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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합 3: 16 - 19 감사는 곧, 믿음입니다.

작성자하늘의 평화|작성시간16.11.22|조회수85 목록 댓글 0

추석명절이,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절기라면, 오늘 맞이한 추수 감사절은, 주 안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며, 받은 은혜를 다시 한 번, 가슴과 생활에 새기며,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신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로 목사님께서 은퇴하시면서 기증하신 도서들 가운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시간관리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 관리이다”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능력있는 사람을 표현하면, 쉴 틈 없고,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사고에 대해 코비는, 사람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그가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시간을 잘 관리하며 사느냐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이 말을 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늘 바쁘게 사는지? 무엇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지?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붙들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피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삶의 방향이 바로 정해지지 않는다면, 훗날 허무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주변에 가끔, 평소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성도가, 또는, 열심으로 묵묵히 기도하며 헌신 봉사하던 성도가, 또는, 신앙의 년수로든, 교회의 직분으로든 존경받던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을 떠나는 경우들을 접합니다. 이들을 보면, 참으로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들이 떠나는 것은, 생활 속에서의 절망 때문입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절망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그들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을 송두리채 빼앗아 가는, 이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절망은 앞을 볼 때, 옵니다. 그러기에, 그 때까지 지내온 뒤를 돌아보며,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과거가 있기에, 희망의 미래가 있습니다.

김현승씨의 “감사”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감사는 곧 믿음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모른다.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는 곧 사랑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은 오히려 드리고 바친다. 몸에 지니인 가장 소중한 것으로.

과부는 과부의 엽전 한 푼으로, 부자는 부자의 많은 보석으로 그리고,

나는 나의 서툴고 무딘 눌변의 시로”

바울이 감사할 때 모든 것이 풍족했기 때문입니까? 만사가 형통하기에, “감사하고, 감사하라”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환난과 곤고를 당했습니다. 몇 번이나 매를 맞았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바다에서 파선을 당하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메섹, 에베소, 고린도, 예루살렘, 가는 곳곳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 맞고, 거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만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으로 자족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향해, “범사에 감사하라”고 당부했던 것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서로 비례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감사를 하게 되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겐 믿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해도, 감사가 빠졌다면, 온전한 신앙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기뻐할 수 없는 자리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을 살피면서, 오늘의 우리도, 어디서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감사가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라고 합니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종교개혁을 일으켜, 유대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깨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던 요시아 왕의 뒤를 이어, 그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은, 그의 아버지가 행한 길을 가지 않고,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이 행한 악한 길로 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 당시 중동의 패권을 쥐었던 패권자를 통합니다. 패권자는, 앗수르를 정복하여,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한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은 앗수르에 이어, 애굽까지 정복합니다. 이러한 전쟁 속에서 남 유다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불안하면, 대내적으로는 편안해야 할 텐데, 대내적으로도 불안했습니다. 그것은, 여호야김 왕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었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는데, 1: 6을 보시면, 사납고 성급한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들에 대해, 7 - 8을 보시면, 매우 호전적이고, 앗수르보다 더 악하고 잔인한 민족이었습니다. 혹을 떼려다가 혹을 더 붙인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박국은, 자신의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환난의 고통이, 자신의 뼈 속까지 깊이 들어옴으로, 온 몸을 떨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 남 유다의 중심에서 하나님이란, 유명무실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우상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유명무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데, 당시 가장 잔인한 민족이었던, 앗수르를 정복한 민족을, 징계의 채찍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들로 인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기에, 하박국은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하박국은, 본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무엇입니까? 기쁨이요, 감사입니다. 롬 5: 3 - 4을 보시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은, 언제나 감사하는 삶입니다. 살전 5: 18을 보시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합니다.

