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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교]]우리나라 절(寺刹)의 基本 常識

작성자수남이|작성시간20.01.31|조회수68 목록 댓글 0

우리나라 절(寺刹)의 基本 常識   

1.부처님의 뜻 : ‘깨달은 사람’의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진리를 밝게 깨달아 온갖 복과 덕을 모두 갖추신 분.

① 부처의 성은 싯다르타, 이름은 고타마이며, 석가는 부족국가 이름이고, 모니는 깨달은 자 ⇒석가족의 성자⇒석존

2. 供養이란 : 깨끗한 마음으로 음식과 꽃, 향, 촛불, 쌀, 물 등을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며 또한 우리 이웃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어떤 물건이나 참다운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것을 말함.

3.佛敎의 名節

1) 4월초파일(8일) - 釋迦牟尼가 태어나고, 出家하고, 깨닫고, 입멸한 날(佛誕日:부처님 오신 날)

2) 2월 8일 - 출가 재일(出家日)

3) 2월15일 - 열반 재일(涅槃日)

4) 7월15일 - 백중 재일(盂蘭盆齋日)

5) 12월8일 - 성도 재일(成道日)

4.佛敎에서의 呼稱

1) 僧侶 : 출가 수행자, 일명 중(衆)

2) 스님 : 스승님의 준말, 일반대중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스승님, 승님, 등으로 불리다가 스님이 되었음.

3) 國師,王師 : 승려에게 국가에서 준 칭호. 王師는 덕행이 높은 승려로 왕의 스승 역할를 하였음.

4) 大師 : 승과에 합격한 승려나 덕이 높은 승려, 요즘은 큰스님이라 호칭.

5) 祖師 : 불교의 한 종파를 세우고 그 종지를 열어 주창한 승려

6) 比丘(남), 比丘尼(여) : 정식으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수도자로 具足戒를 받은 스님.

7) 사미(남), 사미니(여) : 일정한 행자 수행을 마치고 沙彌十戒를 받은 예비스님.

8) 行者 : 沙彌戒를 받을 때까지, 사찰에서 필요한 기본의식과 계행을 배우는 자

9) 男子信徒- 居士, 處士, 우바새, 女子信徒- 菩薩, 우바이

5.小乘佛敎와 大乘佛敎의 差異

1) 小乘佛敎 : 전통과 형식에 중요성을 두고 계율과 교법을 통한 출가승 중심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처는 될 수 없고 아라한(阿羅漢)이 최종목표 - 개인해탈 최고성자-아라한

2) 大乘佛敎 : 누구나 불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믿고 수도정진 한다면 부처 될 수 있다.- 대중구현 - 보살(菩薩)

6. 佛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時期

1) 高句麗:小獸林王 2년(372년)-中國 전진(前秦)-順道-초문사(肖門寺), 374년 阿道-伊弗蘭寺

2) 百濟:枕流王 1년(384년)- 中國 東晉 - 印度 僧 摩羅難陀 - 佛甲寺

3) 新羅:民間信仰과 貴族勢力의 反對로 公認이 늦음. 訥祗王(472년) 高句麗 僧 阿道和尙(墨胡子)이 慶北 善山의 毛禮의 草家집에서 시작 - 龜尾의 桃李寺가 最初의 절- 法興王 14년(527년)에 異次頓의 殉敎 후 공인으로 세운 慶州의 興輪寺를 신라의 최초의 절로 봄

최초의 절은 빔비사라왕이 인도의 왕사성 옆 대나무 숲 동산에 세운 [죽림정사]이다.

[ 우리나라 절 ]

'佛像을 奉安하고, 僧侶가 머물며 修道. 儀式 等을 行하는 場所' (大體로 山水가 秀麗한 곳에 建築)

7. 절 이름의 別稱(由來)

1)절..[절]이라는 우리말은 佛像에 禮拜할 때 절을 많이 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

2)精舍..淸淨한 僧侶들이 修行하는 집이란 뜻

3)伽藍..산스크리트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한 것(승가람마에서 가람)

4) ○○寺..본래 공공기관을 뜻하는 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서역의 승려들이 홍로寺라는 중국의 외국인 접대관사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후대에 승려가 머무는 곳에는 모두 [寺]자를 붙이게 됨)

5)寺刹..[刹]이라는 말은 절 앞에 세우는 깃발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표기해 [寺]자와 결합한 말이다.

5)寺院..唐과 宋에서는 절이 官公署처럼 사용되어서 사원이라고 함

6)叢林..禪宗에서는 수행자들이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을 숲 속의 나무들이 곧게 자라는 것에 비유해 叢林이라 함

7)도량..단순히 수행 장소라는 의미에서 도량이라 함(釋迦牟尼가 깨달은 지 얼마 안되어서 많은 제자가 모이자,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석 달 동안 바깥출입을 삼가고 공동생활을 해야했다.

8. 절의 구조 :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절의 전통 양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1)一株門....절에 들어가기 위해서 맨 처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음.

기둥을 한 줄로 세운 문이다. - 俗世와 佛界를 區分 짓는 境界역할

2)天王門....佛法을 守護하는 四天王像을 모셔 놓은 곳으로 俗世의 雜鬼가 佛世界로 들어오지 못하 도록 한다. - 불가의 세계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 궁궐을 형상화 한 것.

