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6년 5월 정기산행의 후기를 일기의 형식으로 남깁니다.
일시 : 26년 5월 23일(토) ~ 25(월)
장소 :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 [ 1,708m (대청봉) ]
출발
나는 토요일 새벽 6시, 언양에서 회장님 차를 타고 2진으로 출발했다. 아빠들의 로망인 '카니발' 회장님의 차에서는 아직 새차냄새가 났다. 선배님들이 교대해가며 운전해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이동하였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설악으로의 출발이다. 지난밤 설레는 마음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차에서 잠이 올 줄 알았는데, 긴장한 탓인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작년에 두번이나 설악 등반에 실패했던터라 약간의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번에 업무 일정이 변경되면서, 출발 하루 전에 이발도 하고 행동식도 준비 할 수있었다.
동해를 지나 북양양(설악산) 톨게이트를 지날 무렵, 차 앞유리에는 비가 비치고 있었다.
설악산 주차장에 도착하자, 빗방울은 더 굵어졌다. 밖에 사람들의 우산 쓴 모습들이 보인다.
'아, 오늘 등반을 못하겠구나. ' 하고 생각하는 사이, 선배님들은 서로의 의견을 빠르게 나누고는 어택배낭을 꾸렸다. 빗발이 날리는 와중에 서둘러 장비들과 로프 한동을 챙겨넣고 신흥사 입구 처마 밑으로 모였다.
비가 곧 그칠거라고 하신다. 일단은 바위 밑으로 가서 판단한다고 하신다. (우왕~)
나는 긴장했던 탓인지, 배가 아파서 빠르게 화장실에 다녀와서 바로 바위로 출발하였다.
걸어가면서도 초반에는 빗방울이 날렸다.
어프로치 구간, 인파들 사이에 많은 클라이머들이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는 반대로 위로 오르고 있었다. 적벽을 향해 걸었다.
처음보는 여러 풍경을 뒤로 하며 한참을 걸어가 어떤 다리에 다다르니, 도용선배가 다리 중앙으로 이끄신다.
"대현아, 뒤에 봐라, 저기 등반자들 보이지.
저기가 적벽이다."
뒤돌아보니 바로 위에 커다란 붉은 바위가 보인다.
와, 이럴수가, 분위기와 바위의 형태, 크기에 압도당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비는 거의 그치고 있었다.
다리 시작즈음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적벽이 코앞에 보였다.
자유2836
나는 적벽에서 이도용 선배, 김현 선배와 3인 1조로 적벽 '자유2836' 루트를 등반하기로 계획되었다.
여느 등반지와는 다르게 벽 바로 앞에 배낭을 내릴 수는 없었고, 등반 출발 지점의 건너편 좁은 공간에 배낭을 내리고 장비를 착용했다. 김현 선배가 먼저 장비 착용을 완료하고, 아직 젖어있는 슬랩을 건너가 로프를 풀고 확보준비를 하신다.
도용 선배와 나는 배낭을 모아서 데포하고 혹시 또 비가 올수도 있으니 덮개로 덮어두고 돌로 눌러놓았다.
슬랩을 건너 등반지에 서니 적벽의 거대함과 각도가 또 다르게 다가왔다.
이도용선배의 선등으로 우리 조의 등반이 시작되었다.
천천히 바위를 탐색하시며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무브로 1피치를 등반하시고, 자기확보 후에 머리위로 팔을 들어 동그라미를 보이신다.
설악에서는 너무 멀어서 크게 말해도 잘 전해지지 않기에, 손짓으로 보여준다 하셨다.
2번으로 김현 선배의 등반이 시작되었다. 김현선배의 무브와 홀더의 위치들을 유심히 보고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잠시 후 드디어 나의 출발, 처음 만나는 적벽에 손을 올리며 설악에서의 첫 등반이 시작되었다.
바위의 까끌거림이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날카롭고 아픈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각도의 느낌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바짝 서있고, 직벽같았던 벽은 오버행으로 다가왔다.
