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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숨 쉬고 맛보고 행복하라^^ 가평 양평 청평

작성자함박웃음꽃재완팍|작성시간12.03.13|조회수251 목록 댓글 0

웃고 숨 쉬고 맛보고 행복하라^^ 가평 양평 청평

 

숲은 고요했다. 가끔 들리는 바람소리와 길게 내뱉는 까마귀의 울음소리, 그리고 먼 데서 이따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말고는 인기척이라곤 도무지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멧돼지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깊은 숲 속이었으나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한 나무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은 달콤했고, 걸음걸음 밟고 선 흙은 폭신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고소한 잣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아마도 포근한 그 냄새와 느낌들이 무서움을 일게 하는 신경을 무디게 만들었던 듯싶다. 축령산 잣나무 숲 한가운데 서서 숲이 내뿜는 청렴하고 상쾌한 기운을 실컷 들이마셨다.

가평 축령산은 한국 최대의 잣나무 유림지다. 지금으로부터 약 80여년 전, 그러니까 1930년대 초 일제 강점기 시대에 심었던 수만 그루 잣나무가 평균 20m가 훌쩍 넘는 키 큰 고목이 되어 숲을 이뤘고, 1970년대 임업사업의 일환으로 잣나무 숲의 영역은 그 넓이를 조금씩 넓혀갔다. 축령산 잣나무 숲은 가평군 상면의 행현리와 임초리에 걸쳐 넓게 형성돼 있어 두 마을은 ‘잣 익는 마을’로 널리 알려졌다. 이 지역 잣나무 숲의 크기만 해도 1,000ha 이상이다. 1ha 당 보통 250~300여 그루의 잣나무가 자라고 있다니 그 수가 엄청나다. 가평에서 맛있는 잣이 생산되는 것은 잣 생산에 알맞은 기후 덕분이란다. 잣나무는 5월에 꽃을 피워 이듬해 8월에 열매가 익는다. 보통 9월부터 겨울이 오기 전인 11월까지 수확하는데 그 채취 방법이 만만치 않다. 20m 이상 가지 끝에 달린 솔방울을 따기 위해 사람이 직접 기다란 장대를 들고 나무 위에 올라야 한다. 이렇게 잣을 따는 사람들을 ‘사가리’라고 부르는데, 맨몸으로 나무 위에 올라가 작업하는 모양새가 여간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제 곧 해발 880m 잣나무 숲 속에 ‘잣 향기 푸른교실’도 문을 열 예정이다. 행현리 영양잣마을에서 숲길을 따라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숲 명상을 할 수 있는 휴게시설과 산책로, 체험시설을 갖춘 잣 향기 푸른 교실이 나타난다. 진행 중인 진입로 공사를 마치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데 아토피나 성인병 환자를 위한 ‘치유의 숲’도 함께 만들어진다. 잣나무 숲은 편백나무와 함께 삼림욕 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잣나무 숲 산책을 기분 좋게 마쳤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을 차례다. 행현리 영양잣마을에서 다양한 잣 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20~30명 단위의 단체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는 수없이 아침고요수목원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잣 음식점 거리로 향했다.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잣 두부 요릿집에 가려다가 당황스럽게도 얼마전 그곳이 닭갈비집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찾아낸 또다른 식당에서 잣떡갈비와 잣막국수를 청했는데 떡갈비는 고기를 다질 때 아예 잣을 잔뜩 넣어 모양을 만들어 구워냈고 막국수 역시 반죽에 잣을 갈아 넣어 그 고소함이 다른 지역의 그것과는 달랐다. 여기에 곁들인 가평 막걸리 한 잔. 유난히 고소하고 달달한 것은 잣 때문이 틀림없다. 종종 혀끝에 남는 작은 잣가루들이 그 증거다. 북면의 이곡리에 위치한 ‘명지쉼터가든’은 잣국수 제조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식당이다. 잣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고 진하고 구수한 잣 국물을 부어 잣국수를 완성한다. 콩국수와 느낌은 비슷하나 훨씬 고소하고 감칠맛 난다. 이 집의 잣죽도 꽤 맛있다고 소문났다.

