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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 37: 23 - 26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작성자하늘의 평화|작성시간19.09.29|조회수845 목록 댓글 0

2004, CBS 창사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목동에 있는 한국방송회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기독교 새 역사를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여기서, 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영국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숫자상으로 보면, 국가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오피니언 그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했습니다. 옥 목사님은, 한국교인의 삶의 자세가 주시옵소서의 삶이 아니라, ‘순종하겠습니다라는 삶이 되어야 하며, ‘교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새벽교회의 이승영 목사님은, 제자훈련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목회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고 논찬하셨지만, 이것은, 논찬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옥 목사님의 발제를 들으면서,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의 동행과 실천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신앙이,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그러한 가운데, 나의 고통과 아픔 등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하나님 앞에서 절규하게 됩니다. 고전 15: 10을 보시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면서, 사도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헌신하던 자였지만, 빗나간 헌신자였습니다. 그랬기에, 여기서 돌아서서, 올바르게 헌신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127: 1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솔로몬이 고백을 합니다. 그의 지혜와 명성, 부귀와 영화는 세상에서 최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그가,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사도 바울을 인도하신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겁니다.

 

2012년에 출판된 일본의 사토 아키라목사의 기적의 무대가 된 교회, 고난은 은혜의 시작이었다라는 소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후쿠시마에 있는 제일성서침례교회 성도들이, 눈물로 전하는 간증이 담겼습니다. 2011년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의 동북부 연안을 강타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5m의 거대한 쓰나미가 해안 마을과 도시들을 덮쳤습니다. 엎친데 겹친 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치, 마지막 강타를 날리듯, 이 충격으로 후쿠시마의 원전에서,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던 겁니다. 이 사건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약 5km정도 떨어진 곳에, 제일성서침례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것을 간증합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진과 원전으로 인해, 교회는 폐쇄되었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방사능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70명의 성도들은, 교회를 잃고, 기도와 눈물로 얼룩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서로를 의지하며 생존했습니다. 사람의 의지로 볼 때,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제일성서침례교회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독일선교사가 운영하는 캠프장에서, 소수가 공동생활을 했고, 그 외의 성도들은, 곳곳에서, 디아스포라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원전 사고가 있었던 곳에서, 60km 떨어진 지역에, 5번째 새 교회를 건축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계심을 경험합니다. 24: 16을 보시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합니다. 미국의 양키스 구단에서, 통산 2,150안타, 358홈런, 15년 연속 미국의 올스타에 뽑혔던, 요가 베라,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며, 야구계에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야구 뿐 아니라, 성도의 삶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성도로서의 삶이, 나의 생각, 나의 결정에 의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고백을 묵상해보면, 날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나는 얼마나 충성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대해, 본문은 세 가지를 전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본문 2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며, 돌보심으로 섭리하고,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천지의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섭리하는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며,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불꽃같다는 것은, 우리를 철저하게 지키고, 보호하심을 말합니다. 그래서, 121: 3 - 4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가끔, 우리는, 하나님이 빠진 나의 노력에서, 또는, 철저한 계획 속에서,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이것으로,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6: 1, 현대인역으로 보시면,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하며, 이어, 9절을, 현대어역으로 보시면, 사람이 일을 하려 이리저리 궁리하여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간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인도하듯,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모든 것을 완성하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성하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23: 3을 보시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맡긴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가나안으로 인도하실텐데, ,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영국이 산업혁명을 이루면서, 생활의 편리 가운데, 성경에 대한 인식이, 사람 중심의 이성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면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감리교단을 창설한 웨슬리에게는, 어린 시절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가 여섯 살 때, 집에 불이 났습니다. 웨슬리의 부모님은, 서둘러, 17명의 자녀들을 집 밖으로 피신시키고, 2층에 있던 웨슬리까지 피신시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집이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이, 웨슬리의 가슴에서 평생동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이 확신으로 인해, 영국의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때로는, 그를 박해하는 자들이 던지는, 돌팔매질의 빗속에서도, 그는, 의연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웨슬리는 내가 하나님 손에 잡혀 있고 내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산다면, 1: 20의 말씀처럼,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주님이 높아질 것입니다라며, 오직 주님만을 존귀케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본문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정하신 길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상황에 따라, 형편에 따라, 이어령 비어령으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성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의 가사를 보시면, 내가 걷는 이 길이 혹 굽어 도는 수가 있어도 내 심장이 울렁이고 가슴 아파도 내 마음속으로 여전히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심 일세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쓰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 일세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 살아가든, 지금 이 순간, 내가 걸어가고, 살아가는,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이끌고,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을 겉으로만 보면, 나 스스로가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삶의 내면과 현실을 살펴보면, 나의 삶을, 하나님께서 이끌고, 인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삶의 여정 속에서, 진정한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물건들을 보면, 그 물건을 만든 장인들이, 아무렇게나 만들지 않았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반드시, 그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우리도, 어떤 모습이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소명을 알게 됩니다. 그 소명을 알게 되면, 내게 있는 달란트가 왜? 주어졌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10: 23, 현대어 역으로 보시면, 주님, 인간이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이 물론 제 발로 걸어 다니지만 어찌 그 발걸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가 있습니까?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압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4: 8을 보시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고 합니다. 성내천을 걷다보면, 저처럼, 혼자 걷는 사람은, 건강이나 컨디션에 따라 빨리 걷기도 하고, 늦게 걷기도 합니다. 그런데, 둘이 걷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둘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걷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란히 걷는 겁니다. 어느 때, 나란히 걷겠습니까? 대화할 때입니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하든, 알콩달콩한 모습으로 가는 이들은, 거리가 얼마나 되든, 지치지도 않고, 나란히 걷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도된 우리가 갈 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입니다. 그 길이 비록 험난하고, 고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그 길,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로만, 똑바로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붙드십니다.

