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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깨닫는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 (사도행전 6:1-6)

작성자만민은총|작성시간21.06.06|조회수95 목록 댓글 0

사명을 깨닫는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 (사도행전 6:1-6)

 

평신도 주일이다. 평신도 주일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것을 깨닫고 평신도 사역자(lay minister)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기 위하여 제정하였다. 평신도 주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헌신하고 충성하시기 바란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어느 신이 참 신인지,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영적 대결에서 승리하고 .. 이세벨이 엘리야를 체포해서 죽이려 하자 광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이제 족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소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보내시고 거기서 엘리야가 해야 할 사명을 알려 주셨다.

 

너는 엘리사를 네 후계자로 세우고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어라.. 엘리야는 말씀으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호렙산에서 내려왔고 자신이 받은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자신이 받은 사명을 말씀으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 말씀은 초대교회가 자라면서 교회에 많은 일꾼이 필요했는데 그 평신도 지도자를 세운 내용이다. 그들은 많은 성도들 중에서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는 일을 맡았다. 초대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일꾼이 되었고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다했나를 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평신도로 사명을 다하려면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가 사명보다 먼저이다. 은혜를 받지 않으면 교회 일이 귀찮고 힘들고 짜증난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회 일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다. 교회 일은 힘들지 않는다. 은혜를 받은 증거가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란 기도에 열심있는 사람이다. 열심히 기도 할 때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혜가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면 기쁨이 넘치고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다. 믿음이 어디서 나는가? 말씀을 잘 들어야 믿음이 생긴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긴다고 했다. 믿음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말씀을 열심히 부지린히 들어야 한다. 그러면 믿음이 충만한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된다.

 

예수님이 친구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성경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 중 하나가 베다니의 마리아이다. 마리아의 믿음은 300데나리온 하는 향유를 주님께 쏟아 붓고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마태복음7:24-25)

 

우리 삶의 현장에서 지혜는 사리분별력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에게 분노하고 꾸짖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바로 바나바 같은 사람이다. 바나바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왔다. 그들이 안디옥 교회를 섬겼더니 큰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일꾼으로 세웠던 것이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는다. 믿음이 좋은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예배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은혜가 먼저 와야 하는데 은혜의 통로가 겸손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은혜가 사라지고 교회에서 일꾼이 되기 어렵다.

 

예배는 단비와 같다. 단비가 내리면 식물이 왕성하게 자라고 꽃이 핀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밭에 심은 옥수수가 시들고 말라비틀어진다. 그러다가 단비가 내리면 다시 살아난다. 살아있는 영혼은 예배를 사모하고 은혜를 사모한다.

 

둘째, 평신도 사역자의 사역지, 일터는 어디인가?

교회에는 성직자와 일반 신도가 있다. 성직자를 목사 신부라 한다. 일반신도, 평신도는 집사 장로, 권사가 있다. 한스 큉 이라는 신학자는 ‘목사나 신부는 교회에 파송된 성직자라면 평신도는 세상에 파송된 성직자’라 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각자의 일터에서 사명을 다하는 것이 평신도 사역(lay ministry)이다. 나의 일터는 나의 선교지이며, 그곳이 나의 사역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이 살아가는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평신도의 사명이다.

 

선택받고 안수받은 일곱집사, 일곱명의 평신도 지도자는 나름대로 헌신하고 충성하였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언하고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가 나온다. 아주 긴 설교이다.

 

그 설교를 듣고 유대인들이 분노하여 스데반을 돌로 쳤다. 그는 순교하면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주님처럼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빌립은 전도에 불이 붙어서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하였다. 예수님께서 분부하신대로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 말씀대로 전도했던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었다.

 

빌립은 성령에 이끌려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에게도 복음을 전했는데, 길을 가다가 물을 만나자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간다게의 영향으로 에디오피아에는 복음이 전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믿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은 빌립의 공이 크다.

 

그 외의 집사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 집사로서 봉사자로서 성도들을 섬기고 세상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다했다. 우리 모두는 사명이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있다.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큰 상을 준비하고 계신다.

 

어떤 집사님이 죽어 천국에 갔다. 그런데 어느날 무슨 환영식이 있다고 야단이었다. 아마 대단한 사람이 천국 오는 것 같았다. ‘누가 오는데 천국이 이렇게 야단입니까?’ 예수님이 동부연회 김 아무개 감독이 온다고 했다.

 

집사님이 예수님께 ‘그 김감독은 세상에서도 대접받고 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이렇게 큰 환영식을 합니까?’ 했더니 예수님이 ‘감독이 천국 오는 것은 이 사람이 처음이다. 그래서 귀한 일이라 환영식을 한단다. 감독은 천국 오기가 아주 어렵단다.’ 하셨다. 자신이 맡은 일을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면 목사도 감독도 예수님이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이다.

 

자신이 살고 일하는 곳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이다. 거창하게 아프리카나, 외국으로 파송 받아 가는 것만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자리가 하나님이 파송한 자리요 그곳이 나의 사명의 땅이 되어야 한다.

 

서울에 어떤 큰 교회에서 대학생들이 하계봉사를 갔다. 시골에 가서 교회학교 여름 성경학교도 하고 마을의 길도 고치고 그러면서 기도도 많이 했다. 기도하다가 모두 성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앞으로 신학교에 가서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교회 담당 부목사님과 이 일을 의논했다. 그 학생들은 명문대 법대생들이었다.

 

목사님이 그들에게 ‘너희들이 기도하고 은혜 받은 것 정말 귀하다. 그런데 선교는 꼭 외국에 나가서 하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은 사법고시 합격해서 법조계에 들어가거라. 한국의 판사 검사를 전도하는 선교사가 필요하다.’ 그 학생들이 평신도 선교사가 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자이다. 특별히 여러분은 홍천으로 파송을 받았다. 만민 교회는 홍천에 있는 천국의 대사관이다. 우리 성도는 대사관의 직원과 같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의 임무, 미셔나리,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파송한 이유는 그분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내가 맡은바 일을, 내가 받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보고 계신다. 내 삶의 자리가 선교지가 되고 내 직장이 선교의 장이 되고 내가 사역자가 되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다.

 

셋째, 우리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고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다. 다섯이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 같은 칭찬을 들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달란트를 땅에 파묻었고 나중에 주인의 책망을 받았다. 주인의 생각은 다섯이나 둘이나 한 달란트나 그 맡은 일은 지극히 작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섯이 커 보이고 한 달란트는 작아 보인다. 내가 맡은 일이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크리스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 톤 이라는 성도가 있었다. 톤은 아주 나이가 많았다. 예배 때에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톤이라는 성도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저도 무엇인가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십시오.’ ‘그러면 다음 주일부터 목사님의 모자를 받아서 거는 일을 하겠습니다.’

 

다음 주일에 목사님이 목양실에 들어가려는데 톤이 거기에 서 있다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목사님의 모자를 받고 문을 열어주고 모자를 모자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 다음 주일도 톤이 목사님보다 먼저 와서 인사하고 문을 열어주고 모자를 받아 거는 일을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톤이 죽었다. 목사님이 장례식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천국에 가면 톤이 나와서 나를 영접하고 문을 열어 줄 것 같습니다. 그는 큰일을 하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맡은 일에는 최고였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신한 일을 보고해야 한다. 부끄럽지 않도록 각자 받은 사명을 다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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