길 가에서 소년이 담장에 얼굴을 대고는, 혼자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행인이, 이 소년의 머리가 혹시라도 잘못된 것이 아닌가하며, 염려를 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주변에 누가 있든 개의치 않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소년은, 지금, 담장너머에서 벌어진 야구경기에 푹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행인은 담장너머에서, 이 야구경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소년이 담장너머로 야구경기를 보듯,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압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물론, 존재조차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열심을 내는 이유를, 그들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본문의 배경이 되는 남 유다의 상황과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국가까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있어서, 편할 날이 없습니다. 참으로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마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감사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이, 잘되고, 형통할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하박국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또는, 재난이 닥치거나, 우리가 계획한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7 - 18절을 보시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본문에서 제시되는 무화과, 포도, 감람나무는, 남 유다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과실수입니다. 이것들은, 식량자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실수에 열매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남 유다가 이미, 잔인한 바벨론의 침략으로, 황폐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랬기에, 밭에는 먹을 것이 없고, 양이나 소도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남 유다가 이렇게 된 것은, 유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되돌리고자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재앙과 궁핍이 겹치는 시점에서, 하박국은 즐거워하며,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억지같이도 여겨집니다. 고난이면 고난이지, 어떻게 기쁨의 원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오늘날로 표현을 한다면, 쌀통에는 쌀이 떨어지고, 통장은 마이너스이고, 직장은 부도가 났고, 자녀에게서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건강마저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조차, 하박국 선지자는,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기초적으로 필요한 것조차, 없어도,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소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입니다. 특히, 17절에 이어, 18절로 들어갈 때는,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시면, “그래도”라는 의미를 가진 “웨”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삶 속의 작은 희망조차까지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만을 즐거워하며,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의 2: 4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한 실천입니다. 곧,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욥이 겪은 상황도 이와 다르지는 않습니다. 욥에게 갑자기 재앙이 닥쳤습니다. 이 때, 욥은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관심을 어디에 두었습니까?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그래서, 욥 1: 21을 보시면,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며, 모든 것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본문의 하박국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현재로서는 남 유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 징계를 받음으로, 고난 속에 있지만,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회복하실 그 날이 올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달리신 저 십자가가 왜? 우리의 소망입니까? 십자가는 잔인한 사형틀입니다.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가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내 죄가 씻겼기에 기쁨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기에,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성도는,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서나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하나님께 자신의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빌 4: 12 - 13을 보시면, 사도바울이,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으시길 바랍니다.

경영일선에서 은퇴한 잭 웰치는, “경영의 천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가 임직원들에게 말할 때, 늘 강조하는 것이, “동그라미는 잊어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매출액이 많아진다 해도 거기에 도취되어,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늘 비교경쟁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에겐,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소리가 그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전에는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런데, 왕이 된 뒤, 3년 후부터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든 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살찐 가축들을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또, 솔로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여서,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지혜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부국강병해지고, 사방에서 자신을 칭찬하며, 드높이자, 이방여인들과 결혼함으로, 우상들을 예루살렘 안으로 들여옵니다. 그리고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생기게 했습니다. 요즘처럼, 어렵고, 혼란스럽고, 힘들 때 일수록,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늘 풍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9절을 보시면,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사항은, 도저히 기쁨도 감사도 있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사 40: 29 - 31에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현실의 상황만 보았더라면, 결코, 구원을 준비하는 하나님은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매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에 초점을 두었기에, 두려움을 떨침으로, 신앙의 위기에서 벗어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의 힘과 지혜를 신뢰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그의 백성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시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하박국의 신앙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의 생존권이 위협되는 현실적 위기에서조차, 하나님을 향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고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을 “나의 구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박국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전부였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물론 우리의 상황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는, 우리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비록 내게 필요한 것이 없을지라도”라는 하박국의 고백을 따른, 수준 높은 감사,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윌리암 로오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자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하는가? 그는 기도를 제일 많이 하고 금식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선을 제일 많이 하고 절제와 정숙과 공의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사람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2016년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원망할 일도 있고, 우울한 일도 있었고, 가슴 아픈 일도 있었지만, 하박국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불평과 원망을 감사로 바꾸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의 발을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감사를 드림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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