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6. 6. 14(주일) -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 (2026년 24주)
제목; “직분자(장로,집사,권사)의 자격”
성경; 딤전 3:1-13 (p.338) (시 119:105-6, 459<514>, 305<405>, 621)
<예배의 부름> (시 119:105-6)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국보훈의 달 6월 둘째 주일을 맞이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난 주일 네 번째 장로 피택을 위한 1차 공동의회를 열었고, 오늘 2차 공동의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제가 하존교회에서교회를 이끌어가고 목회하는 것이 담임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분들의 도움 속에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회를 도울 귀한 장로, 안수집사, 권사님 등 항존 직분자들을 피택해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노회 교육 일정 때문에 장로님들을 먼저 피택하고, 안수집사, 권사님들은 내년에 피택할 예정인데,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하고 맞는 일꾼을 피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경에는 주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결코 혼자 일하시지 않으셨고, 많은 사람들을 세워서 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도 함께 있고, 에덴 동산에서 경작하고 지키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택하신 이유도 함께 사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역시 담임목사를 돕고 성도들을 섬기며 교회를 세우는데 합력할 귀한 일꾼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 집사, 권사의 자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런 일꾼을 세우길 원합니다. 또 내가 비록 장로나 집사, 권사가 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며 은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
1. 장로의 자격(1-7)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서신인 디모데전서 3장에 “감독”의 직분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 “감독”이라는 헬라어 ‘에피스코페스’(έπισκοπης)는 ‘위를’(에피, έπί), ‘돌봄’(스코포스, σκοπός)이란 뜻으로, 교우들을 ‘돌보아 주는 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높은 교권적 위치가 아니라, 섬기는 자의 직책입니다.
이 “감독”이라는 말은 치리자의 행사를 생각하여 부르는 명칭으로, 장로직과 감독직은 같은 것입니다(딛 1:5-9). 그런데 사도 시대 이후에 이르러 장로 중에 특별히 가르치는 재능 있는 장로를 ‘감독’이라 하고, 점차 감독직을 장로에게서 구분하여 장로직보다 높이 생각하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교회가 조직화되면서 감독직과 장로직이 분리되는 동시에 감독직이 점점 중요시되어 ‘감독’은 목회를 위해 부름 받은 직책이요, ‘장로’는 교회를 위해 선택받은 명예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총회 헌법에도 제22조 “항존직” 조항에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1. 설교와 치리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2.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치리만 하는 장로직이나, 설교와 치리를 겸하는 목사직이나 둘 다 앞서 설명한 감독이라는 헬라어 원어대로, ‘교우들을 섬기고 돌봐주는 직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장로 피택을 앞두고, 감독, 즉 장로의 자격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디모데전서 3:1-7에서는 장로의 자격으로 15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6가지는 소극적인 성격의 것이며, 9가지는 적극적인 성격의 것입니다.
1) 책망할 것이 없는 자(2) : 이 첫 덕목은 15가지 덕목 전체를 총괄하는 덕목으로, ‘비난받을 만한 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 내와 성도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책망, 즉 비난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비난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사회의 일반 상식, 또는 덕성에 있어서 비난받는 것은 안되며, 그런 사람을 감독의 자리에 앉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너도 예수 믿냐?” 하면 곤란하다. ☞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한다.
2)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2) : 이것은 집사의 자격에도 나와 있는 것으로(12),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다처주의를 금한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 중에도 이런 풍속이 있었고 또한 초대 교회에도 이같은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내를 둔 자의 불륜한 행동을 금한 것으로, 이런 타락한 성행위는 당시 헬라 문화적 배경의 사회에서 그리 심각한 악덕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초대 교회 교인들 간에도 자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내가 죽은 후 재혼을 금한 것이라는 견해로, 감독이 재취해서 또 다른 자녀를 낳을 경우 복잡한 가정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그럴 경우 감독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교인들의 본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의 설 중 세 번째 설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바울이 재혼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고전 7:8-9, 39-40), 두 번째 설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다. 좌우튼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가정을 평화롭게 이끄는 자가 감독의 자격이 있습니다.
