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인문과 시사

[[칼 럼]]항려(伉儷) / 이 숙 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작성자가량비|작성시간18.12.29|조회수29 목록 댓글 0
항려(伉儷)
이 숙 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번부인(樊夫人)과 유강(劉綱)은 부부 신선으로 자연재해를 물리치는 도술로 백성들에게 해마다 풍년을 안겨주었다. 한가할 때면 부부는 도술을 겨루는 시합을 하는데, 매번 아내 번씨가 이기는 것이다. 남편이 접시에 침을 뱉어 잉어를 만들면 아내는 침을 뱉어 수달을 만들어 잉어를 먹어버리는 식이다.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대적하면서 짝을 이루는 이런 유형의 부부를 항려(伉儷)라고 하는데, 고대 문헌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대적함 또는 대등함의 뜻을 가진 한자 항(伉)과 짝을 뜻하는 려(儷)가 결합한 용어 항려를 주석가들은 ‘대립과 통일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 했다. 항려는 여필종부니 삼종지도니 하는 일방향의 관계가 아니라 각자 서로의 의미가 되는 쌍방향의 관계다.

맞수가 되어 함께 노는 부부

  16세기 조선의 부부 미암과 덕봉도 경쟁과 협동을 반복하며 자신을 이루고 상대를 이루도록 하는 그런 사이였다. 담양의 송덕봉(1521~1578)과 해남의 유미암(1513~1577)은 1536년(중종 31)에 혼인하여 40여 년을 부부로 살았는데, 함께 지낸 날보다 떨어져 보낸 세월이 더 길었다.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된 남편의 20년 유배 생활로 그랬고, 해배 후의 10여 년도 담양과 서울로 떨어져 지낸 날이 많았다. 떨어져 살 때는 편지나 시문(詩文)으로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나누었고, 함께 지낼 때는 지난 밤 꿈 이야기와 장기(將棋)로 하루를 시작했다.

  공부에 속도가 붙은 남편은 아내에게 시를 보내며, 꽃이나 음악, 술 이런 것에 도통 흥미가 없고 오로지 책 속에서 지극한 즐거움(至樂)을 누리노라 자랑한다. 아내는, 달 아래 거문고 연주와 술기운에 호탕해지는 마음 그 큰 즐거움도 모른 채 “어째 책 속에만 빠져 있소?”라고 반격한다. 이들의 시는 대체로 남편의 시에 아내가 차운(次韻)하고, 아내의 시에 남편이 화답하는 방식의 대화이다. 송덕봉은 여성으로는 드물게 이름 외에 호와 자(字)를 지녔다. 특히 자 성중(成仲)은 유희춘의 자 인중(仁仲)에 조응하는 것으로 아버지 송준이 지은 것이다. 부부가 함께 ‘인(仁)을 이루라’는 주문이다.

  덕봉은 쌀 두 말을 내어 화공에게 그림을 부탁하고 도배장에게 틀을 짜게 하여 8첩 병풍을 만든다. 미암은 제사 때 남에게 병풍을 빌리러 가지 않아도 된다며 “부인의 지혜는 내 생각이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재상을 지내고 환갑을 넘긴 분이 내 병풍 하나 갖게 된 것에 기뻐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그깟 일에 지혜 운운하며 부인을 극찬하는 것도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찾고 평범한 가운데 감동을 주고받는 부부에게는 별것 아닌 것도 훌륭한 재료가 되었다.

지난밤 부인과 대화하며 내가 조금 실수를 하자 부인이 언짢아했는데, 조금 뒤에 풀렸다. 내가 사과했기 때문이다. (『미암일기』, 1571)
  궁중에서 내려준 배를 부인과 함께 먹었다. 맛이 상쾌하니 최고 품질인 것 같고 술도 너무 맛이 좋아 서로 경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미암일기』, 1572)

  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나 맛난 것을 먹으니 얼마나 즐거우냐며 서로 축하하기란 쉬운 듯하지만 사실 그 실천은 쉽지가 않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표현에 소홀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다. 한편 그들은 시(詩)를 주고받거나 장기를 두면서 힘을 겨루곤 한다. “부인은 백인걸 공이 장기 둘 때 궁(宮)을 먼저 단속한다는 말을 전해 듣더니 바로 실행했다. 이때 나는 차(車)를 먼저 떼고 두었으나 이기지 못해 포(包)만 떼었다.” 미암을 이기려는 덕봉의 필사적인 노력이 엿보인다.

일상의 행복을 함께 나누는 부부

  송덕봉은 박하게 베풀면서 두텁게 바라지는 않지만 합당한 요구는 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화가 잔뜩 난 덕봉이 남편에게 착석문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띄운다. 함께 보낸 시에서 “화락함이 세상에 둘도 없다 자랑치만 말고 나를 생각해 꼭 착석문을 읽어보라”고 한다. 친정아버지의 묘에 비석을 세우는데 남의 일 보듯 하는 남편의 행위를 따지는 내용이다. 그녀는 비석을 세워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해 홀로 근심하며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나같이 곤궁하여 생계마저 어려운 다른 오누이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친정 형제끼리 알아서 하라는 남편의 말에 분통을 터트렸다. 따지는 김에 덕봉은 내 아버지 상(喪)에 사위로서 상주 노릇 제대로 했냐, 나는 시어머니 장사와 제사에 유배 중인 당신 몫까지 마음과 힘을 다해 모신 건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겨우 사오십 말의 쌀이면 족할 것을, “이래서야 지음(知音)으로 평생을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요?” 서운함에서 시작된 글은 거의 협박조로 치닫는다. 이 부부가 사는 법을 미루어 보건대, 아내 덕봉의 소원은 당연히 이루어졌을 것이다.

  따질 것은 따지고 경쟁할 때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를 이루어주는 이런 관계를 상반상성(相反相成)이라고 한다. 『상서(尙書』를 교정하던 미암은 상(商)나라 고종이 부열을 재상에 임명하면서 한 말, “내가 술이나 단술을 만들 때 그대는 누룩과 엿기름이 되어 달라”(若作酒醴, 는 대목에서 얼이 어떤 물건인지 홍문관 사람 아무도 알지 못해 막혀버린다. 그래서 “부인에게 물어보니 ‘보리나 밀을 물에 담가 짚단으로 싸서 따듯하게 두면 발아를 하는데, 그것을 말려 빻아 가루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 나는 이 날 새벽에 아내와 동료가 되었다”고 썼다. 또 미암은 자신의 시에 아내 덕봉이 “직설적으로 작문하듯 시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평을 하자, 버리고 새로 짓기도 한다.

  한편 송덕봉은 남편의 벼슬이 자꾸 올라가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 예순이 넘은 나이니만큼 귀향하여 인생의 또 다른 맛을 즐기자는 뜻이었다. 남편을 향한 이런 기대가 꿈으로 나타나곤 한다. 덕봉이 꿈에서 몸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너무 높이 오르면 끝내는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날기를 그만두었다고 하자 미암은 “내 마음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한다. 점점 일체(一體)가 되어가는 그들, 덕봉은 해남의 옛터에 새집을 지어놓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올 남편에게 시를 띄운다. “당신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나란히 들어갑시다!”(『덕봉집』)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