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요나와 큰 물고기”라는 그림책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행인이, 아이가 귀여워서 장난을 쳤습니다. “얘야, 너는 네가 들고 있는 그림책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니?” 그러자,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고, 또, 오늘 교회에서 배웠어요” 그러자, 행인이 좀더 심도있게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살다가 살아난 것이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거니?” 이 물음에, 아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고민하더니, “천국에 가면, 요나 아저씨에게 물어볼 게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행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 더 심도있게 물었습니다. “만일, 요나가 천국에 없고, 지옥에 갔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자, 아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세요”라며, 재치있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영국이 배출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20세기의 위대한 설교자들 가운데 한 분이시고, 성경 주석가 입니다. 그 분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80세가 넘도록 목회를 했습니다. 그는 본래, 영국 황실의 의사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뒤, 목회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릴 때 였습니다. 젊은 목사님이 찾아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일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사셨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평생 마음에 담고 있던 가장 진지한 생각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로이드 목사님은, 서슴지 않고 “내가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내가 목사로 사역하다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텐데, 그 때, 하나님께서 내 생애를 돌아보시면서, 어떻게 평가하실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로이드 목사님을 보시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칭찬하실 것인지, 아니면, 로이드 목사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책망하실지 두렵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이 말에서, 우리는 기독교으로서의 신앙생활이, 내 개인의 의지대로, 또는, 기분대로 그저,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기 약 1년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연주회에서는, 그의 걸작이었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었습니다. 당시 하이든은, 늙고 병약했기에, 휠체어를 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연주회가 마치고, 관객들이 하이든을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낼 때, 하이든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이 음악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만드신 것입니다”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 5: 10을 보시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디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바라기는,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그 분의 자녀로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우리의 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이에 대해, 본문이 알려줍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디에 있든, 주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는 것은, 5절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를 통해, 성령 받은 자의 행위를 말합니다. 곧, 성령을 받으면, 주와 함께 거하길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6절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담대해진다”는 것과 7절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믿음으로 행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도들을 보면, 자신들의 생각에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피혁공이었던 시몬의 집에 있을 때, 자신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선뜻 그들에게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보내셨다함을 듣고, 이들과 동행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이 있었지만, 꿈에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성령의 이끄심이라 생각한 후, 자신의 계획을 접고,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빌립은, 성령께서 광야로 인도하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디오피아 내시가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믿음을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영으로 있든지, 육신으로 있든지, 그의 관심사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의 “함께”라는 말은, 헬라어의 “프로스”입니다. 이는, “장소”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상호관계를 갖는 교제”를 말합니다. 그래서, 빌 3: 12을 보시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며, 그리스도와의 적극적인 상호관계의 교제를 “잡힌 바”로 표현합니다. 이를, 우리말 성경역으로 보시면, “나는 이미 얻었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붙잡으려고 좇아갑니다. 이는 나도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혔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힌바 되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밴드에도 장로님께서 올려서 소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그는, 지난 11월 8일 새벽,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가 확정되자,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차기 부통령에 취임하는,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입니다. 그는 유세기간동안, 자신에 대해 소개하기를, “나는 기독교인이고 보수주의자이며 공화당원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속한 정당을 먼저 내세우기 마련인데, 펜스는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먼저 내세웠습니다. 펜스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카톨릭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인디아나 하노버 대학을 다니면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카톨릭을 다닐 때, 많은 의식에 참가했지만, 그것을 통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몇몇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개종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펜스의 개종사유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독교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당이나 미사”분위기에서 감동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펜스는 천주교에서 주는 자유와 분위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1: 1의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펜스에게 평론가들은, 예수라는 조끼를 아예 입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선거유세동안, “기도는 이 땅에서 마지막 최선의 희망이라고 말한 아브라함 링컨의 말은 여전히 사실”이라며 “미국이 다시 건겅하고 강한 나라가 되도록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바란다”면서, 전 미국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대하 7: 14의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를 인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펜스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정치인들이 속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본문을 현대어 성경역으로 보시면, “우리는 이 육체를 가지고 여기서 살든지 육체를 떠나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살든지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목적입니다”라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들은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이렇게, 죄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 있든지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믿음과 순종의 관계가 유지된다면, 다윗처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기쁘고 평안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찬438장 3절을 보시면,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며, 후렴에서는,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하늘나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힘쓴다”는 말을, 헬라어로는, “필로티무메다”라고 합니다. 이는, “그저 한번 해본다, 노력해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야망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야망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중에, 자신이 미래의 대통령이라면서, 책상에 “대도무문”이라고 써 놓고, 노력했다는 분이 계셨습니다. 또, 국가대표로 선발된 자들이, 태능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받아 입소하기까지도 무수한 노력이 있었지만, 그 곳에서는 올림픽을 위해, 더더욱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본문에서 쓰인 “필로티무메다”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본문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라”고 한 말은, 그냥 지나치며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조언적으로 하는 말도 아닙니다. 이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10: 31을 보시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최우선”이라는 신앙으로, 정면 돌파를 하면서, 회사를 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네보 회사의 회장인 “미타니 야스또”입니다. 또,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는, 자신이 누리는 최고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내세워, 과감하게 자신의 일을 접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45년간 가네보에 재직하면서, 일본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일등공신입니다. 가네보가 전통적인 섬유사업에서 화장품, 약품사업 등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경영능력과 전략을 가진 CEO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철저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자처했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일도 있었습니다. 가네보에서 모든 행사를 총괄하는 인사부장으로 있을 때, “안전기원제”라는 회사 내, 신사참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있게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그는 퇴직을 각오하면서까지, 신사참배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또, 상사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묵인을 강요받을 때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정의를 선택함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고, 좌천되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그의 아내는 언제나, “출세 보다 하나님이 먼저”라는 신앙으로 내조했습니다. 이러한 아내의 내조 속에서, 그도, 출세보다는 “하나님이 최우선”이라는, 분명한 신앙노선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회사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용기로 중요한 결정들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동감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예배당에 나가 기도를 했습니다. 우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이어서, 교인들과 일과 직원들 하나하나를 놓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또, 아침마다, 시 23: 3 - 4; 엡 6: 10; 딤후 1: 7을 큰 소리로 읽고,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타니 야스또 회장의 삶의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인정하여, 그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언젠가는 하나님 앞의 심판대에 선다는 것을 기억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대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현대어 성경역으로 보시면, “장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그분 앞에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했든지 악한 일을 했든지 땅위의 육체로 사는 동안에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또, 히 4: 13을 보시면,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아닌지를 최종적으로 판결받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를 위해, 우리는 긴장하며, 믿음으로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 5을 보시면,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또, 살전 5: 3을 보시면,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주께서 기뻐하실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찬양과 감사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에 대해서 물으실 겁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열려 있습니다. 다윗은, 시 139: 7 - 8에서,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고 합니다. 하늘에서든 땅 속에서든 어디서든,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꾸 주님 앞에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물으실 겁니다. 그 때, 나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루하루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림으로,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사 1: 18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선악간에 있어서, 우리가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심비에 새기고, 이제부터라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오직 주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며, 노력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