3) 절제하며(2) : ‘네팔리오스’(νηφάλιος)는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와 목회서신에서만 나타나며(딛 1:8, 2:2) 원래 음주의 절제를 가리키며,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적인 모든 욕망을 제어하는 절제하는 생활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4) 신중하며(2) : 앞선 절제와 유사한 의미로써, 모든 일에 조심하며 깊이 생각하는 심적 자세를 가리킵니다. 크래다누스(Creadanus)란 신학자는 “이것은 과도한 상상이나 무식이나 어리석음을 떠나 사색에 있어서 순전하고 단정함을 의미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5) 단정(아담, 개역한글)하며(2) : 앞서 설명한 “신중”이 내적 자세인데 비해, “단정(아담)”은 외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즉 의복을 입는 것이나 행동이 단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실상 사람의 행위와 외모는 바로 그 사람의 속마음의 표현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절제하고 근신하는 사람의 행동 역시 아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 표리부동(表裏不同)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다섯 가지는 자신의 내부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이제부터는 타인에 대한 외적인 문제입니다.
6) 나그네를 대접하며(2) : 이것은 고대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미덕으로 간주되었고, 초대 교회에서도 당연시되었던 미덕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요삼 1:5)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 4:9)
사실 초대 교회 당시는 오늘날에 비해 교통 시설이나 숙박 시설이 너무나 낙후되었기에 여행자들이 많은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으로 인해 의지할 곳 없이 유리하는 신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그들에 대한 대우 문제는 초대 교회의 당면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7) 가르치기를 잘하며(2) : 이것은 초기에는 감독과 장로에게 공통되는 것이었으나(딤후 5:17, 딛 1:9), 1세기 말경에는 오직 감독의 직책, 요즘으로 말하면 목사에게만 해당 되는 덕목이었습니다(디다케 13:15).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가르치기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한 능변을 가리키지 않고, 자신의 믿는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불신자들에게 전도하고 신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능통한 것을 말합니다. 사실 교회 지도자는 자신의 양 떼를 말씀으로 양육할 능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일을 위해 적극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 제자훈련, 사역훈련 : 목사보다 더 잘 가르치는 평신도 많이 나와야 한다.
8)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3) : 이것은 ‘술에 중독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실 술 자체가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술은 인간을 방종하게 하고 육신의 오락을 탐하는 향락주의에 빠뜨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정도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의 지나친 자유를 허용하며 어떤 때는 인간을 ‘개’처럼 행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장로는 교회의 지도자로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술을 마시고 이성을 잃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 23:31)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2)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9) 구타하지 아니하며(플레크텐 πληκτην, 3) : 이 단어는 여기와 디도서 1:7에만 나타나는 단어로, 음주가 끌어오는 부작용의 하나입니다. 또 음주하지 않고서도 천성적으로 포악하여 사람을 구타하는 수도 있는데, 특별히 가정에서 부부끼리 구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 사람을 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모든 일은 양식에 어긋나는 일이요, 더욱이 감독 같은 지도자 역할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앞서 4번째 설명한 ‘신중’에 포함된 문제입니다.
10) 관용하며(3) : 문자적으로 ‘합리적이고, 포괄적이고, 부드러운’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손해나 아픔도 감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납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눅 6:27).
※ 곽선희 목사님 말씀 “조금 멍청하다는 소리 듣는 사람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다”
11) 다투지 아니하며(3) : 여기에서 말하는 ‘다툼’이란 진리를 위한 다툼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 문제에 얽힌 다툼을 금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용의 정신과 통하는 말로써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일을 삼가고 타인의 의견도 수렴할 수 있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12)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3) : 이것은 정당하게 돈을 얻어 쓰는 것을 반대한 것은 아니고, 물욕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쓰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더러운 이를 탐하는 정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만족을 느껴(시 23:1) 하나님보다 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아니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3)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4)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5)
동양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 당시 로마 사회는 자녀 교육을 노예들에게 일임한 상태로 그 풍기와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의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이 복음을 따라 단정하고 순종하도록 하여야 일반 교인들을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칫 교회 일 한답시고 가정과 가족을 다스리는 일을 멀리할 수도 있는데,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교회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14) 새로 입교한 자는 안됨(6) :
이유 :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6)
“새로 입교한 자”(네오퓌톤, νεόφυτον)은 문자적으로 ‘새로 심은 나무’란 뜻으로, 이는 최근에 개심하여 세례 받고 교회에 등록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을 세우지 말라는 이유는 너무 급격히 교회의 중책을 맡게 되면 교만해지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15)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7) :
이유 :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7)