가평에 잣나무 가득한 축령산이 있다면 양평에는 온갖 산나물이 나고 자라는 용문산이 있다. 양평은 가평에 비해 좀 더 다양한 식재료가 발달돼있다.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하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관리되면서 일찍이 발달한 친환경 농업으로 생산된 깨끗한 농산물과 산나물, 조선시대부터 널리 알려진 개군한우와 전통 장류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용문산 산나물이다. 용문산은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산채가 자라는데 최적의 조건을 가졌다. 계절마다 돌나물, 곰취, 원추리, 더덕, 미나리싹, 고비, 취나물 등 갖가지 산나물이 무럭무럭 자란다. 가을에 채취해 찬바람에 잘 말린 용문산 출신의 산나물들은 양평 5일장이나 용문산 관광지 내 길게 늘어선 나물 노점상에서 살 수 있다. 그리고 기차게 맛난 음식으로 변신해 식도락가의 혀를 놀리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산채비빔밥 따위가 가장 흔한 음식이다.

천년 전설을 가진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러가는 길, 용문산관광지 식당가 중 40년 역사를 가진 중앙식당에서 산채 요리를 맛본다. 직접 채취해 말린 고사리며 취나물, 곤드레나물 등으로 차려진 산채정식이 대표메뉴다. 참기름과 마늘을 많이 쓰고 식용유 대신 들기름으로 나물을 볶는 것이 맛의 비결. 여기에 나물을 무치는데 쓰는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 등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용문산 입구의 광이원은 보다 격식 있는 상차림을 고집한다. 20년 넘게 전통장재현에 매진하는 김광자 씨와 그 손맛을 물려받아 한식 전문가의 길로 들어선 딸이 함께 운영하는 이 집은 대부분의 식재료를 양평에선 난 것들로 쓰는 로컬푸드 전문점이다. 누릅나무와 은행, 옥수수 수염으로 끓여낸 차 한 잔을 시작으로 직접 담근 전통 장과 효소만으로 간하고 맛을 낸 다양한 음식이 차례로 상에 오른다. ‘뽁작장 정식’을 시키면 고소하게 지져낸 마전과 용문산 산채, 이 집 텃밭에서 길러낸 신선한 채소에 된장과 오디로 맛을 낸 드레싱이 어우러진 산채샐러드와 유기농 쌈채소, 은행과 잡곡을 넣은 솥 밥과 몇 가지 나물볶음, 연근장조림, 매실청으로 맛을 낸 동치미, 메주콩 볶음 등이 등장한다. ‘뽁작장’은 강된장과 비슷하나 조금 더 자작하게 국물이 남아 있는 된장찌개라 설명할 수 있다. 뽁작장을 밥위에 얹어 쓱쓱 비비고는 산채나물을 듬뿍 올려 먹거나 신선한 쌈채에 싸서 먹는 것이 이 집의 정석이다. 어느 것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찬이 없을 정도다. 맛은 혀가 느끼지만 좋은 식재료는 위장이 느낀다. 배부르게 먹어도 속이 편하고 산뜻하니 더없이 만족스럽다. 용문산 산행을 계획했다면 이 집에 미리 도시락을 부탁해도 좋겠다. 곰취와깻잎, 치커리 잎으로 한 입 먹기 좋게 싼 모둠 쌈밥 도시락과 취나물, 무나물, 고사리 등 계절마다 달라지는 용문산 산나물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 아이가 있다면 이 집에서 고추장 만들기나 뽁작장만들기 체험 등을 추천한다. 쌈밥도시락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물론, 직접 만들고 난 뒤에는 식사도 할 수 있다.

