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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 118: 5 - 9 내 편이신 나의 하나님!

작성자하늘의 평화|작성시간19.08.18|조회수933 목록 댓글 0

 광수생각으로 알려진 박광수씨의 글 가운데, 내 편이란 글이 있습니다. 소개해드리면, 나는 어쩌면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형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좋은 동생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면, 그저 내 편이 필요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내게 다 등을 돌려도 끝끝내내 내 편인 사람, 세상 사람들이 내게 돌을 던지면 같이 돌을 맞아 줄 사람. 나는 친구, 동생, , 사람하는 사람보다도 그저 단 하나, 내 편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입니다. 저는 가끔, 집에서 외계인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모의 말을 듣는 가운데, 그 말에 동의를 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면, 제게 하는 말이, 당신은 남편이야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남의 편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남편이 되지 않으려고 정신차리다가 언제부턴가 잊으면, 또 다시 듣게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남편이라는 말을 듣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속히, 내 편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18: 2을 보시면,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하며, 71: 3을 보시면,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라고 하며, 62: 6을 보시면,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다윗이 언제나, 그의 삶 속에서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그의 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하니까, 어떤 이는, 하나님을 자신만의 편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오만이고, 독선이며, 욕심이다라면서, 하나님은 모든 이의 편이다라고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다윗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 분을 의지하는 자에게 의지가 되어주신다는 겁니다. 7: 7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이의 편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의지가 되어주신다는 겁니다.

 

118편은, 마틴 루터가 애송했던 시편입니다. 그는 이 시편은, 내가 사랑하는 시입니다. 이 시편은, 여러 번, 나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시편은, 황제도, 군왕도, 지혜자도, 모사도, 성자들도, 모두가 나를 외면함으로, 많은 고통 속에 있을 때, 그 곳에서, 나를 건져 준 시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118편은, 루터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도, 밀림의 깊은 곳에서도, 3국의 어디에서든, 그리고, 우리가 있는 그 곳에서든, 세상의 어느 곳에서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고백은, 내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겁니다. ,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해결해 주실 것이니, 그것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말은, 나도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셨죠? 그리고, 지금도 하고 계시죠? 그럼, 신앙이 무엇입니까? 대부분,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실 겁니다.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하죠? 이 대답의 시작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께 있습니까? 그럼, 내가 하나님을 찾는 겁니까? 하나님이 나를 찾는 겁니까?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있습니다. 일백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자, 남은 양들을 들에 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신앙은,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아는 겁니다. 이것이 확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편에 계신다는 것에 대해, 확고부동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잘못된 곳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아름다운 고백을 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넋두리를 하십니까? 가끔, 자신도 모르게 나올 때도 있을 겁니다. 그 넋두리를 이젠, 하나님 앞에서 하시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 편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33: 3을 보시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고, 55: 6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합니다. 시인은 본문에서,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부르짖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본문 5절을 보시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합니다. 시인은, 부르짖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은, 내 편이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기도는 늙은 여인의 게으른 넋두리가 아니다. 적당히 이해되고 활용된다면, 가장 유력한 도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가만히 앉아서 세월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시간이야 말로, 우리가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을 얻는 시간입니다. 찰스 스펄전, 기도는 검은 구름을 헤치며 야곱의 사다리를 오르게 하고, 믿음과 사랑을 훈련하여 위로부터의 모든 축복을 가져온다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며, 그의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로 이끌어 내는, 영적 훈련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탄식하거나 원망, 불평하지 말고, 주님, 나를 도와주셔서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라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은, 시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말은 무성하지만, 고민도 무성하지만, 그 만큼의 기도는 적습니다. 40: 1 2을 보시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라는 표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걱정할 것은, 내 발목을 잡는 일로부터, 내 앞에 놓여진 장애물로 인해, 하나님께 얼마나 기도했는가, 하나님께 얼마나 부르짖었는가에 대해 걱정해야 합니다. 40: 27을 보시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라고 합니다.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역으로 보시면, 이스라엘아, 어째서 너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보지 않으며 네가 원통한 일을 당해도 무관심하다고 불평하느냐?”입니다. , 17: 10을 보시면,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합니다. 이 또한, 현대인의 성경역으로 보시면, 그러나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그 깊은 동기를 조사해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이 시간,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정 뿐 아니라, 남들이 알지 못하는, 우리의 언행심사의 동기까지도 살피어, 갚아주신다고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것을 충분히 알고, 확신했기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한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이, 스킨 쉽이 없이,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28장을 보시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가인 하란으로 가다가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15절을 보시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속임으로, 지금 피난 가는 길입니다. 우리가 야곱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야곱은, 지금, 어떻게 하면,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시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앞의 13 15을 보시면,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야곱의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야곱이 바라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겠다고 하신 것이 더 크죠?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아십니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 분 계십니까? 그것을 모르면서, ? 불만불평을 하고, 원망을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넓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내가 먼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겁니다.