동쪽-지국천왕(持國天王)-칼(주먹)-청색-다문입-착한 이에게 福을 주고 惡한 자에게 罰을 주리라.

서쪽-광목천왕(廣目天王)-삼지창(보탑)-백색-벌린입-惡人에게 苦痛을 주어 道心을 일으키게 함

남쪽-증장천왕(增長天王)-용(여의주)-적색-성난눈-萬物을 疏生시키리라.

북쪽-다문천왕(多聞天王):비파:흑색:치아보임:어리석음의 어둠속에서 彷徨하는 衆生을 引導하리라

3)金剛門....부처님과 사찰을 수호하는 佛敎의 守護神인 金剛力士가 서있는 門-四察의 守門將역할

(아! 하고 입을 벌린 密迹力士는 나쁜 세력을 공격하는 자세(生成)이고, 훔! 하고 입을 다문 那羅延역사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임(消滅)). 두 金剛力士의 공존은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불교의 가르침.

4)不二門(解脫門) :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는 문. 不二는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世俗과 佛家의 세계도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의미.

5)幢竿支柱...절 입구에 절 깃발을 거는 臺

6)梵鍾閣..梵鍾(지옥중생구제), 法鼓(짐승구제), 雲版(날짐승구제), 木魚(수중생물 구제)를 달아놓은 범종각이 있다.

☆ 佛前四物-梵鍾(아침28번, 저녁33번),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7)萬歲樓(보제루 또는 우화루)....실내대중법회강당

8)掛佛臺...법당앞 돌계단 양옆의 돌기둥에 佛畵를 거는 臺.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법당 바깥에서 법회를 열 때 커다란 불화를 걸기 위한 받침대로 野外法會를 野壇法席이라고 함

9. 절에서 奉安한 主佛에 따라 붙여진 전각 名稱

1)大雄殿-일반적으로 釋迦牟尼를 主佛로 봉안한 전각(협시불-文殊菩薩, 普賢菩薩)

大雄寶殿-주불-釋迦牟尼, 협시불-阿彌陀佛, 藥師如來佛

2)大寂光殿-華嚴宗 계통의 절에서 광명의 부처인 毘盧遮那佛을 主佛로 봉안한 殿(華嚴殿 또는 毘盧殿 이라고도 함)-佛聖과 眞理로 가득 한 곳

3)極樂殿-정토정 계통의 절에서 極樂世界 관장 부처인 阿彌陀佛을 主佛로 봉안한 전각(無量壽殿 또는 阿彌陀殿 이라고도 함)-극락소원 성취 할 수 있는 곳

4)彌勒殿-彌勒信仰이 있는 곳에는 미래의 부처인 彌勒佛을 主佛로 봉안한 전각.(용화전 또는 慈氏殿이라고도 함)-彌勒信仰은 우리의 傳統 民間信仰과 밀접한 관계로 일반인이 가장 많이 찾는 법당

5)圓筒殿-현세적 이익을 해탈케 해준 觀世音菩薩을 主佛로 봉안한 전각(부속건물에 봉안할 경우에는 觀音殿이라고 함)-현실세계의 고통을 겪는 인간의 소리를 들어주는 救世主 菩薩

6)藥師殿-衆生의 疾病을 고쳐주는 藥師信仰의 대상인 藥師如來를 主佛로 봉안한 전각

7)捌相殿-釋迦牟尼의 一生을 여덟 가지 그림으로 그려 봉안한 전각(靈山殿 이라고도 함. 대부분의 절에서는 이 여덟가지 그림을 대웅전 외벽에 그리는 경우가 많다.)

8)羅漢殿-釋迦牟尼의 뛰어난 弟子였던 16羅漢이나, 500羅漢을 奉安한 전각(應眞殿이라고도 함)

(羅漢殿은 대부분 主佛殿과 떨어진 곳에 있다)-羅漢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聖子를 의미함.

9)冥府殿-저승의 세계를 사찰 속으로 옮겨온 전각으로 地獄世界 관장부처인 地藏菩薩을 봉안(地藏殿, 十王殿, 무사전 이라고도 함)-염라대왕은 ‘業鏡臺’라는 거울로 평생에 지은 죄를 비쳐 봄.

10)祖師堂(祖師殿,祖師閣,國師殿,影閣(眞影閣)-선종계통의 절에서는 스승의 影幀을 奉安한 전각.

11)三聖閣-대부분 절의 뒤쪽에 우리 민족의 土俗神인 山神, 독성(那畔尊者), 칠성을 하나의 전각 안에 봉안한 전각 - 山神閣, 七星閣, 지혜가 밝아 많은 능력을 지녔다는 나반존자를 모시면 獨聖閣.

12)寮舍채:사찰에서 스님의 생활과 관련된 공간(僧閣;정목당.거처하는 곳, 심검당;宗務所.寺刹行政)

13)建物 이외에 돌다리(石橋), 연꽃 심은(蓮池), 塔, 石燈, 비림과 부도밭, 講院, 律院 禪院 등이 있다.

14)절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는 어른 스님을 방장 또는 조실이라 하고, 실질적인 운영은 주지나 원주가 맡으며 그 밑에 승려나 신도가 각각의 소임을 맡아서 일을 한다.

☆ 적멸보궁(寂滅寶宮)-부처의 眞身舍利를 모시고 예배하는 法堂.

