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사과 먹기
오명선
윗집에서 일방적으로 보내온 사과상자
이건 사과가 아니다
밤마다 내 잠 속을 콩콩 뛰어다니는 어린 캥거루의 발목
쿵쿵쿵 주방으로 욕실로 돌아다니는 하마의 엉덩이
사과도 아닌 것이 사과 이름표를 달고 사과 흉내를 내며 사과인 척 공손하다
입만 열면 뻔한 변명, 뻣뻣한 반성, 꺾이지 않는 일방통행
고집불통의 이 상자
사과를 내 입에 물리고 밤낮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결국, 내 숨통을 틀어막을
의뭉스런 빨간 속내를 알면서도 뜯고
이렇게 흉보는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마지못해 억지춘향으로 뜯는다
캥거루가 하마가 훨훨 새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내 입과 귀는 진공포장 된다
-2009년 학산문학 가을호-
-2009년 시향 겨울호 재수록-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