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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보르헤스를 읽고 2.

작성자leinon|작성시간03.11.24|조회수64 목록 댓글 0
...2이니 1도 있냐고 물으신다면, 올리기 싫다고 이야기하죠(웃음)

보르헤스를 읽고 2 -시를 어떻게 읽는가-

한 아이가 시를 읽었다. 그 시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번역이었다. 물론 한국이란 곳에서 그런 시를 읽을 기회는 거의 없다. 그것도 이런 어린 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선지 아이는 누나의 방, 책상 위에 펼쳐진 문제집 속에서 그 시를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그것을 '이해' 하지 못하고 단지 읽었다. -그리고 아이의 짧은 인생에서도 그 시를 더듬거리며 읽는 1분 49초의 시간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아이는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를 갔다. 학교의 후문과 아이의 집은 매우 가까웠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다리가 매우 짧았지만, 3분 48초면 집에 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학교 후문에서 집 대문까지를 기준으로)
아이는 우연히 하교길에 시의 제목을 느껴냈다. 그리고는 학교 정문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있어 정문으로의 통학은 무려 10분 54초나 걸리는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 날 아이의 통학 시간은 14분 31초가 걸렸다. 아이가 후문에서의 최고의 쾌락이었던 100원짜리 뽑기를 능가하는 즐거움을 발견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아이의 기준으로' 상당한 거금인 300원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컵 떡볶이, 아이는 그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분식집 앞은 아이들로 북적였으나 아주머니의 손은 매우 빨라서 아이는 단 2분 13초만에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아이는 처음 그 맵고도 달콤한 맛을 느꼈고, 그의 짧은 생의 최초의 취향으로 그 맛을 간직했다.
아이는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했고, 그 때문에 걷는 속도는 1분 4초 늦어졌다. 또한 아이는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못할 만큼 착했다. 그래서 쓰레기통을 찾느라 18초, 쓰레기통에 이쑤시개를 넣느라 1초, 컵을 넣느라 1초, 다시 길로 돌아오느라 10초의 시간을 보냈다.
이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난다. 두 달 하고 이틀, 3시간 27초 뒤. 아이가 떡볶이를 먹기 위해 처음으로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가 엉덩이에 5*9 제곱 센티미터 넓이의 멍이 생긴 이야기라거나, 3년하고도 1달 2일 1분 17초 뒤에 아이는 후문으로 통학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교통 사고를 당해, 0.876리터의 피를 흘리고 세상을 떠나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그는 그 순간 글과 하나가 되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는 즐거웠으니까 말이다.
Memento Mori,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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