5大 寂滅寶宮-梁山 通度寺, 五臺山 月精寺, 雪嶽山 鳳睛庵, 太白山 淨巖寺, 寧越 사자산 法興寺

10. 敎宗과 禪宗- 五敎九山

1) 敎宗-敎學(經典) 연구를 중시-5교

①열반종(涅槃宗)-高麗 僧 普德-全北 完州 景福寺

②계율종(戒律宗)-(慈藏,590-658)-慶南 梁山 通度寺

③법성종(法性宗)-元曉大師-慶州 芬皇寺

④화엄종(華嚴宗)-(義湘,625-702)- 榮州 浮石寺, 全南 求禮 華嚴寺

⑤법상종(法相宗)-(眞表,718-762)-全北 金堤 金山寺

2) 禪宗-참선과 수행을 통한 깨달음-6대제자육조 혜능-9산문

①실상(實相)山門-南原 實相寺-흥척국사

②가지(迦智)山門-長興 寶林寺-도의국사

③사굴(사崛)山門-江陵 掘山寺-범일국사

④동리(桐裡)山門-谷城 泰安寺-혜철국사-도선국사

⑤성주(聖住)山門-保寧 聖住寺-무염국사

⑥사자(師子)山門-寧越 흥녕사-도윤국사

⑦희양(曦陽)山門-聞慶 鳳巖寺-도헌국사

⑧봉림(鳳林)山門-昌原 鳳林寺-현욱국사-제자 심희

⑨수미(須彌)山門-黃海道 海州 광조사-이엄국사

☆ 참고 : 통일신라∼고려초기-五敎九山. 고려중기∼조선초기-5敎 兩宗(曹溪宗,天台宗)

조선세종(7년,1424년)-禪敎兩宗-禪宗(서울 奉恩寺),敎宗(南楊州 奉先寺)

11. 총림(叢林) : 부처님의 경전을 배우는 강원(講院), 계율을 배우는 율원(律院), 참선 수행하는 禪院이 모두 갖추어진 불교의 종합수도원- 6대 叢林

①가야총림- 陜川 海印寺 ②영축총림- 梁山 通度寺 ③덕숭총림- 禮山 修德寺

④조계총림- 順天 松廣寺 ⑤고불총림- 長城 白羊寺 ⑥태고총림- 順天 仙巖寺

12. 三寶寺刹이란? : 깨달은 사람인 부처(佛寶),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불경(法寶),

부처를 따르는 제자인 승려(僧寶)를 모두 갖춰진 사찰.-선원, 강원, 율원을 갖추고 있음.

①불보사찰(佛寶寺刹)-梁山 通度寺-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있음.(대웅전에 부처님이 없고 밖의 진신사리탑이 보이는 곳을 유리로 만들어 두고 적멸보궁이라 한다)

②법보사찰(法寶寺刹)-陜川 海印寺-부처님의 가르침인 八萬大藏經을 봉안.

③승보사찰(僧寶寺刹)-順天 松廣寺-지눌을 비롯한 16國師가 연이어 배출 된 곳.

13. 탑(塔)-부처님 사리봉안-석가모니의 신골을 봉안-석가모니의 분총(墳塚)-범어로‘스투파’

① 木塔-우리나라, 일본 탑의 시원(始原)

皇龍寺址9층탑, 보은 法住寺의 捌相殿(국보55호,5층), 和順 雙峯寺 大雄殿

② 전탑(塼塔)-벽돌로 만든 탑 -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16호), 동부동 5층전탑(보물56호),

조탑동5층전탑(보물57호), 驪州 神勒寺 多層塼塔(보물226호)

③ 모전석탑(模塼石塔)-벽돌모양으로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탑

경주 芬皇寺 模塼石塔(국보30호), 제천 장락리 7층 模塼石塔(보물459호)

④石塔-현재 1,300여기 중 대부분이 석탑,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 화강암 사용.

百濟에서 시작-익산 彌勒寺址9층석탑, 부여 定林寺址5층석탑.

백제탑은 목탑을 모방한 석탑이라면, 신라탑의 특징은 模塼石塔임.

14. 부도(浮屠)- 일반스님들의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구조물

①八角 圓堂形 :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초까지 유행

②석종(石鐘)형 : 고려후기

③복발(覆鉢)형 : 조선시대-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모양 

  

2. 仙巖寺의 遺物들 - 全羅南道 順天市 승주읍 竹鶴里

① 승선교(仙巖寺 昇仙橋) - 1963년 9월 2일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다. 仙巖寺에 이르기 전 曹溪山 계류 건널목에 놓인 돌다리를 말한다. 다리는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고, 전체가 花崗岩으로 조성되었다. 기저부에는 架設이 없고 자연암반이 깔려 있다. 홍예(虹朗)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 냇가와의 사이에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있다. 윗면은 평평하게 정지하여 通式의 교량을 이루고 있다. 좌․우 측면의 석축에 약간 보수를 가한 흔적이 있을 뿐 홍예는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양쪽 냇가와의 사이에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있다. 윗면은 평평하게 정지하여 通式의 교량을 이루고 있다.

② 仙巖寺 三層石塔 - 統一新羅時代의 花崗石으로 만든 2基의 三層石塔.