여러 등반기에서 1피치는 어렵지 않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에겐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이미 개념도의 그레이드 표시는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듯하였다.
2피치 부터는 본격적인 오버행의 시작으로 크럭스 부분에서 여지없이 털려버렸다.
크럭스 지점에 김현선배가 나를 위해 슬링을 달아주었는데, 안 잡고 한번 가보려고 오기를 부리다가 추락하였다.
전완근에는 벌써 펌핑이 와버렸다.
텐션을 받은 상태로 팔을 풀어주고 몇번 다시 붙어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대망의 3피치, 스타트 부분의 닥터링을 찾아서 이용하라는 이도용 선배의 말씀을 새기며 닥터링에 손가락을 꼽아넣고 당겨보았지만 다음 발도 보이지 않고, 겨우 일어섰지만 잡을 곳도 잘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실제감있게 다가오는 고도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은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등반하는 왼쪽으로는 오래된 장비들이 크랙에 꼽혀있었다. 녹슬어버린 장비의 모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다가, 이내 숨을 몰아쉬는 지금 현재로 되돌아왔다.
이어지는 스테밍 구간에서, 밑에서는 잘만 보이던 움푹한 발자리들이, 앞에 서니 잘 가늠이 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3피치 후반,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구간에서 텐션을 받고 쉬었다가 올라서서 등반을 완료하였다.
쌍볼트로 올라서는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루트였다.
앞서 올라갔던 팀을 기다리며 시간이 꽤 지체되어, 3피치까지만 하고 하강하였다.
하강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바람은 없었지만 오버행이라 디딜발이 없는 상태에서 뱅글뱅글 돌아버리니 멈추기가 힘들었다.
두번으로 나누어 하강을 완료하고, 설악에서의 첫 등반을 마무리 하였다. 처음 만나본 적벽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얀집
우리의 숙소는 하얀집이다. 설악산 초입에 소방서 지나서 바로 있었다.
각자 배정된 방에서 짐을 풀고, 도용선배와 경호선배는 다음날 사용할 장비를 미리 챙기셨다.
강평을 위해 식당으로 모였다. 강평에 이어서 '한백의 밤'으로 첫날 설악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마치 수학여행 온 것 처럼 즐거운 시간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때 영미선배의 말씀,
" 내일 아침은 추어탕이고, 밥은 밥솥에 있으니 각자 먹고 설거지 합니다. "
" 기상은 3시반 이고, 4시반에 출발입니다. "
정신이 번쩍든다! 그래, 어서 내일 등반을 준비하자.
주방을 일부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가 어택배낭을 재정비하고, 물을 준비하고 행동식을 챙긴 후 빠르게 잠자리에 들었다.
울산바위
둘째날 우리 조의 등반지는 '울산바위의 문리대길'이었다.
같은 루트를 등반할 김경호 선배, 유정옥 선배와 함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소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은 적벽과 장군봉, 오른쪽은 울산바위 방향이었다.
아직 새벽이라 등산객은 거의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밝아졌고 헤드렌턴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어프로치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 걸린듯하다. 걸을때 무릎이 아파올까봐 걱정을 했었는데,
길이 바르게 나있어서 큰 무리는 없었다.
계단을 한참 오르다가 울산바위 표지판에서 오른쪽으로 울타리를 넘어서 들어갔다.
명환 선배를 보고 따라 넘어갔는데, 뒤에서 도용선배가 나를 보고는 "쟤가 저 길을 우째아노?" 하며 놀라신다.
그 사이 명환 선배는 숨는다고 돌에 걸터 누워계신다. ^^
한동안 더 들어가니 울산암 앞에 설 수 있었다.
문리대길 앞에 서자, 비너스길을 등반하는 어영미선배의 모습이 보인다. 먼저 출발하시어 등반을 시작하셨다.
응원의 함성을 보내고, 우리 팀도 출발 준비를 한다.
문리대길은 울산암의 인기루트이기에 로프를 출발지점에 풀어놓으라고 하신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어택배낭에는 마실물, 행동식, 바람막이, 어프로치화를 챙겼다. 주배낭을 데포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출발지점으로 모였다.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았다.
