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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타]]대신 설계한 인생 / 안정효

작성자다반사|작성시간20.01.07|조회수60 목록 댓글 0

< 대신 설계한 인생 >

  나는 쌍둥이 딸 미란이와 소근이가 자라서 낚시꾼과 결혼할 확률이 10퍼센트 쯤 되리라는 계산을 했었다. 내가 처음 (바다)낚시를 시작했던 1970년대 어느 신문에 우리나라의 낚시 인구가 3백만 가량 된다는 통계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충청도 음성으로 출조를 나갔을 때, 철수를 하느라고 대를 거두다가 저수지 둑을 따라 나란히 걸어가는 다정한 노부부를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간단히 꾸린 작은 가방을 짊어지고 앞장을 섰으며, 할머니는 살림망을 들고 두어 걸음 뒤따랐다. 나란히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였던지, 나는 소근이와 미란이에게 낚시를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딸들에게 낚시를 가르치려던 까닭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에는 일요일이면 아내를 버려두고 낚시꾼 남편 혼자 휑하니 낚시를 가는 경우가 많아서 ‘낚시과부’와 ‘일요과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낚시라고 하면 여자들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지금까지도 웬만한 낚시터에 가면 여자들이 ‘화장실 문제’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은 ‘혼자만 놀러 다니면서 빨랫감만 산더미처럼 만들어내는’ 낚시꾼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기가 보통이었으며, 동행은 고사하고 ‘낚시 취미’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려는 노력조차 별로 하지 않았다. 언젠가 삼봉지로 버스 출조를 했을 때, 남편을 따라 처음 조행에 나선 젊은 여성이 나더러 “그렇게 낚시를 자주 가면 집에서 뭐라고 그러지 않아요?”라면서, ‘잔소리’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딸들에게 낚시에 대한 취미를 키워주어, 혹시 낚시꾼과 결혼하더라도 매주일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음성의 노부부처럼 다정하게 같이 늙어가며 해로하도록 만들어 줘야 되겠다는 작정을 했다. 거기에서 나아가 내가 늙은 다음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편히 낚시를 다니는 모습을 덤으로 상상하기도 했지만….
  이때부터 나는 기회만 나면 아이들을 낚시에 데리고 다녔다. 저수지와 수로의 붕어낚시는 물론이요, 썰매를 만들어 주면서까지 경포대와 부곡 등지로 얼음낚시를 나갔고, 덕적도 우럭 배낚시에서부터 제주도 함덕 보리멸 원투낚시에 이르기까지, 위험한 갯바위만 빼놓고는 온갖 낚시 경험을 두루 시켰다. 그러면 저절로 낚시를 즐기게 되리라는 속셈에서였다.
  두 딸을 위해서 내가 비밀리에 수립한 인생설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솔직하게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으며, 내 전략은 몇 년 동안 순조롭게 추진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미란이와 소근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유난히도 날씨가 매섭던 어느 토요일 밤, 내일 새벽에 풍전저수지로 얼음낚시를 가려고 한참 열심히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가 나한테 드디어 한 마디 충고를 했다. 이렇게 추운 날 왜 애들은 빙판으로 끌고 나가 고생을 시키려 하느냐고. 애들이 워낙 순해서 말을 잘 듣다 보니, 아빠가 가자니까 무작정 따라 다니기는 하지만, 미란이와 소근이가 무슨 재미로 낚시를 하겠느냐고. 너는 좋아서 낚시를 다니는지 모르지만, 아이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리라고….
  그때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강요하지 않는 아버지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어차피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을 질만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생긴다고 나는 굳게 믿었다. 퇴폐 연예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마약을 하는 정도의 나쁜 짓만 아니라면 자식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과 행동을 부모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잘못된 길만 아니라면 자식이 원하는 어떤 길이라도 가도록 허락해야 하고, 자식이 하지 않으려는 일과 행동 또한 부모가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터라, 나는 본의가 아니었던 속박으로부터 아이들을 당장 풀어주기로 작정했다. 낚시꾼 사위를 예상하면서 두 딸을 위해 내가 대신 수립했던 작전이 예비역 해병 대령의 까치전쟁이나 마찬가지로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신론자이면서도 수녀가 되겠다는 소근이의 소망에 일언반구 반대를 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자식의 인생설계에 간섭하지 않기로 한 원칙에 따라서였다. 그래서 딸 하나는 도미니꼬 수녀회 소속으로 요즈음 로마의 교황청 학교에서 성서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낚시꾼이건 아니건 작은 사위가 나에게 생길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머지 딸 미란이도 독일에서 9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다가 박사가 되어 얼마 전 30대 중반이 가까운 나이로 귀국하기는 했지만, 집안에서 결혼 얘기는 거론도 거의 되지 않고, 이 아이 역시 혼자살기의 길을 갈 눈치이다.
  대리 운전을 해 줄 낚시꾼 사위에 관한 꿈은 이렇듯 영원히 사라졌고, 나는 아직도 내 손으로 차를 몰고 석모도로 찾아가고는 한다.

