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같이 (이사야 40:27-31)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어느 비가 오는날 비행기를 탔다.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데 비행기는 안전하게 하늘로 이륙할 수 있을까? 비행기는 산뜻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날아오르자 하늘 위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구름도 없었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하늘 높이 오르면 거기는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하늘높이 날아오르면 하늘의 지평선, 하늘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천평선(celestial holizon)이 보인다. 그만큼 시야가 깊고 넓어지면 하늘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 먼 하늘 끝에 뭉게구름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름답다.
대명 비발디에서 강촌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구름위의 산책이라는 팬션이 있다. 그 집 딸이 우리 아들과 같은 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그래서 그 집을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 사람이 기분이 좋을 때, 행복할 때는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한다. 구름 위의 산책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때로는 하늘 위 구름위의 산책을 하는 것처럼 행복하고 희망과 꿈이 가득할 때가 있고, 때로는 우울하고 사는 것이 귀찮고 힘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이 마음이 침체될 때도 있다.
우리 마음이 낙심이 되고 마음이 다운되고 힘들 때 오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하늘을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오를 수 있을까?
오늘의 말씀은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되는 비밀을 담고 있다. 이 말씀으로 새 힘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새 힘을 주셔서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은 행복을 주실 것이다. 독수리가 푸른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는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기 바란다. 날아오르기 위하여
첫째,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거우면 날지 못한다.
새는 몸이 가볍다. 몸속의 뼈가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다고 한다. 새도 몸이 무거우면 날지 못한다. 영국의 어느 해안에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있었다.
사람들이 갈매기를 사랑한다고 먹이를 주면 갈매기가 물고기를 사냥하지 않고 사람이 주는 햄이나 소시지를 먹고 비만해져서 날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갈매기는 날아야 제 맛이다. 갈매기가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은 우스운 모습이다.
사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마음이 무거우면 위로 오르지 못한다.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가? 죄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양심의 가책이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가인이 죄를 지었었을 때 그 마음이 무거웠다. 창세기 4장13절에 내죄의 벌이 너무 무거워 견딜수 없나이다.했다.
다윗이 죄를 지었다. 간음죄를 짓고 살인죄를 지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책망했고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지은 참회시가 시편6,32,38,51편이다. 시편 38:4 에 ‘내 죄의 벌이 나를 짓누르니, 이 무거운 짐을 내가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하고 고백하고 있다.
마태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는 죄의 짐, 증오의 짐, 고통의 짐들을 주님께 맡겨야 한다. 마음을 가볍게 해야 하늘로 날아오른다.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란다.
내려놓으면 편안해진다. 신학교 3학년때 교회 전도사로 가려는데 사례비가 너무 적었다. 기도하고 결정하려고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기도기도했더니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와 닿았다. 사례비를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사례비를 더 올려놓았다. 우리는 기도할때 내려놓게된다.
둘째,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오일, 기름이 있어야 한다. 비행기에 사용하는 기름을 항공유라 한다. 기름이 없는 항공기는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사고로 연료탱크의 기름이 빠져버리면 비행기는 땅에 추락하고 만다. 높이 날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교회 화단에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저께 밖에 볼일을 보고 오다가 여보 저기봐요... 나비가 왔네.. 나비들이 부용화 협죽도 천인국 꽃에서 꿀을 마시고 있었다. 나비들이 하느작 하느작 날고 있을 때 아름답다.
나비라는 곤충이 날기 위해서는 햇빛이 필요하다. 나비의 날개에는 비늘이 있다. 그 비늘들은 태양전지와 같은 초소형 축열판 같아서 아침 햇살을 받고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비로소 하늘로 날아오른다.
성도들도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영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비가 아침 햇살을 받아야만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처럼 성도들은 아침마다 기도로 하나님과 접촉하고 하나님을 앙망함으로 영적인 힘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힘은 단련하고 훈련할 때 더욱 강해진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지만 그냥 하늘의 제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독수리 훈련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부단히 날기를 연습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독수리 어미가 아기 독수리를 강하게 하기 위해 거의 죽을 것 같은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독수리가 알에서 깨어나고 이제 날개에 깃털이 생기면 독수리는 바람을 향해 날개짓을 하기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날개짓을 시작한다. 한자어 습(習)이라는 글자... 연습이라는 단어를 쓸 때 습자를 파자해 보면 날개 우 둘에다 스스로 자로 되어있다. 새가 스스로 날개짓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날개짓을 하면 어느 순간 근육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다. 드디어 힘이 생기고 준비가 된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박차고 절벽 위에서 하늘로 날아오른다. 우리도 독수리에게서 배워야 한다. 독수리가 스스로 끊임없이 날개짓을 하듯 우리도 기도와 예배로 훈련을 해야 한다.
셋째, 하늘을 날아오르려면 날개가 있어야 한다.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 독수리는 두 날개로 날아오른다. 날개의 히브리어는 카나프이다. 다윗이 ‘주의 날개 그늘아래 내가 피하리이다’(시61:4)했다. 날개, 카나프는 옷자락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룻기 3장 9절에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소서’ 했는데 그것이 ‘당신의 날개로 나를 덮으소서’ 하는 말이다.
룻이 보아스에게 한 이 말은 ‘당신의 은혜를 내게 베푸소서’ 라는 뜻이다. ‘초라한 나를, 허물 많은 나를 당신의 날개아래 품어 주세요.’ 하는 고백이다.
어떤 목사님이 젊은 시절, 625전쟁때, 인민군에 차출되어 끌려가다가 도망을 쳤다. 어느 집에 뛰어 들었더니 젊은 여인이 하얀 소복을 입고 대청마루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죽어 상중이었다. “나 좀 살려 주세요...” 그 여인이 젊은이를 치마 속에 넣어 감추었고 태연하게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인민군이 들이 닥치고 방금 이곳에 온 사람을 내어 놓으라고 했으나 ‘저기 담을 넘어갔습니다.’ 인민군이 젊은이를 잡으려고 가 버리고 그 젊은이는 그 청상과부의 치마 속에 숨어서 죽을 목숨이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그 젊은이는 감리교 목사가 되었다. 그 젊은이가 다시 여인을 찾아갔고 청혼을 했다. 목사님은 자기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사모님과 결혼을 했고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하나님의 날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처럼 살아야 하 것이다.
날개란 하나님의 은혜를 뜻한다. 슈퍼맨 이라는 영화가 있다. 다른 행성에서 온 아이가 자라나고 초인적인 힘을 가졌다. 슈퍼맨은 하늘을 날 수가 있다. 그 슈퍼맨에게 애인이 있는데 같은 신문사에 다니는 아가씨이다. 슈퍼맨이 그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날 수 없지만, 슈퍼맨에게 붙어 있으면 같이 날수가 있다. 나는 날 수 없지만 주님께 붙어 있으면 나도 주님과 함께 날 수가 있다. 그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우리 인생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은헤가 날개이다. 내가 하나님을 앙망하면 은혜의 사람이 된다.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모하면 은혜의 사람이 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 은혜의 사람이 된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날개를 가진 것과 같다. 그 날개로 하늘을 높이 오르게 되면 우리 앞에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