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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학의 제이론

작성자소용돌이|작성시간20.01.07|조회수144 목록 댓글 0
총론


  풍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풍수학이라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한다. 흔히 '금계포란형'이니 '갈마음수형'이니 하는 말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물형론적(物形論的) 설명으로 학문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술법화된 풍수에 불과하다.
  또 기감론(氣感論)이라고 하여 이론적 바탕 없이 기감에 의지해 땅의 기를 느낌으로 잡는다는 사람도 있다. '터'의 저자 손석우씨 역시 자신을 신안(神眼)이라 부르며 풍수 이론을 공부한 적이 없고, 패철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땅 속을 훤히 들여다본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기감론은 땅의 길흉을 판단하는데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있어도 '풍수지리학'이란 학문적 면모를 갖춘 것은 아니다. 학문이라면 경전(經典)에 바탕을 두고 오랜 세월 전승, 발전되어와 이론적 체계를 갖춘 것에 국한된다. 또 그런 학문만이 후학들에게 전수되어 미래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 혼자 느끼는 기감은 그만의 판단일 뿐 객관적 설명은 불가능하고, 전달 방법도 없다.
  그 결과 현대 학문과의 접목도 어렵다. 풍수학은 자연과학적 학문으로, 자연 속에서 행해진 실증적 지식이(실제로 땅을 파보고, 또 좌향을 놓아 봄)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하게 축적되어야 하는데, 기감론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풍수학의 핵심은 생기가 응집된 혈(穴)을 찾고, 나아가 길한 양기를 얻어 인생의 번영을 꾀하려는 기술적 방법과 과정이 전부이고, 풍수사의 소임은 용(龍, 산줄기), 사(砂, 주변의 산들), 수(水,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 혈(입지한 터), 향(向, 양기의 선택)이란 논리적 바탕에 근거를 두고 음기와 양기의 좋고 흉함을 종합 판정하는 일이다.

  여기서 정통 풍수학의 논리적 바탕이며, 경전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전승된 학문은 형기론(形氣論)과 이기론(理氣論)이 있다. 두 학문 모두 땅의 길흉을 판단하는데 탁월한 논리가 있어 별개의 학파로 발전하였다. 형기론은 산세의 모양이나 형세 상의 아름다움을 사람의 눈으로 보아 혈을 찾음으로 서양에서는 'The Land Form School'라 부르고, 패철이란 도구를 이용해 혈을 찾고 향을 놓는 이기론은 'The Compass School'이라 부른다.


<사진 : 호수에 비친 산그림자>


  원리(물형론)


  물형론(物形論)은 먼저 산천의 겉 모양과 그 속에 내재된 정기(精氣)는 서로 통한다는 가설에 전제를 둔다. 예를 들어 화가 난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고, 간이 나쁜 사람은 눈에 황달 기가 보이듯이 땅 속에 간직된 기운에 따라 산천의 모양이 생겨났다고 본다.
  산세가 웅장하고 활달하면 땅 속의 기운도 왕성한 것이고, 산세가 밋밋하거나 굴곡없이 뻗었다면 그 속의 기운도 쇠약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보거나 잡을 수 없는 지기(地氣)가 담긴 산세를 사람, 짐승, 새 등의 모양에 빗대어 해석한 다음 지기가 뭉친 곳을 찾고, 나아가 그것의 길흉까지도 판단하는 방법론이다.

  예를 들면, 금계포란형, 와우형, 맹호출림형, 선인독서형, 행주형 등과 같이 땅의 형태를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에 빗대어 형태룰 설명하며, 그 내에서 핵심되는 장소를 혈로 간주한다. 그리고 금계포란형이라면 닭이 병아리를 부화시키듯이 후손이 크게 번창할 땅이라 설명하고, 와우형이라면 집 안이 두루 편안하고 재물이 풍성해진다고 말한다.

  『장경』에는, 〈땅은 사람, 호랑이, 뱀, 거북이 모양 등 무수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기는 이러한 여러 가지 모양을 이룬 땅을 흘러 다니면서 만물을 생성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土形氣行 物因以生)〉라 하였고, 『설심부』에도,〈물체의 유형으로 추측하고, 혈은 형체에 연유하여 취한다(物以類推 穴由形取)〉라 하여, 산천을 물형에 비유해 설명한 구절이 있다.


