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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타]]마오리족

작성자가량비|작성시간20.01.07|조회수610 목록 댓글 0

마오리족

 

 

 

 





 

마오리족(Māori)은 폴리네시아 동부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질랜드의 원주민이다. 마오리어를 사용하며 토착 종교를 믿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보리진이 학살당한 것이나 티즈매니아 원주민이 사냥놀이의 명분으로 백인들에게 멸족당한 것과는 달리,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은 와이탕이 조약으로 백인(파케하)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현재 뉴질랜드 정부에서도 마오리적 전통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마오리족의 이름에는 이상한 것이 많은데, 심지어 남자 이름이 두번 월경한 어린 여자도 있다. 이 사람들은 이름 뜻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마오리족은 폴리네시아의 타히티 섬 부근에 살던 종족이다. 이들은 모아와 비슷한 타조를 잡아먹고 살아 '타조 사냥꾼' 이라고도 불렸다. 마오리 족은 10세기경 카누를 타고 이곳으로 건너왔는데, 이때 쿠마라, 감자, 우무, 조롱박 등을 가지고 왔다. 마오리 족은 대부분 북섬의 북반부에 정착하여 땅을 파는 막대기와 호미 비슷한 삽으로 고구마를 재배하며 생활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부족으로 나뉘어 추장을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부족 간의 전쟁을 되풀이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백인들이 들어온 후 마오리 족은 백인들과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을 맺어 공존하게 되었다.

 

마오리족은 조각, 직물, 음악, 무용 등에서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특히 목공예는 다른 폴리네시아인들보다 뛰어나다. 마오리족은 남자는 목각을 하고 여자는 수직 예술과 길쌈을 하였다. 이들은 집회소의 기둥이나 벽에 독특한 나선 무늬와 이상한 표정의 얼굴들을 조각하고, 무기, 카누, 일상용품 등에도 조각을 한다. 지금은 공예학교를 세워 전통기법을 전승하고 있다.

 

괴팍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마오리족은 백인 이주민과 투쟁도 하였으나, 지금은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며 백인과 융화하여 살고 있다.

 

 

마오리족의 정체성 문제

 

 

뉴질랜드 정부가 존중하고 발전시킨 마오리족 전통문화는 관광용일 뿐, 뉴질랜드 마오리족들은 전통문화를 상실했다. 마오리족의 80%가 도시에서 살고 있으며, 교육수준이 낮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민족에 대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많은 마오리족 사람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문제로 빠져 들기도 하고 폭력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래서 백인들에게 빼앗긴 토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나 마오리족의 권익을 향상해 달라는 시위나 청원 등으로 마오리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마오리족 사이에서 늘고 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원주민. 흔히 마오리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오리어로 māori'보통의', '일반적인'이라는 형용사이며 자신들은 스스로를 탕아타 훼누아(Tangata whenua)라고 칭한다. '땅의 사람'이란 뜻. 한국사람들에게는 보통 코와 코를 비비는 인사법인 '홍이'(hongi)와 박력있는 전투춤인 마오리 하카(haka)로 잘 알려져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마오리족은 혼혈을 포함해서 70만명 가량이고 취업으로 호주로 이민간 마오리족까지 합하면 90만명에 육박한다.

 

마오리족이 뉴질랜드에 정착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10~11세기 경이다. 이들이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오리족의 정착에 대해서는 구전으로 전해내려오는 신화와 전설들을 통해서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원래 거주하던 곳은 하와이키(hawaiki)라는 섬이었다.[* 하와이키와 비슷한 전설은 폴리네시아 동부에 여럿 존재한다. "Avaiki" (소시에테 제도) "Savai'i" (사모아), "Havaiki" (레오 타히티). 후대에 이루어진 유전학과 언어학적 연구는, 폴리네시아인들의 고향으로 서쪽을 지목했다. 폴리네시아의 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기원으로 꼽는 지명이 있다. ‘아바이키’(소시에테 제도), ‘하바이이’(타히티), ‘하와이키’(뉴질랜드 마오리), ‘히바’(이스터 섬)등이 그것이다. 언어학자들이 재구성한 바에 따르면, 이 이름들은 고대 폴리네시아 공용어의 사와이키’(고향)에서 갈라져 나온 것들이다. 이 단어는 다른 뜻도 내포하고 있다. 소시에테의 아바이키는 그 자체로 저승을 가리키며,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사모아어의 사우알리이영혼을 뜻한다. 죽은 영혼이 향하는 곳은 해가 저무는 곳, 즉 서쪽이다. 사모아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의 이름이 사바이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연히 이 섬은 가장 서쪽에 있다.