옥천냉면 역시 남한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오죽하면 옥천면에 ‘냉면마을’이 다 있겠는가.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출신의 피란민이 옥천리에 정착해 집에서 해 먹던 냉면을 팔기 시작했고, 근처 공군부대 군인들에 의해 옥천냉면의 맛이 소문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돼지고기 육수와 두툼하고 거친 메밀면으로 만든 옥천냉면은 다른 북한식 냉면과는 확실히 다른맛이다. 삼삼하면서도 살짝 감칠맛 도는 육수는 자극적인 냉면맛에 길들여진 사람에겐 다소 밋밋하거나 맹맹하다 느껴질 수도 있다. 비빔냉면도 마찬가지다. 참기름으로 고소한 향을 강조했지만 양념장 역시 다른 냉면에 비해 순한 편이다. 허나 계속 먹다 보면 자극적이지 않은 이 맛에 반해버리게 된다. 먹는 순간에는 잘 모르겠지만 뒤돌아서면 다시 생각나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된다고나할까. 하지만 여기에 꼭 함께 곁들여야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노릇노릇 지져낸 두툼한 두께의 고기완자다. 크게 한 입 떼어다가 냉면과 함께 먹으면 풍부한 맛이 두 배로 느껴진다. 옥천냉면마을의 터줏대감 격인 황해식당에서는 냉면과 함께 1년을 염장해 만든 냉면김치를 함께 낸다. 벌써 40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냉면을 만들어 오고 있다. 황해식당을 비롯한 이 지역 대부분의 냉면집이 4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20~30년은 훌쩍 넘은 나이다. 때문에 원조가 어느집인가를 따지는 일은 크게 의미 없다. 맛도 큰 차이가 없다. 따뜻하고 구수한 면을 삶은 국물로 속을 데우고 난 다음 차가운 냉면 한 그릇으로 다시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머리와 마음이 시원해지는 맛이다. 그것이 바로 한겨울에 냉면을 찾는 이유다. 가평에서 시작해 양평에서 마무리하는 이번 겨울여행의 종착지는 오렌지 빛 노을로 물든 두물머리다. 얼음 위를 배회하는 청둥오리 떼에게 주었던 시선은 파란 하늘을 순식간에 붉게 물들이는 석양에게 금세 빼앗겨버린다. 이제 ‘안녕’이라 말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두물머리에서 뻗어 나간 두 개의 강줄기를 따라 곳곳에 갤러리들이 들어섰다. 이리저리 휘고 굽은 유연한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과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지난 12월에 문을 연 양평군립미술관이다. 양평은 우리나라 지방 행정구역 중 인구 대비 예술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꼽힌다. 조금 과장하자면 남한강변에 들어선 주택 중 두세 집 걸러 한 집은 예술가가 사는 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물론, 예술가의 작업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것이 펜션이나 모텔 같은 숙박시설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양평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예술가들 특히 그중에서도 화가, 조각가 등 미술인들의 크나큰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졌단다. 바로 양평군립미술관 개관. 전시실, 세미나실, 어린이 체험 공간, 카페 등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진 양평군립미술관에서는 요즘, 개관을 기념해 ‘마법의 나라, 양평’전이 열리고 있다. ‘살아있는 양평’, ‘신나는 미술’, ‘인간과 자연’, ‘과학과 예술’, ‘키디체험’ 등 5가지 테마로 양평의 자연과 양평 사람들의 삶을 표현한 전시다. 양평의 원로작가를 포함해 국내외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 60여 명의 작품 117점을 통해 양평에서 태동한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신나는 미술’이나 ‘키디체험’이 흥미롭다. ‘신나는 미술’은 양평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한 생태계를 미술가들의 시각으로 표현해 전시한 공간이다. 1.5m 크기의 개구리(Rainbow, 금중기), 철사로 만든 거대한 상어(Shark,김창환), 불가사리 모양의 클레이 속에 들어있는 바비 인형의 얼굴들(Starfish of having a doll face, 다니엘경)을 비롯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백곰과 거대한 크기의 미키마우스 얼굴들로 쌓은 탑(변대용) 등의 작품들이 눈에 띈다. 김동호, 김일태, 오순미 작가등이 참여한 ‘키디체험’ 공간은 어린이 관객이 직접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전시를 본 뒤에는 크레파스나 색연필 같은 미술도구를 이용해 소감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재미도 있다. 일반 관람객들은 ‘과학과 예술’ 파트에 전시된, 로봇태권V(김석) 작품에 눈이 번쩍 뜨인다. 손으로 일일이 조각하고 색칠해 만든 3m가 넘는 거대한 목조각 작품은 집에 소장하고 싶을 만큼 탐난다. 연예인과 예술인을 넘나드는 낸시랭의 작품 터부요기니 시리즈도 재미있다. 개관전시가 이 정도 수준이니 다음 전시도 기대가 된다.