<사진 : '금계포란형'의 산세도>


 

혈찾기(물형론)


  그럼 을 찾으면서 산천의 형세를 왜 사람과 금수에 비유할까? 사람은 힘을 쓰거나 정신을 집중시키면, 몸의 한 부위가 긴장되면서 기가 모인다. 마찬가지로 혈 역시 자연의 기가 응집된 장소임으로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면 자연이 힘을 쓰거나 정신을 집중시킨 곳에 기가 뭉친다고 본다.

  그런데 식물이나 무생물은 기가 고르게 퍼져 한곳에 집중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기를 응집시킬 수 있는 동물에만 빗대어 산천의 형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할 점은, 자연이 어떤 형상이든지 기를 응집시키는 것은 아니며, 어떤 물형으로 정확히 비유할 수 있는 경우에만 혈이 맺는다고 본다. 만약 자연 형세가 헝클어졌거나 산만하여 어떤 물형에도 비유할 입장이 못된다면 혈이 없는 땅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산천을 물형에 비유하여 이름을 정하는 원칙은 안산의 모양을 중요하게 보고, 다음은 조산이나 주변의 산들을 본다. 이것은 물형에 상응하는 기상과 기운이 그 땅에 응집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혈처 주변의 산천 형세도 그 내재된 정기와 서로 교감을 이루어야 길격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물형이 제대로 잡히려면 그 물형에 소용되는 물건을 닮은 안산과 조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산천의 형세가 호랑이가 숲을 나오는 형국(猛虎出林形)이라 주장하려면 반드시 호랑이가 숲을 나올 수 있는 원인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은 안산이 조는 개(眠狗案)의 모양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를 잡아먹기 위해 호랑이가 숲에서 나온다는 당위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만약 주변에 개의 형상을 닮은 산이 없다면 맹호출림형이라 말할 수 없다.

  선인독서형이라면 안산이 책을 펼쳐놓은 모양이 필요하고, 생사출림형이라면 개구리 형태의 안산이 있어야 한다. 뱀이 숲을 나오는 이유는 개구리를 잡아먹기 위함이란 논리가 성립되고, 나아가 뱀이 숲을 나오려면 당연히 귀를 쫑긋 세운 채 위험에 대비할 것이고 혹은 혀를 계속 날름대며 먹이를 쫒을 것이기 때문에 귀나 입 부위에 정신이 집중되면서 기가 모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라면 자연 형세를 뱀의 모양으로 비유한 다음 뱀의 귀나 입에 해당되는 장소를 혈처로 간주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봉황귀소형(鳳凰歸巢形)에는 안산이 '오동나무 열매(桐實案)'을 닮은 경우도 해당되지만, 주변에 대나무가 많을 경우도 그렇게 부른다. 왜냐하면 봉황은 대나무 숲에서 잠을 자고, 오동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는 상상의 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이나 마을 이름에 봉황이 들어간 곳은 대개가 대나무가 많은 지역이거나 혹은 봉황의 상스런 기운이 그 땅에 머물기를 기원하여 지은 지명이다.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은 산 앞쪽에 연못이나 시냇물이 있는 경우고,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은 들판 가운데에 있는 숲이나 혹은 섬을 가리키고, 매화낙지형은 마치 꽃잎이 떨어져 흩어진 것처럼 주변 산들이 흩어진 형세이나, 매화 꽃잎이 5장인 관계로 주변에도 5개의 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경우에 그렇게 부른다. 안산의 형태에 따른 물형의 판단은 산천의 형세를 물형으로 판단했다면, 다음은 그 물형 내에서 핵심이 되는 곳인 혈을 정해야 한다. 혈를 정하는 원칙은 물형 중에서 힘을 쓴 곳이나, 긴장을 한 곳이나, 정신을 집중시킨 곳이다. 산천에 혈이 맺히려면 기가 응집되어야하니 기가 흩어지거나 빠진 곳은 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진 : 아름답게 연꽃이 피었다.>


 

한계(물형론)


  하지만 물형론은 산천 형세를 물형으로 감별해 낸 다음 그 물형의 핵심에 해당되는 장소를 정확히 집어내야 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고 초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혈을 잡을 수 있다.
  그럼으로 물형론를 신봉하는 풍수가 중에서도 물형론을 제대로 설명하는 풍수가를 만나기가 어렵다.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에 있는 황희 정승의 할아버지 묘를 두고 물형론자들이 하는 말들은 제각각이다.