1963년 9월 2일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데, 신라시대의 전형적 양식을 계승하여 二重基壇 위에 세워진 직사각형의 석탑으로 두 탑의 규모나 수법은 아주 동일하다. 지상에 몇 개의 長臺石을 짜고, 그 위에 下臺石과 中石을 一石으로 하여 4枚 長石으로 구성하였는데, 네 우주(隅柱)와 각 면에 一柱式의 탱주(撑柱)가 표현되었다. 甲石은 2매의 長板石으로 덮고, 윗면은 경사가 현저한데, 우각(隅角)에 이르러 약간의 反轉이 있는 듯하다. 탑신부는 屋身과 屋蓋石이 각각 1석(一石)으로 각층 옥신에는 네 우주가 표현되었을 뿐, 다른 조식(彫飾)은 없다. 옥개석은 얇고 넓적한 편이며, 받침은 각층 4단으로 감소되었다. 屋頂에는 각호이단(角弧二段)의 굄이 있는데, 옥개석에 이와 같은 수법의 몰딩이 있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이 석탑은 結構 방법에 規律性을 보이고 있으며, 상하 비율도 건실하고 우아하며, 彫法도 착실하다. 그러나 규모는 작고, 옥개 받침수의 감소 등 생략된 경향이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두 탑의 조성은 신라 중기 이후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③ 선암사 대각암 부도(仙巖寺 大覺庵 浮屠) - 대각암 앞에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

1992년 1월 15일 보물 제1117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2.42m. (大覺國師:1055~1101)의 부도라고 하며, 大覺國師가 海印寺에 주석한 1086년(선종 3) 무렵 이곳 대각암에도 주석한 일이 있어 현재 仙巖寺에는 大覺國師의 影幀과 가사 등 관계 유물이 전한다. 지대석은 사각형이지만 부도 자체는 八角圓堂形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인다. 기단부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져, 하대석은 하면에 굽형을 둘리고 측면에는 구름무늬를 장식하였으며 상면에는 2단 굄을 마련하여 중대석을 받고 있다. 중대석에는 하단과 反轉 굄과 1개의 眼象이 조각되었다. 상대석은 하면에 2단의 받침이 있고 8판(瓣)의 앙련(仰蓮)을 둘렀으며 상면에는 3단의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탑신부는 각 면에 두 우주(隅柱)가 모각되고 앞뒷면에는 門扉와 자물통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평박하며 낙수면에는 굵직한 우동(隅棟)마루가 표시되었고 팔각마다 轉角에는 귀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륜부는 앙화(仰花)․보륜․보주(寶珠)가 차례로 놓여 있다. 기단부의 안상과 구름무늬․연화무늬․옥개석의 귀꽃무늬 등의 수법에서 고려 전기 부도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한다.

④ 선암사 북부도(仙巖寺 北浮屠) - 고려시대의 부도.

1993년 11월 19일 보물 제1184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2.51m. 화강암으로 된 八角圓堂形 부도이다. 팔각형의 지대석 위에 높직한 굄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의 하대석에는 구름무늬를 가득히 양각하였다. 고복형(鼓腹形)의 중대석 측면은 4엽무늬[四葉文]가 장식되었고, 상대석은 큼직한 8판(瓣)의 앙련대(仰蓮臺)로 상면에는 1단의 굽형 굄과 복련대(覆蓮臺)가 있으며, 그 위에 2단의 굄을 조각하여 탑신석을 받고 있다. 탑신은 각 면에 두 우주(隅柱)가 모각되고 앞뒷면 문비(門扉)에는 자물통이 있으며 앞면 좌․우에는 인왕상을 배치하였다. 8각의 옥개석은 평박하며, 낙수면에는 合角線이 뚜렷하고 그 전각(轉角)에 큼직한 귀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에는 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를 차례로 놓았는데 寶珠는 파손되었다. 사자상, 구름과 연화무늬, 인왕상의 조각, 각 부의 조성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⑤ 선암사 동부도(仙巖寺 東浮屠) - 고려시대의 부도.

1993년 11월 19일 보물 제1185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3.16m이다.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건조한 八角圓堂形 부도이다. 통돌의 8각 지대석 상면에 괴임단을 마련하고 또 하단의 안상(眼象) 굄대를 높직하게 각출(刻出)하여 하대석을 놓았으며 하대석 상면에 반전형(反轉形)의 굄 1단을 각출하여 중대석을 받게 하였다. 중대와 하대석은 동일석으로 중대석에는 파도무늬, 상대석에는 큼직한 앙련(仰蓮: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 8판(瓣)이 장식되어 있다. 탑신석은 상단이 좁아진 엔타시스형으로 하단에 높직한 굄단이 있다. 각 면은 장방액(長方額)으로 소박하게 마무리지었고, 전면에 문비(門扉:문짝)를 조각하여 내면에 봉황, 그 좌․우에 인왕상을 배치하였으며 뒷면은 문비에 문고리를 장식하였다. 옥개석은 하면에 2단의 받침이 있고 평박한 낙수면의 8각우동(隅棟)마루 끝의 전각(轉角)에는 귀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륜부는 앙화(仰花)․보개(寶蓋)․보륜(寶輪)․보주(寶珠)가 차례로 놓여 있고 보개의 팔우전각(八隅轉角) 귀꽃무늬가 장식되어 화사한 느낌을 준다. 신라 이래의 팔각원당 형식을 따랐으나 조각, 조형, 조성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우수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⑥ 순천 선암사 강희39년명 동종(順天 仙巖寺 康熙 三十九年銘 銅鍾)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55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가 120㎝에 이르는 비교적 대형 작품에 속하는 이 종은 鐘身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1700년(강희 39) 曹溪山 仙巖寺 大鐘으로 800근의 중량을 들여 개주(改鑄)한 것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이 때 새로이 주조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金尙立의 아들 金守元, 都片手 金成元, 副片手 金孝建, 김성원의 아우 김섬태(金暹泰) 등 18세기에 활동했던 김상립과 그의 아들 등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어 당시 김상립을 중심으로 한 사장계(私匠系)의 활동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이 종은 종의 형태가 조선후기의 전형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 활기찬 쌍룡뉴와 유곽대, 보살상과 왕실 안녕을 기원하는 문구가 담겨 있는 전패 등 각 부의 문양이 세련되는 등 전체적으로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⑦ 선암사 삼층석탑내 발견유물(仙巖寺三層石塔內發見遺物)

