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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 28: 6 - 9 내가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찬송하리라!

작성자하늘의 평화|작성시간19.02.17|조회수257 목록 댓글 0

여러분,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푸십니까? 어떤 이는, 그대로, 분을 내거나, 소리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샤워를 한다고 합니다. 혹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 안의 접시를 죄다 모아, 화장실에 들어가 깨뜨리기도 하고, 그 외에도, 산책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잠을 자거나, 등산이나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오픈 경기를 하는 가운데, 6번 홀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닉 프라이스에게는, 어릴 때부터,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휘파람을 부는 겁니다. 이러한 습관을 갖게 된 것은, 닉이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힘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휘파람을 불어라. 그럼, 쉽게 해결될거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하든, 어려움이 생기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휘파람을 분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지독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고, 가족을 모두 잃은 자였습니다. 누구겠습니까? 욥이죠? 욥의 이러한 고통은, 시대를 떠나, 누구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그의 아내마저, 저주하고 떠났습니다. 얼마 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보는 가운데, 아내가 떠나고, 생활이 어려워짐으로, 스트레스를 받자, 소주와 약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 소주부터 마셨답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약도 그대로 있고, 소주도 남았기에, 다시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산에서, 3일만에 깨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욥의 선택은 다릅니다. 욥이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선택한 것이 뭡니까? 1: 21을 보시면,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는 가운데,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누구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욥의 경우를 보면, 성도인 우리가 생활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만남을 불렀던 노사연씨가, 방송에서 간증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쓰러져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 심폐소생술로 위험은 넘겼지만,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더랍니다. 당시, 방송국에서 섭외도 잘 되지 않는 상황이라, 참으로 어렵고, 어려웠는데, 어머니까지 쓰러지는 시련을 겪었던 겁니다. 노사연씨는, 이 시련을 계기로,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엄마, 조금만 참아, 잘 될거야라면서, 새벽마다, 어머니와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여러 교회들과 방송국에서 섭외를 받았고, 어머니도 점차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노사연씨는 시련 속에서의 스트레스를, 하나님 앞에서 풀었고,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노사연씨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소, 가족은 물론이고, 매니저와 연예계 동료, 집에서 일을 돌봐주는 중국인 아주머니를 위해, 수시로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주변에서, 나날이 아름다워진다라고 하면, 서슴없이, 성령 성형을 받았어요라면서, 돈도 안 들고 부작용도 전혀 없는 성형법이라며, 추천도 잊지 않습니다. 이렇게 변하고, 전하게 된 것은, 시련이 주는 스트레스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하길, 제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니 인생이 즐거워졌어요라면서, 자신이 불렀던 만남, 세상을 향한 만남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주제로 하여,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감격을 드러내는 찬송을 부르고 싶다고 합니다. 오래 전부터,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찬양을 하여, 익숙해질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찬양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생활 속에서, 늘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은, 우리 앞에 놓인 문제로부터,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며, 현재의 상황을 넘어, 지금까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낙심과 좌절을 넘어, 희망과 기대를 가져다줍니다. 이러한 찬양은, 성도의 삶 속에서 체험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살아 있는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도망자가 되었을 때도,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우리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6 7절을 보시면,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듯한 상황 속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은,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시 30: 3에도 있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나무뿌리가 흙 속으로 깊게 뻗어져 있거나, 조그마한 꽃이 바위틈에서, 뿌리를 길게 뻗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고, 나무와 풀은, 흙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되고, 방패가 되며, 힘이 되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42: 5을 보시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본문 7절을 보시면,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지한다라는 말에는 묶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께 묶었다는 겁니다. 의지란 말은, 히브리어로, 바타입니다. 여기에는, 묶는다, 붙잡는다. 머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들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순간은, 하나님과 한데 묶여지는 순간입니다. 성내천을 건너, 옛날 동아일보 사옥자리에, 아파트가 세워졌습니다. 그 주변을 보면, 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말뚝으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묶여 있는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응답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본문의 1 2절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를 보시면,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단절된 것에 대해, 심히 염려합니다. 그래서, 그의 표현을 보면, 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본문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3: 7을 보시면,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고, 10: 12에서는,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17: 13에서는,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라고 합니다. 이 기도들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교제가 단절되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애끓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짧은 시간 속에서 부르짖은 것도, 입으로만 부르짖은 것도 아닙니다. , 2절을 보시면,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라고 합니다.