  이곳의 형상을 물형론에선 '붉은 골짜기에 단풍이 드는 형국(紅谷丹楓形)이라 한다. 그런데 모 출판사에서 나온 지명 안내서와 S씨는 컨닝을 잘못하였는지 그만 '기러기 골짜기에 단풍이 드는 형국(鴻谷丹楓形)'이라 하였다. 그런데 기러기에 단풍이 들면 왜 명당이 되는지 하는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빠져 있다. 이것은 물형론이 체계화되고 논리적인 풍수 이론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부가 낚시를 드리운 형국이라면 낚시찌나 어부의 눈동자 부위가 혈일 것이다. 날아가는 새의 형국이라면 날개 부위에 혈이 있다. 왜냐하면 새는 날아다녀야 벌레를 잡아먹고, 날려면 날개 근육에 힘이 뭉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을 품은 새라면 사정이 다르다. 부화시키려면 발로 알을 계속 굴려야하고, 또 끝없이 주위를 살펴보아야하니 혈처는 달이 알을 품은 형세 중에서 다리나 눈 또는 귀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혈처를 각양각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와우형이라면 어디가 혈처인가? 풍수가 C씨는 황당하게도 따뜻하고 편안한 뱃속이라고 주장한다. 누운 소라면 혈처는 당연히 입이 되거나 꼬리가 되어야한다. 누워있다면 되새김질을 위해 입에 기가 모이고, 또 파리를 쫒기 위해 꼬리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견은 젓부위라는 것도 있다. 그런데 젓부위가 혈처가 되는 경우는 송아지가 젓을 빠는 형국일 때인데, 소는 선 채로 젓을 주니 와우형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누워서 새끼에게 젓을 주는 동물은 돼지이다. 돼지를 소와 착각한 결과이다.

  물형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길흉의 판단에서 설명이 제각각인 점이다. 당국의 형세 '야자형(也字形)'일 경우라면, 보통 후손 중에 문장가가 배출된다고 한다. 물론 조건이 있다. 혈 앞쪽에는 천(天)를 닮은 안산이 있고, 뒤쪽에는 호(乎)자를 닮은 주산이 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천자문의 첫글자가 천이고, 마지막이 야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제주 관사 부근은 지형이 개젖통 형국이어서 19대가 과거에 급제하고 24대에 걸쳐 태평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젖꼭지에 해당하는 터를 아무도 찾지 못했다.〉

  상기의 예에서 보듯이, 물형론은 왜 개젖통 자리가 풍수 이론에 맞추어 명당이 되는지와 또 어떤 이유로 19대에 걸쳐 급제를 하고 24대에 걸쳐 태평을 누리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명당에 대한 물형론의 설명은 대개가 이런 식이고, 또 물형을 판단할 때나 혈처의 판단에서 십인십색을 보여 풍수학을 미신으로까지 추락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하면 사람들이 물형론만을 연상하게 된 연유에는 산천 형세를 한 눈에 파악하여 단정할 수 있는 일종의 술법과도 같아 초보자라도 재미있게 이해하고, 그런 연유로 메스컴에 많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물형론은 풍수학의 본질적인 체계구조에는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비기나 비망록에 나타날 뿐이다.


<사진 : 황희 정승의 할아버지 묘>


 

  원리(형기론)


  <명당은 영락없는 여자의 성기이다. 이 세상에 여자의 자궁만큼 편하고 생명력 넘치는 곳은 없다. 혈자리는 자궁으로 통하는 문으로 곧 질이다. 혈자리를 안쪽에서 감싸고 있는 좌청룡 우백호가 소음순이고 밖에서 감싸고 있는 것이 대음순이다. 주산은 배꼽 밑에 툭 튀어나온 불두덩이고 그 아래 입수처가 음핵이다. 이처럼 여성의 성기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땅이 명당이다.〉

  형기론은 상기와 같이 패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지 사람의 눈으로 산세의 모양이나 형세 상의 아름다움을 유추하여 혈이 맺혀 있는 터를 찾는 방법론이다. 임신한 여자는 보통 여자보다 배가 부른 특징이 있듯이, 산야에 혈이 맺혀 있다면 분명히 혈이 없는 장소와 다른 유별난 특징이 있을 것이다.