1988년 6월 16일 보물 제 955호(유물 3종3점)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승주군에 있는 仙巖寺 三層石塔(보물 제395호)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유물 3점이다. 동탑 1층의 하부에서 사리 구멍이 발견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사리 구멍에서 나온 유물은 사리 장엄구로 청자 항아리, 백자 항아리가 각각 1점씩 있었으며, 사리 장치는 백자 항아리에서 나왔다. 이 백자 항아리 안에 비단으로 싼 금동 사리탑이 있고, 사리탑 안에 회백색 타원형의 사리 1개가 있는데, 사리는 팔각 원통 모양의 수정 그릇 안에 있다. 청자삼이소호는 높이 6.5㎝, 아가리 지름 4.1㎝, 밑지름 5.6㎝, 뚜껑 아가리 지름 6.4㎝, 뚜껑 높이 1.5㎝의 크기이다. 뚜껑의 윗면 중앙에 작은 돌대와 같은 꼭지가 있다. 항아리는 어깨가 벌어져 있고 몸체는 풍만하다. 어깨에는 한 줄의 음각선이 둘러져 있으며, 세곳에 각이 지고 구멍이 뚫린 꼭지가 나있다. 유색은 어두운 녹청색으로 미세한 빙렬이 전면에 나 있다.

분청사기분장유개호는 총 높이 12㎝, 아가리 지름 9.6㎝, 밑지름 7.2㎝, 뚜껑 높이 2.6㎝의 크기이다. 아가리 부분이 넓으며 어깨부터 벌어져서 몸체가 풍만하며, 뚜껑은 조그만 접시 모양으로 중앙에 꼭지가 있다. 유색은 백토로 분장되어 있는 표면에, 담청을 머금은 백색유가 두껍게 입혀져서 불투명하다. 16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동사리탑은 높이 6.2㎝, 폭 1.9㎝의 크기이다. 사리가 모셔진 팔각 원통 모양의 이 사리탑은 백자 항아리 안에서 발견되었다. 3겹의 꽃잎이 위로 벌어진 연좌 위에 탑의 몸체와 지붕돌을 갖추었다. 사리탑은 14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말의 사리장치 연구는 물론 당시의 금속공예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⑧ 대각국사 진영(大覺國師 眞影)

1990년 9월 20일 보물 제1044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승려인 義天의 肖像畵이다. 大覺國師 義天(1032∼1083)은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天台宗을 열어 불교를 통합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이 영정은 가로 110.2㎝, 세로 144㎝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것으로,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왼손은 긴 막대를 잡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단주(短珠)를 팔목에 끼고 의자 손잡이를 잡고 있다. 사색에 잠긴 듯한 눈빛과 넓은 이마, 큰 코와 귀 그리고 꼭 다문 입에서 그의 학식과 수행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녹색의 가사를 걸쳤으며 금빛의 둥근 고리로 매듭을 대신하였다. 이 영정은 승려화가인 도일비구(道日比丘)에 의해 순조 5년(1805) 수정·보완된 것으로, 앞 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알 수 있는 당대의 대표작이며, 혜근(惠勤)의 글이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습기로 인한 얼룩이 있고 일부 굴곡진 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⑨순천 선암사 대웅전(順天 仙岩寺 大雄殿)

2001년 6월 8일 보물 제1311호로 지정되었다. 曹溪山 仙巖寺는 백제 성왕 7년(529)에 阿道和尙이 毘盧庵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仙巖寺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大覺國師 義天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⑩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 유물일괄(仙巖寺釋迦牟尼佛掛佛幀및附屬遺物一括)