양평군립미술관에서 나와 양근대교를 지나 강하면 방향으로 가면 마나스아트센터와 닥터박갤러리, 갤러리 와, 바탕골예술관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마나스아트센터는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고 바탕골예술관은 2월 말까지 휴관이라 아쉽지만 건너뛰기로 하고 곧장 갤러리 와(瓦)로 간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사진전문 갤러리다. 사진가 김경희 씨가 6년 전 문을 연 이 갤러리는 먼저 기와를 전면에 사용한 독특한 질감의 외관으로 시선을 끈다. 현재 그동안 이곳에서 소개됐던 전시 작품 중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120여 점의 작품을 갤러리전관에서 만날 수 있다. 홍순태, 강운구, 김수남 등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대가들의 작품과 데니스 모리스, 펑진구, 베아트쿠에트 등 외국작가들을 비롯해 현재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김중만, 김홍희 작가 등 20인의 사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22세 청년 시절의 김중만이 찍은 클래스메이트의 누드사진과 에티오피아, 보스니아 등 내전과 분쟁을 앓고 있는 도시를 필름에 담아낸 성남호의 사진, 40년 동안 삼척의 탄광지역에 머물며 풍경을 담아낸 주동호의 사진 등은 유난히 마음에 남는다.

갤러리 와의 지척에 위치한 닥터박갤러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녹슨 암적색 코르텐건물은 흡사 미국 조각가인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철판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물처럼 보인다. 2006년 개관한 닥터박갤러리는 이름 그대로 내과의사인 박호길 씨의 평생 꿈이 담긴 복합문화 예술공간이다. 경북 의성의 산골 오지마을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1970년대 후반부터 근현대 미술품 콜렉션을 시작했다. 미술작품 수집을 ‘부’와 ‘자산’의 한 형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미술은 공적인 자산이며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신조를 바탕으로 콜렉션 했고 마침내 이 갤러리를 오픈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풍경 좋은 곳에 갤러리를 마련하고, 도시인들에게 질 높은 미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에 젊고 창의적인 젊은 미술인들을 후원하고 양성하는 것이 바로 닥터박갤러리의 설립 취지라고 한다. 닥터박갤러리의 전시는 굉장히 활력 있다. 특히 신진 예술가들의 도전적이고도 참신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3층 건물의 갤러리에는 눈을 시원하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진 카페와 아트숍, 라운지 그리고 두 개의 전시관이 있다. 아트숍 구경도 소소하니 재미나다. 보석과 도자기, 섬유공예, 판화 등 여러분야 작가들의 작품과 디자인 소품 등을 판매한다. 다만 어린이와 함께하는 나들이라면 미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시 내용과 수준을 알고 가는 편이 좋겠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입장료가 비싸다는 것.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어른 한명의 입장료가 1만 원이나 한다. 카페에서의 음료한 잔이 포함된 가격이긴 하지만 가족이 함께 몇 개의 갤러리를 둘러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남한강변 국도를 잠시 벗어나 단석리로 가면 ‘양평 숲속의 미술공원’이 나타난다. 원래 ‘C아트뮤지엄’ 이라는 이름의 사립미술관으로 2005년 문을 열었다가 지난해 가을 새롭게 단장하고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다시 오픈했다. 현재 기독교 조형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정관모 조각가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종교를 떠나 조각에 관심이 많다면 꼭 한 번 들러볼 만하다. 이곳은 실내 전시관보다는 천천히 산책하며 만나는 야외 작품들이 더 신선하다. 코르텐 스틸로 만든 22m 높이의 ‘예수얼굴상(정관모)’ 작품은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야외 공간 중 예수얼굴상이 있는 ‘지저스힐’은 미술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 수 있다. 꽤 높은 곳에 있어 전망 좋은 황금빛 대지 위에 수십 점의 조각 작품들이 서 있다. 지저스힐 뒤편 ‘약속의 땅’에는 20m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돌기둥 작품이 있다. 원형으로 둘러서 있는 12개의 대형 돌기둥 조각들은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을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새롭게 오픈하면서 준비했던 어린이 미술교육과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한 주말 목공예 교실은 겨울시즌이라 쉬고 있다. 미술공원이 위치한 곳이 워낙 외진 곳이라 다른 남한강변의 갤러리에 비해 대단히 한가롭다. 밤나무 가득 호젓한 숲 속 산책로도 있어 볕 좋은 날 찾는다면 더 괜찮을 듯싶다.

