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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나무/자연/그림

[스크랩] 단원 김홍도

작성자운영자|작성시간10.03.26|조회수1,004 목록 댓글 0

 

 

 

사녀도(仕女圖)

37歲, 1781年 紙本淡彩

121.8*55cm簇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배경없이 9분면(分面)의 사녀를 입상(立像)으로 오른쪽 상단 '신축사월사능위연파과주인작(辛丑四月士能爲煙波觀主人作)'의 간기(干紀)와 관지가 있는데 같은 해 김홍도는 정조어진(正祖御眞)을 모사(模寫)하기도 하는 등 한창 성가를 드날릴 때였다. 이미 신선이나 초상(肖像) 등 인물화에 있어서는 틀잡힌 격조를 이루었고 무르익은 상태였다.

 

 

머리에 꽃을 꽂은 잠화사녀(簪花仕女)로서 정두서미법(釘頭鼠尾法)으로 그렸으며 조용하고 차분항 여인의 표현을 의식함인지 필선(筆線)이 비교적 고르며 묵색도 옅은 편이다. 세련된 용필은 주춤하거나 망설인 기색을 보이지 않는 유려한 백묘(白描) 기법을 바탕으로 해서 화면에서 튀지않는 담청(淡靑)과 담갈색(淡褐色)의 가채(加彩)가 도드라지며 단원이 추구했던 미인의 정형(定型)을 알려준다.

 

 

화본풍(畵本風)이 역력한 여인의 얼굴은 의습의 빠르고 속도감있는 필선과는 구별된다. 이그림에서 가장 정성을 기울인 부분으로 이목구비를 그렸다. 머리올의 표현과 안면의 처리에 있어 부분적으로 보이는 홍조는 시선을 모은다.

 

 

 

 총석정(叢石亭)

총석정(叢石亭) 44歲. 1788年(정조12)

각 30.4*43.7cm 개인소장

 

보통 금강사군첩 60 폭으로 알려져 있는 진경산수 화첩이다.1첩당 12폭씩 묶어 5첩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동나무판을 겉표지에[금강전도]라는 표제가 묵서되어 있을 뿐

서문이나 발문 제화시 등은 일체 없다.

 

각 폭마다 해당 진경의 명칭이 역시 묵서되어 있는데 단원 글씨는 아니다.이 명칭 끝에 '檀園' '弘道'라는 두 방의 방형백문 인장이 폭마다 찍혀 있으나

이 조악한 인장은 후낙관으로 이그림을 손상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본래 이화첩은 단원이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관도지방의 해산승경을 사생해 온 '봉명도사첩'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녔다.

 

 

 청심대(靑心臺)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청심대(靑心臺) 44歲.1788年

30.4*43.7cm 개인소장

 

보통 금강사군첩 60폭으로 알려져 있는 진경산수 화첩이다.1첩당 12폭씩 묶어 5첩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동나무판을 겉표지에[금강전도]라는 표제가 묵서되어 있을 뿐 서문이나 발문 제화시 등은 일체 없다.각 폭마다 해당 진경의 명칭이 역시 묵서되어 있는데 단원 글씨는 아니다.

 

이 명칭 끝에 '檀園' '弘道'라는 두 방의 방형백문 인장이 폭마다 찍혀 있으나 이 조악한 인장은 후낙관으로 이그림을 손상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본래 이화첩은 단원이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관도지방의 해산승경을 사생해 온 '봉명도사첩'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녔다.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송하취생도[松下吹笙圖]

 

109.0*55.0cm

고려대학교박물관소장

 

김홍도의 도속인물 중에는 신선만을 크게 부각시켜 배경을 등한시하거나 전혀 그리지 않기도 하며 이 그림과 같이 배경 내에 신선을 나타내기도 한다.배경이라고 해도 신비경이 아니며 평범한 소재로 노송만을 대담하게 수직을 포치시켜 소탈하면서 조용하고 그윽한 장면을 보여준다. 노송을 한 중앙에 수직으로 내리 긋는 구도는 김홍도에 앞서 18C 대표적 문인화가 이인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화면의 중앙부분은 노송줄기로 좌우로 여백이 많으며 조금 넓은 우측에 장식적인 효과마저 드는 이행의 제발이 있다. 소나무는 좌하단 모서리에서 시작하여 그 상부는 화면 밖으로 이어진다. 솔잎이 성근 늙은 줄기가 부각되어 신선과 함께 상징성을 부여한 듯하다. 편한 자세로 앉아 생황을 부는 신선의 의습선은 고른 필선으로 동적인 형태가 아니어서 소나무와 대조되어 더욱 걸 맞는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金弘道 畵虎 李寅文 畵松 絹本彩色

                                                                       90.4*43.8cm. 호암미술관 소장

 

 

                                     좌하에 '士能'이라는 김홍도의 묵서가 있고 그 아래 주문방인 '金弘道印'과 백문방인 '士能'이있다.

                                    좌상에는 '豹菴畵松'이라는 묵서와 백문방인 '姜世晃印'이 있는데 두 관서의 필치는 동일하다.  

                            호랑이는 슬금슬금 걷다가 무언가가 의식된 듯 갑자기 정면을 향해 머리를 돌린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졌다. 

