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입니다. 원래 이 말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zoon politikon) 이었습니다. 철학자 세네카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기면서 사회적 동물이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를 세계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치, 폴리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말하는데, 그것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이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것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동물에서 정치를 빼면 동물만 남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추동, 욕구(drive)라 합니다.
사람이 가진 드라이브, 본능은 세가지인데 먹는 것(eating), 마시는 것(drinking), 잠자는 것(sleeping)입니다. 세 가지 본능 중에서 첫째가 먹는 것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누가 생각납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어머니 아버지나 아들딸이 생각나죠.
평창신문이라는 것을 보다가 ‘영적인 사람’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창간 축하글이었는데요, 그는 시를 쓰다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영적인 스승을 찾아 다녔고 그들과 교제했다고 합니다.
그가 만난 사람 중에 한국에 사는 인도 여성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매우 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인도의 전통 성직자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류시화는 그녀와 나누는 영적인 대화가 너무 지루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인도 전통요리는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류시화 시인은 영적인 대화보다 그녀가 만든 음식이 영적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음식은 너무나 맛있는 요리였습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요리는 좋아합니다. 맛있는 요리처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도 맛이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개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영적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이 말씀이 너무 어렵다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60절, 66절)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보시고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온데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67-68절) 했습니다.
코로나 19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성도들 때문에 목사인 저는 마음에 부담이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지키려하다가 영적으로 허약해지고 병들고 그 영혼이 잘못될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사람에게는 몇가지 양식이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 영혼의 양식이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은 밥이고 마음의 양식은 책입니다.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밥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영혼의 양식, 하나님의 말씀도 먹어라. 육신을 위하여만 살지 말고 영혼을 위하여 살아라 하셨습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영양 결핍으로 몸이 허약해지고 각종 질병에 걸리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굶어 죽는 아사는 음식을 못 먹어서가 아니라 일정한 양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먹지 않으면 병에 걸리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양식도 중요합니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는데 독서는 마음의 양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행복한 일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교회 잘 다니는 청년이 어느날 목양실로 와서 뭔가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꺼내보니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미피아체 외식 상품권이었습니다. 이걸 가족끼리 가서 사용하지 왜 나에게 가져왔냐고 했더니, 회사에서 보너스로 나온 것인데 목사님께서 이걸 드시면 자기가 행복하겠다고....
그래서 그 식당에 가면서 원로 목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서울 강남 청담동에 있는
미피아체는 상당히 유명한 식당입니다. 원로 목사님과 사모님이 매우 행복해 하셨습니다.
먹는 음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좋은 식당을 찾아다닙니다. 사람은 하늘 양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인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야곱의 형이었던 에서는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장자권에 관심이 없어서 한 그릇 죽으로 동생에게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배가 고파 죽게 되었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했습니다. 영혼의 양식보다 육의 양식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그것이 소중한 줄 알고 울고불고 해 보았자 소용이 없었습니다. 영적인 것을 놓쳐버렸고 잃어버렸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에서에 대하여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했습니다. 영적인 것을 가볍게 여긴 에서를 성경은 망령된 자, 어리석은 자로 평가했습니다. 영적인 일에 무심했던 에서의 후손은 초라하고 볼품없이 존재가 되었습니다.
둘째, 영원히 사는 생명의 양식이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eternal life)의 양식, 불멸하는 생명의 양식이 있습니다. 영생하는 양식, 하늘 양식, 생명의 양식,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어 합니다. 고대 애굽에서는 영혼불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체를 썩지 않게 하려고 미라를 만들었습니다. 몸을 썩지 않게 방부처리 하여 영생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사람이 영생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하는 양식이 있습니다. 영생을 하기 원한다면 꼭 먹어야 하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시고 심히 주려있을 때에 사탄이 시험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이 떡이 되게 하라. 이때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8:3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육신의 양식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늘 양식, 영생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의 말씀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말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 나를 먹어야 영생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이 이 말씀은 어렵다,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했을 때,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65절) 한 말씀대로 영생의 말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39)했습니다. 영생의 양식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을 때 에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람이 어떻게 영생하는 양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것이 영생하는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할 수 있습니까?(29절) 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의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나의 주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이념을 섬기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어떤 사람은 조폭 두목을 주인으로 섬깁니다. 그를 위하여 죽기도 합니다. 그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내 믿음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기초가 허술하면 여러 가지 환난이나 핍박이나 신앙의 박해가 오면 무너져 버립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지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진에도 견딜수 있고 홍수나 쓰나미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맏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오늘날 온 세상은 영적인 기근의 시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8:11)했습니다.
영적 기근의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힘든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사야 55: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양식, 영생의 양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일정한 음식보다, 삼시세끼 먹는 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중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욥 23:12) 욥은 풍성한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욥기 19:25-26에 보면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알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