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이어준 길, 유달산에서 만리포까지
一. 떠나며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 여행은 더 이상 정복이 아니라 확인이 된다. 무엇을 확인하느냐 묻는다면, 아직 함께 걸을 다리가 있고 아직 함께 웃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오랜 동료들이 모여 서해안을 따라 3박4일을 걷고 달리기로 했다. 목포에서 시작해 만리포에서 끝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었다.
二. 유달산, 다도해를 굽어보다
여행의 첫걸음은 목포 유달산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 정상에서 다도해가 펼쳐졌다. 크고 작은 섬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풍경 앞에서, 누군가 말없이 카메라를 들었고 누군가는 그저 오래 서 있었다. 함께 일했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시간들이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였다.
三. 퍼플섬, 보랏빛으로 물든 다리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퍼플섬은 이름 그대로 보라색이었다. 지붕도, 다리도, 심지어 꽃들마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어 마치 누군가가 섬 전체에 꿈을 입혀놓은 듯했다. 다리를 건너며 동료 한 사람이 "우리도 이렇게 한 가지 색으로 물들 수 있다면"이라고 중얼거렸다. 오랜 세월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농담이었다.
四. 채석강과 끝없는 갯벌
변산의 채석강은 책을 겹겹이 쌓아놓은 듯한 절벽이었다. 수만 권의 책장이 바닷물에 깎여 만들어진 그 단층 앞에서, 우리는 자연이 쓴 가장 긴 문장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서해의 갯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밀물과 썰물이 수천 년 드나들며 다듬어 놓은 그 광활한 펄밭을 바라보며, 인생도 저렇게 천천히 쌓이고 깎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五. 백수해안도로의 노을
백수해안도로에서 맞은 노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을 풍경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차를 멈추고 내려선 자리, 바다는 온통 붉게 물들었고 그 붉음이 우리들의 얼굴까지 적셨다. 누구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노을 앞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대화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그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듯했다.
六. 전라도의 밥상
전라도의 음식은 여행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한 상 가득 차려지는 반찬들, 갓 잡은 해산물의 비린 듯 고소한 맛, 깊게 우러난 국물까지 — 끼니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배부르게 행복했다. 함께 먹는 밥상이야말로 오랜 동료 사이를 가장 편안하게 이어주는 자리였다.
七. 만리포, 여정의 끝에서
태안 만리포에 도착했을 때,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가 우리를 맞았다. 유달산에서 시작해 만리포에서 끝난 길, 그 사이를 채운 건 결국 바다와 바다, 그리고 그 사이를 걸어온 우리들의 발걸음이었다. 모래 위에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누군가 말했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끝이 곧 다음 시작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