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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광물/건강

청동기 시대 곡옥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08.05.17|조회수1,114 목록 댓글 0

청동기 시대 곡옥

 


대표적인 송국리식 반결형 곡옥 이외의 것을 찾아봤다.


전라남도 지역의 곡옥 자료는 책을 참고로 추적.
내우 고인돌 [昇州牛山里遺蹟]

이 중 우산리 내우 고인돌군 58기가 1986년 주암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전남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고인돌군은 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면 끝부분에 위치한다. 고인돌의 상석들은 대체로 구릉의 반대방향인 남북으로 여러 열을 이루며 배치되었고, 돌방의 방향도 이와 같다.

내우고인돌의 돌방은 크게 석곽형·돌둘림형〔圍石形〕·토광형으로 나뉜다. 이 중 할석이나 자연석을 쌓거나 세워서 벽석을 구축한 석곽형의 돌방이 확인된 52기 중 45기에 이른다. 돌둘림형과 토광형은 각각 5기와 2기에 지나지 않는다. 출토유물로는 간돌검 17점, 돌화살촉 24점, 삼각형돌칼 1점, 돌끌 1점, 홈자귀 1점, 환상석부편 1점, 비파형동검 2점, 곡옥 3점(8호 고인돌에서 2점, 6호 고인돌에서 1점), 대롱구슬 1점, 소옥 6점, 토제구슬 1점, 민무늬토기편·붉은간토기편·채문토기편 등이 있다.

내우 8호 고인돌은 고임돌이 없는 개석식(無支石式) 고인돌인데, 무덤칸은 길이, 너비, 깊이가 1.47×0.5~0.56×0.55m이다. 동검은 반파품(半破品)을 재가공한 것으로 북쪽 바닥석 서벽하에 봉부(鋒部)를 북쪽에 두고 놓여 있었다. 동검이 놓인 반대편인 남쪽에서는 굽은옥 2점과 구슬 6점이 발견되어 머리쪽에 옥을, 피장자(被葬者) 왼발치에 비파형동검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수 평여동 다군 2호 고인돌

  전남 여수 평여동 고인돌에서 2점의 곡옥과 함께 소옥 235점과 관옥 35점이 무더기로 발견되어 목걸이와 옷에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에 대한 기록 중 ‘마한인은 금 은보다 옥을 더 귀히 여기고, 이를 귀나 목에 걸거나 옷에 장식하기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어 이미 고인돌사회에서도 옥을 장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안 월암리 고인돌
무안(務安) 월암리(月巖里) 1호 고인돌은 1985년 무안지역에 대한 지표조사 당시 확인된 것으로 4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밭이 아파트 건축부지로 예정되어 1991년 4월 29일부터 5월 13일 까지 15일간 실시되었다.
  월암리 고인돌군은 남-북에 가까운 1열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상석의 방향과 일치하고 있으며 산흐름과도 일치하고 있다.
  총 4기를 발굴조사 하였으나 3, 4호 고인돌의 경우 파괴되어 정확한 하부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1호 고인돌의 경우 판석을 세워 석관을 만든 형식인데 후대에 토광묘가 석실을 파괴하고 추가로 축조되어 있어 특이하다. 2호의 경우 석실을 따로 만들지 않고 광을 판 후 바로 판석을 덮고 상석을 얹은 형식이다. 1호 고인돌의 경우 석실의 크기로 보아 신전장이 가능했으리라 생각되며 2호 고인돌의 경우 2차장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출토유물 석촉, 숫돌, 천하석제 곡옥, 쇠낫, 쇠 도끼, 철편, 석부, 기타 구슬류 등이 있다. 특히 천하석제 곡옥은 고인돌에서는 출토 예가 드문 것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이번에 출토된 곡옥은 부여 송곡리 출토품과 비교될 수 있다.
  끝으로 고인돌의 축조년대는 곡옥의 연대를 고려해 기원전 3세기 말 2세기초로 추정하고,토광묘의 축조년대는 쇠도끼, 쇠낫, 구슬류 등을 통해 볼 때 기원후 3세기 경으로 비정해 본다.