  그 특징을 이론화시키고, 산천 형세를 눈이나 감(感)으로 보아 풍수이론에 꼭 맞는 장소를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초목으로 뒤덮인 산야에서 풍수 책에 그려진 그림과 똑같은 장소를 찾고자 한다면 이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혈이 맺힌 산자락(龍)은 3년에 걸쳐 찾고, 그 안에서 혈처는 10년에 걸쳐 찾는다.'라는 말까지 생겼다.

  일부 사람은 풍수 이론보다는 산을 보는 눈이 열려야(開眼) 혈을 찾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이 말은 형기론에 의지하고는 혈을 올바로 찾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형기론은 배산임수가 잘 된 마을이나 주택 등의 부지 선정에 공헌이 컸다.


<사진 : 충청도 괴산의 산세>



 

혈찾기(형기론)


  형기 풍수학에 혈을 찾는 방법은 간룡법(看龍法)과 장풍법(藏風法), 그리고 정혈법(定穴法)으로 나뉘어진다. 간룡법은 산세가 높고 웅장한 태조산에서 무성하게 뻗은 산줄기[龍脈]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주산으로 솟았는가와 용맥이 생기 왕성하게 흘러 뻗었는가를 중요하게 본다.
  용맥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이 줄기가 겹겹이 내려 뻗어야 하고[개장(開帳)], 개장의 중심을 뚫고 흘러야 하고[천심(穿心)], 벌의 허리와 학의 무릎처럼 잘록한 부분[과협(過峽)]이 있어야 산과 산 사이의 생기가 이어진 것으로 본다.

  장풍법은 혈에 응집된 생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혈의 뒤쪽에 있으며 혈을 맺게 하는 주산은 머리를 수그려 뒷바람을 막고, 좌우에는 청룡(靑龍), 백호(白虎)가 둘러쳐 바람을 가두되 두 끝은 혈을 포근히 감싸안은 형상이어야 좋고, 앞쪽에는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차상처럼 안산(案山)이 낮고도 편편해야 하고, 그 뒤로는 주인에게 예를 표하는 손님처럼 조산(朝山)이 수려해야 좋다.


  정혈법은 주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산줄기가 부모(父母)→태(胎, 산줄기가 솟아남)→식(息, 산줄기가 아래로 가라앉음)→잉(孕, 산이 솟아오름)→육(育, 혈장)의 모양새로 뻗되, 상하로 꿈틀거려야 생기가 충만하다. 혈이 속한 명당은 입수(入首), 좌우선익(左右蟬翼), 전순(氈脣)이 둘러싸 혈에 응집된 기맥의 손실을 막거나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살기를 방지해야 한다.
  혈 자체의 모양새도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의 형세 중에서 어느 하나가 되어야만 진혈이고, 흙 또한 오색이 붉고 노란빛이 감돌아야 좋다고 한다.


<사진 : 형기론의 정혈법>


 

 

한계(형기론)


  임금이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한 장님이 코끼리의 상아를 만지더니, "코끼리는 무우처럼 생겼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대답하였다. 대궐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어서 꼬리를 만져 본 사람은 "새끼줄과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나무토막 같다."고 대답했다. 코를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의 모습은 방아를 찧는 공이와 같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모두 코끼리를 이야기했으나, 아무도 코끼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말하지 못했다.

  만물은 음양의 기운이 교감과 대립을 통해 만들은 것으로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서로 화합하여야 생명은 태어나며 의존과 조화를 이루며 만물의 순행을 주관한다. 바위가 풍화작용을 거쳐 흙이 되듯이 산과 토양은 물과 바람의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산세를 논함에 있어 산은 음이요 바람과 물은 양이다.

  무릇 산수가 상배(相配)해야 음양이 있고, 음이 홀로는 생성하지 못하고 음양이 서로 합쳐져야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산과 물은 정(靜)하면 음이고, 동(動)하면 양이 되기 때문에 산수는 결국 음양이 각각 있다. 음이 오면 양이 맞이하고, 양이 오면 음이 맞이해야 하니 용혈도 상배해야 음양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

  그 결과 형기론은 '아기 못 낳는 여자가 밤마다 태몽 꿈을 꾼다.'는 격으로 양기인 물과 바람은 무시한 채 음기인 산의 형상만 보고 혈을 찾으니 음양이 조화를 이룬 혈을 찾기란 실로 어렵다. 따라서 산세의 모양을 사람의 눈으로 보아 혈처를 판단하는 형기론은 현장 풍수에서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있다.