양수리에서 북한강 줄기를 따라 춘천방향 46번 국도를 달리면 가일미술관에 닿는다. 두 개의 쪽배가 서로 대칭해 맞붙은 모습의 본관 전시관과 세미나실을 겸한 공연장, 카페 등 4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2003년 개관 이래 국내 작가들뿐 아니라 터키와 태국, 동아시아지역 작가들과의 국제교류전을 포함해 50여 회가 넘는 굵직한 전시를 열었고,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서는 북한강의 멋진 경치를 배경으로 한 달에 한 번 재즈, 팝, 클래식, 마임, 1인극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 공연을 올리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전시 중인 기획전은 ‘가일미술관 소장품’전이다. 미술관 설립자인 건축가 강건국 씨가 지난 20여 년 간 모아 온 국내외 근현대 작품 300여 점 중 일부를 소개한다. 소장 작품은 살바도르 달리, 곽덕준의 작품을 비롯해 국내 작가 김기창, 송수남, 윤영자, 문신, 윤여걸 등의 작품과 국외 작가 마크 플레쳐(캐나다), 메우쟈크(프랑스) 등 한국과 외국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회화와 조각, 서예와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이번 소장품 전은 오는 3월 말까지 계속된다.

 

 

이 도시가 문득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 주저 말고 길을 나선다. 아름다운 자연과 시간 그리고 추억을 품은 양평과 가평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북한강과 남한강 줄기 따라 지나간 청춘의 아련했던 기억을 품은 간이역과 달달한 냄새 풍기는 유쾌한 예술이 반기는 곳. 그 길 위에서 수줍게 조우한 자연과 그 안에서 찾아낸 행복은 인생의 선물과도 같았다. 열정 가득한 우리네 인생처럼, 졌다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붉디붉은 더 뉴 제네시스 쿠페를 타고 떠난 휴식 같은 여행.

청량리에서 강릉과 안동을 잇는 중앙선 철로의 복선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소박한 추억을 간직한 간이역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간 그곳에서 만난 석불역과 구둔역, 판대역.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쓸쓸함과 허전함으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간이역 이야기.

강변을 물들이는 예술을 좇아 길을 떠난다. 북한강과 남한강변의 풍경을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바꾼 것은 단연 또렷한 성격을 지닌 갤러리들의 약진이다. 최근 문을 연 양평군립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갤러리에서 보내온 초대장에는 해 질 녘 황금빛으로 물든 강의 노래가 담겨 있다.

오래된 숲이 선뜻 내어준 세상에서 가장 고소한 열매와 식재료. 거기에 바람과 태양, 맑은 물, 우리의 손맛이 빚어낸 전통 장맛을 만나러 가는 길. 근사한 풍경으로 눈과 마음을 채운뒤 맛본 양평과 가평의 음식은 삶의 또 다른 위안이다. 침이 꼴깍 넘어가게 식욕을 돋우는 만찬 앞에서 행복지수 급상승.

