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멈추지 마라 (출애굽기 17:8-16)
오늘은 우리가 31절 기념주일로 지키는 날이다. 1919년 3월 1일 우리가 독립국이라는 것을 선언한 날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 합병되어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가 끝나고 일본의 한 부분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먹힌 건 마치 도도새와 같았기 때문이다.
인도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도도새(바보새)가 있었다. 이 섬에는 새의 먹이가 풍부하고 새를 잡아먹는 천적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날아오를 필요가 없어 날개도 퇴화하고, 빨리 뛰어다닐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다리도 짧아졌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 선원들이 모리셔스 섬에 상륙하였다. 그때까지 도도새는 인간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겁을 내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다. 덩치가 큰 도도새가 눈을 멀뚱거리다가 사람에게 잡아 먹혔다. 사람들이 이 새를 ‘바보’라고 불렀다. ‘도도(dodo)’라는 단어가 포르투갈어로 ‘바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될 무렵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도새 같았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락거려도 그냥 눈을 멀뚱거리다가 잡아 먹혔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실패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 해 보고자 일어난 것이 3.1독립선언과 만세 운동이다. 그러나 3.1만세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삼일절 하면 유관순이 떠오르지만 사실 유관순보다 먼저 유관순의 부모가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헌병의 총에 죽었다. 이렇게 죽은 사람만 7천 5백여 명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사과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사과하지 않는다. 위안부나 징용에 대하여 배상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배상은 끝났다고 한다. 일본이 무릎을 꿇기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같은 전범 국가인 독일은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있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하여 ‘바르샤바 게토 봉기 영웅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이 사과는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보다 일본보다 더 잘 살면 그것으로 끝난다. 어릴 때 괄시받고 무시받고 얻어맞던 아이가 커서 자기를 때린 사람을 찾아가서 사과해.. 사과해.. 하는 것보다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서 자기를 무시하던 사람앞에 선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가 잘되는 것이 복수... 일본보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사과받는 것보다 낫다. 사과도 안하는 것들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을 바로 알아야 한다. 포항공대 이상준 교수가 쓴 글에 이런 것이 있다. ‘우리는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했다. 일본의 예법을 배웠다. 일본을 찾아 다녔다. 일본 사람과 사귀었다. 일본 기술자를 초대했다. 일본 제품을 베꼈다. 일본의 정신을 파악했다.
우리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 70년을 '와신상담'했다. 박태준 포철회장이 일본의 철강기술을 배워서 신일본제철을 이기고, 삼성이 일본의 반도체 기술과 전자제품 하청을 하다가 소니와 마쓰시다를 추월하고, 현대가 일본의 조선기술을 가져와 가와사끼 조선을 이겼다.’
오늘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왔을 때, 아말렉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스라엘 사람을 공격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서 기도하겠노라.’
여호수아는 아말렉과 싸우러 나갔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모세가 그의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가 피곤하여 팔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되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 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그들이 각각 그 양쪽에 서서 그의 팔을 붙들어 올렸다. 해가 질 때까지 모세가 팔을 내리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는 아말렉에게 승리했다. 모세는 거기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했다.
모세가 기도할 때 승리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승리한다. 기도의 손을 내리지 마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첫째, 인생이 전쟁터와 같다는 것이다.
인생은 날때부터 전쟁이고 이 세상은 전쟁터와 같다. 전쟁에서는 이겨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을 했다. 그 전쟁에서 이겼다. 지금 온 인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에서 254만 명이 죽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질병과 싸운다. 우리 어렸을 때는 유아 사망률이 50%쯤 되었다. 입시 전쟁에다 취업 전쟁, 직장생활, 직장도 전쟁터요, 사업하는 것도 전쟁과 같다. 이기지 못하면 망하고 죽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했다. 이스라엘이 싸우는 적군 아말렉이 누구인가? 아말렉은 야곱의 형제 에서의 손자이다(창 36:12). 야곱이 신앙의 사람이라면 에서는 세상적인 사람이다. 야곱이 장자권, 영적인 것을 추구햇다면 에서는 세상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추구했다.
아말렉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세력이다.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 교회를 조롱하는 사람들, 안티 기독교,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말렉의 후예이다.
아말렉은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지치고 병들고 피곤하여 낙오된 사람들을 공격하고 약탈했다. 신명기 25:17,18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대열에서 뒤쳐진 사람들이 공격을 받고 약탈을 당했다. 신앙생활 하다 뒤에 쳐지면 마귀의 공격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대열에서 이탈하지도 말고 낙오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쟁터로 내 보냈다.
