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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디모데후서 4:6-8)

작성자만민은총|작성시간19.06.23|조회수313 목록 댓글 0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디모데후서 4:6-8)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에서 지키는 순교자 기념 주일입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희생의 터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거의 순교를 당했습니다. 목 베임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혹은 거꾸로 못 박히고 죽음이 그들을 위협했으나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순교를 선택했습니다.

 

바돌로매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아마 이사람의 이름은 돌로매의 아들 나다나엘일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은 후 먼 아르메니아로 갔습니다. 이스라엘에서 2km, 5천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왕의 딸 공주가 아플 때 기도하여 고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왕이 바뀌고 바돌로매는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나다나엘의 순교의 피를 뿌린 아르메니아 땅에 복음이 잘 전해져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아르메니아는 중동에서 유일한 기독교 국가입니다. 나다나엘의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은 수십년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곧 순교를 당할 것입니다. 그 사도 바울이 마지막으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회고하며 나는 이렇게 믿음생활을 했다는 고백입니다. 순교자의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순교자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믿음도 순교자의 뒤를 따라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선한 싸움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입니다.(12:21) 악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악이 아닙니다. 혈기를 이기는 것은 더 큰 혈기가 아닙니다. 어둠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어둠이 아닙니다. 빛이 어둠을 이깁니다. 악을 이기는 건 더 큰 악이 아닙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는 악이나 폭력의 힘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교회에서 남선교회 헌신예배에 남성 중창단 3명이 나와서 은혜롭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3명의 목과 팔에는 용문신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덩치와 팔자걸음 등 조폭 야쿠자 같았습니다.

 

찬양은 마치 천사의 음성으로 들릴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찬양이 끝난 후,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서 교우 여러분, 저희 셋은 다 야쿠자였습니다. 또한 저희들의 아내는 다 한국인들입니다. 저희 모두 아내들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를 보십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 세 명이 왼손을 들어 보이는데 3명 모두 새끼손가락이 없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저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야쿠자 두목을 찾아가서 오야붕, 저희들은 이제 야쿠자 조직을 떠나겠습니다. 오야붕도 예수님을 꼭 믿으십시오.’ 그랬더니 야쿠자 두목이 너희들 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아라.’ 하고는 저희들의 새끼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야쿠자 조직을 떠나게 될 때 그 조직을 떠나는 사람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야 떠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쿠자의 아내인 한국의 기독교 여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 이 어둠의 세상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했습니다. 바울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면서 채찍에 맞고, 돌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감옥에 들어가고 여러번 죽음 직전까지 갔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은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골로새 2:15에 주님은 십자가로 승리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는 모욕과 수치와 저주를 뜻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우리 주님은 심한 채찍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벧전2:23) 우리 주님처럼 사는 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했습니다.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트랙을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승리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이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했습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라는 길을 가야 합니다.

 

길을 갈 때, 예수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 7:14-15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많은 사람이 넓은 길 편안한 길, 쉬운 길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주님은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넓은 길은 멸망으로 가는 길입니다.

 

경상남도 거창에는 거창고등학교가 있는데 기독교 학교입니다. 그 학교에는 직업선택의 10가 있는데요. 1,월급이 적은 곳을 선택하라. 2,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3,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4, 황무지를 선택하라. 5,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는 곳으로... 7,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이것이 좁은 길 같습니다. 하나같이 좁은 길입니다. 거창학교는 요즘 말로 개념있는 학교입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밝은 낮에 차를 운전하면 도로표시판을 볼 수 있습니다. 밤에 차를 몰고 가면 길이 잘 보이지를 않아서 목적지에 제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시편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신앙의 길에 헤드라이트요 내 믿음의 길에 내비게이션이니이다. 아마 현대어로 고치면 이런 말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길을 환하게 해 주고 내 인생의 목적지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이 됩니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 말씀은 끝까지 달렸다는 말입니다. 우리 시조에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감만 못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제가 군대에 갔을 때 신병교육대에서 오뚜기 영웅이라는 하사가 있었습니다. 당시 3군 사령부 산하에 사단 대항 완전 군장 60km 행군 측정이 있었습니다. 완전 군장으로 60km를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사 분대장의 다리에 쥐가 났습니다. 더 이상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이 분대장이 대금으로 자기의 허벅지를 찔러 피를 흘리며 6km 행군을 마쳤습니다. 분대장은 이 일로 훈장을 받았고 신병들에게 훌륭한 군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이든지 그 사명을 완수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고 생각되겠죠. 오뚜기 영웅처럼 자기를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훈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나타나실 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살아 왔다는 고백입니다.

 

춘향전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춘향이 이 몽룡과 사랑을 하고 서로 언약하여 부부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몽룡의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이 나고 몽룡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갔습니다. 새로운 남원 원님이 오고 변 학도가 춘향을 사랑하여 돈과 권력으로 유혹하고 협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곤장으로 때렸지만 춘향이의 이몽룡에 대한 절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이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나 사랑하는 춘향이를 옥에서 구원하여 한양으로 데려 갑니다. 춘향이가 변학도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이몽룡을 무슨 얼굴로 보겠습니까? 춘향이의 절개가 그를 당당하고 떳떳하게 몽룡이를 대하게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절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순교자의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온갖 위험이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제가 감리사 때에 중국에 교회를 하나 지으려고 현장답사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도문을 지나 환인시에는 우리나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도읍으로 정했던 졸본이 있는데요, 오늘날에는 환인시라고 합니다. 환인시 근방에 광개토대왕비가 있고 유명한 장수왕릉이 있습니다.

 

근처 압록강변에 장백시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장백교회가 있습니다. 서울의 염창교회에서 2억을 들여 교육관을 봉헌했더라고요. 조선족 목사님인 한충렬 목사님이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이십도구 마을에 정집사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심하게 굶고 있었고 정집사님이 겨울에 압록강을 건너온 아이들에게 밥을 해서 김치와 함께 먹였습니다.

 

겨울밤에 허기진 아이들이 쌀밥에 김치.. 세상에 가장 맛있는 밥이었죠. 아이들이 세명, 다섯명, 열명 점점 많아졌습니다. 20명 이상이 밤에 압록강을 건너왔고 한밤중에 밥을 먹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강을 건너가면 쌀밥이 있다. 아이들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북한의 병사들도 몰래 와서 밥을 먹고 갔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정집사님이 농사한 쌀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한충렬 목사님이 교회 재정으로 쌀을 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들이 북한에 가서 이 성경 말씀을 이야기 하다가 당국에 적발이 되고 아이들 여럿이 대낮에 광장에서 수십발의 총탄으로 총살을 당했습니다. 잔인무도한 인간들입니다.

 

장백교회 한충렬 목사도 결국 순교를 했습니다. 20164월 저는 신문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충렬 목사가 피살되었다는 보도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던 목사가 피살되었기 때문입니다. 2016430일 오후 2시쯤 18도구 사형장 근처 야산에서 피살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중국 공안은 이 문제가 중국에서 자국민이 살해된 사건으로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진상규명 없이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20년 이상 탈북을 지원하고 북한 주민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해 왔습니다. 때문에 한 목사의 활동에 불만을 품은 북한 보위부에 의해 살해됐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90년대를 강타한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장백교회 주변에 도움을 얻으려고 찾아온 북한 주민이 많았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습니다. 북한 주민을 돕는 활동이 중국 당국에 발각되어 한 목사는 한때 중국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에 유혹받지 말고 세상 즐거움에 한눈팔지 말고, 신앙의 정절을 잘 지키시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떳떳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 앞에 설때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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