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욥기 42:1-6)
인생이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잔잔한 바다 위를 달릴 때가 있습니다. 미풍이 불어 시원하고 끝없이 펼쳐진 유리와 같은 바다를 항해할 때, 아름답고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다가 항상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비바람이 불기도 하고 폭풍과 태풍이 불기도 합니다. 그러면 산더미 같은 파도에 배가 금방 침몰할 것 같기도 합니다. 폭풍이 왔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고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욥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재산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자녀들도 열이나 되었는데 모두 잘 생기고 아름다운 선남선녀들이었습니다. 그는 지혜롭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고아와 과부들의 보호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욥이 사나운 폭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날, 사막의 강도떼들, 무법자들이 나타나 욥의 가축들을 강탈해 갔습니다. 수천 마리의 가축은 욥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 재산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욥은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가축을 돌보던 사람들은 모두 강도들에게 죽고 한사람만 간신히 살아남아서 욥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로 그때 또 한사람이 달려와서 자녀들에게 사고가 났다고 알려 왔습니다. 큰아들 집에서 자녀들이 파티를 하고 있는데 사막에서 거친 폭풍이 불어와서 집이 무너지고 자녀들이 모두 깔려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욥은 인생의 거친 비바람, 폭풍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후에 욥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온 몸에 종기가 나고 몸이 붓고 병이 들어 죽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이 너무 가려워 기와장으로 박박 긁었으나 효과가 없었습니다.
질병은 나날이 깊어져 갔습니다. 호흡이 곤란해지고 한 순간 순간 숨쉬는 것조차 고통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잘 섬겨왔는데 자신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나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친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지만 욥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를 않았습니다.
절망의 심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래도 좀 견딜 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고 기도도 되지 않는 영혼의 캄캄한 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과응보의 논리에 따라 자신이 고난을 당할 이유를 몰라 답답해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알 수 없어하는 욥에게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가 알고 있는 진실이 무엇이냐? 사람이 완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울고 있는 까마귀 새끼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모두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욥은 폭풍우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욥38:1)
욥38:1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은 폭풍우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거친 바람과 폭우 속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폭풍은 사막에서 일어나 욥의 아들 집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인생에서 당하는 고난과 환난은 폭풍우와 같습니다. 그것은 사납게 부는 바람과 같습니다. 그 사나운 폭풍은 욥의 재산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집도 날려 버리고 자녀들도 폭풍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욥은 건강도 날아가 버렸습니다. 욥은 폭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납고 거친 바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인생의 폭풍 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땅끝으로 도망하다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폭풍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 폭풍은 나의 연고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 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폭풍이 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탄 배가 로마로 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항구 미항을 떠나 순풍에 돛을 달고 배가 나아가고 있었습니다.(27:13)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유라굴로 라는 광풍이 일어났습니다.(27:14) 배는 하나의 나뭇잎처럼 되었습니다. 그 배는 무려 14일 동안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27:27) 사나운 폭풍 속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배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다.(27:22)바울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됩니다.
내 마음의 싸이클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파수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욥은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께 그 마음을 맞췄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욥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달았습니다. (42:6)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욥이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뵈옵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기 42:5-6) 욥은 회개했습니다. 회개는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실 욥은 자신이 의인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꽤 쓸만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좋은 말을 해 주면 사실인줄로 생각합니다.
오래전에 영어 회화 학원에 다녔습니다. 질문이 ‘홧스 퍼스트 인프레이션 포 미?’ (what is first impression for me) 나의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회화 강사가 ‘유아 챠밍! 스마트! 매력적이다. 멋지다’(you are charming and smart) 하는 말이죠... 잘못되면 왕자병 됩니다.
욥은 자신이 영혼의 제자리를 벗어난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완전 한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의 이런 마음은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자신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의롭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한 청년이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젊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 누구도 이 젊은 제사장이 악한사람,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높이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하는 소리에 성전 문지방이 떨렸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족한 만군의 여호와를 뵈었음이로다.(사6장)
하나님을 뵈었을 때, 이사야는 자신이 죄가 많은 사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율법을 통하여 의롭게 살았던 것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더러운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아아.. 나는 이제 죽게 되었다. 이 더러운 인간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이사야의 고백이 바로 욥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로움이란 초라하고 더럽고 낡은 옷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입니다. 의로워봤자 수준이 그렇고 그렇습니다.
미국 어느 마을에 아주 유명한 깡패 형제가 살았습니다. 마약 밀수를 하고, 술을 마시고 동네 사람들을 때리고,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는 등 아무 몹쓸 짓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못된 형이 죽은 동생 장례식이나 제대로 해주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도 인심을 잃어서 장례식을 집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 형이 광고를 했습니다. 내 동생 장례식을 집례해 줄 사람에게 오만불을 주겠다고, 단 내 죽은 동생이 참 성자라는 말 한마디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이 그런 치사한 장례식에 집례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와서 장례식을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장례식을 구경하기 위해서 몰려왔습니다. 과연 그 죽은 깡패에게 성자라는 칭호를 붙여 줄지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장례식이 시작되면서 목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민 여러분! 알다시피 여기 죽은 이 사람은 우리 마을에서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우리는 이사람 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죽은 사람은 그의 형에 비하면 성자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뵙고 느꼈던 마음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길이 바른 길인 줄 알았는데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의 의인 욥도 내가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 영혼의 제자리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셋째, 욥이 회개했을 때, 모든 것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욥42:12-14)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 할 때, 다시 회복합니다. 욥이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했더니, 다시 하나님의 품속으로 돌아갔더니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욥은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던 욥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욥은 재산도 회복했습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주셨습니다. 욥은 자녀도 회복했습니다. 욥은 가정도 회복되었습니다. 욥은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도 회복했습니다.
누가 15장에 집을 나간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처럼 살던 아들이 어느 날 정신이 들어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구나... 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더러운 옷을 입고 영양실조가 걸린 몸으로.. 헤어진 신발을 신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들 걱정이 되어 동구 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멀리 아들이 오나 안 오나 바라만 보다가 눈이 짓물러 침침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멀리서 낯익은 걸음걸이로 오는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들이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달려가서 그 아들을 껴안았습니다. ‘아이고 이 자식아 이제오니?’
아버지는 그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소를 잡아라 잔치하자.. 그 아들을 목욕시키고, 가장 좋은 옷을 내다가 입혔습니다. 아버지는 인장반지를.
그 아들은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아들의 권리를 다시 회복했습니다. 상속권을 회복했습니다.
아들이 단지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품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돌아오면 아들의 자격이 회복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용서해 주십니다. 아무리 초라해도 환영하십니다. 집나간 아들이 돌아왔을 때 얼싸안고 기뻐하는 아버지처럼 하나님도 나를 환영하고 기뻐하십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이 시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깨어진 마음, 상처 난 마음으로 아픈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여러분의 상처를 만져 주시고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스런 여러분도 하나님이 치료해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아픈 부위에 손을 얹어 주세요. 여러분의 손위에 예수님이 손을 얹어 안수해 주십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시행하리라 말씀하신대로 기도합니다. 우리의 손위에 주님 손을, 피 묻은 손을 얹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