영암 망산리 고인돌 (靈巖望山里支石墓)
망산 마을 바로 앞 구릉에 총 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 곳 고인돌은 1994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 되어 하부구조 4기가 확인되었으며 석촉, 곡옥, 관옥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관옥은 영산강 유역의 고인돌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경상남도(慶尙南道) 산청군(山淸郡)




경상남도(慶尙南道) 산청군(山淸郡)


경상남도(慶尙南道) 진주시(晋州市)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위치한 대규모 유적이다. 광대한 창유구(畠遺構)나 풍부한 식물유존체(植物遺存體)의 출토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옥작 유구가 다수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그 중에서도 연마제로 여겨지는 황색사(黄色砂)가 주거 중앙의 토갱(土坑)내에서 검출되고 있는(그림 2-9) 것은 매우 드문 예이며, 주거내에서서 옥작이 활발히 행해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밖에도 근지석(筋砥石: 같은 그림 1·2)이나 천하석 원석(같은 그림 3), 천하석제 곡옥(같은 그림 4 왼쪽), 천하석제 소옥(같은 그림 4 오른쪽·5), 수정제 천공구(穿孔具: 같은 그림 6), 벽옥제 관옥(같은 그림 7·8) 등이 검출되고 있고 더욱이 주거지의 구석에서 패각(貝殻)이 다량으로 검출되는 예(같은 그림 10)도 있어 그것을 가공하고 장식품을 만들어 내었던 듯하다.

그림 2 옥작 관련 자료 1·2:S=1/8, 3~8:S=1/2
(1 : 옥방 1지구 출토 근지석 2 : 옥방 5지구 출토 근지석 6 : 어은 2지구 출토 천공구 10 : 옥방 5지구 주거지내 패각 집적 검출 상황 4 : 옥방 2지구 출토 천하석제 옥류 5 : 옥방 8지구 출토 천하석제 소옥 3 : 옥방 5지구 출토 천하석 원석 7 : 옥방 1지구 출토 벽옥제 관옥 8 : 옥방 2호 지석묘 출토 벽옥제 관옥 9 : 어은 2지구 15호 주거지(밝은 부분이 연마제) 각 보고서의 그림·사진을 전재)








공립(公立) / 경기도(경기도)

충청남도 태안군




경기도 부천 오정구 고강본동 산 91-1번지 선사시대 유적지
제1층-청동기시대 문화층(민무늬 토기 문화층) 13호 주거지의 내부 조사작업 중 주거지 퇴적층 안에서 곡옥이 출토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송국리형 곡옥




북한의 유물

대평리 유적
1∼3. 제5호 고인돌 출토 2. 제4호 돌상자무덤 출토 3. 제9호 돌상자무덤 출토 4. 제1호 돌상자무덤


곡옥과 같이 나오는 동검 문화에 관해서..

세형동검은 날이 약간 투박하게 이루어져 내려오다가 손잡이부분에 이르러 미세하게 들어간 모양을 하고 있다. 세형동검의 출현은 비파형보다 훨씬 후기인 서기전 4세기말과 3세기초(초기철기시대), 연(燕)나라가 조선을 침공하였을 때 조선의 청동기 문화권이 대동강 또는 청천강 이남으로 밀려난 것과 거의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세형동검은 거의 청천강 이남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독특한 청동기문화 특성을 보여준다. 이 한국식 동검문화는 서기전 3세기경에 먼저 대동강과 금강 유역으로 이동하였고, 그후 위만조선의 등장과 한사군의 설치 등 정치변화에 따라 대동강, 영산강, 낙동강 유역으로 번져갔다. 다시 말해 세형동검은 서기전 4세기 이후 한반도 남부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즉 비파형동검은 남만주와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나 세형동검은 한반도 내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 초기의 중심지와 후기의 중심지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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