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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보은(猫の恩返し, 2002) | Ani 전문가평론

작성자toromami★|작성시간04.10.11|조회수264 목록 댓글 0

 

 

환상의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야릇한 제목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다르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배신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고양이에 대한 유쾌한 덕담을 소녀 감성의 화술로 전해 준다. 고양이 왕국에 초대받은 하루의 이야기, 판타스틱 명랑 소녀의 1일 여행.


1999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구상할 즈음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수뇌들은 심각하게 지브리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미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브리의 창립 멤버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상의한 끝에 처음부터 데뷔 감독(모리타 히로유키)에게 오리지널을 만들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95년작인 <귀를 기울이면>의 원작자 히이라기 아오이에게 <귀를 기울이면>과 자매격인 작품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히이라기는 이 원작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되리라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채 2년간 구상을 거쳐 2001년 여름 원작을 완성했다. 그해 가을 제작에 들어간 <고양이의 보은>에는 <귀를 기울이면>에 등장하는 고양이 남작 '바론', 뚱뚱한 흰 고양이 '무타', 만물상인 '지구옥'이 또다시 등장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히이라기에게 마음껏 원작을 쓰되 이 세 가지 요소만은 후속작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보은>은 2002년 7월 20일 <고양이의 보은>이 일본 전역에서 개봉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흥행에는 성공했다. 흥행이 성공한 것은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공헌 때문일까, 지브리라는 브랜드의 힘 탓일까? 그 답은 <고양이의 보은>이 8월 초 국내 개봉을 앞둔 지금 확인할 수 있다. 포장을 풀러보니 기대 이상의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다.

판타스틱 명랑 소녀 모험기

여고생 하루는 이날 일진이 사나웠다.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을 하는 바람에 동급생들의 웃음거리가 됐고, 짝사랑하는 남학생의 연애 소식도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과 후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하루는 친구 히로미와 집에 가던 길에 트럭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양이가 갑자기 먼지를 툭툭 털고 두 발로 일어나서 "바빠서 이만.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다"며 가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말까지 하다니! 그날 저녁에는 아예 고양이 왕이 시종들을 데리고 나타나 낮에 하루가 구해준 고양이가 고양이 왕국의 왕자 '룬'이라며 감사를 표한다. 감사의 표시라는 게 기막히다.

하루의 집을 온통 강아지풀에 뒤덮이게 만들고 하루의 학교 신발장에 쥐가 담긴 선물용 상자들을 담아놓는다. 고양이들의 황당한 은혜 갚기는 갈수록 도를 지나친다. 고양이 왕의 사자가 찾아와 왕이 하루를 왕자의 신부로 삼고 싶어한다며 그날 밤 왕국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한다. 꼼짝없이 고양이 왕국에 끌려갈 위기에 처한 하루. 과연 고양이 남작 바론과 그의 친구인 뚱보 고양이 무타, 까마귀 토토는 하루를 도와줄 수 있을까?

그런데 별 볼 일 없는 인간 세상보다 고양이 왕국에서 사는 게 나쁠 것도 없지 않을까? 반강제로 납치되어 고양이 왕국에 가게 된 하루는 무엇을 얻어서 돌아올 것인가? 고양이 왕국에서 하루를 보내면 영원히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는데, 하루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고양이의 보은>은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 이후 오랜만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를 제외한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지브리의 노장들에 의해 발탁된 신인 감독은 모리타 히로유키. 애니메이터로서 <마녀 배달부 키키> <메모리즈> <퍼펙트 블루>에 참여했고, 지브리의 미술관 오픈 기념 상영작 <코로의 산책>에서 원화를 맡았던 인물이다.

하루와 함께 <고양이의 보은>에서 눈길을 끄는 캐릭터들은 역시 수많은 고양이들이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고양이 남작 바론. '훈베르트 폰 짓킹겐 남작'이라는 긴 본명을 지닌 바론은 요즘 보기 드문 카리스마와 '뽀다구'를 겸비한 캐릭터다. 이름에 걸맞게 차려입은 의상도 고전적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인형이지만 사실상 불가사의한 일들을 해결하는 고양이 사무소의 주인인 바론은 지적인 교양인이며 모험가다.

매너 좋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무슨 일이든 잔뜩 폼을 잡고 멋지게 해내는 이 쾌남아 고양이는 심지어 검술 솜씨도 프로페셔널이다. 하루는 고양이 왕국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바론에게 매료당한다. 모리타 감독은 바론을 활약시킨 이유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어른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 세계와 고양이의 공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바론을 통해 하루는 아무렇지도 않은 심심한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그렇다고 하루의 현실이 송두리째 바뀌는 것은 아니다. 늦잠 자는 습관을 고치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개혁은 이루어진다.

현실보다 재미있는 판타지를 위하여

이쯤에서 모두 궁금할 것이다. 바론과 하루의 로맨스도 있냐고? 소녀 만화가의 원작이다 보니 달콤한 러브 스토리를 예상하겠지만 <고양이의 보은>에는 판타지와 어드벤처의 요소가 아주 강하다. 고양이 왕국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물론, 인간 세상과 고양이 왕국을 잇는 차원의 문, 인간의 오랜 염원이 깃들어 생명을 얻게 된 고양이 인형 바론과 까마귀 동상 토토, 그리고 그들이 기거하는 동화의 세계 고양이 사무소 같은 배경은 시대와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리는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래 동화나 상상 속에서나 그려보던 '말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개그 감각으로 묘사된다.