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과 무덤에 내려가는이라는 표현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바쁘게 뛰는 다윗의 심장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하나님 앞에 뛰놀 듯, 찬양하며, 춤추던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진정, 우리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그러므로, 본문 7절은, 하나님만 의지했더니,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라며,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겁니다. 9장을 보시면,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눈을 뜬 사건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와서, 추궁합니다. 그러자, 소경이었던 자가 뭐라고 합니까? 그의 부모역시, 바리새인이 두려워 대답을 피했지만, 소경은 그들을 향해, 뭐라고 합니까? 9: 27을 보시면,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라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경험하지 않았기에, 바리새인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아들인 소경은, 바리새인을 향해, 당신들도, 예수의 제자가 되려합니까?”라며, 당돌한 대답을 합니다. 다윗에게는 이러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렇게, 확신에 찬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시어, 우리가 의지하며, 우리의 노래와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의 힘이며,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힘이요, 요새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다시 보시면, 그들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3자를 가리키는 겁니다. 3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전체입니다. 본문이 있는 28편 전체를 보면, 7절까지는, 다윗 개인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8 9절은, 이스라엘 전체를 다윗의 고백 속으로 끌어와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독자적으로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신앙공동체에 속해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과 신앙공동체는,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신목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나사렛 예수가 나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에이든 윌슨 토저는 그의 책, 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에서,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서 당신의 신앙은 진짜인가?”라고 묻습니다. 그는,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물질적인 안정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추구하는 가운데, 들풀신앙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온실의 나른함 가운데서, 소금의 맛을 잃는 것이며, 행복을 추구하면서, 성화를 잃는 것이고, 명예를 추구하면서, 십자가를 잃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신앙에 대해, 현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하나님을 경험하며, , 하나님을 상상의 세계에서 경험하기 위해 최면을 건다라고 합니다. 또한, 고후 13: 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를 인용하며, 가짜 기독교인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복음을 제시하며, 양지 바른 곳에만 있으려 한다면서, 모든 사람은, 평안을 주는 것 같은 가짜 신앙 편에 서야 할지, 아니면 영원한 평안을 주는 진짜 신앙 편에 서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은 앞서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했습니다. 다시, 본문 1 2절을, 보시면, 그가 몸부림을 치는 기도를 왜?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함을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기 전이나 한 후나 다를 바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싸인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요한 침묵만이 흐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찌하시겠습니까?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침묵을 견딘 욥은, 42: 5에서 말하길,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합니다. , 욥은, 하나님의 기나긴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찾게 되었고, 알게 되었던 겁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으로 인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항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하박국 선지자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1: 2을 보시면,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하지만, 3: 17 - 19절을 보시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힘이요, 요새시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도, 변절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 고통 속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대상을, 자신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시킨 겁니다. 첼로의 거장인, 파블로 카살스90세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3 4시간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기 위해서는,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하고, 최고의 성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목에서 피를 토하는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여러 자료를 참고하는 가운데, 입술이 부르트고, 엉덩이가 짓무르고, 온 몸의 뼈마디, 마디가 굳어지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아무런 노력없이, 아무런 댓가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한 가운데서, 어찌, 십자가를 보며,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고통 속에 있습니까? 실망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 끝까지 하나님만 신뢰하는 성도로, 우리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침묵을 통과함으로, 우리도 진정, 다윗과 같이,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요새요, 구원이시라는 고백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복을 주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시면,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라고 합니다.

 

본문을 쉬운 성경역으로 보시면,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주께 속한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소서. 언제까지나 그들의 목자가 되시고, 그들을 보살펴 주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여기서, 주의 백성주의 산업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비록,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자가 양 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과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의 우리도 하나님의 산업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그 무엇을, 제가 빼앗으려 한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목사님이 달라고 하니까 드려야지라며, 순순히 빼앗기겠습니까? 물건도 물건 나름이겠죠? 귀한 보석을 빼앗으려고 해도 주실 겁니까?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산업이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43: 1을 보시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6: 39을 보시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 17: 7 8을 보시면,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귀중한 것을 지키고, 보호하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산업이요, 기업이 된 우리를, 언제나 지키고, 보호하는 가운데, 복을 주시며, 인도하심을 기억하심으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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