<혼자 틀린 진리>

  나의 두 딸은 비록 취미로 삼지는 못한 채로 ‘은퇴’를 하고 말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체험을 했던 터라 낚시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의 상식은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은광여고를 다니던 어느 날, 공부시간에 여선생이 학생들에게 “낚시에 사용되는 미끼의 종류로는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서는 고작 지렁이와 떡밥이라는 대답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소근이가 손을 들고는, “원자탄요!”라고 대답했다. 교실이 떠나갈 듯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낚시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학생들은 물론이요, 여선생 역시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붕어를 때려잡는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한 집단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정확한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서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는, 이렇게 진리를 아는 한 사람이 알지 못하는 다수로부터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한다.
  ‘원자탄’이란-, 낚시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히 소개하자면, 깻묵 따위의 식물성 먹이를 배합한 분말 미끼로서, 떡밥처럼 반죽을 해서 사용한다. 어느 저수지에서 누군가 잉어를 잡기 위해 이 미끼를 야구공만하게 뭉쳐서 자꾸 쏠채로 던져대니까, 고요한 어둠 속에서 저수지 한가운데에 떨어지는 ‘첨버덩’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어떤 사람이 “어디 원자탄이라도 떨어졌나”라고 한 농담이 상표명으로 정착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전설을 알지 못하고 ‘원자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여학생들로서는, 훗날 수녀가 될 소근이의 정답을 짓궂은 농담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이것이 민주(주의)적인 다수결 원칙이 자칫 저지르기 쉬운 오류이다. 한두 명을 제외한 학급 전체가 원자탄은 미끼가 아니라고 믿거나 주장하면, 그것은 적어도 여학교의 한 교실이라는 제한된 사회 안에서는 미끼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패거리를 지어 다수파가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 제도 및 체제로서,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옳고 훌륭한 진리는 아닌 경우도 생겨난다는 제2의 진리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적인 판결의 대표적인 오류는 성경에서도 발견된다. 대한성서공회에서 펴낸 가톨릭용 공동번역 『성서』에서 마르코 15장 6절부터 15절까지를 찾아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명절 때마다 총독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그 때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던 폭도들 가운데 바라빠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중은 빌라도에게 몰려 가서 전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유다인의 왕을 놓아 달라는 것이냐?”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대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한 나머지 자기에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빌라도의 말을 들은 대사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되었다.
  빌라도는 다시 군중에게 “그러면 너희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소리 질렀다. 빌라도가 “도대체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놓아 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주었다.

  군중이 바라빠를 선택하여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과정이 다수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알고 보면 군중은 대제사장들에게 선동(이용)을 당한 셈이고, 사실은 소수(제사장들)의 농간이 결정인자(決定因子) 노릇을 했다. 이런 식으로 말없는 다수의 침묵은 직무유기이며, 세상은 소수 극렬분자들의 폭력에 휘말린다.
  대부분 정치가들은 우매한 군중을 선동하여 권력을 장악하고는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한다. 우매하건 아니건 군중은 분명히 다수이고, 아무리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았다”고 자부하더라도 대통령은 한 사람이지, 군중이 아니다. 그것은 대통령을 뽑은 ‘우리 손(다수)’이 ‘내 손(개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수결이 꼭 진리는 아닌 까닭은 군중의 상식이 소수의 지혜를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적인 사회라고 하더라도, 지도층과 부유층과 지식층은 전체 인구에서 5퍼센트를 넘지 못하는 소수로 이루어진다.