2004년 11월 26일 보물 제1419호로 지정되었다. 본존불만을 단독으로 등장시켜 간단한 구성을 보여주는 독존도(獨尊圖) 형식의 괘불화이다. 중앙에 홍련좌(紅蓮座)를 딛고 서 있는 입불상을 화면에 가득 차도록 큼직하게 그린 다음 상단 좌측(向右)에는 구슬장식이 화려한 금색 탑안에 사자좌를 한 '다보불(多寶佛)'추정의 불상이 앉아 있고, 밖에는 부처를 향해 합장한 보살상(대요설보살로 추정)이 배치되어있는 장면을 나타내었다. 이와 대칭하여 자리한 오른쪽(向左)에는 사자좌에 앉아 각자 손 모양을 달리하고 있는'시방불(十方佛)'을 묘사하였다. 거의 손상 없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 괘불함은 전·후·좌·우 14곳에 손잡이용 고리가 달려 있으며, 궤의 각 모서리에는 어문(魚文)과 연화문(蓮花文), 나비무늬 등이 투각된 금속 장석을 장식하였다. 복장유물은 황동제 후령통 1조와 감지주서(紺紙朱書) 발원문 1매 및 백지묵서(白紙墨書) 9매, 백지주서 및 인본(白紙朱書 및 印本) 다라니 9매 등으로, 비교적 현상이 양호한 편이다. 선암사 괘불탱은 조성연대가 명확하여 화원인 '쾌윤(快允)'작품의 초기 경향과 함께 조선시대 18세기 중엽 경 불화 화단의 흐름을 살피는데 자료적 가치가 있음은 물론, 알맞은 신체 비례에 유려하면서도 정밀한 필치로 이목구비와 손·발을 묘사하고 꽃무늬들을 나타냄으로써 세련미가 돋보이는 등 조형성 또한 뛰어나다.

⑪ 선암사 소장가사·탁의(仙巖寺所藏袈裟·卓衣) : 자수

2003년 12월 23일 중요민속자료 244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에 소장되어 있는 가사와 탁의로, 삼보명자수가사(三寶名刺繡袈裟)·쌍룡문직은가사(雙龍紋織銀袈裟)의 가사 2점과 용문자수탁의(龍紋刺繡卓衣)의 탁의 1점이다. 대각국사 의천이 국왕에게 하사 받은 것으로 전하는 ‘삼보명자수가사’는 다홍색의 무늬가 없는 바탕천을 사용한 것으로 윗면과 측면에 3쌍의 가사 끈이 달려있다. 가사의 네 모서리에는 ‘천(天)’, ‘왕(王)’자를 수놓고, 가운데 부분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와 절구 찧는 토끼를 평수(平繡: 자수 땀새를 동일하게 수놓음)로 꼼꼼하게 수놓았다. 가사의 품계(品階)는 조각 천을 이은 조(條)의 수로 구분되는데 최고의 품계인 25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 전면에 불·보살의 존명과 경전 이름을 치밀하게 수놓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는 18세기 유물이다. ‘쌍룡문직은가사’는 두 마리의 용무늬가 있는 바탕천을 사용한 9조 가사이다. 무늬부분에만 은으로 만든 실로 덧짠 것으로 이러한 제직법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나며, 조선시대 불가(佛家)와 궁(宮)에서 사용된 직물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직물제작과 문양·구성 등에 있어 중요한 유물로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법상(法床)의 덮개로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되는 ‘용문자수탁의’는 전면에 용무늬·구름무늬·문자무늬 등이 장식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성수만년(聖壽萬年)’을 십자꼴로 배치하였다. 바탕문양은 연갈색 실로 마름모꼴문양을 연속 시문하고, 그 위에 용무늬·구름무늬 등의 문양 부분을 덧붙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자수기법이다. 문양과 자수기법으로 보아 중국 명대인 16세기∼17세기 유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와 명과의 직물교류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선암사 소장 가사와 탁의는 조선후기 불교 복식사와 자수 및 직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⑫ 선암사 금동향로(仙岩寺金銅香爐)

1972년 1월 29일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향로란 절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진 향을 피우는데 사용한 도구를 말한다. 입 주위에는 넓은 테를 가지고 있으며, 사발모양의 몸통과 나팔모양의 받침을 한 전형적인 향로의 모습을 하고있다. 몸통에는 卍자와 톱니바퀴 모양 속에 범자를 새겼고, 아래에는 연꽃잎을 늘어놓아 종교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받침대는 밑이 넓고 위가 좁아진 나팔형으로 안정감을 준다. 몸통과 입 주위 넓은 테에 화려한 문양은 피하고, 담담한 장식으로 우아함을 표현하였고, 높이와 너비의 비례가 적당하여 안정된 느낌을 준다.

⑬ 전 도선국사 직인통(傳 道詵國師 職印筒)

1972년 1월 29일 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 후기 도선국사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이 3개의 직인통은 뚜껑이 있으며, 2개는 원통형이고 1개는 8각형으로 되어 있다. 뚜껑에는 꼭지가 달려있고, 앞면에는 철제장식을 세로로 길게 달아 자물쇠를 부착하였다. 양옆에는 고리를 상·하로 두 개씩 달았으며, 몸통 아래와 중앙의 개폐 부분은 철제로 띠를 돌려 단단하게 하였다. 윗부분에도 통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제를 부착하여 장식하였다. 실제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는 기법이나 각종 철제장식으로 보아, 도선국사 생존연대(827∼898)로 보기는 어렵고, 그 후인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⑭ 선암사 팔상전(仙岩寺 八相殿)

1976년 9월 30일 시도유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조계산에 위치한 선암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에 도선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절의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이나 되고 면이 평평한 돌이 있는데 신선들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며, 절의 이름도 이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유재란(1597) 때 대부분 불타 없어진 것을 숙종 24년(1698)에 약휴대사가 다시 지은 후, 순조 24년(1824) 해봉대사·눌암대사 등이 다시 지었는데 팔상전도 이때 지은 것이다. 선암사 팔상전은 석가여래의 생애를 묘사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된 다포계이다. 원래는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계 건물이던 것을 나중에 수리하면서, 앞면의 공포만 다포양식으로 바꾼 것으로 보여진다. 내부에는 팔상도 외에 도선·서산·무학·지공·나옹 등 우리나라 고승과 33조사(祖師)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⑮ 선암사 중수비(仙岩寺 重修碑)

