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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 55: 6 - 1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작성자하늘의 평화|작성시간19.12.01|조회수1,092 목록 댓글 0

지난 2014년에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 속에서 상영되었습니다. 그 때의 관람자가 1,4263,578명으로, 역대 4위였습니다. 이 영화는, 피난민들의 아픔, 고통 등 많은 것을 보여주었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봤습니다. 주인공인 덕수, 묵묵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덕수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덕수의 마음을, 그의 자녀들은 모릅니다. 덕수는, 가족들이 잔치 속에서, 즐겁게 노는 가운데,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와서,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어 놓고, 아버지, 저 약속 잘 지켰죠? 이만하면 내 잘 살았죠? 근데 나 진짜 힘들었어요라며, 독백을 합니다. 아마, 많은 관람자들이, 이 장면을 보며, 울었을 겁니다. 거실에서 즐겁게 놀던 덕수의 자녀들은, 덕수의 마음을 몰랐기에, 어린 손녀가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자, 아들이 대뜸, 아버지는 왜 이런 노래를 아이한테 가르쳤어요?”라면서, 면박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덕수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오직, 가족만을 위해, 헌신했던, 덕수의 마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마칩니다. 영화를 보면서, 성도된 우리가, 영화 속의 자녀들처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을 모른 채, 내 생각만을 앞세워,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삽니다. 우리의 의지에서, 어떤 생각이 생기면, 일단 라는 필터를 거쳐, 판단하게 됩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인지 말 것인지 등, 필터를 통해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의 의지를 제어하는 힘도 작용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 뒤편에 있다가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여지없이, 포기하게도 합니다. 이렇게, 포기하는 일들이 많을 때, 우리는, 도대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라며, 짜증을 내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의지대로, 생각대로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무질서하고, 참으로 복잡해질 겁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어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행하심입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를 주관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우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 내 의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똑같다고도 합니다. 이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자꾸 물어야 합니다.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 내게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해야 합니다. 본문이 있는 이사야서의 1: 1을 보면,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고 합니다. 웃시야는, 나라가 부강해지고 평안해지자, 왕권을 앞세워,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교만에 빠져 나병환자가 된 왕입니다. , 요담은,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유다에 우상숭배가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의 비위를 맞추고자, 제사장 우리야를 보내, 앗수르의 우상을 숭배하며, 인신 제사를 하는 등,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숭배를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룻밤에 앗수르 군사 185,000명이 전멸되는 기적과 죽음의 병에서 회복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바벨론을 의지하는 외교정책에 더 의지함으로, 이사야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를 보면, 이 시대의 유다는,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생각을 몰랐고, 오직, 주변 강대국 세력의 팽창에만 관심을 모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격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이사야는, 자신의 이름처럼,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럼,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는 겁니다.

본문 6 7절을 보시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합니다.

 

본문이 담긴 사 55장에서 하나님은, 절박하게 이스라엘을 부르고 있습니다. 나아오라, 오라, 사라, 찾으라, 부르라, 돌아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동일한 의미의 명령이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강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와도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애타게 이스라엘을 기다리는 가운데, 지금이 하나님을 만날 때임을 암시하는 것은, 때가 지나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비롯하여 예레미야를 통해서도, 긴 세월을 하루같이, 오직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권면하고,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풍요로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할 때는, 시련과 역경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들에게, 하나님보다도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부강해지고, 평화롭게, 풍요롭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그렇듯, 우리도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4: 8을 보시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두 마음을 품은 것이 뭡니까? 왕상 18: 21을 보시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과 반반 섞여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요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 합니다. 그래서, 73: 28을 보시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합니다. 서커스를 보면, 여러 묘기를 하는데,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동물들의 묘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묘기 가운데, 커다란 링에 불을 붙이고, 사자나 호랑이가 링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고난도의 묘기라고 합니다. 그것은, 털이 많은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불을 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련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동물들로 하여금, 불을 통과하게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련한 조련사들은, 이 일을 멋지게 해 냅니다. 그것은, 조련사가 동물과 하나가 되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불을 통과하는 전에, 조련사의 눈을 쳐다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조련사의 말만 믿고, 불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도 느끼는 바가 있죠? 우리가 이 땅에서 새 힘을 얻으려면, 형통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신호를 의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말이 아닙니다. 성경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모세가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성경의 내용을 알면서도,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 때문에, 우리의 의지 때문에, 우리의 주변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음으로, 때를 놓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명한 작품인 만종을 그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부모는,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밀레가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날 때, 밀레의 어머니가 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먼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밀레의 어머니는, 네가 화가이기 전에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주님을 잃어버린 화가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을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밀레는 우리에게, 만종이라는 대작을 남겨 주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성도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그의 가슴에 심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부르고,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세상 최고의 만남이며, 영광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오늘 우리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께로 나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겁니다.