네 발 달린 고양이가 두 발로 돌아다닐 때의 우스꽝스러움은 기대 이상이다. 고양이 왕의 발작적인 행동이나 왕의 행차 주변에 몰려드는 일반 고양이들을 물리치는 왕의 경호원 고양이들의 몸짓도 마찬가지. 상대방의 상황이 아무리 급박해도 능청스럽게 제 할 일만 하는 고양이식 유머는 '고양이들이 말을 한다'는 설정과 결합해 독특한 유머를 선사한다. 하루를 고양이 사무소로 안내해주는 뚱뚱한 흰 고양이 '무타'는 그 몸집 때문에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부타(일본어로 돼지)'라고 불린다. 곧잘 거친 언변으로 주변 사람과 동물들에게 시비를 걸지만 사실상 의리 빼면 시체다.

방자하고 욕심 많은 독재자 고양이 왕, 아버지와 달리 예의 바르고 의젓한 고양이 왕자 룬, 하루를 도와주는 단아한 몸매의 흰 고양이 '유키' 등등 주변 캐릭터들도 충분히 각자의 개성을 지닌 '물건'들이다. 영화 후반 고양이 왕국에서 탈출하기 위해 왕국의 가장 높은 탑에 올라간 하루와 바론, 무타는 탑이 무너지자 곤경에 처한다. 이때 혜성 같이 등장한 고양이 왕자 '룬'이 놀랄 만한 반전을 가져온다. <고양이의 보은>이 보여주는 유머의 절정이다.

<고양이의 보은>의 화면은 '판타지 어드벤처'라는 장르를 강조하기 위해 화려한 원색 대신 파스텔 톤으로 채워져 있다. 산뜻하고 명랑한 모험담에 걸맞게 밝고 따스한 색감들이다. 언뜻 보기에는 과거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지독할 만큼 세밀한 배경들에 비해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유가 엉성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미술이나 배경이 완벽하게 짜여져 있지 않아서 더 포근한 매력을 발산한다. 하루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 고양이 왕국이나 인간 세상과 고양이 왕국의 중간에 위치한 고양이 사무소 모두 일관된 색조를 유지하고 있다. 히이라기 아오이의 원작에 의식적으로 밝은 세계를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배경은 스탭들이 직접 찍어온 거리 사진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장소들을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즉 '어디에도 없는 거리, 문득 가보고 싶어지는 거리'가 <고양이의 보은>에 등장하는 배경 거리들의 컨셉이다. 하루와 무타, 바론이 고양이 왕국에서 인간 세계로 떨어질 때의 비행 장면, 까마귀떼가 하늘에서 몸을 이어 만든 공중 계단을 하루가 밟고 내려오는 장면도 모리타 히로유키의 감각적인 연출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변화하는 지브리

<고양이의 보은>은 여러모로 지브리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무엇보다 과거의 지브리 애니메이션들이 크레딧을 보지 않고도 ‘지브리표’라고 한눈에 알 수 있었던 캐릭터 디자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전혀 다른 캐릭터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지브리의 작품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나 다카하다 이사오가 연출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놓은 캐릭터 디자인을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었던 반면 <고양이의 보은>의 여고생 하루는 다르다.

다른 애니메이션에도 유유히 끼어들어갈 수 있을 만큼 길고 가는 순정만화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다.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는 지난해 여름 <고양이의 보은>의 개봉을 앞두고 "<고양이의 보은> 같은 캐릭터 스타일의 변화는 앞으로도 종종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는 세대 교체를 위해 지브리가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그림체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서 변화는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당연한 조건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루의 내면은 전통적인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여성상과 유사성을 지닌 '평범한 소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지브리의 후계자로 불리웠으나 타계한 콘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은 다분히 순정 만화적인 감성을 보여주면서도 현실의 이야기를 다뤘던 애니메이션이었다. 기획과 콘티를 미야자키가 맡아 물밑에서 미야자키의 색깔을 내도록 작업을 지휘한 결과였다. <귀를 기울이면>은 독서광인 명랑한 소녀 스키시마 시즈크와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고 싶은 소년 아마사와 세이지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다. 반면 <고양이의 보은>은 판타지 어드벤처 스토리라는 기둥 줄거리에 순정 만화의 감성을 입힌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은 지브리 내부에서 원작을 상당 부분 수정했지만 <고양이의 보은>은 원작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면서 순정 만화적인 감성도 가능한 한 배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고양이의 보은>의 이야기는 사실 단순하다. 심오하게 해석될 스토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와 그림이 서로를 받쳐주는 균형 감각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이 단순한 이야기는 '작은 만남'에 관한 것이다. 감독은 하루와 바론, 무타, 고양이 왕국의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 관계의 허와 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러닝타임 내내 생각해보아도 고양이들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보은'이라는 단어 속에는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진리도 담겨 있다. <고양이의 보은>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화려함을 갖추는 것보다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함을 입증하는 성공적인 사례다.

바론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라"는 건설적인 메시지에 이견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스르르 사라진다. 무엇보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지만 신선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의 보은>은 세대 교체를 보는 팬들의 우려에 대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앙증맞은 응답이다

 

 

--------필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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