1982년 10월 15일 시도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무우전 뒷편인 북암에 오르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 정유재란으로 불에 타버린 절을 약휴대사의 노력으로 힘들게 복원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비는 높직한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받침의 머리는 용의 머리화 되었는데 여의주를 물고 있지 있으며, 목이 매우 짧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등은 선명하게 새긴 육각무늬로 덮혀있고, 중앙에 네모난 비좌(碑座)를 마련하여 비를 꽂아두도록 하였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겼고, 윗면에는 서로 엉켜 꿈틀거리는 두 마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조선 숙종 33년(1707)에 비를 세웠으며, 채팽윤이 글을 짓고, 이진휴가 글씨를 썼다. 조선 중기의 작품이긴 하나 조각이나 표현기법 등이 아름답다.

⑯ 선암사 일주문(仙岩寺 一柱門)

1982년 10월 15일 시도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조계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처음 짓고 비로암이라 하다가, 신라말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선암사 입구에 세워져 속세와 불계의 경계역할을 하는 일주문은 언제 세웠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일주문은 9개의 돌계단을 앞에 두고 있으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집이다. 2개의 기둥을 나란히 세우고, 그 앞뒤로 보조 기둥을 세웠으나 위로부터 30㎝ 중간에서 보조 기둥을 잘랐다. 이는 기둥 양 옆으로 설치된 담장 때문인 듯 하며, 다른 일주문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배치된 다포식 건물이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배치되는 공간포를 앞면에 3구, 옆면에 1구씩 두어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위에는 용 머리를 조각하여 위엄을 더하였다. 앞면 중앙에 ‘조계산 선암사(曺鷄山 仙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선암사 일주문은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건물로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⑰ 선암사 원통전(仙岩寺 圓通殿)

1990년 2월 24일 시도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지은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통일신라 경문왕 1년(861) 도선국사가 세워 선암사라 이름지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고려 선종 5년(1088)에 의천이 새롭게 고쳐 세웠으나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버렸다. 그 뒤 여러 스님이 건물들을 세우고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암사 원통전은 조선 현종 1년(1660)에 경준, 경잠, 문정대사가 처음 지었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고쳐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24년(1824)에 다시 고친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설치한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기둥 사이에는 꽃받침 모양의 재료를 놓아 그 위쪽의 재료들을 받치고 있다. 건물 앞쪽으로 기둥 2개를 내어 건물 평면이 T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보조 기둥(활주)이 지붕 추녀 부분을 받치고 있다.

선암사 원통전은 아담한 크기의 건물로 사찰건축에서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어 주목 받는 건물이다.

⑱ 순천 선암사 금동관음보살좌상(順天仙岩寺金銅觀音菩薩坐像)

2004년 9월 20일 시도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지정되었다. 순천 선암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988년 천불전 보수시 발견된 뒤 현재는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발견 당시 도금이 퇴색된 것을 새롭게 도금하였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썼는데 그 형식은 삼산관(三山冠)형태이다. 중앙에는 화불(化佛)이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보관은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한 장엄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장식성은 중국의 명말 청초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호는 넓적하고 평평하여 라마교 불상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눈썹과 눈은 양편 귀의 윗쪽으로 치켜세워져 있으며 콧날은 오뚝하고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목은 매우 가는 편인데 삼도가 보이며 그 양편에는 연주문이 장식된 둥근 귀걸이가 양 어깨위에 걸쳐있다. 천의는 양편 어깨에 걸쳐있는데 그 밑으로 U자형의 영락이 양쪽 젖무덤 위로 늘어져 있다. 상반신의 앞면은 완전히 피부를 드러낸 채로 표현되었고 등 뒤에는 두꺼운 천의자락이 상체를 덮고 있다. 수인은 아미타여래가 갖는 9품인 가운데 하품 하생인을 취하고 있다. 앉은 자세는 우측발이 밖으로 나오고 좌측발이 안으로 들어가는 길상좌를 취했다. 군의자락이 양 무릎을 덮고 있는데 그 옷 주름이 매우 역동적이다. 팔목과 팔꿈치에 두 줄의 팔찌를 끼고 있으며 역시 발목에도 발찌를 걸치고 있다. 양무릎 중앙 전면에 부채살 모양의 군의자락이 주목된다. 대좌는 앙복련(仰伏蓮)이 중대 없이 바로 연결된 연접형식이다. 대좌의 상하단에는 19엽의 단판 연화문이 장식되었고 상하단의 연화문 외곽으로는 아주 미세한 연주문이 장식되었다. 순천 선암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화려한 몸치장 그리고 영락, 대좌의 연접형식 등에서 고려후기에 나타난 라마교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조성연대가 14∼15세기로 추정된다. 라마교는 중국의 서역인 티벳트는 물론 내몽고, 네팔 등지에서 성행했던 밀교적 색채를 띤 불교의 한 종파를 말한다. 이러한 고려후기에 발달했던 라마교적 요소가 국내의 석탑(마곡사5층석탑)뿐만 아니라 금동사리탑, 특히 금동불에서도 상당량이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선암사금동관음보살상은 14∼15세기경 라마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⑲ 순천 선암사 대각암 동종(順天仙岩寺大覺庵銅鍾)