여기서 “외인”은 교회 밖의 ‘불신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감독 자격의 마지막 조건으로 감독은 교인들뿐만 아니라, 불신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도인데, 교회 밖에만 나가면 전혀 아니올시다 하는 교인들이 많이 있음을 볼 때 이런 조건은 지극히 당연한 조건이 됩니다. 사실 ‘교회 다닌다’는 말을 하기가 정말 무섭고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라’고 했는데, 교회의 성도들이 그들의 행동 때문에 전도의 문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며, 그런 인물이 장로가 되어서도 더더욱 안될 것입니다. 만약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자가 된다면 그것은 교회의 비방 거리가 되고,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에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감독, 즉 장로의 자격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를 잘 조절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며, 교회 안팎에서 칭찬 받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지도자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을 장로로 세우라(1)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집사, 권사의 자격(8-13)
오늘 우리의 본문에 나오는 “집사”의 헬라어 원어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는 원래 ‘종’, ‘시중드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식당에서 손님이 음식을 맛있게 잘 먹도록 도와주는 ‘waiter, waitress'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후에 집사 제도가 초대 교회 안에 정착되면서 ‘섬기는 자’, ‘봉사하는 자’라는 뜻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집사’를 의미하는 영어 ‘deacon/ness’가 바로 이 디아코노스에서 나왔습니다.
* 손님 교인(말 많은 사람) vs 주인 교인(말 없는 교인)
집사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사도행전 6:1-7에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의하면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6)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을 도와서 재정을 맡아 구제하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집사직은 초대 교회에서 율법과 예식책과 성전 기명을 보관하고, 구제비와 그 밖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집사, 즉 안수집사와 권사의 자격에 관해서 살펴봅시다.
1) 정중(정숙, <개역>단정)한 자(8,11) : 이것은 ‘신중한 행동’ 곧 자기 통제에 엄격하고 규모 있게 행함을 말하는 것으로, ‘점잖음’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결코 잘난 체 하거나, 가식적으로 점잖은 모양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2)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않는(딜로구스, διλόγους) 자(8) : 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보이는 낱말로,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집사와 권사는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다니며 사역하는 자이므로 말을 낭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근신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집사와 권사는 되는 대로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말한 바를 실천에 옮길 줄 아는 실실한 사람이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술에 인박히지 아니한 자(8) :
‘인박히다’(프로세콘타스)는 ‘사로잡히다, 탐닉하다’는 동사 프로세코의 현재분사능동태형으로, 계속 술에 취해 있는 것입니다. 감독, 장로에게도 경계된 조항으로(3) 집사, 권사들 역시 구제를 위해 각 가정을 다녀야 하는데 만일 그들이 술을 즐긴다면 자신이 맡은 일을 올바로 수행할 수 없을 뿐더러 당연히 술로 인해서 말이 많아지고 험담과 쓸데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음주자와 사귀지 말라고 하였고(잠 23:20, 고전 5:11), 대접하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합 2:15). 보지도 말라고 하였으나(잠 23:31), 약으로 쓰는 것은 허락하였습니다(딤전 5:23). + 더하여 담배 금지
* 강구 교회 : 술,담배 끊지 못했다고 안수집사 받지 않겠다고 하던 피택 안수집사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잠 23:20)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이웃에게 술을 마시우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로 취케 하고 그 하체를 드러 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합 2:15)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잠 23:31)
4)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는 자(8) :
“더러운 이”는 ‘부끄러운 이’를 뜻하는데, 이것은 공금을 도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장로의 자격인 “돈을 사랑함”(3)의 소극적인 면으로, 직접 재정을 맡은 집사이므로 더욱 물질에 결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성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아간’의 범죄와 문둥병이 들어 죽은 ‘게하시’의 경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아간 : ①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② 은 이백 세겔, ③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수 7:21)
※ 게하시 : 나아만으로부터 ①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 ② 옷 두 벌(왕하 5:23)
5)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9) :
“청결한 양심과 선한 양심”(1:5)의 결합입니다. 이는 중생한 자의 양심으로,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려 하고 그렇게 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회개하는 양심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은 집사와 권사의 자격으로 “깨끗한 양심”에 더하여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비밀”(뮈스테리온)은 오랫동안 감취어 있다가 마침내 공개되거나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에 “믿음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신학자들은 “깨끗한 양심이란 그릇에, 믿음의 비밀이라는 보석 담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6) 한 아내의 남편된 자(12a) : 이것은 장로의 자격에도 나와 있는 것으로(4),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①첫째, 다처주의를 금한 것으로, 당시 유대인들 중에도 이런 풍속이 있었고 또한 초대 교회에도 이같은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아내를 둔 자의 불륜한 행동을 금한 것으로, 이런 타락한 성행위는 당시 헬라 문화적 배경의 사회에서 그리 심각한 악덕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초대 교회 교인들 간에도 자행되었기 때문입니다. ③셋째, 아내가 죽은 후 재혼을 금한 것이다 라는 견해로, 감독이 재취해서 또 다른 자녀를 낳을 경우 복잡한 가정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그럴 경우 감독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교인들의 본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의 설 중 세 번째 설이 가장 지지를 많이 받고 있으나, 바울이 재혼에 대해서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고전 7:8-9, 39-40), 두 번째 설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다. 좌우튼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가정을 평화롭게 이끄는 자가 감독의 자격이 있습니다.