 

원리(이기론)


  이기론은 산세의 모양이나 흐름을 눈으로 보아 혈을 찾는 형기론과 사뭇 다른 이론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바람과 물의 순환 궤도와 양을 패철(佩鐵)이란 도구를 이용해 측정한 다음 혈을 찾는 것이며, 나아가 좋은 좌향(坐向)까지 선택하는 방법론이다. 따라서 이기론은 바람과 물의 순환을 중시함으로써 득수론(得水論), 패철로 혈을 찾음으로써 패철론, 좌향을 중시함으로써 좌향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지형과 땅속의 지질은 그 주변을 흘러 다니는 바람과 물의 기계적· 화학적 풍화작용에 의해 변한다. 땅 속이 어느 곳은 바위이고 어느 곳은 고운 흙인 것은 땅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양기에 의해 변화된 결과이며 이것은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따라서 땅의 기운을 알려면 그 땅을 변화시킨 양기가 어느 방위에서 들어와 어느 방위로 빠지는가를 먼저 살핀다.

  양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으로 패철을 사용하여 판단하는데, 양기가 흘러 빠지는 방위로 산줄기가 뻗어 갔으면 땅 속은 흙일 가능성이 높고, 양기가 흘러 빠지는 방위로 역행하여 산줄기가 뻗어 오면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졌다. 호순신은 『지리신법(地理新法)』을 저술해 바람과 물의 흐름에 따라 땅의 기운이 12단계로 길흉이 나뉘어짐을 발견하여 12포태법(胞胎法)을 창안하였다. 따라서 이기론은 땅의 기운을 12단계로 구분하여 좋고 나쁨을 구분한다. 현장에 적용하면 그 적중률이 대단히 높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또 이기론은 좌향론이라 불릴 만큼 향을 중요시 여긴다. 왜냐하면 물에 의해 계곡이 V자형으로 파이거나, 동강처럼 구불구불한 물길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물에 의해 산자락이 잘리면서 곧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면 현재 둥글게 흐르던 지점은 우각호로 남고, 사막의 오아시스도 바람의 침식으로 모래가 파이면서 지하 수면이 밖으로 노출된 지역이다. 그만큼 바람의 힘은 대단하다. 사람을 비롯한 생물도 자연 순환에 동조한 삶을 살아야 건강한데, 생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양기의 순환과 양 중에서, 생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에 가장 적당하고도 알맞은 양의 양기를 취할 수 있는 선택된 방위가 바로 좌향이다.

  이기론의 좌향법은 청나라의 조정동(趙廷棟)에 의해 '88향법(向法)'으로 공식화되었다. 논리 체계가 분명하다. 이것은 혈처로 불어오는 양기가(바람) 시작되는 방위를 낱낱이 측정하여 그 양기의 순환 궤도와 세기(양)를 측정하고 그 중에서 생물체에게 가장 적당한 양기가 전달되는 방위를 선택하는 방법론이다. 흉한 방위에서 양기가 불어오면 피하고, 좋은 방위에서 불어오면 취한다. 주변 산들도 바람과 물에 의해 형태와 높낮이가 생긴 것이니, 양기를 잘 살피면 주변 산들이 혈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다. 이에 이기론은 양균송(楊筠松)이 말한 '가난을 구제하는 비법'으로, 나라의 도읍지나 마을을 정하는데 주로 쓰였다. 묘터를 잡는 데에 정확히 적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 9층 패철도>


 

 

역사적 고찰(이기론)


  이기론이 한국 풍수학에서 차지한 비중은 사뭇 대단하였다. 조선의 도읍지가 신도안에서 서울로 바뀌게 된 배경에도 이기론이 있었다. 조선을 창국한 이성계는 기운이 쇠약해진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도읍지를 옮기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권중화(權仲和)가 계룡산 아래의 신도안 터를 답사하고는 그곳의 지형을 그림으로 그려 바쳤다. 무학 대사와 함께 신도안을 직접 찾아간 이성계는 길지란 생각이 들어, 새로운 궁궐을 짖도록 하였다. 그런데 1년을 조금 넘게 공사를 했을 때 갑자기 하륜(河崙)이 공사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인데, 계룡산은 남쪽에 치우쳐서 동면·서면·북면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본인의 아버지를 장사지내면서 여러 풍수책을 열람했는데, 계룡산의 땅은 산은 건방(乾方)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으로 흘러가니, 이것은 송나라 호순신(胡舜申)에 따르면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하여 쇠패(衰敗)가 곧 닥치는 땅'임으로 도읍을 건설하는데 적당하지 못합니다.〉