문리대길
문리대길은 2인1조로 (도용 선배 - 대현), (경호선배 - 정옥선배) 2개의 조가 오르게 되었다.
이도용선배의 선등으로 울산바위에서의 등반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바위를 탐색하시면서 부드럽고 조용하게 등반하신다.
어느새 1피치를 등반하시고, 나의 확보를 봐주신다.
"출발!!" 울산암에서의 첫 등반을 시작하였다.
담을 오르듯 당겨딛고 오르며 언더홀더를 잡아 첫 퀵 지점에 도달하였는데, 그 위 둔덕을 오르다가 미끌어지며 바로 추락했다.
출발 지점에서 아주 조금 나아가서 떨어진거라 순간 아찔했다. 무엇보다 손이 매우 아팠다.
이 바위는 어제의 적벽과는 또 다른 느낌의 바위였다. 풍화작용으로 드러난 입자들이 더 굵었고 날카로웠다.
추락 후에 손을 베인듯 한 아리는 느낌에 놀라서 손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전혀 안 베여서 놀라웠다.^^;
다시 붙어서 등반을 시작하자, 바로 나타나는 커다란 크랙은 대략난감이었다.
도용선배의 무브를 유심히 보아도 벽에 붙으니, 잘 되지 않았다. 크랙의 형태는 둥그렇고 손으로 잡을 대는 없으며 각도는 서있었다.
나는 등반도 초보이지만, 재밍은 더 잼병이다. (작년 금정산 부채바위에서의 힘들었던 시간이 스쳐지나간다.)
발재밍을 하여 등반하는데, 깊이 비틀어 넣어 밟으니 발이 너무 아프고, 어설프게 밟으니 발이 터져버린다.
아주 조금씩 디뎌 오르자, 도용선배가 쎄게 당겨주신다.
1피치의 끝에 닿을때 까지 용을 얼마나 썼던지, 쌍볼트에 도달하자마자 " 감사합니다" 가 튀어나왔다.
도용선배가 그런 말은 등반 중에는 하지 마라고 하신다. 멘탈을 다잡고 집중하라는 의미로 생각했다.
2피치도 크랙의 연속이었다. 이번엔 손재밍도 했다.
문리대길 2조 선등자인 경호선배가 만나는 지점에서마다 재밍 테크닉과 몸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정말, 용을 써가며 발재밍, 손재밍 해가니 어떤 순간 위로 나아감이 느껴졌다. 아주 조금 익숙해졌나 싶었지만,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다. 집중 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반침니 구간은 새롭고 재미있지만 힘들었다. 오른발은 크랙에 꼽고 왼발은 밀면서 엉덩이는 벽에 밀었다.
내가 이대로 얼마나 올라갈 수 있을까, 미끄러짐에 대한 두려움과 상당한 고도감에 대한 공포도 느껴졌다.
3피치의 시작점, 바위 위로 올라와 슬랩으로 오르는 구간이 있었는데, 오른손으로 당기면서 발을 딛는 느낌이 참 좋았다. 3피치 확보지점에서 행동식과 물을 섭취하고 간단하게 재정비를 했다.
이제야 주변이 좀 보인다.
물감처럼 파랗게 맑은 하늘과 높고 거대한 바위는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토록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문득,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 떠올랐다. 나는 거벽 위에 작은 점 하나였다.
바람도 불지 않아 고요하기까지 한 거벽의 모습에 경외감이 들었고, 마음은 자연스레 겸손해졌다.
4피치 구간에서는 도용선배가 다른방향으로 올라갔다가 클라이밍 다운했던 구간이 있었다. 그냥 캠을 설치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후등자가 너무 힘들 수도 있다며 힘들게 다시 내려오셨다. 확보를 보면서 가장 떨렸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쌍크랙에서의 등반이 기억에 남는다. 왼쪽으로는 손을 넣어 재밍을 해가며, 오른쪽으로는 레이백으로 오르듯 당겨 밀었던것 같다.