 

 

 

 

목덜미에 와 닿는 햇볕이 참 따뜻한 어느 겨울날 오후, 판대역 앞에 서 있었다. 개울가 살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와 작게 재잘대는 새소리, 신나게 뛰노는 동네 꼬맹이들의 낭창한 웃음소리가 작고 오래된 역주변을 부유하고 있었다. 판대역이라. 낯선 이름 아니던가. 몇 해 전부터 곧 없어질까 서운한 마음에 부지런히 찾아다녔던 간이역 중 판대역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사람들이 한동안 관심 가졌던 간이역들은 청량리를 출발해 춘천으로 향하는 경춘선의 간이역들이었다.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던 화랑대역이나 경강역, 백양리역이나 김유정역 등 말이다. 중앙선인 판대역은 양평과 원주의 경계지점에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 무궁화호열차는 이곳 판대역을 지나 강릉으로 또는 안동으로 향했다. 1965년 처음 승객이 타고 내렸던 판대역은 지난 2008년 승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변경됐고 지난해 12월 20일 저녁 8시 8분, 안동으로 가는 무궁화 1609편 열차를 떠나보낸 뒤 문을 닫았다. 개울 건너편의 반듯하게 지은 신 역사로 모든 업무가 옮겨가며 판대역은 시간의 뒤편에 남겨지게 된 것이다.

네모난 건물 입구에 붙은 오래 돼 반질반질한 손잡이를 밀고 대합실 안으로 들어섰다. 격자무늬의 말간 유리창 너머로 겨울 해가 쏟아져 들어온 터라, 긴 시간 사람의 온기가 없었음에도 그곳의 공기는 그리 차갑지 않다. 서너평 되는 손바닥만 한 대합실에는 연두색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의자가 있었다. 그게 다였다. 동그란 시계가 붙었던 자리, 네모난 액자가 걸렸던 자리, 열차 시간표와 요금 안내판이 걸렸던 곳은 이제 거뭇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분주했을 오래전 어느때의 시간을 더듬고 있던 순간,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창 너머, 말간 얼굴로 반듯하게 서 있는 신 역사가 눈에들어왔고 곧게 뻗은 새로운 기찻길을 따라 몸집 긴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더는 기차를 맞을 수 없는 낡고 늙은 폐역사의 눈에는 너무나도 부러운 풍경이었을 게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쯤이든가, 중앙선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여행한 적이 있었다. 청춘의 시간을 낭만이라 여기며 떠났던 기차여행.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남한강과 경쟁하듯 나란히 달리며 더없이 근사한 풍경을 내보였고 유난히 구불구불한철로와 시시때때로 눈을 가려버리는 터널 덕에 꽤나 시시덕거리며 즐거워했더랬다. 지금은 양평을 지나는 중앙선의 굽었던 철로가 대부분 곧게 펴졌다. 몇 개의 역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크고 번듯한 현대식 건물로 재탄생했고, 몇 개의 역은 폐역사가 된 뒤 이따금 옛 기억을 찾는 여행자의 방문을 맞고 있다. 또 간혹은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의 손길 아래 카메라 든 여행자의 피사체가 되고 또 틈틈이 영화나 TV드라마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석불역과 매곡역 사이의 구둔역도 그중 하나다. 판대역에서 서쪽으로 길을 달려 양동역과 매곡역을 지나 구둔역으로 가는 길. 도무지 이런 곳에 기차역이 있을까 싶은 곳에 구둔역이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의 농가들 사이로 난 외길을 따라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불쑥 역이 나타났는데 그 모양새가 참으로 근사하다. 뾰족한 세모지붕을 가진 아담한 옛날식 건축물은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시골 간이역.