  이성계는 곧 고려 왕조의 여러 릉의 길흉을 호순신의 이론에 맞추어 조사하라고 명령하였다. 명령에 따라 고려의 모든 릉이 들어선 터의 산세와 물이 오고감을 조사한 결과, 후손들의 길흉이 모두 딱 들어맞았다. 그러자 그 정확성에 크게 놀란 이성계는 심효생을 계룡산에 보내어 새 도읍의 공사를 그만두게 하고, 하륜에게는 서운관에 보관된 풍수책을 모두 열람하게 한 다음 새 도읍지를 찾아보도록 하였다. 그 결과로 한양이 조선의 도읍지로 선택되었다. 이 후로 호순신의 풍수론은 조선조를 걸쳐 지관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일괄되게 채택되었다.

  호순신의 이론에 따라, 상기의 글을 해석해 보면 신도안의 땅은 오행으로 수국(水局)이고, 이때 건해방(乾亥方)에서 산자락이 뻗어 왔으니 땅의 기운은 12포태상 목욕룡(沐浴龍)에 해당된다. 목욕룡의 땅기운은 수맥이 흐르거나 물이 가득 찬 땅으로 도읍지로는 적당치 못하다. 이런 곳에 묘를 쓴다면 봉분에는 이끼와 쑥대가 가득히 자라고, 집을 지으면 벽에 금이 가거나 지반이 침하되고 심하면 집이 쓰러지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또한 이기론 풍수는 단순히 묏자리를 잡는 방법에 그치지 않고 도읍지를 정하거나 일상 생활에서 집터를 정하거나 대문을 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었음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인조 9년에 권대진이란 사람이 반란을 계획했는데, 거사에 앞서 그는 지관으로 하여금 한양의 궁궐 터를 감정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궁궐은 풍수적으로 길지일 뿐만 아니라, 왕기(王氣)조차도 쇠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거사를 뒤로 미룬 채 계룡산으로 내려가 패철을 이용해 새 도읍지를 정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역모가 사전에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다.>

  숙종 16년에는 남서방에 대문을 새로 설치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대하여 <손방· 사방에 문을 내면 집이 이롭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나라의 도성은 사가(私家)의 집과 다르기는 하나, 지관에게 물어 그 방위를 알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진 : 신도안/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에서>



 

 

현대적 응용 가능성(이기론)


  이기론의 특징은 패철이란 도구를 사용하여 땅의 기운과 주변을 흘러 다니는 양기의 길흉을 판단하니, 형기론과 물형론에 비해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다. 어떤 장소든 사람에 따라 산천의 길흉에서 판단이 달라지는 경우는 없고, 초능력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배워서 이론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누가 놓아도 패철의 자침은 북쪽을 가리키니 결과는 당연히 같다. 그럼으로 현장과 실생활의 적용에서 서구 교육을 받은 젊은이에게 호감 얻을 수 있다. 또한 이기론은 지도를 이용하여 길지를 찾거나 현장을 모식화하여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에서도 탁월하다.

  1/25.000 혹은 1/5,000의 축척지도 상에서 등고선에 따라 용맥을 그리고, 도북(圖北)과 자북(磁北)을 일치시키면 바로 현장이 된다. 용맥의 뻗어 온 방위, 양기를 얻는 방위, 양기가 빠지는 방위, 주변 산이 위치한 방위가 모두 지도 내에서 세밀하게 측정되고, 나아가 혈처와 88향법에 맞는 좌향까지 판단할 수 있다. 또 땅의 기운이 쇠할 경우 좌향, 즉 양기의 방위를 잘 잡아 그 기운을 보충해주면 흉한 땅도 길지로 변화시켜 비보할 수 있다. 그럼으로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이기론은 땅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데 알맞은 학문이고, 또 현대의 조경, 건축, 도시계획학 등과 다방면에서 접목이 가능한 풍수론이다.

  필자는 그동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입지 환경을 풍수적 연구하면서, 이기 풍수학에 맞추어 조사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자세한 내용은 '풍수학의 현대적 접근'에서 다루고 있다.)