<까마귀와 삼식이의 우화>

  여름 내내 예비역 해병 대령을 괴롭히며 깍깍거리던 울음소리가 별로 듣기에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까치를 좋은 소식이나 반가운 손님과 연결 지어 좋은새(吉鳥)라고 생각했던 까닭은, 모양이 까마귀와 똑같으면서도 하얀 무늬가 보기에 좋았기 때문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양은 같아도 띠나 무늬 하나가 더 들어 있음으로 해서 사물의 인상이 얼마나 달라지던가.
  ‘호박에 줄을 그었다고 해서 수박이 되느냐?’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 별로 정확하거나 논리적인 비유는 아니지만, 이것 역시 본질은 같더라도 겉모양이 다름으로 해서 인간의 인식과 가치관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진실은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런 경우 흔히 수박에서 중요한 요소는 달거나 시원한 ‘맛’이 아니라 ‘줄’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줄무늬의 가치는 다람쥐와 쥐를 비교해 보면 훨씬 더 분명해진다. 물론 쥐는 오징어 다리처럼 흉칙한 꼬리가 달렸고, 다람쥐는 대조적으로 꼬리가 탐스럽고 예쁘지만, 두 동물은 같은 설치류에다 크기가 비슷하여 자세히 뜯어보면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람쥐를 한없이 귀여워해서 쳇바퀴를 굴리라고 통 속에 가둬놓고 괴롭히면서까지 키우고 싶어 하는 반면, 쥐는 보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기겁이다.
  이런 일종의 착시(錯視)는 한 구석이 예뻐 보이면 전체가 모두 예뻐 보이거나, 역으로 한 번 미워지면 하는 짓마다 모두 미워 보이는 현상에서 비롯된다.
  좋거나 나빠 보이는 인상은 남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은 예쁜 여자와 인상이 좋은 여자를 구분한다. 그리고 인형처럼 무작정 예쁘기만 한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리 조형과 대칭이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고 해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생겨나기가 쉽다. 시각적인 완벽함만으로는 무엇인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떤 한 가지 면모, 예를 들어 서글서글한 성격이나 다정한 마음을 연상시키는 어떤 특이한 양상을 한 가지라도 두드러지게 갖춘 여자라면, 웬만큼 모자라는 다른 면모가 모두 가려져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구석이 예쁘기는 하지만 어딘가 분명히 모자라는 구석이 숨어 있을 듯한 여자보다는, 몇 군데 모자라는 구석이 분명히 보이는데도 개성이 두드러지거나 인상이 좋은 여자를 반려자로서 선호한다.
  남자의 경우에도 보기에만 좋은 ‘미남’보다, 평범한 얼굴이더라도 성실하거나 믿음직한 사람이 훨씬 더 좋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제 눈의 안경’이니 ‘짚신도 짝이 있다’느니 하는 말이 생겨난 모양이다.
  좀 심한 비유를 들자면, 사람들은 삼식이가 그렇게 흉하고 못생겼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생선은 맛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사람들은 민어도 가시가 많기는 하지만 맛 때문에 좋아한다. 쥐치 또한 처음에는 너무 흉칙하게 생겼다고 해서 그물에 걸려 올라오기만 하면 어부들이 모두 버리던 물고기였다. 하지만 포로 가공하게 되면서부터는 수많은 사람들의 술안줏감으로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으며, 낚시를 할 때도 꼭 감생이를 닮은 그 손맛으로 인해서 쥐치는 가끔 꾼들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쥐치를 흉칙하게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모양의 열대어를 보고는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쥐치나 까치처럼 실체는 그대로이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아 가치가 달라진 사물로는 골동품으로 격상된 폐품(쓰레기)도 꼽힌다. 녹슬었다고 내다 버린 다리미와 깨진 맷돌에서부터, 때 묻은 장롱과 투박한 뒤주, 그리고 낡은 비녀와 찌그러진 골무 따위가 이제는 하나같이 값진 민속품으로 재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까마귀 또한 모양이 비슷한 까치나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켰다. 머리가 나쁜 ‘새머리’ 사람들을 두고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서양에서는 까마귀를 영특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며, 시커멓고 불길한 색깔 때문에 에드거 앨런 포우의 시나 공포영화를 위시하여 많은 문학 및 영상 예술작품에서 불길한 존재로 등장하기가 보통이다.
  하지만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는 엉뚱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갑자기 달라져 이상한 방면에서 눈부신 각광을 받았고, 정력에 좋기만 하다면 온갖 혐오식품을 모조리 찾아 먹는 남자들이 너도나도 까마귀 고기를 먹으러 몰려다녔으며, 그래서 결국 까마귀는 멸종 위기를 맞아 요즈음 한국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정력 증진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사람들 역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심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나에게 그것이 정말로 어울리는지 여부는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모조리 먹기부터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곰발바닥과 코브라탕만 골라서 먹은 덕택에 건강과 장수를 누렸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시골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매주일 조용히 낚시를 하는 사람이 훨씬 더 건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보양족이 무작정 그토록 열심히 잡아먹은 까마귀는 까치만큼 밖에 ‘효험’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서 ‘땅에서는 산삼을 꼽고, 바다에서는 해삼을 꼽고, 하늘에서는 갈가마귀를 삼(蔘)으로 꼽는다’고 한 말을, 갈가마귀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름만 비슷한 까마귀를 대신 마구 잡아먹어 멸종을 시켜버린 것이다. 갈가마귀가 까마귀로 둔갑한 사건은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을 만든 경우가 되겠는데, 이것 또한 군중의 우매함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슬픈 희극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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