본문 8 9을 보시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합니다.

 

본문을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두 구절 모두가, 왜냐하면이라는 의미를 지닌 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다. 이것은, 앞의 7절에 대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악의 길을 원치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겁니다. 행동으로도 떠나고, , 말씀으로도 떠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죄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인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을 부릅니다. 왜 부릅니까? ?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구세주로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요일 4: 19을 보시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합니다. 요즘엔 곳곳이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지방으로 다니기가 참 편합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국도로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위험한 구간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기에, 지방으로 왕래할 때는, 여행등 다른 목적이 있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구원의 길이, 이 고속도로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도로에는 고속도로도 있고, 국도도 있지만, 죄인에서 의인으로 구원받는 길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고속도로 밖에 없습니다. 이 고속도로에 대해, 3: 16을 보시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이 위대한 일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안목이 좁기에, 이 위대한 길을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하고, 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한 길을 가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다가 포기한 적 많죠? 성가대원 중에, 짝 기도를 포기한 분 계십니까? 우리가 기도에 실패하거나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간이 없어서 입니까? 너무 바빠서 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기도는, 길을 가면서도 할 수 있고, 운전하면서도 할 수 있고, 상대와 대화하는 가운데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포기하거나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내 의지에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44: 2을 보시면,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태에서부터 아십니다. 13: 5을 보시면,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삼손의 어머니에게, 삼손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자세히, 더 많은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의지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3: 1에서, 솔로몬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며, 17절에서는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고 합니다. 조이스 마이어하나님, 도대체 언제입니까?”를 보면, 조이스 목사는, 여기서, 하나님의 때를 믿고 기다리는 법을 말합니다. 그는, 1976년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역에 진전이 없어서 낙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기름부음 받은 것이 분명한데, 왜 그런지, 사방이 꽉 막힌 채, 돌파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사역에 동참할 다른 이들이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했구나, 지금 그런 심령들 가운데서 한창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네가 좀 더 기다려야겠구나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맞춤형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조이스 목사는, 하나님만큼 인생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은 없다. 주님이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하실 때가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거룩한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할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다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무슨 일인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조급증이나 좌절감 실망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오직 기다리는 시간을 존중하고 감사하며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하나님은 무대 뒤편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만큼,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때를 정확하게 아는 분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는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영영한 표징이 되라는 겁니다.

본문 12 13절을 보시면,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본문 13절의 가시나무찔레라는 표현에서, 3: 17 18을 볼 수 있습니다. 보시면,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합니다. 땅이 이렇게 된 것은, 첫 사람들이 에덴에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고통을 주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것을, 다시, 회복시킴으로,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본문에서 전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풍성함과 형통의 복을 주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본문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간절하게, 불렀던 것처럼, 오늘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가시나무와 찔레로 가득합니까? 하나님께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중국선교를 위해 일생을 보낸 허드슨 테일러에게, 선교사 후보생들이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래서, 허드슨은 먼저, 왜 선교를 하려고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 황무지 같은 중국 땅에, 교회들이 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중국인들이 복음을 듣고 받음으로, 미개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허드슨은 웃으며, 나는 다릅니다. 나는 중국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이곳 생활이 즐거워서도 아닙니다. 모래바람이 일고, 미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문명의 불모지가 뭐가 좋겠습니까? 이렇게, 내가 이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이 사역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왜? 나가지 못합니까? ?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을 하고, 다짐을 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속의 이스라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입니까? 제사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입니다. 바라기는,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기념의 표징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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