  1) 패철을 사용함으로써 노거수의 입지 환경을 방위학적으로 모델화 내지 도식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지도 상에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즉, 양기가 들고 빠지는 방위, 용맥이 뻗어 온 방위, 주변에 산들이 위치한 방위 등을 측정하여 수종별로 어떤 방위학적 환경에 입지한가를 도표나 지도를 이용해 분석 가능하다.

  2) 땅 속의 지질적 조건을 용맥의 방위에 따라 12등급으로 구분하니, 수종별로 어떤 지질에 입지하는가를 살필 수 있다. 만약 땅 속이 바위라면 물(음기)을 충분히 품지 못하여, 거목이 되어 물을 다량으로 필요로 할 때에 나무는 고사한다. 또 물이 질퍽거리면 뿌리가 멀리 뻗지 못한 채 주변에서 필요한 물을 섭취한다. 이때, 태풍이 불어오면 뿌리가 약해 나무는 쓰러지고 결국 거목으로 자라지 못한다. 따라서 노거수가 입지한 터는 땅 속이 곱고도 견밀한 흙의 상태가 대부분이다.

  3) 양기의 흐름을 살펴서 바람이 순행하는 곳인지 혹은 휘몰아쳐 생물이 살기 어려운 곳인지의 판단이 쉽고, 나아가 수종별로 양기의 흐름이 우선수(右旋水)에 혹은 좌선수(左旋水) 어느 곳에 잘 자라는지 분석할 수 있다. 우선수는 양기가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흘러가는 곳이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면 좌선수이다.

  4) 수관의 형성과 수세의 강약을 88향법에 맞추어 판단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도시화, 도로건설 등)가 나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나무의 수관은 양기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고, 또 수세 역시 양기의 흐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는 방위로 주가지가 뻗어 나간다. 보통은 주가지의 방위가 남향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장은 그렇지가 않다. 길한 양기를 취하는 방위로 수세가 집중되니, 북향도 매우 많다. 또 도로 건설로 양기의 방위가 바뀔 경우 어떤 영향이 미칠 가의 판단이 쉽다.

  5) 패철을 사용하니 연구자에 따라 연구, 분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없다. 객관성과 논리성을 함께 확보하여 연구 발표에서 다른 풍수 이론보다 우위를 점한다. 그럼으로 노거수의 입지 환경 연구에 이기 풍수학을 적용하였다.


<사진 : 연구자들이 지도위에 용맥을 그리고 패철을 올려놓고 보고 있다.>


 

올바른 공부 방법


  한국 풍수계에는 도사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다. 풍수학은 이론에도 정통해야 하고, 현장에서도 혈을 잡고 좌향을 놓는 방법도 터득해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학문이다.
  옛날의 풍수사는 풍수 서적을 많이 배우고 난 뒤에 선배 풍수가를 따라다니며 현장 지도를 받았다.전국의 모든 산을 답산하여 이론과 실제가 부합되는지 혹은 그러치 않은지를 터득하는 것은 기본에 속하였다.

  그런데 도사 행세만 하면 그런 과정이 생략되니,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스스로 육관 도사라 부른 사람은 오대산의 적멸보궁에서 기도를 드린 후 땅을 유리관 들여다보듯 훤하게 보는 신안(神眼)이 되었다하고, 국립묘지의 터를 잡은 J씨는 밤마다 조상이 꿈 속에 나타나 풍수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풍수사의 풍수 실력을 4단계로 구분하는데, 범안(凡眼, 俗眼)은 산수의 형세를 매우 상식적으로 이해하여 혈을 잡는 수준이고, 법안(法眼)은 풍수 이론에 맞추어 간룡과 장풍에 대한 높은 안목으로 혈을 잡고 또 수법에 의해 좌향을 놓는 수준이고, 도안(道眼)은 개안(開眼)을 하여 정법에만 의존하지 않고 언뜻 산세를 보아 진룡을 찾은 후에는 눈에 혈이 완연히 들어오는 수준이고, 신안(神眼)은 산매나 귀신의 힘을 빌려 대지를 척척 잡아내는 수준을 말한다. 도사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신안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풍수사가 되는 길은 험하고 어려웠다. 풍수학에 능통한 사람을 보통 지관(地官)이라 부르는데, 지관이란 음양과라는 시험에 합격한 관리를 지칭하던 명칭이다. 지관이 되려면 『경국대전』에 규정된 지리학에도 능통해야 되었다. 음양과의 시험과목에 일괄되게 채택된 풍수서는 『청오경(靑烏經)』,『장경』, 『호순신(胡舜申)』, 『명산론(名山論)』등이다. 특히 『청오경』과 『장경』은 책을 보지 않고 돌아서서 외워야 했을 정도로[배강(背講)] 중요시 여겼다.