본문 24절을 보면,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합니다.

 

본문을 쉬운 성경역으로 보시면, 비틀거릴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충성으로 섬기는 성도도 넘어질 수 있고,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재기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그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 때,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형 에서를 피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란 땅으로 가던 야곱이, 두려움 속에서, 홀로 밤을 지낼 때, 28: 15을 보시면, 하나님께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때로는, 힘이들고, 어려움으로 답답함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에게 외면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께 잊혀진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49: 15을 보시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 16절을 보시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순간도 홀로두지 않고, 지켜줍니다. 이때의 눈빛이, 23절에서 말씀드린, 불꽃같은 눈동자입니다. 우리에게 집중하여, 철저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눈빛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가, 우리로 이 자리에 있게 한 겁니다.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인해, 이방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랬다가 다시 돌아올 때, 그들은 시 121편 찬송시를 부르며 왔습니다. 그 가운데, 4 6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있습니까? 이 성구가 마음에 들고, 때로는 위로도 되기에, 핸드폰이든, 생활의 공간이나, 또는, 카톡의 프로필이든 곳곳에 적어두는 모양새는 아닙니까? 우리의 마음에 적으시길 바랍니다. 24: 16을 보시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합니다. , 37: 28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라고 합니다.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바 됨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넘어져도 아주 엎어지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비틀비틀 하는 것을 본 동네 어른께서, 내가 잡아 줄 테니, 마음놓고 타라면서, 뒤를 잡아주셨습니다. 어른께서 잡아주니, 뒤가 묵직한 것이, 실수해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른께서 붙잡지 않을 때는 넘어졌지만, 붙잡아 줄때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23: 4을 보시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합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하비스트바이블채플의 제임스 맥도날드 목사는 그의 책, 언제나 신실하심에서,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은 이미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신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안전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우리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시련을 극복할 것이다. 시련의 목적은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데 있다. 시련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시련을 극복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분은 지치시는 법도 없고, 또 앞으로의 일이 언제 끝날지 궁금해 하지도 않으신다. 세상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을 피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분은 모든 것을 지켜보신다. 자기 자신에게 나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 또 한 주를 계속 살아갈 것이다라고 외치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인드 컨트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왜 붙잡고 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능의 손인,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야 합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존재감이 없던 다윗을 붙들어,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했습니다. , 물 위를 걷다가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붙들어 구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병자에게 닿을 때, 그의 몸은 치료되었습니다. 3: 33을 보시면,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심으로, 우리가 넘어지지 않을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내 자신을 맡기고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

본문 25 - 26은 말씀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과 은혜가 있습니다. 34: 7을 보시면, 하나님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사랑을 베풀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증거가, 본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일찍이 갈렙을 비롯하여, 다른 10명과 함께 정탐꾼이 되어, 헤브론을 다녀왔습니다. 이때, 헤브론이 옥토라는 것을 알게 된 갈렙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헤브론을 요구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에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1: 5에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못되고, 복 받을 자가 못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10명의 정탐꾼 무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13: 5을 보시면,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더하기 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새벽마다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 기도하던 엄마가 있었습니다. 딸은 매번 엄마 등에 엎이는 재미로 새벽마다 교회에 갔지만,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잠이 오지 않아, 엄마가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며, 예배당을 둘러보는 가운데,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엄마, 엄마하고 옆구리를 쿡쿡 지르며, 불렀습니다. 엄마는 기도를 중단하고 ?’하고, 딸을 보자, ‘엄마 저기 봐요. 세계에서 제일 큰 더하기 표가 있어요. 오빠 책에 있는 더하기 표는 작은 데, 저 더하기 표는 왜 이렇게 큰 거야?’하고 물었습니다. 딸의 엉뚱하고 갑작스런 물음을 받은 엄마는, 잠시 후,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더하기가 되지만, 예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빼기가 되기 때문이야’”라고 했습니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합니다. 여러분, 아이의 눈에, 십자가가 세계에서 제일 큰 더하기로 보인 것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도, 그 십자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것이 더 큽니다. 본문을 다시 보시면,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의 의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입니다. 오늘, 내가 어떤 모습과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있느냐는 것은, 나 뿐 아니라, 내 후손에게까지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여러분, 한 주간, 한 주간의 삶이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어깨를 누르고, 또는, 온 몸의 뼈가 녹는 듯한 경험도 하시죠? 이 속에서, 우리가 의지할 곳이 어디겠습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광로 속에 들어갔어도, 녹지도 타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강한 권능의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고, 지키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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