여호수아와 용사들이 칼을 들고 아말렉과 싸웠다. 많은 군사들이 여호수아와 함께 전쟁터로 나갔다. 그들은 난생 처음 전쟁터에 나갔다. 그곳은 위험한 곳이다. 전쟁터에서는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어디서 포탄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전쟁터에서는 누구나 죽을 수도 있다. 전쟁은 두려운 곳이다.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곳이다. 더구나 적군은 수많은 전쟁을 했던 역전의 용사들이요, 사막의 약탈자들이다. 마적단 같은 사람들이다. 싸움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여호수아는 칼을 잡고 전쟁을 했다. 우리도 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질 칼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칼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엡6:17) 우리는 말씀으로 세상을 이겨야 한다.
우리가 가진 성령의 검은 기도로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그래야 시퍼렇게 날이 선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성도들은 날마다 말씀의 칼을 날카롭게 가는 사람들이다. 날카로운 칼은 어떠한 적도 물리치게 될 것이다.
말씀의 칼이 무뎌지면 하찮은 마귀 사탄의 공격에도 나가떨어지고 헤매고 허우적거릴 것이다. 무딘 칼, 녹슨 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기도로 말씀의 칼이 날카로워지면 영적인 강력한 힘이 생긴다. 칼의 힘은 기도로 나온다.
홍민기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다. 어느 날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해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강력한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 그래서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분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분은 40년 동안 하던 사업이 망하고 죽음을 생각하며, 어릴 적 믿음이 생각나 ‘하나님께서 나를 잊지 않았다고 하는 사인을 보여주시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
그런데 그때 홍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라고 하십니다!’ 라는 말을 듣고는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말씀으로 자기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겨야 한다.
셋째,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배후에서 기도했다.
여기에 승리의 비밀이 있다. 승리의 원리가 있다. 기도 승리의 비밀이다.
여호수아와 용사들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팔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이것은 기도로 승리한다는 말씀이다.
모세기 피곤하여 팔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아론과 훌이 큰 돌 위에 모세를 앉게 했다. 두 사람이 팔 하나씩을 붙들어 팔이 내려오지 않게 했다. 모세가 기도할 때 여호수아가 승리했다. 모세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기도 승리의 비밀을 알려 주셨다.
우리 자녀들도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나갔다.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우리도 걱정이 많다. 잘못되면 어쩌나.. 누구에게 부당한 대우는 받지 않는가? 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그럴 때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란다.
사무엘이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은퇴를 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사울왕이다. 은퇴를 하면서 사무엘이 마지막으로 고별사를 하면서 이런말을 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위해 배후에서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후 사울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사무엘이 생존하는 날 동안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승리했다. 사울은 자기가 잘나서 이긴 줄 알았지만, 사무엘이 배후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승리했던 것이다.
배후에서 기도하던 사무엘이 죽은 후, 다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범했다. 사울왕은 대군을 이끌고 길보아에서 블레셋 대군과 싸웠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앞에서 패하여 도망했다.
사울의 아들들도 전쟁에서 죽었고 사울도 자결하였다. 사무엘의 기도가 없는 이스라엘과 사울왕은 끈 떨어진 연과 같았다. 사무엘이 알맹이요 사울은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무엘상28장, 31장) 사무엘의 기도가 없는 사울왕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러분, 사무엘처럼 배후에서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배후에서 기도해야 한다.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을 위하여 배후에서 기도해야 한다.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다니엘처럼, 사무엘처럼 배후에서 기도해야 한다.
이 나라에 배후에서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 한 이 나라는 안전하게 보호받고 축복된 나라가 될 것이다. 교회를 위해서도, 담임목사를 위해서도 배후에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여러분이 배후에서 기도할 때, 담임목사는 능력있는 목사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교회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고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
한 20년 전에 내가 시무하는 교회 권사님이 자기들이 하는 기도회에 말씀을 좀 전해 달라고 했다. 서울연회 청장년선교회에서 기도회를 한다. 매주 화요일 밤 9시부터 11시 반까지 삼각산에서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벌써 십몇년간 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기도 제목의 하나가 중국선교의 문을 열어 달라는 기도했다. 그 기도응답으로 중국 선교의 문이 열렸다. 화요기도모임의 기도대장을 하던 분이 장로가 되어 그분을 중국선교 사역자로 파송하고 배후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이 파송하고 기도로 후원하는 장로님은 중국에서 대단한 사역을 하고 있었다. 교회를 수십개를 건축했고, 그분을 통해서 초대교회 바울과 같은 능력이 나타났다.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분, 손 장로에 대하여 누구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에서도 그런 기적들이 일어났던가?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분이 중국에서 사역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예수 이름으로 능력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모든 일은 배후에서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이 일하신다.
자 여러분, 이 시간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팔을 하나님을 향하여 드십시오, 이 기도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장애물을 이기고 기도하겠습니다.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기도할 때,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건강에서 사업에서 성공하고 승리할 것입니다. 자,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손을 하나님을 향하여 드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모세처럼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손을 내리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게 하시고 여호수아처럼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