  그럼으로 지관은 무엇보다 한문에 능통해야 하고, 또 선배 풍수사를 따라 명산대천을 답산해야 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평민이나 글을 모르는 무당· 점쟁이는 지관이 되기가 불가능하였다. 그 결과 조선의 풍수사는 대개가 승려였거나 양반 혹은 중인 계층에서 학식이 뛰어난 사람이 담당하였고, 그래서 '양반'으로 대우받았다. 그리고 지관은 왕릉이 들어설 터를 정하던 임시직 관리로 풍수 실력이 나라에서 으뜸이었다. 따라서 퇴임 후에도 그대로 관직명을 붙여 예우를 해주었다.



<사진 : 지도에서 패철로 이론에 맞추어 잡은 '터'에 찾아가 지도와 현장을 대조해보고 있다. 중간에 보고 있는 것은 패철. 패철을 손에 올려놓고 보면 정확하게 볼 수 없으므로 패철을 올려놓고 보는 도구를 활용한다.>

 

 

풍수의 계승실태

  우리 나라 풍수는 도제 관계(徒弟關係)로 전승되었다. 스승 풍수가의 정신적, 기술적 술법을 이어받고 또 그 방식대로 후학에 전수함으로써 인간적인 교류에 의하여 계승된 것이다. 따라서 어느 풍수가가 어떤 술법의 법통을 계승한 유파인지를 알려면 어떤 스승에게서 술법을 전수 받았는지를 보면 된다. 물론 게중에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그저 심오한 풍수지리의 이치만을 터득하는데 생애를 바친 이인(異人)도 있다. 일부 풍수가들은 자신만이 정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유파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니 따르지 말라는 자기 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명 나라의 개국 공신인 유기(劉基)가 천하를 구경 다닐 때이다. 옛 촉한 땅에서 제갈량의 묘에 들렸더니 뒤쪽에 제왕지지의 큰 명당이 있는데도 제갈량은 그것도 모른 채 평범한 자리에 묘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유기는 제갈량은 평소 생각대로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배를 마치고서 일어서려는데 무릎이 땅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파 보니, '충신은 죽어서도 제왕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忠臣不離郡王側)'라는 글이 나왔다. '어찌 내가 풍수설을 모르겠는가? 죽어서도 제왕을 모시기 위해 이곳에 묻혔음을 알라.'는 뜻이었다. 유기는 감탄하며, '역사가 이어지는 한 제갈량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前無後無諸葛武候.)'라고 말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술법이나 술수가 아닌 정통 풍수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습득하는 방법은 위서가 아닌 자료를 충분히 접해야 하고, 이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정통을 이어받은 선지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현장을 많이 답사하는 길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 어떤 대가가 주어지기를 바란다면 좋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신안이 열렸다며 세상을 현혹하고 돌아다니면 분명히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의 인생 역시 자기 것처럼 귀하고 값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풍수는 추종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문이다. 누구나 원리를 공감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학인을 필요로 할 뿐이다.


<사진 : 대동풍수지리학회의 '고급심화연구반'에서 초청강의를 하고 있다.>


 

 

 

지관의 자질

  풍수 격언에 '길지를 구하려면 반드시 양사(良師)를 구하라. 길지를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양사 얻기가 어렵다. 양사를 구하면 길지 구하기가 쉽고, 양사를 얻지 못하면 눈 아래 길지가 있어도 얻을 수 없다. 혹 얻어도 옳은 혈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법(葬法)을 어기기 쉽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의사가 오진을 하면 한 사람이 생명을 잃고, 지사가 오판을 하면 한 가문이 멸족을 당한다고 한다.



  『설심부』는 옳은 풍수사가 되는 길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지리를 배우려면 첫째 명사를 만나 전수를 받아야 하고(明師傳授), 둘째 마음이 지혜롭고 정교하여야 하고(心靈智巧), 셋째 선인들이 점혈한 자취를 많이 보아야 하고(多看山跡), 넷째 좋은 서적을 많이 읽어 이치에 밝아야 하고(讀書明理), 다섯째 전적으로 뜻을 모아 풍수 공부에 정진해야 하고(專心致志), 여섯째 마음이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心術端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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