7)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12b) :
이것은 장로의 자격에도 나오는 것으로(4), 그 이유를 5절에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양에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해야 한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 자기 집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 당시 로마 사회는 자녀 교육을 노예들에게 일임한 상태로 그 풍기와 정신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먼저 자신의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이 복음을 따라 단정하고 순종하도록 하여야 일반 교인들을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칫 교회 일 한답시고 가정과 가족을 다스리는 일을 멀리할 수도 있는데,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가 교회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7가지 자격 조건에다 특별히 여자들을 지칭하여 4가지를 첨가하고 있습니다.
8) 정숙(정중, <개역>단정)한 자(11) :
이미 첫 번째 조건에서 남녀 공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신중함, 점잖음
9) 모함(<개역>참소)하지 않는 자(11) :
이것은 남자의 일구이언(8)과 연결되는 것으로, ‘모함하다’(디아볼로스, διαβόλος)는 ‘사탄’, ‘비방자’라는 뜻도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는 하는 것은 마귀적인 행동으로 온 교회를 어지럽히고 만다는 것입니다(계 12:10). 욥기서에 보면 마귀는 하나님에게 가서는 성도를, 성도에게 와서는 하나님을 참소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10)
10) 절제하는 자(11) : 이것은 남자의 “술에 인박히지 아니함”(8)과 통합니다. ‘네팔리오스’(νηφάλιος)는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와 목회서신에서만 나타나며(딛 1:8, 2:2) 원래 음주의 절제를 가리키며,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적인 모든 욕망을 제어하는 절제하는 생활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진지한 삶의 자세를 가리킵니다.
11) 모든 일에 충성된 자(11) :
“충성”(피스토스)이란 ‘신실’(피스티스)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모든 일에 거짓이 없으며,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끝까지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고전 4:2).
* 이러한 자격을 갖춘 직분자(장로,집사,권사)를 선택하는 방법
1) 먼저 시험해 보고(10) : “시험하여 보고”(도키마조)란 말은 금을 제련하여 순금을 만드는데 쓰던 말입니다. 즉 사물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두고 전체 교회가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책망할 것이 없으면 선택하라(10).
도덕적, 윤리적으로 성경에 결합이 없는 자를 선택하라는 의미입니다.
III.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37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여러 번 장로, 집사, 권사 등 항존 직분자를 피택하고 세우는 현장을 보아왔고 집례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진행 과정이 그 교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 바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수준 높은 교회는 이런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큰 일을 조용히 신사적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교회는 일꾼을 세우면서, 그리고 세우고 나서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항존 직분자를 세우면서 저와 우리 하존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각오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매월 한 번씩 “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 등 교회 5대 사명 중 하나씩 목회 주제를 전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지난해 “봉사”란 목회 주제 말씀을 나누면서, ‘섬기다, 봉사(헌신)하다(디아코니아)’는 말은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긴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봉사(헌신)”란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성도가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즉 과거의 ‘나’ 중심에서 이제는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전환하여 사는 삶,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새사람으로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중심이라기보다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가장 큰 봉사와 섬김이 예배드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예배 잘 드리고 있습니까? 이웃을 향한 봉사와 섬김이 사랑이요 만남이요 모임에 잘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 하존교회 항존직분자 피택 자격 :
1. 필수 조항 :
①주일 출석(주정헌금자를 출석으로), ②십일조 헌금(증빙 서류 제출),
③수요․심야기도회 50%이상 출석, ④새벽 기도회 <장로>2일이상(1/3), <안수집사,권사>1일이상(1/6) 출석
2. 선택 조항 : ①각종 헌금(감사,선교,건축 등), ②전도 3명 이상, ③가족 신앙(전원 출석 유무), ④기관 봉사(교사,찬양대,전도대 등),
⑤선교회(전도회) 참여, ⑥제직회 출석, ⑦각종 수련회(제직, 항존직 등) 출석, ⑧특별새벽기도회 출석
3. 원칙 : ‘필수 조항’은 반드시 하고, ‘선택 조항’은 당회 결의로 항목 수 조정할 수 있음.