구둔역은 수리봉(해발 400m)과 고래산(542m) 자락에 둘러싸인 구둔마을의 이름에서 따왔다. 아홉 구(九), 진칠 둔(屯)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이 지역의 높은 산에 아홉 개의 진을 설치했던 것에서 유래한다. 구둔마을 한가운데 들어앉은 구둔역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법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용문산 일대에서 약초와 취나물, 두릅 등을 채취해 경동시장으로 팔러 나가는 노인들과 통학생들이 새벽부터 이곳을 찾았다. 게다가 양평에 장이 서는 날이면 장을 보러 가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단다. 하지만 구둔역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고향을 떠나고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이용객이 줄자 1996년 결국, 기차표를 팔지 않는 간이역이 됐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역사는 1940년 중앙선 양평~원주 구간을 개통하며 지어졌고 지난 2006년에는 보존가치가 인정돼 근대문화유산(제296호)으로 지정됐다. 대합실 출입구의 박공지붕하며 지붕 아래 덧댄 차양 등은 건물의 입체감과 아름다움을 더한다. 게다가 아직, 하루에 8차례 기차가 이곳에 선단다. 대합실에 켜져 있는 석유난로의 따뜻한 온기에 안도감이 든다. 기차를 기다리는 두어 명의 승객이 반갑다. 여느 간이역과 달리 지금도 두 명의 역무원이 하루 3교대를하며 역을 지키고 있는 것도 기쁘다. 하지만 그것들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오는 가을 쯤 덕소와 원주 사이의 중앙선 복선전철화공사가 완료되면 판대역이 그러했듯 구둔역은 새 철로와 새 역사에 기차를 내어줄 것이다. 그나마 언제라도 찾아오면 이 어여쁜 역사가 여행자를 맞아줄 것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때때로 겨울여행은 여행자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하늘이유난히 맑은 날의 오후는 더 그러하다. 오후 다섯 시를 채 넘기지 못하고 스러지기 시작한 햇빛은 그로 인해 빛나던 주위의 사물들을 순식간에 쓸쓸하고 안쓰럽게 만들어 버린다. 지평면 망미리의 석불역을 찾았을 때 그랬다. 석불역 가는 길은 구둔역보다 더 의뭉스럽다. 논두렁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 들어가야 역으로 갈 수 있는데다가 역사 주변으로 경계선 따위가 없어 자동차를 역사 안쪽에 대 놓을 수밖에 없다. 보통 기차역 광장은 역사 앞에 있는데, 이 역은 역사 안에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역사 중앙의 출입구 앞은 공간이 없는 낭떠러지다. 한마디로 대합실에서 문을 열고 역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까지 봤던 기차역 중 가장 이상하고 희한한 모습이 아닐까싶다. 1967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던 석불역은 2008년 무배치 간이역으로 변경됐고, 지난해 10월 이후 여객 취급이 중지됐다. 그리고 보통의 폐역사가 그러하듯 이제 곧 철거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판대역보다 더 작은 크기의 대합실에는 서너 명 쯤 앉을 수 있는 회색빛 나무의자가 있었고 벽에는 군데군데 글자가 떨어져 나간 운임표가 붙어 있었다. 더없이 쓸쓸하고도 묘한 분위기의 석불역을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지팡이를 짚은 노인 한 분과 마주쳤다. “이젠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노인은 느린 속도로 철로를 건넌다. 그의 발길을 눈으로 쫓으니 철로 옆 조그마한 민가 한채가 보인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노래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대개 겨울 날씨는 으르르하지만 한낮에 잠시라도 볕이 따뜻하다면 기차레일 위를 달려보는 체험을 하는 것도 좋겠다. 용문면사무소 인근 용문역과 원덕역 사이 폐철로를 이용한 3.2km 구간이 레일바이크 체험장으로 꾸며졌다. 철길 건널목과 터널, 시골마을과 얼음 덮인 개울을 지나는 왕복 6.4km의 코스를 다녀오는데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며 아침 9시부터 1시간 30분 간격으로 7회 운영된다. 겨울에도 주말이면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자전거 마니아라면 중앙선 자전거길 라이딩을 즐겨 봐도 좋다. 지난해 10월 양평을 지나는 중앙선 양정역에서 아신역까지 남한강 줄기 따라 뻗어 있는 18km가 조금 넘는 폐철로 구간이 자전거 도로로 변신했다. 낡았던 철교가 나무 데크 깔린 멋진 자전거 길로 변했고 어두컴컴했던 터널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단장했다. 몇 개의 운치 있는 간이역들을 둘러보면서 아련해진 마음을 상쾌한 겨울바람에 달래보는 것도 괜찮다. 때맞춰 보송보송한 눈이라도 내리면 더없이 멋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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