현대의 과학이 밝혀낸, 사와이키의 위치는 사모아의 사바이이보다 훨씬 더 서쪽이다. 그 섬은 다름 아닌 타이완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의 DNA가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 경에, 타이완을 떠나 필리핀을 거쳐 파푸아로 들어왔고, 오스트레일리아 인근의 섬을 징검다리 삼아 지금의 폴리네시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와이키에는 여러 부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계속되는 전쟁과 부족해진 식량으로 인해 배를 타고 새로운 섬을 찾아 정착하려 하는 부족들이 생겨났다. 어느 날 하와이키의 대족장인 쿠페(Kupe)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도중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우연히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하지만 쿠페의 아내는 뉴질랜드 남섬 특유의 만년설을 멀리서 보고 "저기는 섬이 아니라 긴 흰구름이에요."라고 말하며 상륙을 말렸다. 하지만 쿠페는 그곳으로 가 보았고, 이렇게해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Aotearoa)라고 하는데, '(roa) 흰구름(aotea)'이라는 아내의 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마오리족이 상륙하기 이전에 뉴질랜드는 무인도였으며, 섬에는 모아, 하스트수리 같은 거대한 조류들이 서식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이 얼마나 위협스러운 종족인지 알지 못했으며, 따라서 사람을 봐도 도망가지 않았기 때문에 몇백년 만에 마오리족으로 인해 모두 깡그리 씨가 말랐다. 마오리족은 고구마를 경작하고, 돼지를 키우며 살았는데, 특히 돼지가 이러한 새들의 알을 잘 파먹었기 때문에 더더욱 개체수가 감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마오리족은 뉴질랜드의 환경에 잘 적응했는데, 이들의 집은 화산섬인 뉴질랜드의 지열을 이용한 난방효과를 얻기 위해 땅을 파서 지붕을 낮게 올렸으며 구덩이를 파서 고구마와 돼지고기등을 묻고 뜨겁게 달군 자갈돌을 그 위에 덮어놓아서 음식을 요리하는 항이(hangi)라는 요리법을 발달시켰다.

 

2. 마나와 터부의 사회

 

 

마오리족의 사회는 매우 엄격한 신분질서로 움직였다. 상위계급에는 족장과 전사들이 있었으며, 여자와 노예는 하위계급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마나(mana)였다.

 

 

마오리족은 모든 이들에게 서로 다른 마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 마나는 마나가 높은 이로부터 물려받거나 - 즉 족장이나 전사의 아들로 태어나거나 - 공을 세워 부족 전체에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죽은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마나를 흡수하는 것이다. 마오리족은 의식적으로 식인을 행했는데, 적의 살을 먹음으로써 그의 마나를 흡수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1643년에 네덜란드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이끄는 탐험대가 뉴질랜드에 상륙했을 때, 마오리족은 이들을 공격하고 죽은 선원들의 시체를 먹었다. 이에 질려버린 아벨 타스만은 그대로 철수, 마오리족은 한동안 평화로운 시기를 누렸다고 한다.

 

마나에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제약이 가해졌는데, 이를 마오리어로 타푸(tapu)라고 부른다. 영어의 터부와 같은 의미이다. 타푸는 조상들의 무덤같은 신성한 장소와 마나가 높은 족장이나 전사들의 집, 티키(tiki)라고 부르는 우상들을 모셔놓은 성소같은 곳의 출입을 제한하는 금기와 특정 음식에 대한 금기, 그리고 행동에 대한 금기로 나타났다. 가령 마나가 높은 이들만이 복잡한 문신을 할 수 있었고, 또 노예와 많은 부인을 소유할 수 있었다. 마오리족의 마을은 파(pā)라고 불리는 요새로, 높은 망루와 목책, 구덩이 등으로 요새화되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타뿌가 존재하는 조상들의 무덤 또한 파 못지않게 요새화되어 있었다. 19세기 중엽 영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마오리전쟁 당시 마오리족의 풍습에 익숙치 않던 영국군은 마오리족의 무덤을 마을로 오인하고 포격을 가하기도 했는데, 자신들의 마나를 훼손당한 것으로 생각한 마오리족의 분노앞에은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하기도 했다.

