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터넷 뉴스에는 유시민의 누이인 유시춘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1985년에 유시민이 쓴 '항소이유서'가 등장하면서 그 마지막을 장식한
네크라소프의 이런 시구도 소개되네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21년에 러시아에서 태어난 네크라소프는
시인이었고, 작가, 비평가, 출판인이었는데
고통 받는 러시아 농민에 대해 강한 연민을 가졌던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가 그런 감정들을 갖고 살았었겠지요?
슬픔
노여움.
왜?
조국을 사랑해서.
사랑의 반댓말이 미움이 아니라지요.
무관심.
미워서 노여워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사랑해서도 노여워한다.
이래서는 안되기에
저래서도 안되고.
옳지 않기에 목소리를 높이고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노여움을 느끼다.
그러다가 발견하는 거지요.
듣지 않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라기보다
알지 못해서 그리함을.
어리석어서
무지해서.
그래서 이제는 슬퍼지다.
슬픔, 노여움...사실 이런 감정이 없는 상태가 편안하겠지요?
그냥 고요한 호수 처럼 잔잔한 상태가 좋은 것.
그런 상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도 여러종류일 듯합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
앞을 내다볼 능력이 있는 사람도 그럴 수 있을 듯하고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생각이 없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도 그럴 수 있을 듯.
이도 저도 아닌 사람
뛰어난 안목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사람
무엇이 어찌되어야 하는 지 조금 아는 사람
관심이 있는 사람
애정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들볶는군요.
슬픔으로
노여움으로.
어지러운 나라
불평등, 불공정, 부정, 불의가 만연한 사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
이런 곳에서는 네크라소프가 옳다고 믿네요.
가슴 속에 사랑이 있다면
노여울 게다.
슬플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없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
저도 참 오랫동안
노여워하며 살았군요.
많이 슬퍼했구요.
세상이
나라가
사회가
조직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싶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구요.
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제 다시 배운 것이 있습니다.
결국 이 지구는
공부를 위해 오는 곳이라고.
그래서 수많은 경험이 펼쳐지는 곳.
불평등, 불공정, 부정, 불의
고통
이 모든 것은 영혼들 속에 있는 온갖 감정들을 끌어내는 방아쇠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드라마라고.
악역을 맡고 있는 배우도 있고
희생자역을 맡고 있는 배우도 있고.
모든 것이 드라마임을 잊고 몰입해서
온갖 느낌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그래서 배우고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해야지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각자는 자기 배움을 배우고 있음도 기억해야 하는 거지요.
알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기새 처럼 말입니다.
결국은 스스로가 깨고 나와야 하는 것.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악행, 잔인함
사람들이 경험하는 온갖 고통도
배움의 도구이고 학습현장이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배우는 학교입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나면
졸업하는 곳.
이 지구는 그런 공부를 위해 오는 곳.
배우고 나면
분장하고 의상을 걸쳤던 몸을 벗고
떠나왔던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
배우가 무대를 떠나 집에 돌아가
자기 본 삶을 살듯이 말입니다.
큰 그림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
덜 노엽고
덜 슬프데요.
그래도 잊어먹고
또 흥분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결국은 아무리 사랑해도
노여움, 슬픔을 벗어나야 맞을 겁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아기새를
너무 많이 측은해할 일이 아닌 것.
딱딱한 알껍질을 깨고 있는
수많은 아기새들이 살고 있는 지구.
이 속에 파묻히지만 말고
땅에서 올라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기도 해야할 일...
그럴 일입니다.
너무 많은 노여움과 슬픔에
짓눌리지 말 일.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귀절이네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