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나왔다는 노래 'Everybody Hurts'를 듣고 부르다보니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든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상처를 받고
울기도 하며 사는 삶...
세스 Seth에 의하면
우리가 그리도 두려워하는 죽음은
그 이행이 너무나 매끄러워
심지어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다네요.
자신의 몸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데
아무튼 그 과정이 아주 부드러운 모양입니다.
하지만
탄생은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탄생은
엄청난 충격이다!
그냥 짐작을 해봅니다.
욕조의 물이나 바닷물이나
물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올 때
우리는 밀도가 낮은 곳으로 나오는군요.
물보다 공기는 아주 가볍지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덜 빡빡한 상태로의 이전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물 밖에 있다가
물 속으로 뛰어들면
저항을 느끼지요.
특히나 온도가 아주 낮은 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충격을 받을 것이구요.
물 보다 훨씬 더 빡빡하고 무거운,
차갑기까지 한
'스프나 죽' 속에 뛰어드는 일은?
더 큰 충격을 줄 겁니다.
우리가 이 몸을 입기 이전에 있던 곳은
빛, 에너지로 존재하는 아주 자유롭고 가벼운 차원이었는데
이곳은 물질 세계입니다.
딱딱한 곳.
무거운 곳.
어두운 곳.
그러니 이런 세계로 뛰어드는 일은
충격... 맞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행,
태어남을
의식하지 못하는 영혼은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는 점차
이전에 대한 기억을 잃습니다.
드디어는
왜 태어났는지
왜 살아야하는지도
까맣게 잊구요.
원래 이곳에 오기 이전에
이전 차원에서
이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왔건만
목적이 있어 그런 청사진을 그렸었건만
그 사실조차
잊어버리다.
마치
시력을 잃듯
청력을 잃듯
깜깜해지다.
그리고는
더듬는 겁니다.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고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면서 상처를 만듭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사실은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자체가
상처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목적이 있어 자처하는 상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우선 근본적인 상처이고
이 삶 속에서
이리 저리 누군가로부터 냉정한 대접을 받은 것이 또 상처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죄책감으로 돌아오니 또 상처이고...
그래서 이 노래처럼
'모든 사람이 상처를 입는다'...
도대체 이런 맹랑한 삶이 왜 필요한고!
삶은
학교에 입학한 것이고
군대에 입대한 것이지요.
안전하고 포근한 곳을 떠난 것.
배울 것이 있어서.
할 일이 있어서.
배움과 일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더 이상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로.
그 때까지는?
울면서도 가야하는 것.
살아내는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오래 주저앉지 말고
길을 가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최선을 추구하며
살아내다.
태어남 자체가
충격이고
상처인 것에
너무 많이 슬퍼할 일이 아닌 것.
낙심할 일이 아닌 것.
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끝내면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뭔가를 얻지 않는가?
강해지고.
그처럼
상처를 피할 수 없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성장하고
피어나는 것.
곧 이 노래 'Everybody Hurts'를
불러볼 작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