2004년 9월 20일 시도유형문화재 제263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 대각암 동종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범종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로서 몸통에 순치(順治) 14년명의 절대연대가 있어 1657년(효종8)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대는 연당초문을 새겨 장엄을 더했으며 몸통 하단에 당좌 없이 위패형의 방형을 구획하고 그 안에 종의 주조 기록과 시주자 등을 기록해 놓았다. 이 기록에 따르면 보성 대원사 부도암에서 제작되었고 이 종을 만든 장인은 김용출과 장사상임을 알 수 있다. 몸통의 상단부에는 4군데 유곽과 9개의 유두가 있으며 그 사이의 동서남북 방향에 두광을 표현한 보살입상이 조각되었다. 상단의 천판 밑에는 범자문이 19자 새겨지고 천판위로는 16엽 연화문이 장식되었다. 용뉴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용두를 새기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게 하였는데 한쪽 발은 몸통 상판을 받치고 있고 다른 한쪽 발은 여의주를 감싸고 있다. 다른 한 마리의 양식도 같다. 음통은 없고 다만 음통자리에 직경 2cm되는 구멍을 뚫어놓았다. 몸통 중앙부분의 보살상하단으로 17cm길이의 균열이 있으나 보관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선암사 대각암동종(순치14년명)은 1657년이라는 절대연대를 알 수 있고, 겉면에 묘사된 하대의 당초문, 보살입상의 사실적인 면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고 있다. 전남 도내 17세기 범종으로서는 두 번째로 빠른 동종으로서 가치가 있다.

⑳ 선암사 삼인당(仙岩寺 三印塘)

1980년 6월 2일 시도기념물 46호로 지정되었다. 삼인당은 긴 알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선암사 기록에 의하면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독특한 이름과 모양을 가진 연못은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다.

21.선암사 마애여래입상(仙岩寺 磨崖如來立像)

1987년 9월 18일 문화재자료 157호로 지정되었다. 순천읍에 위치한 선암사(仙岩寺)에서 대각암(大覺庵)으로 올라가는 중간의 바위면에 새긴 불상으로, 약 7m 높이의 바위면에 옴폭 들어가게 새겼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눈·코·입이 균형 잡힌 얼굴은 원만하며 얼굴에 비해 귀가 크게 새겨져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의 귀와 비슷하다.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졌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다. 왼팔에 걸친 옷자락과 가슴을 덮고 있는 옷자락은 아래로 길게 흘러내려 몸 전체를 덮고 있다. 오른손은 다리 밑으로 수직이 되게 내려뜨려 손가락을 펴고 있으며, 왼손은 팔을 굽혀 가슴 위에 붙였는데 엄지와 중지를 모으고 있다. 비록 선으로 새겼으나 단아한 얼굴, 정교한 머리칼의 표현 등에서 지방 작가의 기법을 능가하고 있다. 불상에 대한 기록이나 문헌이 없어 확실히 만들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2. 선암사 각황전(仙岩寺 覺皇殿)

1990년 2월 24일 문화재자료 177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는 지었을 당시의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고, 고려 선종 6년(1088)에 의천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각황전의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으로 통일신라 경문왕 원년(861)에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현종 1년(1660)에 복원하였고, 다시 영조 36년(1760)에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처님의 몸을 일컬어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 말한다. 장육전에는 석가여래의 모습인 장육존상을 봉안했을 것이고 그러한 장육존상의 예는 신라 황룡사 금당 장육존상터에서 알 수 있다. 경내 가장 구석진 (북쪽 끝 지점에 무우전이 있는데 이곳의 안쪽으로) 곳에 있는 각황전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규모는 작으나 화려한 멋을 지닌 건물이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민 천장을 설치하였고, 처음 지었을 당시 만들었던 철불을 1900년경에 석고로 도색을 하여 모시고 있다.

23. 순천선암사측간(順天 仙巖寺 厠間)

2001년 6월 5일 문화재자료 214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의 대변소 건물로 일주문과 범종루를 지나 대각암 가는 길에 있는 해천당 옆에 위치해 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이라 하였던 것을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5)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이후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더욱 크게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앞면 6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바람을 막을 수 있는 풍판으로 처리되었다. 정(丁)자 모양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는 이 건물은 북쪽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남자와 여자가 사용하는 칸이 양옆으로 분리되어 있어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을 하고 있다. 출입구에 설치된 풍판은 이 건물의 특징으로, 풍판 아래부분의 가운데와 양 끝을 약간 들린 곡선으로 처리하였다. 이렇게 곡선으로 처리된 입구의 모습은 아름다운 곡선미를 보여주는 한편 드나드는 사람의 머리높이를 생각하여 배려하고 있는 듯하다. 범종루와 이 건물이 있는 해천당 사이에는 지형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하여 상부층과 하부층으로 지혜롭게 분리하여 이 건물을 지었다. 건물의 짜임새도 튼튼하고 옛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 보존 상태 또한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선암사의 측간은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1920년 이전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지방에서 이와 같은 평면구성을 하고 있는 측간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그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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