 

 

마오리족의 마을 모습.

 

 

먼저 마을에 들어오려면 그 마을의 추장에게 입장하려는 "부족""족장"이 선물을 바친 다음, 서로 마오리어로 이야기를 한다. 우리 부족은 이런 역사를 지녔다던가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옛날에는 이런식으로 부족으로 들어오려는 허락을 받았는데,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방문하는 부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자리에서 죽을때까지 싸우는 배틀이 일어났다고 한다.그 때문에 추장 뒤에 마오리 남성들이 있고, 그 뒤에 여성이 있다. 혹 싸움이 붙으면 남성이 대를 이을 수 있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들어오려는 부족장의 말이 끝나면, 부족의 사람들이 "후이에 타이에 타이키에"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족장이 말한) 이 말에 동의한다."라는 뜻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들어가려는 마을 부족 추장이 아무리 환영하고 싶어해도 현대화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을 간직하고자 매우 진지하고 마치 화난 듯하게 말하는데, 진짜 화난게 아니다. 실제 일어난 일로, 마을의 8살쯤 되는 마오리 아이가 부족장이 말하는 도중에 앞에 나타나서 방해를 하자, 부족장이 잠깐 말을 멈추고 웃으며 아이를 방에 들여보냈다. 옛날과 다르다는 것.

 

적절히 협상이 끝나면 두 부족 사이는 적개심을 풀고 바로 위에 말한 얼굴 부비는 인사인 홍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부분 땅에 뜨거운 돌덩이와 음식을 넣어서 만드는 항이 (hangi)라는 전통 저녁을 만들어 방문하는 부족과 같이 식사를 한다.

 

 

마오리족 마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마을회관(화레 누낭아 - whare rūnanga)의 모습

 

보통 이곳 안에는 돌아가신 조상님 사진 혹은 그림이 달려있다. 조상님 나이와 마찬가지로 건물도 무지 오래된게 대부분. 또한, 마오리족이 세상을 떠났을때, 그 몸을 이곳에서 2~3일 정도 놔둔다고 한다. 그 동안은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고. 뭔가 으시시하지만 조상님들이 보살펴주는 곳이라 한다.

 

참고로 시체를 자신의 부족의 화레에 모시는게 매우 큰 의미이자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 심지어 어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그 부모와 남편이 시체를 서로 모시겠다고 맞짱을 뜬 경우가 있다. 이런식으로 싸우는 것 또한 그 사람에게 존경심과 중요성을 표현하는 일로서, 그다지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세상을 뜨면 먼 친척과 아는 사람도 전부 와서 하루쯤 지내고 가는데 , 마오리 왕족이 죽었을때 25천명이 왔다 갔다고 한다.

 

이 마을 회관의 또 다른 쓰임새가 있는데, 바로 사랑방으로 쓰인다는 것이다. 손님이 오면 여기에 담요나 매트리스 등을 깔고 잔다는 건데, 마오리 조상님 사진이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실제로 뉴질랜드의 일부 학교에서는 한국의 수련회 비슷한 개념으로 이런 화레가 있는 마오리촌으로 캠핑을 가기도 한다. 넓은 화레에 학생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는데, 마오리 특유의 토템문양들로 도배된 천장과 섬뜩한 문신을 한 조상의 사진을 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

 

 

3. 전투종족?

 

 

뉴질랜드 럭비팀과 호주 럭비팀이 각각 마오리 하카와 어보리진 전투함성으로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이다.

 