다양한 무브를 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었다.
(그 뒤로는 개념도를 보아도 몇피치 였는지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인상깊은 무브를 중심으로 적어봅니다.)
길게 이어지는 크랙을 레이백으로 오른 구간이 있었다. 확보를 보면서 아래에서 본 도용선배의 레이백은 그림같았다.
눈에 담아서 따라해봤지만, 당연히 잘 되지 않았다. 힘을 엄청 쓰고 나중에는 레이백이 아닌 어거지로 올라간것 같다. 위로 올라서니 도용선배님, "손맛 좋제? 손맛 좋제?" 하신다.
ㅎㅎㅎ "예."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지쳐서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였다.
턱걸이 하듯 매달려서 횡으로 이동했던 무서운 트래버스 구간들과 몇개의 피치를 더 지나서 문리대길의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문리대길 정상 테라스를 지나서 넘어가니 울산암 정상에 비너스길 팀(어영미-노선자, 오태환-심용재)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땡볕에서 우리를 1시간 넘게 기다려주셨다. 또 정상에서 만나니 선배님들 모두 참 반갑고 좋았다.
울산암 정상에서는 동해바다와 속초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고, 설악산 일원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장관을 보고 있다는 것에 감동이 일어났다. 내가 울산바위를 등반했다는 것을 실감하게되는 순간이었다.
행동식을 꺼내어 나눠먹고 기념촬영을 하고는 바로 하강 준비를 했다. 등반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울산바위는 높은 만큼 하강에도 깊은 생각과 노하우가 필요한 듯 하다.
로프가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절묘하게 끊어서 3번으로 나누어서 하강하였다. 선배님들의 하강시 논의와 작업들은 아직은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공부가 필요하다.
안전하게 모두 하강 후 등반을 종료하였다. 장비를 해제하고 배낭을 다시 꾸려서 하산하였다.
우리는 마치 등반하지 않은 것 처럼 깔끔하고 정갈하게 내려왔다.
뒤돌아보니, 오후의 태양은 아직도 강렬하게 울산바위를 비추고 있었다.
마음속에 무언가 뿌듯함을 넘어서는 기쁨이 느껴졌다. 다리는 무거웠지만, 입가엔 조용히 미소가 번진다.
등반 후기 마무리
이번 정기산행은 설악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선배님들이 설악을 향해 품으신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힘든 순간마다 격려해주시고, 실수를 빠르게 캐치하고 교육해주신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첫 설악산 등반을 행복한 기억들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의 아낌없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하얀집에서 먹었던 영미 선배님의 정성 가득한 추어탕과 제육볶음, 그리고 해장은 인도~카레는 지금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최고였습니다. 그 밥심이 없었다면, 등반도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등반 일정내내, 우리 17기 동기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이번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괜찮습니다. 선배님들 늘 하시는 말씀,
‘바위는 어데 안간다. 걱정마라, 항상 그자리에 있다!'
가을의 설악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어영미 작성시간 26.06.08 열정이 뿜뿜~~
후기 잘 읽고갑니다 -
작성자황선호 작성시간 26.06.08 후기 잘 읽었습니다~
생생한 기억이 마치 내가 등반한것 같아 설렙니다😁 -
작성자정명환 작성시간 26.06.08 멋찐 후기 잘읽었습니다
멀티등반능력은 다양하고 많은 경험입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순간 장군봉 정상에 서 있을겁니다.. -
작성자아빠와아들(김기옥) 작성시간 26.06.09 후기 읽다보니 몆년전 문리대길 생각납니다 1피치 지나고 급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닥쳐 개고생했든 기억은 평생 갈것 같습니다 ㅎㅎ
수고 많았습니다~^^ -
작성자유정옥 작성시간 26.06.09 아~~~
참 좋다.
대현씨 ㅋ
마냥 아득하다고 느껴진 것들인데
새록새록 추억으로
엮어 주신 글에
"설악" 더 좋아요
고마워요~수고하셨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