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농업국가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뉴질랜드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부문 모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플라스틱도 금속처럼 전기 전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도성 플라스틱을 발명한 유명한 화학자 앨런 맥더미드(Alan MacDiamid)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그가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뉴질랜드는 화학 부문에서만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와 함께 두 명의 수상자를 탄생시켰고, 과학 부문에서는 총 세 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1927년 4월 14일생인 앨런 맥더미드는 대공황 시대의 뉴질랜드 마스터톤(Masterton)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 형제는 다섯이나 되었고 아버지가 실직 상태이던 시기에는 어머니가 얻어온 음식을 겨우 나눠먹으며 어렵게 살았다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할 수 있는 목욕시간에 동생들은 형이나 누나들이 먼저 목욕하고 남은 물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화목하고 사랑이 넘쳤으며 앨런은 가난함이 그에게 자립심과 돈에 대한 가치를 알려주었다고 회상했다.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 다시 일자리를 얻게 된 아버지를 따라 그의 가족은 웰링턴에서 몇 마일 떨어진 로어 허트(Lower Hutt)로 이사했고 앨런은 1941년에 로어 허트 하이 스쿨에 입학한다.
앨런은 10세 정도에 이미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오래된 화학 교재를 읽고 화학에 흥미를 가졌고, 그 책과 도서관에서 빌린 몇 권의 책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는 항상 반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학생이었으며, 교장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조용하고 품행이 바르고 남을 잘 돕는 등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1943년 뉴질랜드 대학 입학시험과 의대 입학시험에 통과한 그는 아버지가 은퇴한 후 가족이 케리케리로 가게 되자 웰링턴에 남았다. 17세의 나이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앨런은 빅토리아대학의 화학과에서 적은 보수를 받고 파트 타임으로 일하는 연구실 조교를 시작한다. 그의 일은 더러워진 실험도구들을 닦고 바닥을 쓸고 화학 약품들을 채워넣고 한 화학 강사의 강의를 준비해주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앨런은 한 화학 약품을 준비하다가 밝은 오렌지 빛 크리스탈의 색깔에 강렬하게 끌리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한다. “내가 화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컬러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지요. 난 정말이지 예쁜 것들을 좋아해요.” 그는 빅토리아대학에서 화학과 수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51년, 화학에서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게 된 그는 캠브리지대학교의 대학원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장학금을 받지 못했고, 대신 위스콘신대학교의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따게 되어 그곳에서 과정을 시작했다. 위스콘신대학에서 가장 큰 클럽인 국제학생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던 앨런은 이 클럽에서 매리언 마티유(Marian Mathieu)를 만나 몇 년 뒤 결혼한다. 1952년에 석사, 53년에 박사를 딴 그는 뉴질랜드 쉘 그레쥬에이트 장학금을 받아 캠브리지대학에 갔으며 그곳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인트앤드류스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1956년에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대학교로 옮겨 강사로 일했으며 1964년에 교수가 되어 45년간을 재직했다.
맥더미드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플라스틱 전도화 연구와 전도성 플라스틱 발명이다.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플라스틱의 전도화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던 그는 1970년대 초 일본 쓰쿠바 대학의 시라카와 히데키(Hideki Shirakawa)로부터 공동연구 제의를 받았고, 여기에 펜실베니아 물리학부에 있던 앨런 히거(Alan Heeger)를 동참시켜 플라스틱 전도체화를 위한 공동연구에 들어갔다. 이 세 사람은 1977년, 플라스틱도 금속처럼 전기 전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전도성 고분자(합성수지)를 개발해 플라스틱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종래의 상식을 뒤엎는 혁명적인 성과를 이루어낸다. 플라스틱의 분자구조를 변형하여 전도체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공로로 맥더미드, 히거, 시라카와 히데키는 200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금속처럼 전기가 통하면서도 가볍고 신축적인 전도성 플라스틱은 가공하기 쉬운 획기적 소재로 무한한 응용분야를 가지고 있다. 전도성 고분자는 발광다이오드, 태양전지, 이동전화 디스플레이, 소형 TV화면 및 평면 TV 등으로 개발되었다.
교수로서의 맥더미드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70대에도 1학년 학생들을 위한 기초강의를 손수 맡을 정도로 어린 제자들을 지도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다. 생전 600편이 넘는 연구논문과 저작을 남겼고 20개나 되는 특허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부지런한 연구자이면서 또한 전세계를 여행하며 21세기의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많은 강의를 하며 과학기술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해 주요 연구시설을 돌아보고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스스로를 태양숭배자, 워터스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여느 뉴질랜드 출신들처럼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었다. 말년에 그는 백혈병의 일종인 골수이성형증후군에 걸렸고, 2007년 2월, 강의를 위해 뉴질랜드를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던 중 펜실베니아의 그의 집 계단에서 쓰러져 7일에 사망했다. 79세의 나이였다.
앨런은 평생 고향 뉴질랜드와의 끈을 놓지 않았고 뉴질랜드의 가족, 친구, 과학자 동료들과 가까이 지냈다. 몇 년간 빅토리아대학교의 산업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를 하기도 하였으며, 1999년 빅토리아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에는 이 대학 물리화학부에 앨런 맥더미드 체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빅토리아대학교의 신소재 및 나노테크놀러지 연구를 위한 맥더미드 인스티튜트는 그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2000년에는 뉴질랜드왕립학회에서 최고 영예인 러더퍼드상을 수상했고, 2002년에는 뉴질랜드 훈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1999년 미국화학학회에서 재료화학상을 받고 2002년에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의 멤버로 뽑히는 등 수많은 상과 명예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