마오리족은 평상시에는 tangata whenua라는 이름에 걸맞게 고구마 농사를 짓고, 돼지를 기르며 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이 붙으면 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싸웠다. 보통 싸움이 끝나면 패배한 부족은 모두 노예가 되고 이들을 이끄는 상위계급 전사나 족장들은 마나를 흡수할 요량으로 먹혔기 때문에 부족간의 전쟁이 끝나면, 이기는 쪽은 한번에 두배씩 커졌다. 하지만 이렇게 세를 불린 부족이 생기면 주변의 다른 부족들에게도 위협이 되기 때문에 결국 전쟁이 반복되고 반복되는 구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섬인 뉴질랜드에서 이런식으로 싸웠다간 손해도 손해지만, 언젠간 마오리족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결국 하카(haka)라는 독특한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전투를 벌이기 전에 두 부족은 모든 전사들을 이끌고 평지에 집결해 일정한 대오를 갖추었다. 그리고 서로를 모욕하면서 부족 전체가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었는데, 하카의 동작은 손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밀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동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쪽 모두의 하카가 끝나고, 한쪽 부족의 추장이 자신들의 세가 밀린다고 싶으면 그들은 말없이 물러났으며 전쟁은 그걸로 끝났다. 승리한 부족은 패배한 부족의 마나를 흡수했다고 여겼으며, 패배한 부족도 자신들의 소중한 인력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로 이익인 셈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하카를 끝나고도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때는 알짤없이 공격에 들어갔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파투(patu)라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몽둥이와 타이아하(taiaha)라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싸웠다. 이외에도 도끼, , 원시적수준의 칼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무기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재료가 목재다. 날카롭게 깎아서 찌르거나 벨수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둔기다. 이런무기로 싸우려면 힘이 어지간히 세야 할텐데 마오리족의 피지컬을 생각한다면 어째 납득이 가게 된다. 19세기에 들면 유럽상인들을 통해 머스킷을 대량으로 들어옴에 따라 전투는 더더욱 처절한 양상을 띄었다.(일명 머스킷 전쟁) 1840년 마오리 부족들간의 갈등을 중재한 영국과 마오리 부족장들 사이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Treaty of Waitangi)' 이후 부족들의 갈등은 마무리되었지만, 그때까지 마오리족은 이미 서로 2만명 이상을 살상한 상태였다. 유럽인들이 진출하기 직전의 인구 추정이 10만명 정도인데, 머스킷 전쟁 이후에는 전쟁과 유럽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5만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머스킷을 갖추지 못한 부족들은 노예가 되었으며 마오리 부족들도 이 시기 상당히 정리되었다.

 

이들의 대범함은 해외원정으로까지 이어졌는데, 1850년대 일부 부족들이 영국 상선을 고용해서 평화로운 원주민과 풍부한 사냥감이 있다는 채텀 제도로 쳐들어가서 그곳 원주민들을 정복한 사건도 있었다. 채텀제도의 원주민들은 마오리족에게 잡아먹혀서 아예 멸족 당했다. 무섭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 , 에 나오는 이야기로, 마오리족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원정이라고...

 

양차대전,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저격수의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참호전 속에서도 하카를 추는 대범함으로 용맹을 떨쳤으며, 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해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노획한 독일제 무기를 애용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을 상대해야 했던 군인들은 "이건 뭐, 총을 갈겨도 맞고 쓰러져도 신음소리도 안 내고, 또 다른 놈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개돌해서 아군 진지를 피범벅으로 만들더라..."라고 하며 매우 두려워했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만약 마오리족이 독일을 도왔다면 전쟁을 이겼을 것'이라고 한탄했다는 카더라가 존재할 정도다.

 

 

 

또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대인배 원주민 부족인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마오리족 역시 자신들의 의지로 대한민국을 지키려고 파병을 자청했다. 이 당시 뉴질랜드 지상군이었던 Kayforce의 마오리족 비율은 7.5%였지만 전쟁 후반부에는 지원군의 약 1/4 가량이 마오리 전사들이었다. "창과 화살을 들고 갔기 때문에 미군에게서 총을 얻어다가 싸웠다"라는 루머가 있으나, 상술했다시피 1,2차 세계 대전에서 현대무기로 싸운 마오리족이 6.25 전쟁에 냉병기를 들고 참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때 참전용사들에 의해 마오리족 민요인 Pokarekare ana가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이 곡은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연가로 번안되어 불렸다. Pokarekare Ana, 우리나라에 알려진 연가 버전,

 

전투종족이지만 Deadliest Warrior이란 프로그램에서는 소림승에게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시즌 2까지 시대상 불평등한 대결이나 편파적인 요소가 많았고 무기 데이터를 뽑을 때도 비전문가가 나와서 들고 설치는 것도 있었다.

