다고 애면글면하는 소인배는 고래의 첨벙거리는 소리에 환호를 지르는 것으로 족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눈보다는 발을 움직이기 좋아하는 피를 이어받아 혼자 있으면 어느새 바다와 산을 동경하는 스스로를 외면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늘 중간자다. 이쪽도 저쪽도 속하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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