 

이러한 자세는 조선시대 맹호도에 전형적인 것으로서, 호랑이의 백수지왕(百獸之王)다운 위엄이 정면을 향한 머리와 화폭을 가득 채운 포치에 의해 강조된 것이다. 호랑이는 극사실에 가까운 묘사로 육중한 괴량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민첩유연한 그 생태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잔붓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터럭과 한호의 특징인 얼룩무늬의 자연스러움은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삼선도 

                                                                                삼선도(三仙圖) 

                                                                           絹本彩色 141.6*58.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화자(東華子).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의 서로 사승관계를 맺고 있는 삼선(三仙)을 그린 예는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두 작품은 같은 범본을 바탕으로 그린 듯 구도가 똑같다. 그러나 이 작품의 색깔감각, 농도조절, 필선의 힘, 세부묘사의 수준 등이 앞의 것보다 떨어진다. 

 

강세황은 이 그림의 화평을 쓰면서 '豹翁'이라 자호(自號)하였는데, 그의 유존기념작 중에서 '표옹'을 쓴 최초의 예는 1782년작으로 김홍도 나이 38세때이다. 앞서 본 삼선도보다 공을 덜였는데 그보다 후대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묵죽도(墨竹圖)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묵죽도(墨竹圖) 

                                                                                          紙本水墨 23.0*27.4cm

                                                                            간송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단원이 만년에 그린 대나무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작품으로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특징만을 잡아채서 익을대로 익은 필치로 단원의 만년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줄기의 필치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친 것이 분명하나 통상의 경우와 반대로 농담은 위로 가면서 진해졌다. 단원은 거의 대부분을 왼쪽으로 순식간에 쳐내려 놀라운 기교를 과시하고 있다. 얼마나 단숨에 쳤는지 줄기에 겹쳐진 '분'자법 잎사귀를 치면서는 심지어 미처 호흡도 조절되지 않아 붓이 꼬이고 뒤섞인 흔적이 나타나 있다.

 

 

                                                                                              기려원유도[騎驢遠游圖] 

                                                                                           46歲.1790년.28.0*78.0cm

                                                                                                 간송미술관 소장

 

                                        단원은 많은 분야에 다재다능함을 보여주었다.그러나 부채 그림은 매우 드문 편이다.

                             정조대의 기록으로 보아 단원의 부채그림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정확한 단원의 작품인지는 의문이 많이 간다.

                                                                     이 그림은 드물게 볼 수 있는 단원의 그림이다.

 

1790년 단원이 46세작임을 알 수 있는 관서가 있고 그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같은 해 제발이 있어 더욱 주목되는 작품이다.강변을 따라 난 한적한 들길에 나귀탄 노인이 등짐도 없이 동자 하나 딸려 단촐한 여행길을 나선다. 화면 좌변에는 육방옹의 행려시'검문 가는 길에 이슬비 만나(劍門道中遇微雨)'가 단원의 필치로 쓰여져 이 그림의 화상과 화의를 안내해 준다.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무이귀도(武夷歸悼) 111.9*52.6cm

                                                                                                                                 간송미술관 소장

                                         무이산계곡을 노 저어 돌아온다는 유람의 화제를 그린 작품이다.무이산은 중국의 복건성 건녕부 승안현 남쪽에 있는 산이다.

                                          36봉과 37암의 기암절벽이 빼어나게 솟고 굽이쳐 흐르는 아홉 구비의 계곡이 특히 유명하여 <무이구곡>의 칭이 있는 복건 제일의 명승이다

 

 

활쏘기(射弓),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타작(打作),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서당(書堂),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빨래터(漂母)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빨래터(漂母),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무동(舞童)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무동(舞童),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논갈이(耕畓) - 단원 김홍도 그림 작품

논갈이(耕畓),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기와이기(葺瓦),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에서 종이에담채,

27cm x 22.7cm,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청심대(靑心臺) 44歲.1788年

                                                                                                                                   30.4*43.7cm 개인소장

 

보통 금강사군첩 60폭으로 알려져 있는 진경산수 화첩이다.1첩당 12폭씩 묶어 5첩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동나무판을 겉표지에[금강전도]라는 표제가 묵서되어 있을 뿐 서문이나 발문 제화시 등은 일체 없다.각 폭마다 해당 진경의 명칭이 역시 묵서되어 있는데 단원 글씨는 아니다.

 

이 명칭 끝에 '檀園' '弘道'라는 두 방의 방형백문 인장이 폭마다 찍혀 있으나 이 조악한 인장은 후낙관으로 이그림을 손상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본래 이화첩은 단원이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관도지방의 해산승경을 사생해 온 '

청심대(靑心臺) 44歲.1788年

30.4*43.7cm 개인소장

 

보통 금강사군첩 60폭으로 알려져 있는 진경산수 화첩이다.1첩당 12폭씩 묶어 5첩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동나무판을 겉표지에[금강전도]라는 표제가 묵서되어 있을 뿐 서문이나 발문 제화시 등은 일체 없다.각 폭마다 해당 진경의 명칭이 역시 묵서되어 있는데 단원 글씨는 아니다.

 

이 명칭 끝에 '檀園' '弘道'라는 두 방의 방형백문 인장이 폭마다 찍혀 있으나 이 조악한 인장은 후낙관으로 이그림을 손상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본래 이화첩은 단원이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관도지방의 해산승경을 사생해 온 '봉명도사첩'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녔다.

봉명도사첩'이라는 꼬리를 달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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