 

4. 백인들과의 공존

 

 

아벨 타스만의 항해 이후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뉴질랜드에는 18세기 중후반부터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포경선원들이 오가기 시작했으며, 곧 선교사들이 뒤를 따랐다. 프랑스의 가톨릭 선교사들과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마오리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목적으로 학교를 세웠고, 이미 19세기 초반에 이르면 마오리족 중에서도 유럽 상인에게 머스킷총을 구입하고,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와이탕이 조약 당시 마오리족의 족장이었던 호네 헤케(Hone Heke)도 영어를 알고 있었다.

 

1840년 와이탕이 조약 당시 마오리족은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고 뉴질랜드 상에서 모든 강과 바다의 산물에 대한 권리만을 인정받았다. 마오리들은 번역과 상식의 차이로 자신들의 땅이 영국에 귀속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뉴질랜드형 을사조약을 맺어버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영역을 확장해가는 백인 이주민들과 마오리족과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이 터졌다.

 

 

와이탕이 조약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로, 영국인과 마오리족의 관점의 차이 등을 다루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자국의 공용어로 마오리어와 영어를 모두 인정했으며, 국가도 마오리어와 영어 순서로 부른다. 정부 홈페이지도 마오리어와 영어 모두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래는 영어만이 공용어였지만 6, 70년대 마오리족이 대부분 도시로 이주함으로써 대다수가 고유 문화에서 이탈해 마오리 언어와 문화가 사멸 위기에 처하자 마오리 언어와 문화 보전에 노력하지 않았던 뉴질랜드 정부에 대해 마오리 문화/언어를 보급하는데 노력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따라 1987년부터 마오리어 역시 공용어가 되었다. 뉴질랜드 정부는 현재 마오리족을 대상으로 마오리어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다.

 

마오리족은 현재 뉴질랜드 인구의 1/6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위와 같이 그나마 백인에게 꿀리지 않고 저항한 역사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보리진이나 북미 원주민들에 비하면 나은 사회적인 대접을 받고 있는 편이고, 마오리족 후손들은 국가로부터 각종 복지 혜택과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이와 관련된 음모론이 하나 있다. 대외적으로는 유화정책을 써서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지원금으로 마오리족이 일할 이유를 박탈하여 그들을 사회 하층민으로 만드는것이 숨은 진짜 정책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음모론은 한마디로 다방면에서 마오리족들을 잘 대우해줘 그들이 배부른 노예가 되길 원하는것이 뉴질랜드 정부의 숨은 의도라는 것. 당연하지만 말만 존재하지 확인된 바가 없다.

 

이러다 보니 백인극우들을 포함한 몇몇 비마오리 뉴질랜드인들은 마오리족을 마냥 좋게만 보지 않는다.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쟤네들을 먹여살리냐 라는 주장인데 좀 심한 경우는 마오리족을 기생충에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종종 발생하는 역차별 문제가 이러한 마오리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통문화를 잃어가며 가난 속에서 고통받는 마오리족도 적지 않은 편이다. 가난한 마오리족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워, 2005년에는 전체 감옥 수감자 비율의 절반 가량이 마오리족일 때도 있었다. 기사 실제로 오클랜드 남부의 일부 지역 (오타라 라던지..)들은 슬럼에 비유되는 경우가 있는데 많은 주민들이 마오리를 포함한 남태평양 원주민 계이기는 하다. 뉴질랜드 정부는 범죄에 노출되는 마오리를 보호하고자 각종 복지 사업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역차별 문제도 발생하고 있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다.

 

 

1994년에 개봉된 뉴질랜드 영화 'Once were warriors'(한국 개봉명은 '전사의 후예')는 도시에서 빈민층으로 살아가는 마오리족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니 마오리족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면 한번 보자.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이 스타워즈의 장고 펫으로 유명한 테무에라 모리슨. 감독은 마오리와 백인 혼혈로 어나더데이(영화)를 감독하게 되는 리 타마호리.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데드랜드'(The Dead Lands)에서는 부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부족이 몰살 당한 주인공이 저주받은 숲에 사는 '괴물'과 힘을 합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부족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한국에선 쉽게 접할수 없었던 당시 마오리족의 생활풍습을 이라던지 전통문화등을 알수 있다. 배우들도 마오리계 배우들을 캐스팅 하였고 대사도 전부 마오리어로 말한다. 참고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렌스 마코아르는 딱 봐도 정말 무섭게 생긴 마스크를 지닌 거구의 사나이로 반지의 제왕과 호빗에서 러츠와 오크 고스모그,아조그의 아들 '볼그'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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