 

둘째,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본문 6 7을 보시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본문의 기록자를, 다윗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그의 삶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가운데, 그 속에서 그가 붙잡은 것이,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삶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음으로, 늘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다윗은, 당당하고, 자신있게,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하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 시에서 고백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는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말로만 동행을 외친다고 해서, 동행하는 겁니까? 동상이몽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함께 있다고 해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동행, 하나님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은, 다른 누구를 위한 본문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본문이 되어야 합니다. 직전 교회에서, 청년이 하사관으로 입대를 하였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한다고 해서, 몇몇 교인들과 갔었습니다. 순서에 따른 행사들을 마치고, 끝으로 사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후보생 가운데, 한 사람이 틀렸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데, 곁에, 그 후보생의 아버지인 듯한 분이, 우리 아들만 맞고 다 틀렸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 참았는데, 그 뒤로, 그 아버지의 말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다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신앙생활을 다 잘못해도, 내 자식만은 신앙생활을 가장 열심으로 잘 하는 데,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도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이,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아닐까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내 편이 되시는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 수 없고, 우리에게 비전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전부로 모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장함으로,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치열한 전쟁으로 인해,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링컨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부관이, 우리도 기도하고, 남군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텐데, 하나님은 어느 편을 들어주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물음은, 우리도 일상생활 속에서, 늘 고민하는 물음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링컨이 말하길, 부관,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어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남군 가운데, 누가 하나님의 편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일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당당하게, 하나님은 내 편이시다라고 하게 됩니다. 32: 26을 보시면, 이스라엘 모두가 금송아지를 숭배함으로, 죄 가운데 있을 때, 모세가 그들을 향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고 합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우리의 주변보다 하나님의 편에 먼저 서야 합니다. 태양은, 1365일 항상, 하늘에 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떠 있고, 미국에서도 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되면, 해가 떴다고 합니다. , 요즘같이 태풍으로 비가 오거나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음으로 태양이 보이지 않으면, 해가 뜨지 않았다고 합니다. 깊은 밤, 우리가 깊은 잠에 있을 때도, 태양은 하늘에 떠 있습니다. 우리의 기분에 따라, 우리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지가 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편이며, 우리를 돕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우리의 삶, 우리의 환경, 우리의 모든 것을 안착시켜야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 편임을 기억하심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본문 8 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라고 합니다.

 

두란노에서 출판한 두란노 이야기 성경 가운데, 3 4장의 내용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목격한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앉은뱅이의 손을 꽉 잡더니 힘껏 일으켜 세웠단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앉은뱅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어! 그리고 걸어 다녔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걷게 된거야!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이 그 사람을 걷게 해 주신 거야!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예수님의 말을 대신 전한 것뿐이야. 베드로가 예수님을 도와 드린 거지!”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베드로에게 능력이 있어서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야기 성경에서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을 대신 전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성경이 이렇게 말한 것은, 나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하심을 위해, 내가 사용된다는 겁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화란의 코리 텐 붐여사가 40일간 독방에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코리여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길 힘도 없습니다. 믿음도 다 사라졌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라며 기도만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더니, 코리의 발을 보고는 갈라진 벽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코리야, 지금, 개미가 어디로 갔는지 봤니?” “, 벽에 난 작은 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 너는 지금 아무 곳으로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로 피하면 된다. 내가 너의 피난처이며,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정치인들을 보면, 자신의 주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주변에서 사람들을 모아서, 시위도 하고, 혁명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도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모으는 데, 힘을 쏟는 자들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힘을 모아야 합니다. 다윗은 이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을 다시 보시면,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라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편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가운데,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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