좋은 교회는 예배 잘 드리는 교회요, 목장 모임이나 여전도회, 남선교회 등 모임이나 만남에 적극적으로 잘 참여하는 교회인데, 우리 하존교회는 예배 잘 드리고 잘 모입니까?
잘 되는 교회, 성숙한 교회는 교회에서 세운 목회 계획에 따라 잘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담임목사님의 권위가 서 있는 교회요, 어떤 목회 계획과 목표가 세워지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일시분란하게 다 같이 노력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의 권위가 제대로 세워져 있고 우리가 논의하고 결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까?
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왕후 대접을 받으려면 내 남편을 왕처럼 대하라’고... 저는 주일이나 어떤 때든 차량 운행할 사람이 없으면 제가 차량 운행에 나섭니다. 그리고 이전에 토요일 교회 청소할 때, 누가 오든 오지 않든 오후 2시가 되면 사모님과 함께 교회 청소를 합니다. 물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이 모든 일을 합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우리 목사님은 언제든 운전해 주는 차랑 기사라고 생각한다면 저는 목사가 아니라 그저 운전 기사일 뿐입니다. 또 내가 가지 않더라고 목사님과 사모님이 항상 청소해 주실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저와 사모는 그저 사찰 집사일 뿐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저는 밥벌이(?)를 위하여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갈 곳이 없어서 여기 머무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개척을 하고 나서도 담임목사로 오라는 곳도 있었고, 심지어는 저의 멘토가 되는 스승님께서 대학교 교목실장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이곳까지 오셔서 제가 목회하는 것을 보고 가셨습니다. 제가 내일 당장 어떻게 될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전 교회에서 함께 고통을 당했고 광야로 내몰려서 이곳까지 함께 달려온 여러분들이 있기에 저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어떤 강권적인 부르심이 없다면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과 제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한 사람이 나와도 예배나 기도회를 정상적으로 다 드립니다. 1부예배든, 새벽기도회, 심야기도회든 우리 하존 교인들이 한 사람도 안나와도 항상 찬송을 시작하고 예배드립니다. 우리 하존 가족들도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시고 주일 예배, 새벽기도회, 심야기도회 등 모든 공적 예배와 기도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전도든, 교회 청소든, 주방 봉사든 항상 내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의 목자들이 여러분에게 문자나 카톡을 보내면 씹지 말고(?) 답도 잘 해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모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항존 직분자들을 피택하면서 이런 말을 꼭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는 결코 명예직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걸레가 되는 자리요, 먼저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에게는 ‘말꾼이 아니라 일꾼이 필요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존교회의 걸레가 되어 하존교회의 더럽고 추한 구석구석을 닦아 낼 수 있는 사람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되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의 선봉에서 목숨을 건 사람을 선택합시다. 저도 그런 분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선택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피택되어 충성된 집사, 권사에게는 다음과 같은 보상이 주어집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이 어떤 사람일까요? 앞서 성경과 헌법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이야기했는데, 정리해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기를 잘 조절하고 절제하며, 가정을 잘 다스리고, 이웃을 잘 섬기며, 교회 안팎에서 칭찬 받는,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9-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섬기고 봉사하는 인생을 살아갈 때 진정한 삶의 보람을 찾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만의 이기적인 삶이란 결국 무의미와 허무감만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이 세상에 섬기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45). 2018년 내가 장로나 집사, 권사가 되든 되지 않든 내게 주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므로 잘했다 칭찬 받고, 가장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인생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