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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보는 사람 (마태복음 5:8)

작성자만민은총|작성시간16.08.21|조회수78 목록 댓글 0

하나님을 보는 사람 (마태복음 5:8)

 

사람이 청결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얼굴도 깨끗하고 옷도 깨끗하고 신발도 깨끗하면 청결해 보입니다. 친한 목사님과 사모님이 우리집에 왔는데, 깨끗해 보이는 목사님이었죠.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방귀를 ... 우리 집사람한테 혼났습니다. 더럽게 방귀를 뀐다고...흐흐 우리 집사람 앞에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청결하다는 것은 외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깨끗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더러워져 있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워진 창으로 밖을 보면 밖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깨끗한 창으로 내다보면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잘못되면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듣고 깨달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이 복되다 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그 마음이 청결하게 됩니까?

 

첫째, 예수님의 피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합니다. (요일 1:7)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깨끗해 질 수 있을까요? 요일서 1:7".....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더럽게 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그 죄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교만 때문입니다. 죄로 더러워진 영혼이 어떻게 정결하게 되는가? 성경에서는 그 속죄의식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느니라’(9:22)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소나 양의 피를 우슬초에 묻혀 뿌렸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51:7)했습니다. 오늘 말씀 7절에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에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영혼이 더러워집니다. 사람의 더러워진 마음은 예수님의 피가 깨끗하게 합니다. 9:14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죽은 행실,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피로 청결하게,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이 기도할 때 마음이 순수해져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32:30)

사람이 절박할 때 기도를 하고 기도할 때 그 마음이 순수해 집니다. 그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하여 고향을 떠났다가 2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빈손으로 집을 나갔지만 큰 부자가 되어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출세했을 때 누가 봐 줄 사람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합니다.

고향의 형에게 기별을 했더니 400명이 마중을 나가겠다고 기별이 왔습니다. 겁이 덜컥 났죠. 그냥 형만 나오면 될 것이지 이 400명의 마중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과 가족을 죽이려고 한다 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야곱은 가족들을 모두 강을 건너게 한 후 자신만 얍복 강가에 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과 씨름, 레슬링을 했습니다. 밤새 겨루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밝아오자 그가 이제 씨름을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를 않았습니다.

 

그러자 낯선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를 가격했습니다. 말하자면 반칙을 한거죠. 그래도 야곱은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때 낯선 그분이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했고 나는 야곱입니다. 이제는 너의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해라. 그러고는 그 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분이 사라졌을 때, 야곱은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자기와 씨름하던 그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내가 하나님을 만났구나 하면서 그곳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 했습니다. (32:30)

 

그리고 그 날 낮에 20년 만에 형 에서를 만납니다. 그 형 에서는 20년 만에 만나는 동생을 죽일 생각이었죠. 그러나 야곱은, 밤새 하나님께 기도한 야곱은 형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33:10)

 

야곱이 자신의 문제로 절박하게 기도했을 때, 그 마음이 순수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20년 간 원수로 지내던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나고 기도할 때, 그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그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14:8-9)

요한복음 14:8-9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중 빌립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십시오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전도사로 부임한 곳이 안암교회였습니다. 신학교 2학년때였죠. 안암교회는 언덕위에 있었는데 제가 막 그 언덕길로 들어서는데 어떤 여학생이 내려오다가 저를 보고 흠칫 했습니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 나중에 토요집회에서 그 학생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고등부 학생회장 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 말이 언덕에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자기 앞에 예수님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제가 예수님? 아닙니다. 감리교회의 유명한 이용도 목사님이라는 분은 어떤 여자 성도님을 보고 하나님이라고 경배를 했습니다. 결국 이단으로 단죄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도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시므온과 안나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모두 영적으로 깨어있던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의 얼굴에서, 자매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자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도 있고 악마의 얼굴을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 그이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죄악으로 유혹하면 그의 얼굴에서 악마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분신입니다. 작은 예수입니다. 나에게서 주님을 얼굴을 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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